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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한 것과 부정한 짐승 2 공중에 나는 새와 곤충
레 11:13-23
13 새 중에 너희가 가증히 여길 것은 이것이라 이것들이 가증한즉 먹지 말지니 곧 독수리와 솔개와 물수리와
14 말똥가리와 말똥가리 종류와
15 까마귀 종류와
16 타조와 타흐마스와 갈매기와 새매 종류와
17 올빼미와 가마우지와 부엉이와
18 흰 올빼미와 사다새와 너새와
19 황새와 백로 종류와 오디새와 박쥐니라
20 날개가 있고 네 발로 기어 다니는 곤충은 너희가 혐오할 것이로되
21 다만 날개가 있고 네 발로 기어 다니는 모든 곤충 중에 그 발에 뛰는 다리가 있어서 땅에서 뛰는 것은 너희가 먹을지니
22 곧 그 중에 메뚜기 종류와 베짱이 종류와 귀뚜라미 종류와 팥중이 종류는 너희가 먹으려니와
23 오직 날개가 있고 기어다니는 곤충은 다 너희가 혐오할 것이니라
레 11:13-23 / 날짐승 가운데에서 너희가 먹지 말아야 할 새는 독수리, 수염수리, 흰꼬리수리, 14) 검은소리개, 붉은소리개 종류, 15) 까마귀 종류, 16) 타조, 올빼미, 갈매기, 매 종류, 17) 부엉이, 사다새, 따오기, 18) 백조, 펠리컨, 흰물오리, 19) 고니, 푸른해오라기 종류, 오디새, 박쥐 등이다. 20) 날개가 달려 있지만 네 발로 기어 다니는 곤충은 너희에게 부정하다. 21) 날개가 달려 있지만 네 발로 기어 다니는 곤충 가운데에서도 발이나 다리로 땅에서 뛰어오를 수 있는 것은 먹을 수 있다. 22) 먹을 수 있는 곤충으로는 메뚜기 종류와 방아깨비 종류와 누리 종류와 귀뚜라미 종류이다. 23) 이 곤충류 외에 날개는 달고 있지만 네 발로 기어 다니는 곤충은 너희에게 부정하므로 먹어서는 안 된다.
앞 단락에서 정결하고 부정한 짐승과 물고기에 관한 규례에 이어 본문은 부정한 새들과 곤충들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새 중에 너희가 가증히 여길 것(13-19) 새의 규정은 짐승의 규례와는 달리 명확한 기준 없이 먹지 못할 가증한 새들 20여 종류만 소개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본 단락에서 가증한 새로 규정된 새들은 대개 공격적이고 사체나 부패한 것을 먹으며 사는 맹금류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독수리, 솔개, 물수리, 말똥가리, 까마귀가 그러합니다. 다른 부정한 새들도 정상적인 환경과 처소에 살지 않거나 다른 동물들의 영역을 침범하고 더럽고 불결하며, 홀로 외로이 떨어져서 슬피 울거나 돌아다니는 습성을 지녔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자기 백성이 먹는 음식을 통해서도 이러한 공격적인 성향이나 더럽고 고독한 습성을 갖지 않기를 교훈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도 부정한 것을 좋아하고 다른 사람을 해치는 포악함을 버려야 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백성은 거룩한 하나님의 영과 더불어 살기 때문입니다(롬 15:16; 살후 2:13).
기어 다니는 곤충 중에 혐오할 것(20-23) 곤충 중에서 부정하여 혐오해야 할 것들은 날개가 있고, 네 발로 기어 다니는 것들입니다. 그러나 먹을 수 있는 정결한 곤충은 네 발로 기는 곤충 중에 뛰는 다리가 있는 것이라야 합니다. 이는 날개를 가지고 있으면서 기어다니지 않고 날아다니는 모든 곤충 중에 특별히 뛰어다닐 수 있는 곤충만을 가리킵니다. 여기에 속한 곤충들은 메뚜기 종류와 베짱이 종류, 귀뚜라미 종류와 팥중이(여치) 종류였습니다. 이러한 곤충들이 정결하여 먹을 수 있는 것으로 구분된 이유에 대해서는 본문이 언급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이처럼 땅에서 뛰어올라 하늘을 날 수 있는 곤충만을 먹을 수 있도록 허락하신 것은 하나님의 백성은 그 소망을 하늘에 두고 살아야만 함을 가르치기 위한 것으로 보입니다.
적용: 하나님은 먹는 것을 통해서도 거룩하고 하늘에 소망을 두고 살도록 가르치고 있습니다. 오늘 여러분이 먹은 음식을 통해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서로 나누어 봅시다. 부정한 새와 곤충에 대한 규례는 우리의 삶에서 더럽게 여겨야 할 가증한 것, 미워하고 혐오할 것을 확실히 헤아리고 살아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구조주의에서 '질서'라는 개념은 세계와 자연은 상, 중, 하의 구조주의적 개념을 따라 대립적 영역으로 나누어 있다는 겁니다. 바로 공중(하늘), 지상(땅), 수중(물)입니다. 이 때 영역별로 거기에 맞는 생물들이 배치됩니다. 그것이 창조주가 세계 창조와 더불어 마련한 자연의 질서입니다. 그러나 질서를 벗어난 상태, 자신의 자리를 이탈한 변칙적 상태, 그리고 흠이 있는 불완전한 무질서 상태가 부정하다는 것이며 반대로 정결한 것은 원래의 자리에 있는 상태, 정상적인 것, 그리고 흠이 없는 완전한 상태를 말합니다.(Mary Douglas)
< 설 교 >
곤충류와 짐승을 통해 주시는 거룩의 의미
레 11:20-30 / 박기완 목사
우리 기독교의 핵심은 '예배' 에 있습니다. 기독교인은 무엇보다도 예배드리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예배드리는 일에 모든 마음을 다하여 열심을 내시기 바랍니다. 모든 삶의 최우선을 예배에 두고, 예배에 정성을 기울이시기 바랍니다.
우리 하나님의 관심은 예배에 있습니다.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예배드리는 사람을 하나님은 사랑하십니다.
프랑스의 루이 14세 때에 있었던 실화적인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주일에 왕과 그의 왕족들이 교회에 도착했는데, 그곳에는 왕실 설교자인 프넬론 대주교 외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자리가 텅 비어있는 것을 보고 놀란 왕은 목사님에게 물었습니다. "목사님, 오늘은 왜 사람들이 한 사람도 안보입니까? 다 어디에 갔습니까? 왜 오늘 아침에는 아무도 출석하지 않았습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그 목사님은 대답하기를 "저는 사람들에게 오늘 폐하께서 이곳에 오시지 않을 거라고 광고했습니다. 왜냐하면 어떤 사람이 진실로 하나님께 예배하러 오는지를 보기 위해서였습니다" 라고 대답했다는 것입니다.
평소에 왕이 교회에 오면 왕에게 아첨하기 위한 무리들이 떼를 지어 오고... 그렇지 않을 때에는 아무도 참석하지 않는 사실을 이 목사님은 보아왔기 때문이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전부 다... 왕에게 좋은 인상을 주려고 교회에 간다고는 말할 수 없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나오는 동기가 헛되고 이기적이라는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어떤 이들은 교회 출석이 그들의 사업에 이익을 준다고 생각합니다. 또는 사회적인 신분을 향상시키는데 좋다고 생각합니다.
또 어떤 이들은 자신의 신앙심이 깊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해서... 또 어떤 이들은 단지 의무감에서 교회를 찾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전에 나아가는 최고의 목적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구속의 주 하나님께 찬송과 영광을 돌리며, 성도들과 교제하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누가 진실로 예배하는지를 찾고 계십니다.
요한복음 4:23-24절에 보면 "하나님은 예배하는 자를 찾으신다" 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예배할 때는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날에는 예배를 드리지만 구약시대에는 '제사' 를 드렸습니다. 죄를 용서받기 위해서 나를 대신하여 죽는 희생의 제물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양을 잡고 소를 잡아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므로 영원하고 완전한 제물이 되셔서 이제는 더 이상 제사를 드릴 필요가 없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구약의 제사는 없어지고 예수님이 오신 이후 예배로 바뀐 것입니다.
성경을 살펴보면, 구약의 선지자들은 당시 이스라엘의 잘못된 제사, 잘못된 예배를 통렬하게 책망하였습니다.
이사야 1:11-14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수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 헛된 제물을 가져오지 말라 …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눈을 가리우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라" 고 했습니다.
말라기 1:7-10절에서도 "너희가 더러운 떡을 나의 단에 드리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를 더럽게 하였나이까 하는도다 … 내가 너희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너희 손으로 드리는 것을 받지도 아니하리라" 고 했습니다.
형식과 껍데기만 남아있는 죽은 제사, 죽은 예배에 대한 책망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알지도 못하고, 행하지도 못하면서.... 의식만 행하면 된다는 잘못된 생각에 대한 경고의 말씀입니다.
창세기 4장에서 아벨의 예배는 받아주셨지만, 가인의 예배는 받아주시지 않았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성도는 언제나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예배가 될까?...."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 상달되고 열납되는 예배가 될까?..." 하고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이런 점에서 레위기는 올바른 예배를 위한 책입니다. 올바른 예배의 의미와 방법, 그리고 예배자의 자격을 제시하는 책입니다.
우리는 레위기를 통해서 참된 제사.... 즉, 참된 예배를 배우며, 곧 신령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가 무엇인지를 알게 됩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참된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예배자에게 있어서 가장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것이 무엇이냐?.... 그것은 바로 성결... 즉, '거룩' 인 것을 깨닫게 됩니다.
레위기를 읽어보면, 여러가지 제사법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번제(1:2-17, 6:8-13), 소제(2:1-16, 6:14-23), 화목제(3:1-17, 7:11-21), 속죄제(4:1-5:13, 6:24-30), 속건제(5:14-6:7, 7:1-10) 등... 하나님께 어떻게 제사를 드리느냐에 대해서 아주 자세하고 구체적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5대 제사를 잘 살펴보면, 오늘날에도 어떻게 예배를 드려야 하는지를 깨닫게 됩니다.
성도가 하나님을 잘 섬기기 위해서는 하나님께 대하여 "어떻게 예배를 드리는가?" 하는 문제는 참으로 중요합니다.
구약시대에 인간의 죄를 사함받고 깨끗이 씻김을 받으려면 반드시 제사를 통하여 속죄함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레위기서의 초점은 제사가 아닙니다.
