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막바지
광복절을 이틀 앞둔 주중 화요일이다. 일기예보에 오키나와 인근에서 발생한 두 개 태풍 중 하나가 중국 연안을 따라 올라가 큰 피해를 주고 산둥반도 근처서 약해졌단다. 다른 하나는 일본 남부에서 큐슈를 지나 울릉도 독도로 올라가 소멸할 것이라 했다. 이로 인해 광복절엔 우리 지역은 비가 올 모양이라고 했다. 북태평양 고기압 가장자리에 위치한 우리나라는 연일 폭염특보다.
퇴근 후 산행을 나서보니 해가 남아 그런지 더웠다. 어제는 효촌마을에서 약수봉을 올랐다가 멧돼지 새끼들을 만나 멈칫 놀라 지름길로 곧장 하산했다. 여름을 시원하게 보내는 한 방법으로 도서관서 책 속에 파묻혀 지내면 시원하기도 하고 시간 가는 줄 모른다. 거제에는 고현과 장승포에 공공도서관이 있기는 한데 내가 사는 동네와 거리가 많이 떨어져 이용하기는 어려운 여건이다.
여러 사람들이 여름휴가를 떠났다가 현장으로 속속 복귀하는 즈음이다. 뉴스로 접한 기사엔 강원도 동해안으로 떠난 피서객들은 현지의 바가지 숙박비와 비싼 식대에 마음이 상해 돌아갔단다. 내가 다시 그길 찾으면 성을 갈 것이라면서 단단히 화가 난 모양이었다. 거기에 덩달아 그 정도 드는 피서 비용이라면 동남아로 떠나도 편안하게 지내다 온다는 심층 분석 기사가 달려 있었다.
연일 계속된 열대야와 폭염특보는 도심은 열섬 현상으로 더 덥기 마련이다. 많은 사람이 더위를 피해 도시를 탈출해 산간 계곡과 바다를 찾아간다. 그러니 여름 휴가철이면 도심은 공동화 현상이 일어난다. 내가 사는 창원은 팔월 초순이 그에 해당한다. 이때면 거리에 차들도 한산하고 식당들도 문을 닫은 곳이 많다, 학원가도 휴업에 들고 공장이 멈추니 전기 사용량도 뚝 떨어진다.
언젠가 펼친 기사에서 호캉스(?)가 눈길을 끌었다. 남들이 더위를 피해 도시를 떠날 때 도심 호텔에서 느긋하게 피서를 즐긴다고 했다. 객실은 물론 로비까지 냉방이 잘 되었을 테니 그런 호사를 누릴 만도 하다. 실내수영장 이용도 얼마든지 가능하리라 본다. 일류 요리사가 만든 특별한 음식까지 먹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남들보다 여유롭게 여름을 보내는 부류가 부러울 따름이다.
누구는 호캉스를 누릴 때 난 퇴근 후 버캉스(?)를 떠났다. 바캉스의 오타가 아닌 버캉스로 붙이련다. 냉방이 잘 된 시내버스를 종점까지 타고 가면서 더위를 잊음이다. 요즘은 어느 지역에서나 대중교통 체계가 잘 갖추어졌다. 기본요금만으로도 환승을 하면 두 시간도 탈 수 있다. 주중 머무는 거제에서 시내버스를 자주 이용하고 있다. 고현을 출발해 지세포로 가는 22번을 탔다.
송정고개를 넘어 옥포로 갔다. 거대한 조선소 도크가 대우 정문과 동문을 거쳐 두모고개를 넘으니 장승포였다. 내가 머무는 연초는 섬의 내륙이라 바다를 접할 수 없는데 바다를 보니 답답한 가슴이 탁 트였다. 옥림고개를 넘으니 지세포 어항이 원호를 그렸다. 포구 바깥엔 지심도가 드러누워 있었다. 지세포에서 종점을 향해 가는 버스는 또 고개를 하나 더 넘었다. 와현고개였다.
구조라 종점에 내려 해수욕장이 바라보이는 해변 언덕으로 나가보았다. 저만치 비치파라솔이 줄지은 모래사장엔 피서객이 더러 보였다. 가까이 다가가 볼 일 없이 해안선을 조망했다. 망치에서 학동으로 이어진 해안은 해거름 역광으로 실루엣으로만 살폈다. 구조라 선착장으로 되돌아와 포구에서 서성였다. 외도와 해금강으로 떠나는 유람선은 손님을 기다리다 지쳐 닻을 내렸다.
나는 지난 봄날 구조라 산언덕 산성에도 올라본 적 있다. 포구 건너편은 와현봉수대와 서이말등대에도 발자국을 남겼다. 그 끄트머리가 공곶이였다. 외도보다 더 가까운 내도가 바로 곁이었다. 고현으로 나가는 23번 버스가 시동을 걸었다. 포구에 더 머뭇거릴 일 없이 버스에 올라탔다. 지세포와 장승포를 거쳐 옥포로 갔다. 송정고개를 내려서니 날은 저물고 칠월 열사흘 달이 걸렸다. 19.08.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