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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박원자
저자 박원자는 숙명여자대학교에서 중국문학을 전공한 저자는 인생이 무엇인지 궁금하기만 했던 스물세 살 때 불교와 처음 만나 부처님의 가르침을 인생의 나침반으로 삼고 있다. 동국대학교 역경원 역경위원을 역임했으며, 그동안 많은 수행자들을 만나 취재하고 그분들의 삶을 그린 글을 월간 〈해인〉에 기고했다. ‘불교입문에서 성불까지’를 슬로건으로 한 인터넷 사이버 도량 금강카페(cafe.daum.net/vajra) 운영자로 활동하며 수행에 대한 글을 쓰고 도반들과 함께 정진하고 있다. 그동안 쓴 글로는 스님들의 행자시절을 엮은 《나의 행자시절》과 대한불교조계종 종정이신 법전 스님의 수행기, 전 종정이신 혜암 스님의 유고법문집, 비구니 역사의 산증인이라 불리는 인홍 스님의 일대기를 다룬 《길 찾아 길 떠나다》, 동국제강 창업주이자 이 시대 유마거사로 불린 장경호 거사의 평전 《대원 장경호 거사》 등이 있다.
행복한 인생수업
글쓴이의 말
1부 자신에게 속지 마라
인생을 낭비하지 않고 사는 법에 대하여
밥값
빈 배
사람노릇
내 일은 그에게 주는 것뿐
니, 죽고 싶나? 살고 싶나?
내 인생의 마지막 기도처럼
안 하면 어떻게 할 겁니까
끊지 말고 풀라
인생을 잘 사는 비결
2부 공부하다 죽어라
하루에 단 오 분만이라도 부처님처럼
공부하다 죽어라
한 물건도 취하지 말고 한 물건도 버리지 말라
꿈 깰 것
절대고독 속으로
다른 사람의 행복을 위해 기도하라
그림 그리는 것으로 도에 들다
독종 수행자 한 사람
3부 세상 모두가 스승이다
탐진치가 참나더라
자, 내놓아보라
생각이 복이다
큰 스승 만나기를 서원하라
자신을 수희찬탄하라
성불을 포기하게 한 스승
현법낙주, 현재의 상황을 즐기라
4부 결국 답은 자신이 내리는 것이다
천 일간의 수행을 향하여
인생의 시나리오를 다시 써라
염불은 청정한 자성을 지키는 것
인생을 낭비한 죄
일만배에 도전한 노보살님 이야기
그 겨울, 출가한 도반을 만나고
딸아이와 함께한 삼천배
후기 인생, 더 정성스럽게 살아야겠다
책소개: 철저한 무소유를 원칙으로 삼는 수행자 26인에게서 배우는 귀중한 인생공부
몸을 지탱할 수 있을 만큼만 먹고 철저한 무소유를 원칙으로 삼는 스님들의 생활은 수행자에 대한 경외심을 불러일으킨다. 지난 20여 년 동안 법전 종정스님에서 은둔수행자까지 수많은 수행자들을 취재한 저자는 그분들에게 인생이 무엇인지 어떻게 하면 인생을 낭비하지 않고 지혜롭게 살 수 있는가를 물었다. 26인의 수행자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노라면, 잠시 일을 멈추고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내 인생을 낭비하며 살고 있지는 않은지, 인생에서 선후로 두어야 할 것들을 제대로 챙기며 살고 있는지를 말이다. 여전히 인생을 낭비하고 있다는 자책이 든다면, 이 책에서 좋은 스승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인생을 낭비한 죄,
너무 많이 먹고 너무 많이 잤다
영화 〈빠삐용〉에서 주인공 빠삐용은 수용소 생활을 하면서 여덟 번의 탈옥을 시도할 만큼 끊임없이 자신의 무죄를 주장한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사막 한가운데로 걸어가는데 맞은편에 재판관과 배심원들이 앉아 있었다. 그는 평소처럼 결백을 주장하며 살인을 하지 않았다고 울부짖는다. 그러자 재판관이 이렇게 말하며 유죄를 선고한다.