레위기는 새로이 구속함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거룩하신 하나님께 어떻게 예배하고, 어떻게 섬기며, 어떻게 순종하여야 하는가?... 하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하나님이 만드신 신앙의 안내서입니다.
그러므로 레위기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예배와 행위' 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거룩한 삶'입니다. 그래서 레위기의 총 주제는 '거룩'이요, 핵심이 되는 성경구절은 레위기 19:2절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는 말씀입니다.
거룩은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하나님이 거룩하시므로 우리 인간도 거룩해야만 합니다.
'거룩하게 된다' 는 것은 하나님을 닮는 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 곧 하늘에서 천사들이 밤낮 쉬지 않고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하고 영광과 존귀를 돌리는 그 분을 닮는다는 것입니다(계4:8, 9).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신 거룩하신 분, 거룩하고 악의가 없으며 더러움이 없고 죄인에게서 떠나 계시고 하늘보다 높이 되신 그 분..... 곧 그리스도를 닮는다는 것입니다(히7:26).
이것은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구별되는 것입니다.
마치 구약시대에 성막과 거기에 사용되던 모든 기구들이 다른 물건과 뚜렷하게 구별되던 것과 같은 구별을 말합니다.
참으로 하나님은 우리 인간이 거룩하기를 간절히 원하십니다.
레위기에서만 '거룩' 이라는 단어가 자그마치 130번이나 기록되고 있고, 그와 관련된 성구가 185군데나 기록되고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거룩해야 하겠습니까?....
베드로전서 1:15절 말씀에 보면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고 말씀했습니다.
즉, 모든 행실에서 거룩하게 행하라는 것입니다. 생활의 전반에서 새로워져야 하고, 거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는 말씀은 구약시대 뿐만 아니라, 오늘 우리에게도 매우 강력히 요청하시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불결한 곤충과 부정한 동물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하나님께 나아가는 사람은 깨끗하고 거룩해야 된다는 사실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1. 곤충류 중에서(11:20-23)
먼저 레11:20-23절 말씀에서는 불결한 곤충류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날개가 있고 네 발로 기는 곤충(20)은 부정하며, 날개가 있고 네 발로 기는 곤충 중에... 그 발에 뛰는 다리가 있어서 땅에서 뛰는 것은(21) 정결하다고 했습니다.
먼저 우리는 날개가 있고 네 발로 기는 곤충이 부정한 이유가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일단 기는 것들은 뱀과 연류되어 부정하고 사탄적인 것으로 간주되었습니다.
또한 하늘나라와 세상나라를 겸하여 섬기는 사람... 즉, 양다리를 걸친 삶의 양태를 배격하시는 내용입니다.
그래서 날개는 있으나 네 발로 기는 곤충은 부정하다는 것입니다.
성도는 비록 세상에 살지만 살아있는 물고기가 물결을 거슬러 올라가듯이, 세상에 휩쓸려 가는 삶이 아니라, 하늘나라에 속하여.... 세상에서는 소금이 되고 빛을 발하는 그런 삶을 살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 다음 말씀을 보면, 그 발에 뛰는 다리가 있어 땅에서 뛰는 것이 정결하다고 했습니다.
메뚜기 종류, 베짱이 종류, 귀뚜라미 종류, 팟종이(방아깨비) 종류가 이에 해당합니다. 이런 종류는 "땅에서 뛰는 것이므로 정결하다"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긴 다리가 있는 곤충이 정결한 것으로 취급된 까닭은, 긴 다리가 있어 높이 뛰어 오르기 때문에 뱀의 사단적인 요소를 극복한 것으로 간주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귀중한 교훈을 받게 됩니다.
즉, 세속에 깊이 물들어 있는 자는 결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골로세서 3:2절에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고 했습니다.
골로세서 3:5-6절에서는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숭배니라 이것들을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하나님의 실존과 천국에 대한 간절한 소망과 확신 가운데... 부르심의 상급과 저 천성의 푯대를 향하여.... 날마다 날마다 나아가는 그런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2. 땅에 기는 파행 동물류 중에서(11:29-30)
둘째로, 레위기 11:29-30절에 보면, 땅에 기는 파행 동물류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땅에 기어다니는 짐승은 다리가 있든지 없든지 상관이 없이 모두 부정하다고 했습니다.
쪽제비, 쥐, 도마뱀 종류, 합개(도마뱀의 일종), 육지 악어, 수궁(도룡뇽과 비슷함), 사막 도마뱀, 칠면석척(카멜레온 : 주위 환경에 따라 얼굴빛이 달라진다).... 이 여덟가지가 여기에 해당됩니다.
이렇게 기어다니는 짐승이 모두 부정한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본문에 기록된 것 외에도 기는 동물들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중에서 특히 본문에 여덟가지를 더 강조된 것은 사람들이 살고있는 주거지역에 많이 살고 있어서 접촉할 기회가 많기 때문입니다.
또한 땅을 기는 동물류가 부정하다고 한 것은 상징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골로세서 3:2, 5, 6절의 말씀과 같이... 땅의 것은 하늘의 신령한 것과 반대가 되는 것입니다.
땅은 세속적이고 죄악된 것을 의미하고, 위의 것... 하늘의 것은 신령하고 거룩한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땅의 것에 마음을 빼앗겨서는 안됩니다. 하늘의 신령한 것을 사모하여 항상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의 모든 소욕을 버려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마가복음 10:17-22절에 보면, 어느 부자 청년이 예수님을 찾아 왔습니다. "선생님, 제가 무엇을 해야만 영생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하고 물었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계명을 다 지키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부자 청년은 자신있게 대답하기를 "그것은 어려서부터 다 지켰습니다" 하고 대답을 합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한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고 하셨습니다.
그랬더니 이 부자 청년은 재물이 많은 고로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며 갔다고 했습니다.
그는 아직.... 하늘의 것보다는 땅의 것에 더 관심이 많았습니다.
세상의 욕심이나 야망을 버릴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결국 그는 하늘의 것과 땅의 것 사이에서.... 머뭇거리고 망설이다가.... 재물이 많은 고로 땅의 것을 선택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는 마음 한 구석엔 못내 아쉬운 듯.... 근심하며 갔다고 했습니다.
참으로 우리 인간은 너무 재물이 많고 너무 부자가 되면 하나님을 섬기기가 어려운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마가복음 10:25절에서 "약대가 바늘귀로 나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고 하셨습니다.
사람은 때로 물질의 어려움도 당해 보고, 곤핍함을 알아야만 하나님께 매달려 기도하고, 하나님을 의지할텐데.... 부족함이 없으니 하나님이 필요치 않은 것입니다.
그래서 일찍이 지혜자는 잠언 30:8-9절에서 이렇게 간구했습니다.
"하나님! 나로하여금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내게 먹이시옵소서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적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 라고 고백했습니다.
지혜자는 지나친 가난이나 부로 인하여 하나님을 섬기는데 걸림돌이 될까 염려했던 것입니다.
우리가 보통 "축복 받으세요!" 그러면... 대개 물질적인 복을 먼저 생각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복은 물질적인 축복이 아니라, 거룩하게 되는 성화의 축복입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면 주님을 닮아가는 거룩한 삶을 살기 위한 애타는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부자 청년과 같이 땅엣 것에 소망을 두고 사는 사람은 항상 슬픔과 근심가운데 살 수 밖에 없습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들은, 재물을 이 땅에 쌓아서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며 살 것이 아니라, 도적이 없고 좀이 슬지 않는 천국에 보화를 쌓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어느 목사님이 중국 북경에 가서 교인들을 방문했다고 합니다.
가정예배를 드리는 처소였는데... 그 곳에서는 예배를 드릴 때, 외부에서 온 사람은 절대로 설교를 못하도록 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재미난 것은 일어서서 말하면 설교요, 앉아서 말하면 좌담이 되기 때문에 외부에서 온 사람도 앉아서 말하면 상관이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목사님은 좌담식으로 앉아서 설교를 하게 되었습니다.
말씀이 너무 좋으니까 사람들이 한 말씀 더 하라고 했고, 사람들의 권유에 못 이긴 체... 목사님은 잠깐 한다던 것이... 두 시간이나 설교를 했답니다.
이야기가 끝나자 경청하던 사람 중에 어떤 청년이 벌떡 일어나더니 소리를 칩니다. "여러분! 오늘의 교양, 전적으로 접수해야 합니다!" 하고 말하더랍니다. 공산당이 교양할 때 쓰는 말이라고 합니다.
"오늘의 교양, 전적으로 접수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주신 하나님의 말씀... 전적으로 접수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말씀이 무엇입니까?... 날개가 있으나 네 발로 기는 것은 부정하며, 발은 있어도 땅에 기는 것은 모두 부정하다 했습니다.
겉으로는 성도라는 거룩한 신분의 날개는 있으나 세상에 속하여 네발로 기는 세상적인 사람들을 향하여 경계하시는 말씀입니다.
비록 날개는 없고 네 발을 가졌으나 땅에서 뛰는 것은 정결하다고 했습니다. 성도는 하늘을 향하여 뛰어야 합니다.
위엣 것을 사모하고 저 천성을 바라보며.... 주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부지런히 뛰다보면.... 어느샌가 저 천성까지 오르게 될 줄 믿습니다.
이와같은 삶이 오늘 저와 여러분의 생애에 이루어지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거룩한 백성의 정결한 삶
레 11~15장 / 김경열 목사
정결과 부정결의 교훈은 ‘거룩’의 주제와 연결되어 있다
레위기 11장은 부정한 짐승의 문제를 다룬 ‘음식법’ …
상징과 실제의 세계 혼동하지 말아야
▲ 김경열 목사(총신대 강사)
돼지를 먹지 못한 구약 백성들
이스라엘 땅에 혹독한 기근이 찾아왔다. 곡식과 과일은 거둘 것이 없었고 가축마저 떼죽음당해 식량 부족으로 온 나라가 아우성이다. 기근의 고통은 신실한 요아킴과 그의 가족도 예외는 아니었다. 들판에는 산양, 야생염소, 사슴, 비둘기, 참새, 등등 아직 더러 있었으나 특히 멧돼지들이 많이 보였고 녀석들이 굶주림에 식량을 찾아 마을 어귀까지 내려오곤 했다. 그러나 요아킴과 마을 사람들은 굶주림 속에서도 멧돼지만은 잡지 않았다. 멧돼지만이 아니라 야생 새들 중 독수리와 따오기와 같은 새들, 그리고 기근을 함께 버티고 있던 가축들인 낙타와 노새도 끝까지 잡아먹지 않았다. 이것들은 하나님의 율법에서 엄중히 식용 금지된 부정한 짐승이기 때문이다. 율법에 불순종하여 하나님의 징계로 찾아온 대기근 속에서 요아킴과 백성들은 크게 회개하며 극한의 상황 속에서도 율법을 준수하려 애를 썼다. 오랜 기다림 끝에 마침내 단비가 내렸다. 대지를 적시며 땅이 살아나고 온갖 생명이 힘차게 다시 약동했다. 순종하는 백성에게 ‘이른 비와 늦은 비’를 주겠다고 약속하신 하나님께서 은혜를 내려주신 것이다.
