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매가 할배 산소에 가서 부탁한 말
조정래
안동시 풍산읍 까칠게에 사는 머물띠기(댁) 할매가 8년 전 살미산 중턱에 천년흙집을 짓고 사는 영감 산소에 소주 한 병 들고 올라가서 할배 산소에 두 잔 부어 주고 나머지는 할매가 다 마시고는 이런 넋두리를 하셨다.
“할바이요! 언간이 오래마이씨더만 저세사서(저세상에서)는 우째 사닛겨! 저세사서도 맹 술 자시고 노름하고 색시집 들락거리민서 사닛겨? 아이마 맴잡고 우째거나 마누라가 냉끼게네 내 오도록 눈빠지게 기다리매 사닛겨?”
그때 건너편 산자락에서 장꿩이 껄껄 크게 울었고, 붉은 진달래 꽃들이 무리지어 하늘을 보고 웃었다.
“내는 요즘 잘 지내니더만 둘째아가 한걱정이씨더. 설에도 다른 자슥들 다 왔니더만, 둘째아만 돈 번다꼬 못 았띠더! 옛날되미사 낫다카지마, 저 나이 되도록 아즉까정 아파트 한 채 못 쟁만하고, 금호동 산만데이 연립주택 세살이 하는데, 그느무 노가다 일이 노양 울매나 고달픈지 지작년에 보이, 어마이보다 더 늙어 보이디더…
“영감 죽고 이듬해 가리늦게 춤바램이 나서 집나간 며느리가... 마한느무 카든가 쪼가린가 마구 쓴 바람에 핵실이 다 이야기는 안했니더만 은행 빚이 으법 되는 모양있씨더. 서방질하다가 지 서방 베리고 나간 고 마한년(며느리)은 들리는 소문에 새로 팔자 고치가 살다가, 서바이 죽고 효숙이하고 효달이 하고는 가끔씩 아바이 몰래 지어마이를 바깥에서 만나능가 보니더만, 둘째아는 고 마한년이 또 지새끼들한테 돈 해꼬지나 할까 한걱정되능 거 같디더… 본세 며느리 잘못 보마 집안 마훗는다꼬 카디더만 둘째아가 그짝 났니더…
“그레이 우짜든동 맏이하고 막내이 글카고 딸래미들 네 며이 마카 살 만하이 영감이 저세사서 잊아뿌더라도 제발 둘째아만 더 까난뱅이 안되도록 복 좀 받드록 해 주이소. 영감 정도마 저세사서 수를 쓰마 될 성싶니더!
“이녁이 일핑생 내 속 새까막게 썩이다가 갔으이 내 소원 한 가지라도 들어 주시소! 만에 하나라도 내 소원 안 드라주메 내사마 죽어도 영감 여불떼기는 절대 안 오고 영감 내한테 오기 힘들게 조짜게 까시밭 건너 빈달에 묻어달라 칼끼꺼네. 우째든동 둘째아 형편 피도록 저세사서 우째 해 주이소!
“생각해 보이소. 두째아는 7남매 주에 기중 물미도 좋아가 통지표에 마카 수만 받았던 아인데 영감이 살아생전 개걸이 주막집 색시한테 미쳐가 감나무골 논밭전지 다 팔아서 안동 사장뚝 아래 첩생 살림 차린다꼬 둘째가 고등학교도 못 갔잖닛껴!
“옆집 구담댁 아는 통지표에 양가만 받아도 아바이가 돈이 있으게네 소 팔아서 갱안고 보궐로 들라가 결국 핵교 선상 안됐닛껴마는, 우리 둘째아는 글키 머리가 좋아도 영감이 노름질 색시질 하다가 고마 아들 앞가림도 못하이 결국 저키 배운 거 없이 한갑이 내일 모렌데도 아즉까증 아파트도 못 사고 저키 골물케 사는데 영감은 불쌍하지도 안하잇껴?”
춘봄에 할배 산소에서 와서 불쌍한 둘째아들에게 복 좀 주라면서 영감에게 넋두리하시다가 못 마시는 소주를 반병이나 마신 탓인지 술이 취해서 할배 산소 앞에서 스르르 잠이 들면서 이렇게 마지막 부탁 말을 다시 할배에게 하셨다.
“영감재이야! 영감재이야! 내 소원 안 들어 주마 내 죽어도 영감 여불떼기로 안 오고 저 건너 까시나무 숲 뒷쪽으로 묘를 써가 밤에 내 안고 시퍼가 내 찾아 올라캐이도 까시나무 땜에 오기 힘들도록 애먹일 테니 단디 듣고 둘째아 골물케 안 살도록 저세사서 조치 쫌 해주라 영감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