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을 부추기는 사람은 극단의 언어를 쓴다. 이분법적이고 단순한 화법으로 사람들이 사안의 복잡한 측면을 보지 못하게 한다. 소통은 단절되고 분열은 심해진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 기간 여성가족부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더 이상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 “여성가족부는 시대적 소명을 다했다.” “정부가 성인지 예산을 30조원 썼다고 알려졌는데 일부만 떼어도 북핵 위협을 안전하게 막아낼 수 있다.” 그는 대통령 후보 시절 페이스북에 ‘여성가족부 폐지’라는 단 일곱 글자 공약을 올렸고, 결국 젊은 남성의 지지를 등에 업어 간발의 차이로 대통령에 당선됐다.
‘여성가족부 폐지’는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각종 분노를 쏟아내는 젊은 남성들에 대한 응답 차원이었다. 군대에서 젊음을 희생해야 한다는 불만, 그럼에도 여성·사회로부터 그 공로를 인정받지 못하는 불만, 가부장제에서 남녀 불평등의 수혜를 입은 건 윗세대 남성인데 자신들이 여성을 대우해줘야 한다는 불만, 모든 남성이 ‘잠재적 가해자’ 취급을 받는다는 불만 등에 정치권은 득표를 위해 여가부라는 ‘정치적 희생양’을 내세웠다. 여가부 폐지로 이 모든 불만이 해소되는 것이 아닌데도.
선동인 줄 알았던 공약은 이제 현실이 되고 있다. 2022년 10월6일 정부는 여가부 폐지를 골자로 한 정부조직개편안을 발표했다. 여가부를 폐지하고 보건복지부 산하에 ‘인구가족양성평등본부’를 만들어 업무를 이관한다는 구상이다. 여성 고용정책을 고용노동부로 옮기는 등 여가부의 일부 업무는 쪼개진다. 정부와 여당은 이런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11월 정기국회에서 통과시키겠다는 계획이다. 그사이 대통령의 외교 현장 비속어 사용 논란, 낮은 국정 지지율 등 이슈는 가라앉고 있다.
10월11일 전국여성연대 등 여성계는 “신당역 스토킹 여성 살해사건, 서산 가정폭력 아내 살해사건 등 수많은 여성이 목숨을 잃는 상황에서 여가부 폐지 개편안 논의를 본격화하겠다는 것은 행정부의 의무에 반하는 것”이라며 정부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주요 외신들도 여가부 폐지와 관련해 비판적으로 보도하고 있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성별 임금 격차가 가장 높다.”(텔레그래프) “세계경제포럼이 발표하는 ‘성 격차 지수’ 순위에서 조사 대상 국가 146개국 가운데 한국은 99위를 기록했다.”(가디언)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는 대통령과 정부의 주장을 반박하는 내용이다.
정부와 여당의 논리는 이렇다. 여가부가 맡은 업무 가운데 성평등 교육·문화 확산 정책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예를 들어 2022년 편성된 여가부 예산 1조4650억원의 구체적 내용을 살펴보면 61.9%(9063억원)가 한부모가족 지원, 아이돌봄 서비스 등 가족정책 관련 예산이다. 18.5%(2716억원)는 청소년 관련 사업 예산, 9.2%(1352억원)는 성폭력 피해자 등을 지원하는 예산이다. 경력단절 여성 지원 등 성평등과 직결되는 예산 비중은 7.2%(1055억원)에 불과하다. 여성 고용 문제는 고용노동부와 업무가 겹치고, 아동·청소년 돌봄 업무는 보건복지부와 겹치는 등의 문제가 있으니 통폐합으로 업무 사각지대를 없애고 효율을 증진하겠다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여가부가 보건복지부라는 더 큰 부처 산하에 들어가면 입김이 세질 수 있다는 논리도 펼친다. 여가부는 정부 전체 예산의 0.24%(1조4650억원) 규모에 불과할 정도로 ‘미니 부처’라 힘이 없는데, 보건복지부 산하로 들어가면 기획재정부 등 다른 부처 간 교섭력이 커진다는 것이다. 보건복지부 인구가족양성평등본부장은 통상교섭본부장처럼 장관과 차관 사이의 위상과 예우가 부여돼 국무회의에 배석할 수 있으므로, “2명의 스피커(보건복지부 장관, 인구가족양성평등본부장)가 양성평등에 대해서 얘기할 수 있는 창구가 생겼다”고도 말한다.