왜 어떤 짐승들은 식용 금지되었는가?
소위 ‘정결법’이라 불리는 레위기 11~15장은 모든 짐승들을 정결한 것과 부정한 것으로 분류하는 한편(11장) 인간과 사물의 다양한 부정결한 상태를 정의하고 그 해결책을 제시한다(12-15장). 부정결의 문제는 결국 ‘거룩’이라는 주제와 결부되어 있다. 거룩한 백성은 곧 정결한 백성이기 때문이다. 레위기 11~15장의 주제를 장별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1장, 정-부정 동물과 음식법; 12장, 산모의 출산 후 부정결; 13-14장, 악성 표피 질환의 부정결, 15장, 신체의 유출들의 부정결.
왜 어떤 짐승이 부정하고 사람과 사물의 어떤 상태가 부정한가? 오래도록 학자들은 이 문제를 놓고 씨름해왔는데, 주로 레위기 11장의 연구에 주력해왔다. 그들은 오랜 연구 끝에 결국 레위기 11장은 11~15장의 전체적 맥락 속에서 파악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과연 레위기 11~15장을 관통하는 부정결의 근원적 원리(rationale)는 무엇인가? 레위기 11장에 대한 다양한 이론들을 살피면 그 답이 발견된다. 특히 레위기 11장은 강단에서 가장 흔하게 풍유적(알레고리) 해석으로 설교되는 본문이므로 각별한 주의가 요망된다.
레위기 11장은 신명기 14장과 더불어 부정한 짐승의 문제를 다룬 ‘음식법’이다. 오늘날도 유대인들은 여전히 ‘코세르’(kosher)라는 이름으로 이를 준수하고 있다. 레위기 11장은 음식 관련 규정과 더불어 사체 접촉의 부정결이라는 주제를 다루는데 양자는 밀접히 결부되어 있다. 짐승은 음식으로 허용된 짐승(정결한 짐승)과 금지된 짐승(부정결한 짐승)으로 나뉜다. 이때 짐승의 구분은 구약의 세계에서 허용된 상징을 통해 교훈을 주기 위한 목적을 가질 뿐 부정하고 흠이 있는 짐승이 내재적·존재론적으로 열등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피조물을 창조하시고는 보시기에 좋았다 하셨다(창세기 1장). 따라서 구약을 읽을 때는 상징의 세계와 실제의 세계를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 예를 들어 독수리는 경우에 따라 부정적인 상징으로 쓰이기도 하고, 긍정적 상징으로 쓰이기도 한다. 레위기 11장(신 14장)에서는 먹지 못할 새로 가장 먼저 언급될 만큼 부정한 생물의 대표 격이며, 신명기 28장 48~51절에서는 장차 이스라엘을 침공할 흉악한 민족을 상징하지만, 출애굽기 19장 4절(신 32:11)에서는 이스라엘을 시내산까지 이끌어주신 하나님의 완벽한 보호와 인도하심에 대한 상징물로 사용된다. 또한 나귀와 낙타는 부정한 짐승이었지만 짐을 부리는 가축으로 매우 귀한 재산이기도 했다. 부정한 짐승은 순전히 먹는 것과 관련해 그 상징성 때문에 부정하게 여겨졌다. 부정한 짐승들은 몇 가지 신체적 특징과 기준에 의해 판정되거나 짐승들의 목록으로 범주화된다. 그동안 동물을 정-부정으로 구분하는 기준에 대해서는 많은 이론들이 제시되었는데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것 몇 가지는 다음과 같다.
a) 보건-위생학적 설명: 부정한 짐승은 비위생적이며 건강에 해롭다는 주장이다. 일부 유대교 랍비들의 해석으로, 제칠일 안식일 교회가 이를 따른다. 어떤 랍비들은 일부 동물들은 서식 환경이 불결하다는 이유로 금지된다고 말하기도 하고, 지느러미와 비늘이 없는 물고기는 탁한 물에서 살고, 체액이 차기에 먹으면 몸에 해롭다. 또한 육식조류의 피는 탁하고 진하므로 이것을 먹으면 마음이 잔인해지고 몸에서 검은 빛깔의 체액이 분비된다. 미생물학이 발달한 근대에 이르러 부정한 짐승들에 대한 과학적 연구를 통해 돼지고기는 선모충균이 가득하고 토끼는 야토병을 일으킨다는 사실이 밝혀짐으로써 보건-위생학적 설명이 힘을 얻었다. 이런 견해의 문제점은 금지된 짐승들 중에는 영양이 뛰어나고 위생적으로도 문제가 없는 것들이 많고 반대로 허용된 짐승들 중에도 건강에 좋지 않은 것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허용된 초식성 반추동물 중에도 위험한 기생충의 숙주역할을 하는 것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리고 돼지를 비롯한 금지 동물뿐 아니라 닭이나 염소 등도 불결한 생활습성을 가졌다. 위생을 기준으로 음식의 정-부정을 판가름했다면 ‘독초’는 왜 부정한 음식에 속하지 않는지 설명할 길이 없다.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건강을 고려하여 주신 법이기에 이 법은 계속 유효하다는 주장은 신학적 문제를 내포한다. 신약은 먹을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의 구분을 완전히 폐기했다. 제칠일 안식일 교회는 레위기 음식법의 항구적 유효성을 주장하지만 예수(막7:14~20)와 사도들(행10:9~16)의 가르침을 볼 때 이는 더 이상 효력이 없음이 분명하다. 하나님께서 건강을 증진하기 위해 주신 법을 나중에는 스스로 제거했다는 설명은 납득하기 어렵다. 물론 음식법 외에 다른 정결의식에 관한 율법들, 말하자면 출산한 여인을 장기간 격리시키고, 곰팡이와 피부병을 취급할 때는 청결을 엄격히 요구하고, 질병의 원인이 될 수 있는 사체를 멀리하게 하는 조치에는 보건 위생학적인 의도가 엿보인다. 그러므로 음식법에도 그런 위생학적 고려가 전혀 없었다고는 말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럼에도 보건-건강학·위생학적 설명은 이미 제시된 여러 난점을 통해 알 수 있듯이 그 규정에 대한 포괄적인 근거가 될 수는 없다. 레위기의 정결법에서 정결과 부정결은 보건 위생적 개념을 일부 포함하기는 하지만 그 이상의 고도의 신학적 개념이다.
b) 상징적(풍유적) 해석: 정결하고 부정한 짐승의 구분은 그것들이 지닌 상징성 때문에 주어졌다. 정결한 짐승들은 의인으로서 이스라엘 사람들의 행동양식을 나타내며, 반대로 부정한 짐승들은 죄인들의 모습을 나타낸다는 식의 해석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유순한 초식 동물을 먹고 난폭한 육식 동물은 피해야 한다. 갈라진 굽은 의와 불의의 구분을 상징하고 새김질은 회상을 표시한다. 파괴적 습성을 가진 쥐는 혐오스럽고, 족제비는 입 모양을 볼 때 소문내기의 상징이다. 지느러미와 비늘을 가지고 강한 물살에 저항하는 물고기는 인내와 절제를 상징한다. 이와 같은 해석이 오래도록 한국교회 강단에서 여과 없이 전달되었다. 그러나 풍유적 해석법은 현대의 성경 해석학에서 매우 위험한 것으로 간주되어 더는 주석가들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다. 근거없는 해석은 주관성이라는 함정에 빠지기 쉽다. 예를 들어 한국교회에서는 흔히 갈라진 굽은 신약과 구약의 말씀을 상징하고 새김질은 말씀의 묵상을 상징한다는 해석이 흔히 통용된다. 그러나 갈라진 굽은 선과 악을 상징하고 새김질은 선악의 분별을 상징한다는 해석도 존재한다. 둘 중 어느 것이 옳은 것인가? 이와 같이 풍유적 해석은 명확한 기준이 없기에 주관성을 피할 수 없다. 무엇보다도 성경 해석이야 교인들에게 감동과 은혜만 되면 문제가 없다는 식의 태도로는 이단의 창궐을 막을 수 없다.
그 외 금지된 동물이 이방의 제의에서 제물로 바쳐졌다는 ‘이방 제의 기원설’이 있으나 이스라엘의 이웃 나라들에서 공통적으로 소, 양, 염소가 주 제물이었다는 점에서 잘못된 주장이다. 또한 ‘생태학적 설명’이 있는데, 이에 따르면 이스라엘의 생태적 환경이 부정한 짐승들이 인간에게 도움을 주지 못했기 때문에 배척되어 결국 금지된 짐승으로 법제화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동일한 생태적 환경에 사는 이웃 나라들이 그런 짐승들을 허용했다는 것은 이런 설명을 수용하기 어렵게 한다. 학자들에게 가장 인기있고 매우 중요한 이론은 다음의 구조주의적 설명이다.
질서는 정결, 무질서는 부정결로 간주하는 구조주의적 설명
구조주의에 입각한 메리 더글러스는 ‘부정결’과 ‘오염’은 질서를 벗어난 것, 변칙적이고 자리를 이탈한 상태, 그리고 흠이 있는 불완전한 상태라고 주장했다. 그와 반대로 정결한 것은 원래의 자리에 있는 상태, 정상적인 것, 그리고 흠이 없는 완전한 상태를 말한다. 정결과 더불어 거룩 또한 적합한 질서를 일컫는 개념이다. 모든 동물은 하늘, 땅, 수중의 각 영역에 맞는 신체 구조와 이동 방식을 지녀야 한다. 예를 들어 정한 것으로 분류되는 짐승, 물고기, 새, 그리고 곤충은 저마다 삶의 영역에 부합하는 신체 구조와 이동방식을 가졌다. 더글러스에게 있어 모든 생물은 창세기 1장의 자연 생태계에 적합한 신체 구조와 이동방식을 가져야 하며, 이 기준을 벗어난 것은 무엇이든 “변칙적인 것”이기에 부정하다.