“너에게는 분명 죄가 있다. 네 죄는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최악의 죄다. 그것은 인생을 낭비한 죄다.” (17-18쪽)
이십여 년 간 수많은 수행자들을 만나 인터뷰한 저자 박원자는 법전 종정스님의 수행기를 쓰고 혜암 전 종정스님의 유고법문집 출간을 맡고, 동국대 역경원의 역경위원을 역임했다. 수행자와의 인터뷰를 기사로 쓰는 데 있어 말로 다하지 않은 수행자의 본심까지 읽고 글로 표현해낸다는 찬사를 받고 있는 그의 내공은 수행과 정진의 끊을 놓지 않는 구도심에 있다.
20여 년 동안 수행자들을 가까이서 인터뷰하면서 출가와 수행에 관한 이야기를 여쭈었지만 정작 저자가 묻고 싶었던 것은 ‘인생은 무엇인가’ ‘어떻게 하면 인생을 낭비하지 않고 살 수 있는가’였다.
그가 인터뷰한 수행자들은 한국불교사에서 한 획을 그은 큰스님에서부터 스님들 사이에서도 회자될 만큼 독하게 수행한다는 어느 은둔 독종수행자까지 스펙트럼도 넓다. 그렇게 치열하게 살아온 수행자들은 자신들의 삶을 통해, 그리고 저자가 던지는 질문에 대한 답변을 통해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답을 주셨다.
사람에 따라, 자신이 처한 상황에 따라 다르게 읽힐 여러 수행자들의 이야기. 그중에서도 영화 〈빠삐용〉을 이 책의 첫 머리로 따올 만큼 저자에게 인생을 낭비한 죄에 대한 자각은 뼈아프게 다가온다.
그토록 무죄임을 항변하던 빠삐용이 재판관의 말에 자신의 죄를 시인하는 장면은 어떤 인생을 살아왔건 간에 간담을 서늘케 하는 강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그래서일까 저자는 석종사 혜국 스님께서 법문 중에 이 영화를 언급하며 “나는 불교에서 금하는 살생을 저지른 죄보다 인생을 낭비한 죄가 더 크다고 생각합니다”라는 말씀을 가슴으로 각인하며 책 서두를 시작했다. 영화에서보다 더 강했을 그 법문에 한쪽 뺨을 맞은 듯 얼얼했고, 결국 이는 ‘나는 내 인생을 낭비하지 않았는가’ 하고 뒤돌아보게 만들었다.
현대인이 겪고 있는 수많은 질병은 지나치게 많이 먹는 것에서 비롯되고, 그렇게 생긴 병을 치료하기 위해 병원에 다니고 다이어트를 위해 24시간 분주하다. 또 시간이 부족하다고 아우성이지만, 흥청망청 시간을 마구 써대며 설정 스님의 표현대로 “그림자 같고 물거품 같은 것에 매여”(83쪽) 자신의 인생을 허송세월하기도 한다. 그래서일까 저자가 전해주는 한국 선사들이 무심코 던진 이야기에도 우린 가슴이 저리다.
칠십이 넘어서도 홀로 토굴에서 정진하시며 한겨울에도 찬물을 머리에 부어가며 정진에 정진을 거듭하시고(227쪽), 지붕 뚫린 토굴에서 비가 새자 우산을 써가며 책상 앞에서 밤을 새워 ‘무아無我’ 두 글자를 쓰셨다던 청화 큰스님(34쪽)의 이야기를 읽고 나면 한쪽 뺨이 아니라 양뺨을 맞은 듯 붉어진다.
일평생 산문 밖을 나오지 않고 엄하게 계율을 지니고 철저하게 수행하셨음에도 불구하고, 말년에 일생패궐一生敗闕, ‘내 일생의 실패작’이라는 글을 남긴 대선사 한암 스님에 관한 이야기는 또 어떤가. 이렇듯 저자는 스님의 삶 앞에서는 숙연함을 넘어서 비감한 마음이 든다고 표현했다. “평생을 공부해도 깨칠까 말까 한데 그렇게 사는 것이 사람노릇이더냐?” 라는 한암 스님의 일침이 귓가에 맴돈다는 저자의 고백은 과언이 아니다. (39-43쪽)
떠날 리離 부처 불佛 자, 우리가 밤새 따뜻하게 덮고 자는 이불을 ‘부처를 떠나는 자리’(212쪽)라고 얘기하는 백졸 스님처럼 잠과 먹는 것과 관한 수행자들의 기록은 강한 인상을 남긴다.
내 인생을 낭비하지 않을 수 있다
고뇌를 화두로 좌절을 희망으로 바꾸는 공부
맹상군은 중국 전국시대 때 사람으로 모든 왕자와 식객 등을 천여 명씩 거느리며 세속에서 누릴 수 있는 최대의 복을 누린 사람이라고 한다.
