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이야기 609 신정일의 새로 쓰는 택리지 6 : 북한 옛 시절 장단도호부
임진나루를 건너면 옛 시절 장단도호부였던 장단에 이른다. 임진강의 북쪽 백학산 밑에 있는 장단은 본래 고구려의 장천성현(長淺城縣)으로, 야야(耶耶) 또는 야아(夜牙)라고 하였다가 신라 경덕왕 때 지금의 이름으로 바뀌었다. 장단군 백학면에 위치한 망해산이 장단의 진산이고, 개성 가는 길에 있는 오관산(五冠山)은 산꼭대기의 작은 봉우리 5개가 동그란 관처럼 생겼다고 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
최숙정은 “높고 높은 오관산의 신령스러운 봉우리 푸른 공중에 솟았네. 높은 지세는 일관에 짝하여 절벽이 높으니 나는 학의 봉우리에 깃드네. 다섯 봉우리 차례대로 높으니 관 쓴 형제 늘어선 듯하네”라고 노래하였는데, 『동국여지승람』에는 오관산 자락에 면유동(綿油洞)이 있었다며, “골 안은 넓고 깊숙한데 절은 하나도 없다. 전하는 말에 만약 여기에 절을 지으면 나라 운수가 길지 못하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 뒤 면유동에 절을 지었는지는 몰라도 고려는 500년을 넘기지 못하고 조선으로 넘어가고 말았다.
장단읍 북쪽에는 화장사가 있다. 이 절에는 서역에서 온 승려 지공이 남긴 패엽경(貝葉經, 인도에서 자라는 다라수 잎인 패다라엽에 적어놓은 경문)과 전단향(栴檀香, 향의 일종)이 있다. 화장산 남쪽엔 고운 산기슭이 이어지고 평평한 냇물이 흐르는데, 이곳에 고려에서 조선까지 공경(公卿)의 분묘(墳墓)가 많으므로 사람들이 중국 낙양(洛陽)의 북망산에 비교하기도 하였다.
『삼국사기』를 지은 김부식이 “가을바람은 산들산들하고 물은 출렁이는데, 머리 돌려 먼 하늘 바라보니 생각이 아득하구나. 아! 임은 천 리에 떨어졌는데, 강가의 난초는 뉘를 향해 향기로운고”라고 노래했고, 고려의 문신이었던 강호문이 “1년에 3번이나 임진을 건너니 물새도 서로 친해서 사람을 피하지 않네. 나루지기야 어찌 군사의 급함을 알쏘냐. 응당 내가 자주 왕래하는 걸 비웃을 테지”라고 했던 임진강 동편에 파주와 연천이 있고, 북쪽에는 삭령이 있다. 서울에서는 바로 북쪽으로 100여 리 되는 지점이며, 물길로 고려 때 서울인 개성과 현재의 서울인 서울로 통한다.
이중환은 “그러나 세 고을은 모두 땅이 메마르고 백성이 가난하여 살 만한 곳이 적다. 그중에서 삭령은 땅이 제법 좋고 강을 임하여 훌륭한 경치가 많다. 연천은 조선시대 서인이었던 송시열과 함께 남인의 대표 인물이었던 미수(眉叟) 허목이 살던 곳이다. 그는 전서에 뛰어난 동방의 일인자라는 찬사를 받았다”라고 말하며 글을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