(1) 지상(땅): 정상적인 지상 동물에게는 갈라진 굽과 새김질이 필수다. 예컨대 굽이 갈라지지 않은 발(paw)은 펑퍼짐한 모양의 손과 같다. 즉 규칙을 이탈해 손이 발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신체적 특징을 가진 개, 고양이, 호랑이 등의 짐승들은 부정하다. 날거나 걷지 않고 기는 동물 역시 물고기나 새, 짐승 중 어느 것으로도 분류할 수 없으므로 자동적으로 배제된다. (2) 공중: 예를 들어, 새 중에 공중과 수중의 두 영역을 넘나드는 것은 질서를 어지럽히므로 부정하다. 새에는 구체적인 신체 기준이 적용되지 않고 20종류의 목록이 제시된다. (3) 수중: 정상적인 어류에게 요구되는 지느러미와 비늘을 가진 물고기만이 정결하다. 따라서 상어나 갈치처럼 지느러미가 없는 어류는 부정하고, 해삼, 낙지, 멍게, 조개류는 자동으로 배제된다. 또한 이들은 기어서 이동하는 종들이다. 수중에서 기는 동작은 정상적인 이동 방식이 아니므로 부정하다. (4) 기는 것: 어느 부류에도 속하지 않는 애매한 동물들은 부정하다. 땅, 물, 공중을 불문하고 기어 다니는 짐승들은 물고기도, 짐승도, 새도 아니기 때문에 모두 부정하다.
결국 더글러스에게 있어서 부정한 동물이란 정상적인 신체 형태와 이동 방식을 벗어난 변칙적인 것들이요 정결한 동물들은 그러한 요건을 갖춘 것들이다. 이러한 음식법의 표준과 정-부정 동물은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온전하고 완전하신 분임을 증언한다. 그것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완전성, 정결성, 통일성을 인식시킨다. 더글러스의 새로운 견해에 성경학자들의 반응은 열광적이었으며 지금도 큰 인기를 끌고 있다. 그러나 그녀의 이론은 많은 반론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이동 방식의 변칙성(anomaly) 설명에 대한 집요한 비판이 이어졌다. 이것이 전 동물계에 일관성 있게 적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우선 가축의 경우 굽의 갈라짐은 논외로 하더라도 새김질은 신체적 특징이나 운동방식과는 무관하며, 음식섭취와 관련이 있다. 물고기의 비늘 역시 운동방식과 아무 상관이 없다. 부정한 새들이 공중과 물을 오가며 이동할 것이라는 주장도 추론에 불과하다. 11장의 목록에 있는 20가지의 새들 중 많은 것이 어떤 종인지 알려지지 않았으므로 그 새들 전부가 다이빙을 하고, 수영을 한다고 확신할 수는 없다. 또한 이스라엘 사람들의 생활환경은 물이 드문 고지대였으므로 그들에게 익숙한 조류는 대부분 오히려 강이나 호수의 생태적 습성과 거리가 멀었을 것이다. 게다가 공중을 나는 새는 모두 땅을 걸어 다니므로 두 영역을 넘나드는 변칙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따라서 더글러스의 기준은 일관성이 없다. 무엇보다 왜 지상의 짐승다운 짐승의 표준이 갈라진 굽과 새김질로, 또한 수중의 짐승의 표준은 마땅히 지느러미와 비늘로 결정되었는지 납득하기 어렵다.
이런 답변들에 만족하지 못한 일련의 구약학자들은 정-부정을 가르는 가장 설득력 있는 이유를 찾아냈다. 그것은 바로 생명과 죽음의 두 축이다. 우리는 지면상 이 문제를 다음 호에서 다루기로 하자. 동시에 그 생명-죽음의 두 축이 어떻게 레위기 11장의 음식법과 나머지 12~15장에 이르는 모든 정결법에 일관되게 적용되는지 살펴볼 것이다. 우리는 생명-죽음을 기준으로 나뉘는 정결과 부정결의 교훈이 결국 ‘거룩’을 가르치기 위한 레위기의 중대한 신학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새와 곤충 먹어도 되나?-하늘을 나는 새와 곤충 규례
레 11:13-23
뱀과 하늘을 나는 짐승은 애굽 신의 상징이었다
정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 5(레위기 11장 강해 5)-하늘을 나는 생물(새와 곤충) 규례(레 11: 13-23)
하늘을 나는 생물(새와 곤충)의 규례에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두드러진 특징이 있었다.
첫째, 새는 부정한 것만 소개하고 있다.
먹이가 풍부하지 못한 광야에서 히브리인들에게 알려진 새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광야의 새들은 주로 시체와 불결한 것을 먹는 종류들이었다. 또한 일부 새들은 물고기, 악어, 뱀들과 더불어 애굽 땅에서 신들의 형상이었다. 뱀이 하(下)애굽의 상징이었던 반면 독수리가 많이 살던 상(上)애굽에서는 독수리가 국가의 수호신이요 상징이었다. 즉 ‘Re'는 태양의 신인 동시에 매나 독수리의 머리와 사람의 몸을 가진 반신이었다. 따오기 머리를 가진 'Thoth'는 신들의 서기관으로 시간을 측량하고 수를 계산하며 재판 시 사람이 마음의 무게를 재는 재판의 신이었다. 따라서 우상의 상징이 된 이들 새들은 모두 정결치 못한 종류들로 분류되었다.
비록 이들 새들에 대한 섭식 금지는 일차적으로는 당시의 상황을 반영한 영적인 것이었으나 성경의 다중적 계시를 늘 기억해야 한다. 미생물학적 지식이 전무했던 당시 창조주 하나님의 이 계시에는 이스라엘 공동체를 향한 중요한 의미도 담겨있다. 즉 이스라엘 공동체가 치명적 사태를 맞지 않도록 하시는 하나님의 배려였던 것이다.
그것은 바로 나는 새(조류)들이 바이러스의 매개체라는 것이다. 18개월 동안 무려 1억명의 희생자를 낸 일명 1918스페인독감은 바로 조류로부터 옮겨온 것이었다. 이 독감바이러스는 유럽에서 먼 알래스카의 한적한 브레비그 미션 마을에 도착한지 5일만에 이누이트 주민 80명 가운데 72명을 사망케할 정도로 치명적이었다. 이들 스페인독감 바이러스는 조류로부터 돌연변이를 거쳐 사람에게 전파된 것이었다. 물론 코로나19바이러스도 마찬가지다. 박쥐라는 성경이 섭식을 금지한 나는 동물이었다. 인류 공동체가 바이러스에 얼마나 취약한 지를 보여준다. 즉 이스라엘 공동체가 치명적 사태를 맞지 않도록 하시는 하나님의 배려였던 것이다.
둘째, 히브리인들이 잘 아는 새와 곤충들이 망라(網羅)되어 있다.
성경은 당시 가나안 주변에 익숙하게 알려진 조류와 곤충들을 모두 망라하고 있다. 먼저 20여 종류의 부정한 새 종류를 소개하고 있다. 이들은 독수리, 솔개, 물수리(어응, 魚鷹), 말똥가리(매), 말똥가리(매) 종류, 까마귀 종류, 타조, 타흐마스(어둡고 깊은 동굴 등에 사는 쏙독새의 일종, nighthawk, KJV, RSV), 갈매기, 새매 종류, 올빼미, 가마우지(노자,鸕鶿), 부엉이, 흰 올빼미(따오기), 사다새(당아, pelican, KJV, RSV), 너새(올응, carrion vulture), 황새와 백로 종류, 오디새(대승,戴勝, hoopoe, 후투티), 박쥐였다(괄호 안의 이름들은 한글개역판을 참조). 공동번역 성서는 이들 이름을 독수리, 수염수리, 흰꼬리수리, 검은소리개, 각종 붉은 소리개, 각종 까마귀, 타조, 올빼미, 갈매기, 각종 매, 부엉이, 사다새, 따오기, 백조, 펠리컨, 흰물오리, 고니, 각종 푸른 해오라기, 오디새, 박쥐로 기록하고 있다.
개역성경보다는 개역개정판과 공동번역이 좀 더 현대적 이름에 가깝게 번역한 이름으로 보인다. 이렇게 다양하게 번역되는 것으로 보아 이들 동물들은 오늘날 명확히 모습을 파악할 수 있는 종류가 있는 가하면 그렇지 않은 종류들도 있다. 그래서 성경의 역본들은 각각 조금씩 서로 다르게 번역하고 있다.
박쥐는 오늘날 분류학상으로 포유류에 속한다. 하지만 성경은 과학교과서가 아니다. 당시 히브리인들의 상식에 적응하여 성경은 박쥐를 나는 새 종류로 분류하고 있다. 토끼를 반추동물이라던가 박쥐를 포유류가 아닌 새라고 집착할 필요는 전혀 없다는 것을 이미 밝힌 바 있다. 이런 성서근본주의적 사고는 부질없는 집착에 불과하다.
셋째, 곤충은 날개가 있고 네 발로 기어 다니는 곤충 가운데 뛰는 다리를 가진 곤충들만 정결한 것들이었다.
즉 메뚜기 종류, 베짱이 종류, 귀뚜라미 종류, 팟종이 종류 등 네 가지 종류가 해당되었다. 날개가 있고 네 발로 기어 다니는 것들은 부정한 종류였다. 곤충들은 지금도 동남아 등지에서는 식용으로 다양하게 시식되고 시판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시판되는 경우는 흔치 않으나 과거 농촌에서 자란 대부분의 세대는 논과 밭에서 메뚜기 등 곤충들을 포획하여 닭 등 가축의 먹이로 주거나 실제 구어 먹고 튀겨 먹은 기억들이 남아있다. 필자도 마찬가지다. 세례 요한이 약대 털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었던 것도 바로 메뚜기가 정결한 곤충으로 분류되었기 때문이다(마 3:4).
