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경지수 明鏡止水
중국의 노나라에는 공자의 학원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왕태王駘라는 학자의 학원도 있었다.
왕태는 인망이 높아서 그 문하의 제자들도 공자에 못지않게 많았다.
공자의 제자인 상계常季가 보기에 그것은 여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상계는 어느 날 공자에게 이렇게 물었다.
"왕태는 형벌로 발이 잘린 올자兀者입니다.
그런데도 그를 찾아오는 제자들이 선생님의 제자만큼이나 많습니다.
그는 서 있을 때도 이렇다할 교훈을 내리지 않고,
앉아 있을 때도 별다른 의론을 펴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빈손으로 찾아온 사람들이 모두 무엇인가 머릿속에 채우고 간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그에게는 말없이 가르치는 그 무엇인가가 있는 듯 합니다.
그는 눈으로 볼 수 없는 마음 속을 교화시키는 인격자인가 봅니다.
도대체 그 사람은 어떤 인물입니까?"
공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분은 성인聖人이시다. 사실은 나도 그분을 한번 꼭 만나 뵙고
싶다고 생각하면서도 미처 그러지 못하고 있다.
내가 가서 가르침을 받고 싶을 정도이니 나만 못한 사람들이
그를 따르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나는 노나라 사람뿐 아니라
세상 사람들을 모두 이끌고 함께 그의 문하생이 되고 싶을 정도이다."
"그분은 형벌로 다리 하나가 잘린 장애인인데도 선생님보다 더 덕이 뛰어나다고
하시니 저는 통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그분은 마음가짐이 어떠합니까?"
"생사란 인간에게 중대한 문제이지만 생사도 그분을 어떻게 하지는 못한다.
또 설사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가라앉는 일이있어도 그분은 끄떡도 하지 않으신다
그분은 겉으로 나타나는 현상을 초월한 진실의 이치를 터득하고 있으며
사물의 변화에 마음이 흔들이는 일이 없다. 그분은 모든 변화를 천명天命에
의한 것으로 여기고, 변화의 근본에 있는 부동의 도道에 몸을 두고 있는 것이다."
"그게 무슨 뜻인지 저는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그분은 만물이 모두 하나라고 생각하고 계시다.
사물을 차별하는 입장에서 본다면 한몸 안에 있는
간과 담 사이도 초나라와 월나라 사이만큼이나 거리가 있다.
그러나 모든 것을 같다고 보는 입장에 서 있으면 만물이 모두 하나가 된다.
이렇게 만물제동萬物齊同의 입장에 서 있을 때는 귀와 눈의
감각에 끌리는 일도 없으며, 자기 마음을 모든 것이
하나가 되는 세계 안에서 놀릴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사람이 만물을 보는 경우에는 그 동일한 본질만을 보고
개개의 물건들을 잃어버린다는 현상에 사로잡히는 일이 없다.
따라서 발 한쯤 잃었다 해도 흙을 한 줌 버리는 정도로밖에 여기지 않는다."
나의 선어 99 홍사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