어느 날 지나가는 식객이 찾아와 그에게 물었다.
“군께선 울어본 적이 있습니까?”
“없소.”
“그러면 내가 한번 군을 울려봐도 되겠습니까?”
식객이 옥퉁소를 불면서 한 말이 이랬다는 것이다.
“공수래공수거요 세상사 뜬구름과 같으니, 오늘 그대가 숨을 거둔다면 아들이 송장을 산에 가져다 묻는데, 송장을 묻고 돌아오는 산은 황혼이라.”
식객의 그 말을 듣고 평생 울음 한 번 없었던 맹상군이 통곡해버렸다고 한다. (257쪽)
누구나 좌절을 경험한다. 희망보다 좌절을 더 쉽게 기억하는 장치가 뇌 속에 들어 있는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지만, 그렇게 한번 주저앉은 사람에게 희망을 가지라고 섣불리 말할 수도 없다. 우리 모두 무한 경쟁 속에 내던져졌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저자의 말처럼 좌절당하며 사는 사람들이 어디 청춘들뿐일까. 뜻대로 인생이 풀리지 않아서, 자식이 말을 안 들어서, 너무 일찍 직장에서 퇴출되어서, 세상이 공평하지 않아서 날마다 좌절하며 살고 있는 우리들 인생 아닌가.
자신의 인생을 후회와 좌절로 보내고 있을 사람들에게 수행자들은 어떤 이야기를 전하고 있을까.
수덕사 덕숭총림의 방장이신 설정 스님께선 빙그레 미소부터 지으신다.
“사람들은 오욕이라고 하는 소위, 자신의 욕망을 충족하기 위해서 살아가죠. 돈이나 명예나 이성 등을 추구하는 안일한 삶을 가치 있다고 생각하고 그것에 매달려 있는데 실제 그 오욕으로 나의 생을 채우려고 해봐도 채워지지 않잖아요. 돈이나 명예가 있다고 행복한 것도 아니고요. 물론 기본적으로 먹고 살아야죠. 그러나 많이 먹고 편하다고 해서 행복한 것은 아니에요. 결국 오욕이라는 자체도 나를 편안하게 해주는 것이 아니죠. 그림자 같고 물거품 같은 거예요. 그럼 이런 것들이 아닌 진짜는 무엇인가 하는 의문을 가지고 시작하는 것이 선禪의 시발점입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공부의 시발점이죠.
적당히 어설프게 도전해서는 도저히 안 돼요. 안에는 들어가지 못하고 껍데기만 두드리다 말죠. 그래서 선사들이 하신 것처럼 모기가 무쇠솥을 뚫으려는 가당찮은 그런 무모한 용기로 붙어야 해요. 그 약한 모기의 부리가 솥을 뚫는 도리가 있단 말이죠.” (82-99쪽)
세상사 오욕락이라는 것, 혹은 세간에서 추구하는 행복이라는 것이 한낱 이슬 같은 것이요 허깨비와 같은 것임을 깨우쳐주신 것은 비단 설정 스님만이 아니었다. 법전 종정스님은 맹상군의 이야기를 통해 가르침을 주셨다. 옥퉁소 자락에 얹힌 말을 듣고 울 수 있는 맹상군은 영리한 사람이라고도 하셨다. 세속에서 아무리 최고의 복을 누린다 하여도, 생사의 문제를 풀지 못하면 결코 행복할 수 없는 것. 생사의 문제란 자신을 아는 문제와 다름 아닐 것이다.
“‘내가 누구인가’라는 근본문제를 해결해야 안정과 평화가 오는 겁니다. 근본을 여의고 지말을 쫓으면 분주하기만 하지 마음에 안정을 얻을 수 없어요. 일상에서도, 꿈에서도, 잠 속에서도 ‘내가 누구인가’라는 화두를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249-259쪽)
사람은 언제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서 운명이 달라진다. 그래서 스님들의 스승들은 차갑다 못해 무서울 정도로 후학들을 다그치신다. 선방에서 졸고 앉아 있거나 지대방에 등이라도 기대고 있는 수좌들이 눈에 띄면 ‘이놈들아 밥값 내놓아라’ 하시며 몽둥이찜질을 했다는 성철 스님(32쪽)이나 탐진치를 그냥 내버려둔 채 성질나는 대로 자신을 되돌아보지 않고 살다 보면 어느 쓰레기통에 처박힐지 모른다고 쐐기를 박으시던 설정 스님(95쪽)의 말씀을 들으면 공부를 시킨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도 힘든 일인지 짐작조차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저자는 스님들과 동시대를 함께했다는 것은 청복이고 희망이라고 한다.