.시몬 베드로가 경험한 부정한 짐승에 대한 하나님의 교훈
그렇다면 지금도 이들 부정한 동물들은 먹을 수 없는 부정한 생물들일까? 전혀 그렇지 않다. 사도행전 10장에 보면 낮 12시경 욥바의 피장(피혁공) 시몬의 집에서 베드로가 기도하러 지붕에 올라갔을 때 베드로에게 하나님의 환상이 나타났다. 그가 시장하여 먹고자 하매 사람들이 준비할 때에 황홀한 중에 하늘이 열리며 한 그릇이 내려오는 것을 보았다. 이것은 큰 보자기 같고 네 귀를 매어 땅에 내려오고 있었다. 그 안에는 땅에 있는 각종 네 발 가진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것들이 있었다. 그 때 베드로에게 일어나 잡아먹으라는 음성이 들려왔다. 베드로는 속되고 깨끗하지 아니한 것을 결코 먹을 수 없다고 반응하였다. 이 때 두 번째 소리가 들려왔다.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행 10: 15)는 음성이었다.
레위기 11장과 관련하여 이 말은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하나님이 부정하다고 한 것들은 분명 영적으로 육체적으로 부정하고 가증한 것들이었다. 베드로는 한 번도 이들 규례를 어긴 적이 없었다(행 10:14). 그런데 정말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행 10: 15)는 음성이었다.
그리스도는 친히 나무에 달려 십자가를 지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였다(갈 3:13). 은혜의 시대에 율법적 잣대는 그림자처럼 사라졌다. 하나님은 베드로의 이 환상을 통해 히브리인 베드로가 이방인 고넬료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 합당하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은 당당하게 이방인의 사도가 되었다. 가증한 것들을 함부로 먹으며 여호와 하나님을 모르고 유리하며 살던 이방인에게도 참 빛이 비추인 것이다. 그 빛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였다(요 1:4-9)!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이방인들이여 모두 다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하라!
조덕영 박사(조직신학, Th. D.)) 창조신학연구소
정결한 짐승, 부정한 짐승
레 11:1-47 / 김선종 교수
레위기 11~15장에는 정결법이 나온다. 정결법은 정결함과 부정함을 규정하는데, 정결하고 부정한 짐승과 사람과 옷과 집을 다룬다. 그런데 여기에서 정결함과 부정함은 깨끗함과 더러움을 뜻하지 않는다. 죄의 문제와 연결되어 있지도 않다. 히브리어에서 정결함은 생명과 관련 있는 것, 부정함은 죽음과 관련 있는 것을 말한다.
먼저 레위기 11장은 정결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을 다룬다. 정결한 짐승은 먹을 수 있는 짐승, 부정한 짐승은 먹을 수 없는 짐승을 말하지, 짐승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레위기 11장에 11번이나 나오는 표현이 '너희에게 부정'(11:4, 5, 6, 7, 26, 27, 28, 29, 31, 35, 38)하다는 것인데, 짐승 자체가 부정한 것이 아니라, 사람의 관점에 부정하다는 것을 말한다. 사람이 먹을 수 없고, 제사를 드리기에 합당하지 않다는 의미에서 부정하다.
레위기 11장은 땅에 사는 짐승, 육지 짐승(2~8), 물에 사는 짐승(9~12), 하늘에 사는 짐승(13~23)을 다룬다. 먹을 수 있는 짐승의 기준에서 육지 짐승은 굽이 갈라지고 쪽발이면서 새김질하는 짐승이어야 한다. 이러한 기준을 벗어난 돼지고기는 먹어서는 안 된다. 물고기는 지느러미와 비늘이 있는 물고기만 먹을 수 있다. 그래서 장어와 오징어는 먹어서는 안 된다. 독수리와 같은 맹수도 부정하게 여겨졌는데, 썩은 고기를 먹는 짐승으로 여겨졌기 때문으로 보인다. 네 발과 다리로 뛸 수 있는 벌레는 먹을 수 있다. 땅을 기어 다니는 길짐승 가운데 뱀과 관련된 짐승은 부정하게 보았는데, 이것은 창세기 3장 14절 등에서 뱀이 사람을 유혹한 간교한 짐승을 상징하는 것으로 본 것과 유사하다.
이러한 기준이 어떻게 생기게 되었는지 확실하지 않다. 위생의 문제로 부패하기 쉬운 짐승은 먹지 말라고 했다거나, 이방신에게 제물로 드려진 짐승은 부정하게 여겼을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구약의 위경인 아리스테아스의 편지는 정결한 짐승은 유대인을 상징하고, 부정한 짐승은 이방인을 상징하는 것으로 알레고리적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새김질하는 것은 말씀을 되새겨 묵상하는 것으로 비유하기도 하지만, 그릇된 해석 방식이다. 주후 1세기의 유대인 철학자 알렉산드리아의 필로는 돼지고기를 먹지 말도록 한 이유를 은유적으로 설명하는데, 돼지고기가 맛있어서 하나님이 사람이 탐욕을 내지 못하도록 하셨다고 설명한다. 그러면 소고기는 맛이 없어서 먹도록 허락하셨겠는가? 정결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을 나누는 가장 설득력 있는 설명은 창세기 1장에 나오는 우주상과의 조화에 따른 설명으로 보인다. 창조 질서에 따라 땅과 바다와 하늘로 구분된 곳에서 사는 짐승은 정결하고, 땅과 바다와 하늘을 걸쳐서 사는 짐승은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짐승으로 여겨졌다. 분화되지 않은 짐승은 태고의 혼동을 지니고 있는 짐승으로 보았다. 어류와 파충류의 중간으로, 땅 위 또는 물속에서 사는 양서류가 그러하고(10), 날개를 가지고 날고 동시에 네 발로 걷는 벌레(20)와 파충류도 그러하다(41~45).
레위기의 정결법의 문제가 신약 시대에 문제가 되었다. 예수님은 사람을 정결하고 거룩하게 하는 것은 무엇을 먹고 마시느냐에 달린 것이 아니라, 마음가짐에 달려있다고 말씀하신다. 사람을 부정하게 하는 것이 음식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에 있는 온갖 더러운 생각들이 사람을 더럽게 만든다는 것이다(막 7:15~23). 베드로는 하늘에서 부정한 짐승을 담은 그릇이 내려오는 환상을 본다(행 10). 베드로는 그 짐승들을 먹으라는 하늘의 소리를 듣는다. 유대인 베드로는 율법의 가르침을 따라 부정한 짐승을 먹을 수 없다고 대답하자, 하나님이 깨끗하게 하신 것을 속되다고 하지 말라는 하늘의 음성을 듣는다. 이것은 사도행전의 선교의 배경을 알아야 하는 것으로, 다른 문화에 젖어 있는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는 내용을 다룬다. 이탈리아 군대의 로마 백부장 고넬료,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라는 것을 말하는 내용이다. 어떠한 음식을 먹느냐의 문제는 어느 민족의 식생활과 관련된 것이기에,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해치지 않는 한에서 복음을 전파하는 일에 방해가 되면 과감하게 양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결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에 대한 규정에서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형상에 따라 지음 받은 거룩한 백성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존재 양식을 따라 살아야 한다는 가르침을 얻는다. 11장의 마지막 구절을 보면 하나님이 거룩하니 그의 자녀인 우리도 거룩해야 한다(44~45).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 속한 존재라는 인식을 가지고 살아간다. 하나님은 이집트에서 400년 동안 노예 생활을 한 이스라엘 백성을 해방시키신 하나님이시다. 새로운 백성, 거룩한 백성으로 거듭나게 하기 위한 법이 정결법이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을 따라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한다. 그런데 하나님의 거룩함을 이루는 것이 사람이 음식물을 먹는 식생활에서 시작한다. 거대한 담론과 신비를 통해서 거룩함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먹는 것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거룩함을 이루려고 노력한 이스라엘 백성의 세심한 모습이 나타난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백성이자 그리스도의 몸이다. 따라서 몸과 마음을 거룩하게 해야 하는데, 그것은 음식으로 대변되는 우리의 삶의 양태로부터 시작한다.
김선종 교수/호남신대 구약학
정결함과 부정함
레위기 11:1-47
나는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몸을 구별하여 거룩하게 하고 땅에 기는 바 기어다니는 것으로 인하여 스스로 더럽히지 말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44-45)
1. 구별하며 살아가는 것이 몸에 배 있는가?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활대속의 은혜로 새로운 피조물된 자들입니다(고후 5:17). 그래서 우리는 불신자들과는 생명도 다르며, 삶의 목표와 방편도 다르며, 그 결과도 천국과 지옥으로 완전히 다른 자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레위기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레 11:45)
‘너는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고하여 이르라 너희는 거룩하라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레 19:2)
이 말씀을 신약에서 다음과 같이 재차 말씀하셨다.
‘또 저희를 위하여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 이는 저희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이다’(요 17:19)
‘기록하였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벧전 1:16)
거룩은 ‘구별하다’, ‘잘라냄’, ‘분리함’을 의미한다. 이것은 죄악과 부정으로부터 철저히 자신을 분리시키고, 오직 하나님의 소유로서 자신을 구별하여 드리는, 변화된 상태를 지칭한다. 따라서 거룩은 하나님을 섬기고 예배하기 위해 세속적인 것, 부패한 행실이나 풍습에서 구별되어 하나님의 법대로 살아가는 것을 가리키는 것으로 볼 수 있다(레 11:44).
2. 구별해야 할 것들
2.1. 정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11:1-23)
레위기 11장은 의식적인 청결에 하나의 중요한 관계가 될 수 있었던 일상적인 생활에서 더욱 현실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다. 고대 히브리인들이 특징상 거룩하며 구분되고 제사장이었다는 것은 추상적인 이상이 아니라 매일의 삶에서 공동체의 유익이 되도록 달성할 수 있는 실제였다. 그러므로 율법은 공동체의 유익이 되도록 상세한 지침들을 제공하여 모든 오염으로부터 피할 수 있게 하였다.
음식은 인간 생존의 기본이기에 식사를 고려한다는 것이 실천적 관심의 중심에 나타난다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정결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결정하는 것은 전통적인 지식(folk wisdom)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모세가 직접 받는 것이다. 그런 입법들이 희생 규정으로서 동일한 권위를 분명히 가진다. 만약 그 이스라엘이 제사장의 왕국과 거룩한 백성이 되려면 음식 규정들을 준수한다는 것은 의무이다.
