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인연법으로 보는 업은 이렇게 짓는다
자, 12인연법으로 보면 지금 업을 왜 짓느냐?
무명, 행, 식, 명색, 육입, 촉, 애 그 다음이 취(取)지요?
그 다음이 유(有). 취 이전이 애(愛)지요?
그러니까 집착 아집 그리고 애ㆍ갈애ㆍ탐욕ㆍ욕심 이런 번뇌 때문입니다.
이런 번뇌가 무섭다니까요. 이게 업을 짓는 동력이라니까요.
이 중요한 번뇌를 우리가 뿌리 뽑아야 된단 말이에요.
이것은 원리적인 이야기입니다.
이제 현상세계에서 봅시다.
불‧보살의 입장에서 볼 때에는 세상 사람들이 왜 험하게 죽느냐? 그거예요.
전번에 경주의 어느 체육시설 붕괴사고로
아까운 우리 대학생 10명이 죽었잖아요.
(2014. 2. 폭설로 인해서 경주시 양남면 마우나 오션리조트 체육시설이
붕괴되어 대학생 10명이 사망한 사고)
그렇게 죽으면 중음세계에 가거든요. 무주고혼이 됩니다.
왜 그렇게 죽었느냐 그 말이어요.
왜 죽었느냐?
인과법적으로 보면 그렇게 죽지 않으면 안 될 업을 지었기 때문에 그래요.
그건 맞습니다. 그렇지요?
왜 업을 지었나? 왜 업을 지었지요?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탐욕으로 인한 번뇌예요.
아집ㆍ집착ㆍ갈애, 이런 번뇌로 우리 중생은 이 몸뚱이에 애착하고,
재물을 보면 탐내고, 미인을 보면 마음이 동하고,
높은 자리에 친구가 올라가고
이웃동네 갑돌이가 서울대학 합격하고
고시합격하면 나도 해야 되겠다 하는 등 욕심이 생기는 거예요.
이러다가 보니까 업을 짓는다니까요.
자기도 사람을 죽이면 안 된다는 것을 알지요.
알지만 가령 할아버지가 중풍이 오더니 치매를 앓아요.
그러기를 5년 10년을 해요. 똥 수발을 우리 어머니가 해요.
그런데 이런 인과법을 그 자손이 몰라요.
어머니 모르게 독극물을 사다가 할아버지의 음식에 넣을 수가 있는 거예요.
죽은 그 할아버지가 죽으면 자손에 대한 정이 없어요.
‘날 죽였어?’ 그래서 반드시 빙의 합니다.
그런데 이런 경우는 그래도 도덕적으로 볼 때나 사회통념상으로 볼 때나
우주의 이치로 볼 때 어느 정도 배려할 사항이어요.
그러나 도저히 용서 못할 경우가 있습니다.
신문을 보면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경우가 있잖아요.
아들이 부잣집 외동아들이어요.
실력은 없고 배운 것도 없고
그저 하는 일이라고는 주색잡기로 시간을 보내요.
돈이 필요해요. 그런데 아버지는 돈을 많이 가지고 있어요. 거부예요.
은행에 수 백 억이 있어요.
이때 아들에게 못된 생각이 일어난다고요. 이게 중생이라고요.
아버지 어머니를 흉기로 죽이는 경우도 있습니다.
흉기로 아버지 어머니를 죽이는 경우가 있어요.
또 옛날 씨받이 이야기를 합니다.
돈이 많고 위세 당당한 양반집입니다.
대를 이을 아이가 없으니까
씨받이로 가난한 집안의 처녀를 물색한단 말이어요.
옛날에 그랬어요. 그래서 씨받이 부인을 들인다고요. 계약이죠.
‘아들하나 낳아주면 너에게 논 10마지기 떼어 주겠다.
와서 내 아들 하나 낳아주시오.’ 하고 계약을 해서 온다고요.
아들을 낳아주면 본부인이 시기질투를 합니다.
그렇잖아도 꼴 보기 싫은데 잘 되었지요.
이 씨받이를 죽여야 되겠어요.
꼴도 보기 싫고 논 10마지기도 아깝습니다.
반드시 살인 청부를 합니다.
그 순진한 씨받이 여인은 10마지기 논문서를 품에 안고 그 양반집을 떠납니다.
동구 밖을 지나 인적이 드문 으슥한 곳에서 반드시 죽습니다.
많은 경우를 봤어요.
부처님은 그런 것을 말씀하십니다.
이 사람은 이런 경우로 씨받이로 들어갔는데
이렇게 가다가 이렇게 해서 죽었다고 보여준단 말이에요.
우리가 써 놓은 것은 간단히 쓰지만 많은 사연이 있습니다.
TV처럼 주~욱 보여 주시거든요.
여러분 부처님의 그 어마어마한 지혜는 상상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스님이 부처님은 우주의 주(主)라고 한 거예요.
우주의 주. 왜?
청정법신비로자나불은 우주의 이법을 아주 투철하게 통달하신 분이어요.
깨달은 분이어요.
거기서 더 나아가 우주의 이법과 하나가 되신 분입니다.
여러분 불과를 증할 때에는 상적광세계에 자기 몸이 생깁니다.
상적광세계에 자기 몸이 어떻게 생기는지 압니까?
자연히 생기는 것이 아니어요.
10차원 위의 그 무량광세계에서 부처님들의 작업에 의해서 해요.
이것은 극비(極秘)입니다.
출처:2014년 자재 만현 큰스님 법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