그러나 여가부가 폐지되면 정부 예산을 단순히 분야별, 업무별로만 평가하는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여가부의 주요 성평등 업무 가운데 하나는 성별영향평가·성인지예산제도 등을 통해 성평등 관점에서 국가 정책을 검토하는 일이다. 이는 ‘여성에게 유리한 구조를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다. 인류 역사에서 남성이 제도 전반의 ‘디폴트값’(저절로 주어지는 값)이었기 때문이다. 영국의 여성운동가 캐럴라인 크리아도 페레스는 저서 <보이지 않는 여자들>에서 ‘남자를 기준으로 설계된 세상’에 대해 이렇게 지적한다. “가장 중요한 점은 그것이 대개 악의적이지도, 심지어 고의적이지도 않다는 것이다. 수천 년 동안 존재해온 사고방식의 산물일 뿐이기에 일종의 무념이라 할 수 있다.”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수석전문위원을 지내며 현장을 지켜봐온 차인순 국회의정연수원 겸임교수는 “예를 들어 여성가족부는 일·가정 양립 문제라 하면, 여성 경제활동의 특수성을 고려해 아주 치밀하게 현장을 고민한다. 그런데 이런 업무를 고용노동부가 하면 그냥 일반적 고용정책처럼 부처가 해왔던 관행대로 예산을 기획하고 배분하게 된다. 여가부가 폐지되면 여성 특수성은 각 정책에 잘 반영이 안 될 게 현장 업무를 한 사람 입장에선 너무 눈에 잘 보인다”고 말했다.
정현백 전 여가부 장관은 “보통 장관들이 국무회의 시작 전 간단한 차담회를 하며 부처 간 협력할 일을 소통한다”며 “한국의 관료 구조가 그렇게 민주적인 구조가 아니고 부처 간 장벽도 높은 편이라 장관 아래 직급의 본부장이 이런 루트로 협치를 적극적으로 얘기하는 건 사실상 힘들다”고 말했다. 차인순 교수도 “어쨌든 주무부처와 장관이 없어진다는 건데 구구절절 갖다붙이는 설명”이라고 정부와 여당을 비판했다.
1998년 2월 김대중 정부가 대통령직속 여성특별위원회를 만든 이래 여가부는 성평등 정책 전담기구로 자리매김했지만, 이명박 정부 때 한 차례 위기가 있었다. 이명박 정부는 처음에 ‘여성가족부 폐지’를 주장하다 반발에 직면하자 가족 및 보육 정책을 보건복지가족부로 이관시키고, ‘여성가족부’를 ‘여성부’로 축소했다. 하지만 사회 각계 반발과 여성부의 업무 추진 동력이 약해졌다는 비판이 일면서, 2년 뒤인 2010년 다시 여성가족부로 돌아왔다.
정부·여당 인사들은 여가부에 대해 ‘시대적 소명을 다했다’는 말을 자주 사용했다. 이미 성평등이 구현된 시대, 여가부가 중복 업무로 정책 비효율만 일으키는 시대라면 국외에서는 어떻게 제도를 운영할까. 2020년 기준, 194개 국가에 성평등 정책 전담기구가 설치됐고 이 가운데 독립부처 형태가 160개국으로 가장 많다. 영국의 ‘여성과 평등부’(Minister for Women and Equalities)를 비롯해 아예 ‘여성’이란 명칭이 들어간 국가도 캐나다, 독일, 일본 등 여럿이다. ‘성평등부’ 또는 ‘기회평등부’ 등의 명칭(프랑스, 노르웨이, 스웨덴 등)을 사용하는 국가 기구들도 ‘여성’이란 명칭이 들어가진 않지만 당연히 여성고용평등 정책 등을 추진한다.
이복실 전 여가부 차관은 “다양성 장려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역량 강화 차원의 글로벌 동향”이라며 “이런 흐름 속에 성평등과 관련된 생산적 논의는 하지 않고, 폐지냐 아니냐는 극단적 대립만 하는 상황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는 “오거돈 전 부산시장, 박원순 전 서울시장 사건 등 여성가족부가 성평등 이슈에서조차 정치 편향성 논란 등을 자초했던 만큼 반성할 부분은 반성하고, 양성평등 관점에서 어떻게 개편할지 논의가 필요한 때”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