레위기 11장은 정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을 구별한다. 처음에는 땅-하늘-물이라는 삼중구조 속에서 정한 것과 부정한 것을 구별하고(1-23절), 나중에는 생활(生活)반경(半徑) 속에서 그것을 확인한다(24-47절).
레위기 11:1-23에서 정결한 짐승은 굽이 갈라지고 되새김질을 하는 가축들이다(11:3). 이런 조건에서 벗어난 짐승들은 모두 부정한 것이다. 물고기 중에는 지느러미와 비늘이 없는 것(11:9-12), 새들 중에는 육식하는 것들이 부정하다(11:13-23). 이스라엘은 부정한 짐승으로 분류된 것들을 식용해서는 안 된다.
가축 중에도 식용해서는 안 되는 것들이 있다. 낙타, 사반, 토끼, 돼지 같은 것들이다(11:4-8). 이것들은 모두 외관상 되새김질을 하지만 굽이 갈라져 있지 않다. 하지만, 엄격히 말해 이것들은 반추동물이 아니다. 토끼는 입놀림만 그럴 뿐 결코 되새김질을 하지 않는다. 바위 절벽이나 돌이 많은 언덕꼭대기에 무리지어 사는 다람쥐과의 사반도 되새김질과는 거리가 멀다.
낙타도 해부학적으로는 반추동물이 아니다. 낙타를 식용으로 금한 것은 낙타가 사막의 운송수단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낙타는 고기와 젖을 내지 못한다. 번식률도 소, 양, 염소에 비해 현저히 낮다.
돼지는 고대 가나안의 황량한 기후에서 사육하기에 비효율적이다 젖도 공급하지 못하고 농사일에도 쓸 수가 없다. 그러면서도 사람이 먹는 곡식(옥수수, 감자, 콩 등)을 먹고 자란다. 이것은 소나 양, 염소가 들판에서 사람이 먹을 수 없는 풀이나 나뭇잎을 먹는 것과는 크게 차이가 난다.
2.2. 이스라엘의 생활을 부정하게 하는 것들(11:24-47)
레위기 11:24-47은 이스라엘의 생활을 부정케 하는 것들을 규정한다. 먼저 짐승의 주검(24-40절)과 파충류가 일으키는 부정을 다룬다(41-42절). 또 정결한 짐승이라도 예배용으로 도살되지 않고 그냥 죽은 경우라면 부정한 것으로 여긴다(39-40절).
부정한 것을 만지거나 나르거나 담거나 치우고 나면 부정하게 된다. 사람뿐만 아니라 사람이 쓰는 그릇이나 입는 옷까지도 부정하게 된다. 만약 이런 일로 누군가가 부정하게 되었다면 그 사람은 저녁까지 부정한 채로 머물러야 한다. 그리고 부정하게 된 자는 그 옷을 빨아야만 된다.
본문에 소개된 부정한 짐승은 모두 여덟 종류이다(29-30절). 쪽제비. 쥐, 도마뱀, 합개, 육지 악어, 주궁. 사막 도마뱀. 칠면석척이다. 이 짐승들은 모두 팔레스틴의 생활환경에서 접촉할 수 있었던 파충류이다. 만약 나무그릇, 의복, 가죽, 부대, 질그릇, 보관해 놓은 음식 등이 이들의 주검에 닿은 것으로 여겨지면 그것들은 모두 부정하게 된다.
부정하게 된 질그릇은 깨뜨려 버려야 한다. 목기 같은 것은 물로 씻어내면 된다(32절). 질그릇은 부정을 흡수하지만, 목기는 겉표면만 부정에 감염되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종자의 경우, 물에 담겨 있을 때에만 부정에 노출된다(37-38절).
이스라엘은 생활 속에서 정결한 것과 부정한 것을 세심하게 판별해야 한다. 구별된 삶을 살아야 되기 때문이(11:43-45). 의식주를 구별하고, 생각을 구별하고. 몸을 구별하고, 행동을 구별하여, 거룩하신 하나님을 닮아가는 생활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그 누구도 부정한 상태로는 하나님을 섬길 수 없다. 부정한 상태로는 하나님의 성소마저도 부정으로 오염시킬 수 있다 제사장만이 아니라 모든 이스라엘이 부정에서 비켜나 있어야 한다. 부정한 삶에 대한 엄격한 조처는 그래서 더욱 강조되고 있다. 이스라엘 백성의 손짓 하나, 몸짓 하나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거나 가리울 수 있다는 것이다.
3. 초대 교회의 할례 문제로 말미암은 갈등
초대 교회는 유대교에서 개종한 그리스도인과 헬라파 그리스도인 사이에 문화적 갈등을 지니고 있었다. 초대 교회의 유대인들 가운데는 이방인들도 모세의 율법을 따라서 할례를 받아야 된다고 우기는 자들이 있었던 것이다. 이 문제로 초대 교회는 시끄러웠다. 그러나 예루살렘 공의회는 이방 종교에서 개종한 그리스도인들에게 유대인의 멍에를 지울 필요가 없다고 확정하였다(행 15장).
유대인들은 레위기 11장과 같은 정결 규정을 자기 의를 내세우는 수단으로 남용하였다.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다. 레위기 11장이 그 정신을 잃어버리고 겉껍데기만 남게 되었을 때 이스라엘 신앙의 참된 힘이 상실되어 버린 것이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깨끗한 손과 정결한 마음’(시 24:4)이지 어떤 형식이나 외적인 절차가 아니다. 이스라엘의 예언자들은 그 백성이 윤리적으로, 도덕적으로 정결할 것을 촉구하였다(삼하 22:21-25. 욥 17:9; 22:30: 시 10:21-25; 51:9-12; 사 6:5). 죄에서 용서받아야지 외적인 조건만 깨끗해서는 안 된다고 선포한 것이다(렘 33:8; 사 35:8).
예수 또한 바리새인적인 겉치레가 아니라 마음의 청결을 통한 인간 구원에 그 참뜻이 있음을 밝히셨다(막 7:13-23). 먹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고 속에서 나오는 악한 생각, 음란, 도적질, 악독, 속임, 살인, 탐욕, 속임, 음탕, 흘기는 눈, 훼방, 교만, 광패가 사람을 더럽게 한다고 지적하셨다. 외적 형식이 아니라 내적인 부패가 우리를 부정한 굴레 속에 살게 한다고 꾸짖으셨다. 새 음식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새 사람이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율법적인 의식이 사람을 깨끗케 만드는 것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사람을 정결케 한다(딛 2:14; 히 9:14; 요일 1:7).
4. 거룩한 삶을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하나님의 백성은 날마다 대하는 식탁을 정결하게 간수해야 한다. 사람이 하나님의 식탁(제단)에 올리는 음식(예물)이 정결하고 온전해야 하듯이, 사람이 날마다 대하는 식탁에서 먹는 음식도 정결하고 온전해야 한다.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은 먹는 생활에서도 하나님을 닮아야 한다.
먹는 것이 결코 사람의 식욕을 채우기 위한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 자기 몸의 보신(補身)을 위해서 닥치는 대로 먹거리를 찾는 인간의 욕심이란 결코 정결한 태도가 되지 못한다. 몸보신을 위해서 먹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먹어야 한다.
사람이 조절해야 될 욕심 중에 식욕이 있다. 식욕은 성욕(性慾), 명예욕, 권세욕, 재물욕 등과 함께 사람이 다스리고 절제해야 할 대상이다. 식욕이 신앙생활의 걸림돌이 되어서는 안 된다. 먹으려는 욕심을 절제하는 것은 먹는 입을, 곧 몸을 정결하게 다스리려는 노력이다.
신앙인은 몸을 구별하여 거룩하게 살아야 한다. 여기에서 우리는 레위기 11장의 결론이 ‘몸을 구별하여 거룩하게 하라’(레 11:44)는 말씀임을 주목해야 한다.
‘나는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몸을 구별하여 거룩하게 하고 땅에 기는 바 기어다니는 것으로 인하여 스스로 더럽히지 말라’(레 11:44)
이는 신약의 그리스도인들 또한 지켜야 할 덕목이다(참조 고전 6:13).
‘식물은 배를 위하고 배는 식물을 위하나 하나님이 이것 저것 다 폐하시리라 몸은 음란을 위하지 않고 오직 주를 위하며 주는 몸을 위하시느니라’(고전 6:13)
먹는 생활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라(고전 10:31).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 10:31)
이상에서 살펴본 것과 같이 레위기 11장의 규례나 신약의 거룩에 대한 말씀은 하나님의 백성된 이스라엘 백성에게나 신약의 우리에게까지 하나님의 특별한 관심과 배려가 들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배려는 육체적인 건강, 민족적 단일성, 하나님께 대한 예배, 마음의 순결과 육체의 순결, 경건함에 대하여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살아가면서 성경 말씀과 성령의 인도를 따라서 부정한 것과 정결한 것을 구별하여 살아감으로 현세에서의 안녕과 내세에서의 우리의 행복에 무한한 지혜와 선하심의 관심을 인식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하나님의 특별한 관심과 사랑을 무한히 받고 살아가는 자들로서 우리에게 주신 법칙을 따라서 매사(每事)에 구별하며 살아가는 거룩한 삶을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주인공이 됩시다. 주인공되세요.
참조. Harrison,「레위기」, p. 137. 가스펠서브,「라이프성경사전」, p. 32. 아가페,「성경사전」, pp. 61-62. 왕대일, ‘정결함과 부정함’,「레위기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 pp. 201-204.
레위기 11장이 폐지될 수 없는 성서적 근거
제가 본 글 중 가장 성서적인 것 하나를 퍼 올려 봅니다.
레위기 11장의 '성결의 법'에 대해
애매모호한 태도를 보이고 있으며, 정결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의 구별에 대해 '십자가로
폐지된 모세의 법일 뿐'이라고 단정짓는 경우를 대하게 된다.
또한 '먹고 마시는 것'은 새언약하에서 의미 없는 옛언약일 뿐이라고
주장하면서 재림교회가 주창하는 '건강법'에 대한 부정적이며'
아무것이나 먹고 마셔도 구원과는 무관하다'는 주장들도 보게 된다.과연 그러한가?
우리가 이 문제를 다룰 때 먼저 알아야 할 것은,
레위기서는 단순한 제사법(의식법)만을 기록한 것이 절대 아니라는 사실이다.