별 자각 없이 늘 반복되는 일상. 그 속의 자신을 바라보면서 “이게 아닌데……” 할 때가 있다면 늘 하던 일을 멈추고 자신의 모습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지금 내가 어떻게 살고 있나, 인생에서 선후로 두어야 할 것들을 잘 챙기며 살고 있는가, 그것에서 진정으로 정밀한가, 최선을 다하고 있는가 돌아보라는 것이다.
여전히 인생을, 시간을 낭비한 채 보냈다는 자책이 든다면, 선지식들의 가르침을 지남철 삼아 내가 쥐고 있는 인생의 패가 과연 최선의 가치인지 깊이 들여다볼 일이다. (285-292쪽)
“영원한 행복은 자기 자신을 확실히 아는 것에 있으며, 그것은 수행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수행은 자신이 누구인가를 수시로 묻는 것입니다. 자신을 아는 것이 확실하지 않으면 행복할 수 없습니다. 수행이란 길을 꾸준히 걸어보세요. 오래하다 보면 틀림없이 들어가는 곳이 있습니다.”
법전 스님, 256쪽
“사람들은 자신의 욕망을 충족하기 위해서 살아가죠. 돈이나 명예나 이성 등을 추구하는 삶을 가치 있다고 생각하고 그것에 매달려 있는데 돈이나 명예가 있다고 행복한 것이 아니고요. 많이 먹고 편하다고 해서 행복한 것도 아니에요. 그림자 같고 물거품 같은 거예요. 그럼 진짜는 무엇인가 하는 의문을 가지고 시작하는 것이 선禪의 시발점입니다. 적당히 어설프게 도전해서는 안 돼요. 모기가 무쇠솥을 뚫으려는 그런 무모한 용기로 달라붙어야 돼요. 그것은 생명을, 모든 정성과 의지를 다해야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요.”
설정 스님, 83쪽
“인생의 시나리오는 가지고 태어나죠. 보통 사람은 각본대로 연출하고 살다가 갑니다. 그러나 불교는 시나리오를 새로 쓸 수 있는 것을 가능하게 합니다. 혹시 여건이 어렵다 하더라도 수행을 하려는 마음만은 떠나지 말아야 합니다. 수행이 참으로 내 것이 될 수 있도록, 뼈 속에 사무치도록 노력해서 인생의 진정한 행복을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무여 스님, 269쪽
“좋은 일, 슬픈 일, 괴로운 일, 좌절하는 일들이 다 합쳐져서 인생이라는 드라마를 이루는 겁니다. 이 모두가 인생이라고 여기며 수용해서 극복해나가려고 하는 사람에게 좌절은 희망의 양식이 됩니다. 딛고 일어서기만 하면 반드시 희망은 따라오기 마련이죠. 자연의 이치가 그렇습니다.”
혜국 스님 (21쪽)
까까머리 열다섯 중학생이던 때 출가를 감행한 월암 스님은 요즘 자다가 자주 일어나 앉는다고 고백했다.
“내가 생긴 모양은 이래도 민감한 사람입니다. 늘 일대사에 대한 중압감이 떠나질 않는데 오십이 훌쩍 넘어가니까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날이 많습니다. 이렇게 자고 있으면 어떻게 하는가 하는 생각에 일어나 앉아 잠을 못 이루죠. 나이 오십이면 지천명이라, 하늘의 명을 알 나이인데 그것은 고사하고 나의 명도 스스로 알지 못해 안심입명을 못하고 살아가니까, 갑갑하죠.”
문밖에 염라대왕의 신발 끄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는 스님은 혼잣말처럼 이런 말씀을 했다.
“모든 것 놓아버리고 한 오 년, 무문관에 들어가 나오지 말아야 할 것 같습니다. 아무 경계 없이 마지막 청춘을 불태우면서 정진해야 하지 않겠나 하는 심정입니다.”
월암 스님 (144-145쪽)
첫댓글 박원자 지음 / 출판사 웅진뜰 | 2011.1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