흔히들 [레위기는 제사법(혹은 의식법)]이라는 등식을 고수하는 한
‘먹는 문제’에 대한 해답은 요원한 것이 되고 만다.
오랜 세월동안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불러 내신 하나님께서는
출애굽기 19장에서부터 시내산에 강림하셔서 “친히” 말씀하신다
.“모세가 하나님 앞에 올라가니 여호와께서 산에서 그를 불러 가라사대 ...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열국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 (출 19:3-6)
여기서 중요한 것은 ‘불러 내신 목적’이 “하나님이 소유”가 되게 하고
“거룩한 백성” 즉 ‘타민족과 구별된 백성’이 되게 하는 것이다.
출애굽기 20장에서는 세계 모든 민족에게 영원히 적용될 십계명을 친히 반포하셨다.
그 후 출애굽기 21장에서부터 23장까지는 이스라엘 민족들이 살아가면서 지켜야 할
여러 가지 율례들과 절기들을 소상히 말씀하신다.
이 모든 것들은 백성들이 듣도록 ‘친히’ 말씀하신 십계명에 대해 이스라엘 백성들이
“떨며 멀리 서서 모세에게 이르되 당신이 우리에게 말씀하소서
우리가 들으리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지 말게 하소서
우리가 죽을까 하나이다” (출 20:18-19)라고 말하는 것에 대한 자비의 응답으로
십계명에 대한 부수적인 법들을 상세히 알아듣기 쉽게 모세를 통해 말씀하신 것이다.
출애굽기 24장에서 모세는 여호와께서 이르신 이 모든 말씀들을
백성에게 고하고 백성들은 “한소리로 응답하여” “우리가 준행하리이다” 라고 하여
드디어 모세가 이 모든 말씀을 기록하고 이 언약서를 백성들에게 낭독하고
짐승의 피를 뿌려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언약에 체결되고 그 법들이
비준되어 효력이 발생하게 된 것이다.
그 후에 하나님은 백성들이 직접 듣기를 거절한 십계명을 돌판에 새겨 주시기 위해
모세를 산으로 불렀고 모세는 40주야를 산에 있게 된다
출애굽기 25장부터 하나님은 드디어 성소(회막)에 대한 구체적인 지시들을 주신다.
소위 의식법이라고 불리우는 이 성막에 대한 전반적이고 구체적인 내용들이
31장까지 계속되어진다.
그리고 35장부터 모세와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보여 주신 하늘 식양을 따라
성소와 그 기물들을 만들게 된다.
물론 그 사이에 이스라엘의 배도가 있었고 그래서 깨뜨려진 십계명은
하나님이 모세가 만들어 온 돌비에 다시 기록되어진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렇게 출애굽기 25장부터 거의 끝장까지 성막과 관련된
의식법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지만 그 중간 중간 사이 사이에
의식법과는 전혀 관계 없는 보편적인 율법인 십계명 중 제칠일 안식일 등이
가끔 재언급되어 지고 있다는 사실이다(출31:13~16; 35:2,3).
그뿐 아니라 십계의 둘째 계명인 우상과 음란에 대한 것도 언급하신다(출34:12~117).
출애굽기의 기록은 출애굽연대 제2년 1월 1일에 성막의 완성과 함께 끝난다
그리고 바로 30일간의 기록인 레위기서가 시작된다
레위기서는 그동안 ‘산’에서 말씀하신 하나님께서 ‘그 중에 거하시기 위해’
만들라고 명하신 ‘성막’(회막)에서 모세를 불러 말씀하신 것이다.
레위기서는 제사와 공중 제사에 대한 율법들(1장~10장)과
성전 정결과 부가적인 율법(16장~17장), 도덕적인 여러 법들과
생활법(18장~20장,24장), 기타 제사장 자격과 각종 절기들과
성소에 대한 추가적인 법들과 서원 문제(21장, 23장, 24장, 27:1~25)등을
언급하고 십일조 문제(27:30~34), 여호와이 이름을 훼방하는 죄(24:10~16,23)등을
다양하고도 상세하게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
출애굽기에서 시작된 십계명의 율법을 비롯하여 각종 율례와 도덕적인 법규들,
의식법(제사법)과 그와 관련된 여러 가지 절기와 규칙들, 성결과 정결에 대한
조항 들이 레위기서에서 반복되어지고 다시 민수기와 신명기에서 반복 되어진 것이다
그리니까 이 모든 것들 중 어떤 것들은 창세 이래 모든 인간들에게 보편적으로
적용되어지는 불변의 십계 율법 과 각 시대의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적용되어지는
일반적인 도덕 법규들과 성결법들 도 있으며 이 땅에 오시게 될 메시야 곧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모형과 그림자인 제사법과 의식법과 각종 절기들 도 있는 것이다.
만약 어떤 일부 사람들 주장처럼 레위기서 전체가 의식법이고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이기 때문에 그것들이 가리켰던 예수님의 십자가로 다 폐하여졌다고 한다면,
그들은 레위기서의 제사법이나 의식법 외의 십계명의 일부 계명에 대한 언급과
도덕적인 각종 법규들, 십일조에 대한 지시 사항 등에 대한
명백한 설명을 덧 붙여야만 할 것이다.
제사법이나 의식법과는 전혀 관계없는 “몸을 구별하여 거룩하게 하”(레11:44)는
‘먹을만한 생물’에 대한 레위기 11장은 의식법으로 포함하는 근거는 무엇이며,
같은 레위기서에 기록된 십일조에 대한 말씀은 여전히 유효화시키는
명분은 무엇인지에 대해 그들은 분명하게 성서적으로 설명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레위기 11장부터가 ‘정결의 법’이라면 왜 정결의 법이 의문의 속한
계명의 율법이며 그것이 “모형과 그림자”가 되어 그리스도를 가리킨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설명을 해야 한다.
레위기 11장 폐지론자들은 출애굽기에서부터 시작되어 신명기에 이르기까지
뒤섞여 반복되어 말씀한 여러 가지 다양한 법규들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를 못한채
‘레위기는 그저 의식법이니 11장의 정한 것과 부정한 음식 문제도 그 의식들이
가리켰던 원형인 십가가로 폐했다’는 논리만을 거듭할 뿐이다.
왜, 레위기 11장은 폐하여 질 수 없는 것인지에 대해 성경으로 돌아가 살펴보자!
첫째, 부정한 것과 정결한 것의 구분은 모세를 통해 주신 의식법과는 관계없이
노아 이전 시대에 시작된 ‘성결의 법’이었다
정결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의 구별은 이미 창세기 7장의 노아 당시로 거슬러 올라간다
“너는 모든 정결한 짐승은 암수 일곱씩, 부정한 것은 암수 둘씩을 네게로 취하며
공중의 새도 암수 일곱씩을 취하여 그 씨를 온 지면에 유전케 하라” (창 7:2-3)
“정결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과 새와 땅에 기는 모든 것이
하나님이 노아에게 명하신 대로 암수 둘씩 노아에게 나아와 방주로 들어갔더니” (창 7:8-9)
이 때도 하나님이 노아에게 홍수가 날 것을 말씀하시고 방주를 만들라고 명하신 다음
그 방주 안에 ‘정결한 짐승은 암 수 일곱씩 부정한 것은 암 수 둘씩을 취하라’고
하신 것을 보면 이미 그 이전부터 정결한 것과 부정한 것은 구분되어져 왔고
노아가 그런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홍수가 끝난 후 “노아가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모든 정결한 짐승 중에서와
모든 정결한 새 중에서 취하여 번제로 단에 드” (창 8:20)린 것을 보면,
정결한 짐승을 단에 드리는 것은 이미 관례화되어 있었음도 짐작해 볼 수 있다
왜냐하면 그 이전에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정결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을
방주에 들이라는 말씀만 하셨지 단에 드리라든지의 명령은 내린 적이 없기 때문이다.
또한 홍수가 있을 것을 말씀하시면서 정결한 짐승을 일곱씩 들이고
육식을 허용하신 것을 보면 분명히 인간이 먹을 것은 당연히 ‘정결한 것’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애굽의 종살이를 하면서 다 잊어버린 그 모든 법들을
하나님은 시내산에서부터 다시 말씀하시면서 아울러 애굽의 식습관에 깊이
탐닉되어 있었던 백성들에게 ‘먹을 생물’이 어떤 것들인지를 상세히 일러 주므로
이스라엘이 성별된 하나님의 백성임을 깨닫게 한 것이다.
얼마나 자상한 배려이며 지극한 사랑인가!
결론적으로, 레위기 11장의 정하고 부정한 생물의 구분은 이미 모세를 통해 주신
제사법이나 의식법과는 달리 그 기원이 창세기 7장 노아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며
홍수 직후 육식을 허락하실 때에도 ‘피채 먹지 말라’는 당부가 조건으로 제시되어 있다(창9:4).
그런데 레17장에서도 ‘먹을 만한 짐승이나 새’(13절) 이야기를 하면서
역시 ‘어느 육체의 피든지 먹지 말라’(14절)고 하였고
사도교회의 예루살렘 총회의 결론에도 그와 같은 원칙이 재확인 됨으로(행15:20),
레위기 11장의 음식 문제가 모세를 통해 주신 의식적인 법이나 제사법을 뛰어넘어
이미 그 이전 시대부터 보편적인 성결의 법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적용되어져 왔고
신약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했음을 알 수 있다.
둘째, 레위기 11장의 ‘부정’은 다른 경우들의 부정과는 전혀 본질이 다른 ‘가증한 것’이다.
정함과 부정을 말할 때 성경은 우리에게 두가지를 언급한다.
하나는 하나님이 ‘부정하다’고 선언하여 그 본질이 부정하여 의식과는 전혀 관계 없이 ‘부정한 것’이다.
다른 하나는 본래는 깨끗하였으나 후천적으로 더럽혀지거나 부정해져서
어떤 의식이나 행위를 통해 정결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레위기 11장에서 하나님이 ‘먹지 못할 것’으로 말씀한 부정한 것들은 어떤 물건이나 주검에 접촉하여
부정해 진 것이 아닌,하나님이 선언하여 그 본질이 부정한 것으로 구분된 것이다.
성경은 이러한 부정을 여러번이나 ‘가증하다’고 말씀하고 있다(레11:11,12,2023).
특이한 것은 레위기 11장에서만 하나님이 부정하다고 선언한 먹지 못할
생물들을 언급할 때 ‘가증하다’라는 표현을 9회 사용했는데
그것이 또한 같은 ‘먹지 못할 생물’을 다른 신명기 14장에서는
그 모든 먹지 못할 것들을 “가증한 물건”이라고 통칭하고 있다는 사실이다(신14:3).
그리고 에스겔도 “가증한 고기”(겔4:14)라고 표현했고 베드로도
“속되고 깨끗지 아니한 물건”(행10:14)이라고 했다.
레위기 11장에서 ‘부정’이라는 말은 모두 22회 사용되고 있는데
앞서 부정하다고 선언된 생물들과 관련하여 7회 사용되고
나머지는 15회가 바로 후천적으로 부정해 지는 일과 그것을 정하게 하는
문제에 대해 말할 때 사용되었다.
레위기 11장부터 15장까지는 이러한 본질이 부정한 것과 함께
어떤 환경이나 접촉에 의해 부정해 지는 경우를 같이 다루고 있다는 사실이다.
1. 정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의 구분과 부정과 정결(11:1~47)
(1)정한 것(먹을 생물)과 부정한 것(먹지 못할 생물)의 구분(레11:1~23)
-육지의 모든 짐승(레11:2~8)
-물에 있는 모든 것(레11:9~12)
-새 중(레11:13~19)
-곤충(레11:20~23)
(2)부정한 것의 주검을 만지므로 부정해 지는 것과 정결의 법(레11:24~41)
(3)가증한 것 중 먹지 못할 것과 몸을 구별하여 거룩하게 하라는 명령(레11:42~47).
2.개인, 의복, 가옥의 정결에 대한 율법(12:1~15:33)
(1)출산으로 인한 부정과 정결케 되는 기한(12:1~8)
(2)문둥병으로 인한 부정과 정결케 되는 방법(13:1~14:57)
(3)개인적인 부정과 정결의 방법(15:1~33)
후천적으로 부정해 진 것들은 반드시 그 부정을 제거하고 정하게 하는
‘정결 의식들’이 있었으나 본질적으로 하나님이 부정하다고 선언한 것은
그 어떠한 정결 의식이나 방법으로 정결하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들은 그것 자체가 ‘부정하고 가증한 것’이었던 것이다.
하나님이 부정하다고 선언하신 그 자체에 대한 정결의 방법 등에 대해
성경이 침묵하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가 주목해야 할 사항인 것이다.
성경에 부정하고 가증하다고 구분해 놓은 동물들을 정한 동물로 만드는
것에 대한 언급이 있는가???
이것은 성경에 하나님께서 부정하다고 선언하신 ‘부정’과 ‘가증함’은
어떤 의식이나 행위를 통해 정결하게 할 수 있는 것들과 그 근원이 명백하게
다르며 다른 목적으로 시작된 법임을 쉽게 알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이 불러내어 당신의 소유로 삼으심 특별한 백성들이
“몸을 구별하여 거룩하게 하”(레11:44)도록 ‘먹는 것’의 목적을 위해
하나님이 노아 홍수 이전부터 그렇게 거룩하게 성별하신 것이다.
셋째, 레위기 11장 서두와 말미의 기록은 “먹는 것”이 ‘거룩’
즉 성결과 관련된 특별한 것임을 암시한다
이해를 돕기 위해 레위기 11장 서두와 말미의 말씀을 함께 비교해 보도록 한다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고하여 그들에게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육지 모든 짐승 중
너희의 먹을 만한 생물은 이러하니” (레 11:1-2)
“ 너희가 먹지 말지니 이는 가증함이니라.......
나는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몸을 구별하여 거룩하게 하고 ....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이는 .....부정하고 정한 것과 먹을 생물과 먹지 못할 생물을 분별한 것이니라” (레 11:42-47)
하나님은 레위기 11장 결론에서 이 먹는 문제를 ‘거룩’과
연결시키고 있다는 사실도 우리는 유념해야 한다.
하나님이 노아 홍수 이전부터 구별하신 부정한 것들을 먹지 않는 것이
곧 “몸을 구별하여 거룩하게 하”는 것임을 명백히 밝히고 있는 것이다.
또한 제사법과는 전혀 관계 없는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법들을 말씀하고 있는
레위기 20장에서도 결론은 “너희는 짐승의 정하고 부정함과 새의 정하고
부정함을 구별하고 내가 너희를 위하여 부정한 것으로 구별한 짐승이나
새나 땅에 기는 곤충으로 인하여 너희 몸을 더럽히지 말라
너희는 내게 거룩할지어다 이는 나 여호와가 거룩하고 내가 또 너희로 나의 소유를
삼으려고 너희를 만민 중에서 구별하였음이니라” (레 20:25-26)는 것이다.
정하고 부정한 것을 먹는 것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강조된 두가지는 다음과 같다.
(1)나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불러 내어(택하여, 구별하여) 너희를 나의 소유로 삼았다는 것
(2)너희는 내가 거룩한 것처럼 먹는 것을 구별하여 몸을 거룩하게 하라는 것
그런데 이러한 두가지 강조점은 바로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온지 불과
3개월이 되어 시내산에 막 이르렀을 때 주셨던 말씀과 일맥상통한다.
“나의 애굽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과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열국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할지니라” (출 19:4-6)
이스라엘이 오랫동안 종살이하던 애굽에서의 습관이 얼마나 무서웠는지는
우리가 출애굽기 등의 반역의 역사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제 막 출애굽 시켜 광야에 이른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미 출애굽기 16장에서
고기가 아닌 ‘만나’를 주셔서 광야 교회 생활동안의 양식을 주신 하나님께서
그로부터 꼭 보름만에 시내산에 나타나셔서 하신 첫 마디가 바로 “너희는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와 똑같은 말씀이 두 번째로 21개월만에 완성된 성막에서 모세에게
바로 ‘먹는 것’과 관련되어 반복하여 말씀하신 것은 의미심장한 것이다.
하나님은 애굽에서 나온 당신의 백성들이 특별히 구별되고 성별된 백성으로
이미 노아 홍수 이전부터 구별하여 놓으신 ‘정결한 것’만을 먹도록 주지시킨 것은
참으로 하나님이 당신의 백성들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가늠해 볼 수 있는 것이다.
어떤 이들이 불평식으로 말하는 ‘먹는 것에까지의 참견’이 아니라,
‘먹는 것에까지 관심’을 주신 것이다.
아무것이나 먹고 마신다는 것은 세상 사람들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어떤 이들은 ‘먹는 것’이 사람을 변화 시킬 수 있느냐고 강변한다
아무리 골라 먹어도 성질 머리는 똑같다는 것이다.
과연 그런가?
먹고 마시는 것이 사람의 건강은 물론 성격과 인품까지 바뀌게 한다는 것은
우리가 구태여 성경을 들이밀지 않아도 요즘의 과학이 증명하고 있다.
매주 마다 방영되는 생로병사만 보더라도 먹는 것이 몸과 정신에 얼마나
큰 악영향을 키치고 있는지가 전문가들의 연구를 통해 속속 밝혀지고 있다.
물론, ‘먹는 것’ 자체가 우리를 거룩하게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안식일을 지키면 그 안식일 자체가 우리를 거룩하게 해 주는 것이 아닌 것과 같은 이치이다.
“내가 너희를 거룩하게하는 여호와인줄을 알게 하려 하여 안식일을 주었노라”는
말씀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안식일이라는 날자 자체가 거룩함을 보장하는 것이아니고
그 안식일을 지키라고 명하신 말씀에 순종할 때 안식일의 주인이신
하나님이 우리를 성화시키고 거룩하게 해 주는 것처럼,
우리가 하나님이 그 자체를 부정하다고 구분하신 ‘먹지 못할 것’들을 먹지 않고
순종할 때 그 말씀을 주신 하나님이 우리 몸을 거룩하게 해 주시는 것이다.
하나님이 죄에서 구별되어 거룩하신 것처럼 하나님을 믿는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세상에서 구별된 백성임을 ‘먹는 것을 통해서도’ 나타내는 것이다.
레위기 11장의 ‘정한 것과 부정한 것’의 말씀을 모세가 다시 반복한 신명기 14장의 서두에서도
앞서 예를 든 출애굽기 19장 서두와 레위기 11장 말미의
말씀과 유사한 말씀이 다시 반복되고 있다.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성민이라 여호와께서 지상 만민 중에서
너를 택하여 자기의 기업의 백성을 삼으셨느니라
너는 가증한 물건은 무엇이든지 먹지 말라” (신 14:2-3)
세상 만민 중에서 택한 바 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먹는 것’에 대해
분명하고도 확실한 선택을 말씀하시면서 거룩을 강조하신 것은
신약에 와서도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는 진리이다.
오늘 우리는 선택된 특별한 사람들이다.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벧전 2:9-10)
이러한 우리들에게 하나님의 요구는 무엇인가?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살전 4:3)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심은 부정케 하심이 아니요 거룩케 하심이니”(살전 4:7)
어떤 거룩인가?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살전 5:23)
“온 영과 혼과 몸”의 거룩이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 12:1)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고전 10:31)
정리를 하면 다음과 같다레위기서에는,
1.제칠일 안식일에 대한 말씀도 나온다(레19:3등)
2.실입조에 대한 권면도 나온다(레27:30등)
3.부모 공경에 대한 말씀도 있다(레19:3)
4.일반적인 도덕적 범죄들에 대해서도 언급했다(다수)
5.하나님의 백성들이 구별하여 몸을 거룩하게 할 건강법도 나온다(레11장, 20:25,26)
6.초림하실 예수님을 가리키는 여러갖가지 의식적인 법들도 나온다(전반에 걸쳐)
이것들에서 예수님을 가리키고 지적하는 모형과 그림자적인 의식법들과 제사법 등은
예수님의 십자가로 온전케 되어 사라졌지만,
모세를 통해 주신 모세의 법 이전부터 존재해 왔던 제칠일 안식일(창2:1~3; 출16장),
십일조 제도(창14:20),부모 공경(출20:12),
일반적인 도덕법(창세기부터 전반에 걸쳐 언급된)
성결의 법인 부정과 정한 것의 구분(창7장,8장) 등은
모세의 법과는 전혀 관계 없는 것들로 창세 이후부터
오늘까지 여전히 유효한 것들인 것이며 결코 폐하거나 없어지지 않는 법들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