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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속현어(羊續懸魚)
양속이라는 관리가 물고기를 뜰에 매달다는 뜻으로, 청렴결백을 의미한다.
羊 : 양 양(羊/0)
續 : 이을 속(糹/15)
懸 : 달아맬 현(心/16)
魚 : 고기 어(魚/0)
출전 : 몽구(蒙求) 68 양속현어(羊續懸魚)
몽구(蒙求)는 중국 당말 이한(李澣)이 지은 세 권으로 된 아동용의 교재이다.
주요 내용은 경사(經史)에서 발췌한 역사적 사실이었으나 역사 자체에 대한 관심보다는 이를 통해 윤리도덕, 충군애국 등의 심성을 기르려 하는 것이었다.
구성 방식은 네 글자를 한 구절로 하고 비슷한 사례 두 구를 합쳐 여덟 자 한 문장으로 하여 운을 붙여 놓은 것으로 아동들이 외기 쉽게 되어 있다.
이러한 문장 구성방식은 당시 아동용 교재의 일반적 방식이었으며, 이후에도 답습되었다. 같은 방식으로 구성된 천자문과 함께 대표적인 아동용 교재로서 근대 이전까지 애독되었고,
이를 본뜬 것들이 후대에도 계속 나왔으니 십칠사몽구(十七史蒙求), 양한몽구(兩漢蒙求), 명물몽구(名物蒙求) 등이 대표적이다.
과거시험의 작문에는 역사적인 사례의 인용이 필수적이었으므로 몽구류의 교재를 송습하는 것은 과거공부의 초보단계로서도 반드시 필요하였다.
이 성어는 양속(羊續)이라는 후한(後漢) 말 관리의 일화에서 연유한다.
후한(後漢) 때 양속(羊續)의 자는 흥조(興祖)이며, 태산 평양(平陽) 출신이다.
後漢羊續字興祖, 太山平陽人.
그가 남양태수(南陽太守)로 부임하여 정책을 널리 반포하면서 백성들의 이해득실을 두루 살피면서 정사를 잘 살폈다.
爲南陽太守, 班宣政令, 候民病利.
그리하여 백성들은 탄복했고, 그는 항상 낡은 옷과 거친 음식을 먹었으며, 말과 수레는 야위고 낡았었다.
百姓歎服, 常敝衣薄食車馬羸敗.
남양부의 관리가 반찬으로 맛보시라며 살아 있는 생선을 바치면, 양속은 그 물고기를 받아서 관사 뜰에 걸어놓고(續受而懸之於庭), 뒤에 또 바치면 양속은 먼저 걸어 놓은 물고기를 떼어 줌으로써 뇌물 바치는 뜻을 막았다.
府丞嘗獻其生魚, 續受而懸之於庭, 後又進之, 續乃出前所懸者, 以杜其意.
황제 영제(靈帝)가 그를 태위(太尉; 삼공의 일인)로 삼으려고 했다.
靈帝欲以爲太尉.
그 당시에는 삼공(三公) 지위에 임명되는 자는 모두 동원(東園)에 예전(禮錢)으로 천 만량을 바치도록 되어 있었다.
時拜三公者, 皆輸東園禮錢千萬.
즉 임명하기 전에 중사(中使; 환관)로 하여금 예전을 독촉하게 했는데 이것을 이름 하여 좌추(左騶)라고 했고, 중사가 오면 맞아서 예로 공경하고 후하게 뇌물을 주어야 했다.
令中使督之, 名爲左騶, 其所之往輒迎致禮敬, 厚加贈賂.
양속은 이 중사(使者)를 낡은 거적자리에 앉히고 솜을 둔 도포를 들어 보이면서 말하기를, "신의 재물은 오직 이것뿐입니다"고 했다. 이런 까닭에 양속은 삼공(三公) 지위에 오르지를 못했다.
續乃坐使於單席, 擧縕袍示之曰: 臣所資唯斯而已. 以此故不登公位.
(羊續懸魚)
◼ 양속(羊續, 142~189)
후한 말의 인물. 자는 흥조(興祖).
태산군 평양현 사람으로 7대조까지 2천석의 구경과 교위를 지냈고 조부인 양침은 안제 때 사례교위를 지냈으며, 아버지 양유는 환제 때 태상을 지냈다.
충신의 자손이라는 이유로 낭중에 임명되었고 물러났다가 대장군 두무에게 벽소되었고, 168년에 제2차 당고의 금으로 두무가 죽으면서 이 사건에 연루되어 금고형으로 십여 년 동안 은거하고 침묵을 지켰다.
금고형이 풀리자 태위부의 부름을 받았고 네 번을 옮겨 여강태수가 되었으며, 후에 양주의 황건적이 여강군의 서현을 공격하고 성곽을 불태우자 양속은 현 내의 20살 이상인 남자를 징발하고 전원에게 어린이들에게는 물을 운반해 불을 끄게 했다. 양속이 수만 명을 모아 군을 이끌고 황건적을 격파하자 군 일대는 평화를 되찾았다.
그 후에 안풍의 도적인 대풍(戴風) 등이 반란을 일으키자 양속은 이를 격파해 3천여 급의 목을 베고 대풍을 붙잡았으며, 도적 무리들은 용서하고 평민으로 돌아가 농기구를 주어 농업에 종사하게 했다.
186년에 강하의 군졸인 조자가 반란을 일으켜 남양태수 진힐을 죽이고 여섯 현을 함락시키자 조정에서는 양속을 남양태수에 임명했으며, 양속이 군 경계에 들어갈 때 낡은 옷을 입고 샛길에서 군에 속하는 동자 한 명을 거느리고 현, 읍을 둘러보고 소문을 알아본 후에 군으로 들어갔다.
양속은 현령, 현장 중에서 탐욕스러운 자, 청렴한 자, 관리, 민중에서 선량한 자, 교활한 사람들의 실정을 미리 알고 있어서 군 내의 사람들은 크게 놀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으며, 양속은 즉시 병사를 출동시켜 형주자사 왕민과 함께 조자를 공격해 참수했고 5천여 급의 목을 얻었다.
남양의 여러 현에 있던 나머지 도적들은 양속에게 투항했으며, 양속은 도적의 편에 붙어있던 사람들을 용서하는 상주를 했고 도적은 모두 평정되었다. 양속은 정치에 대한 명령을 포고하고 백성의 이로운 점과 해로운 점을 조사한 것에 대해 사람들은 기뻐했다.
힘있는 호족의 집은 사치와 화려함을 중시하는 사람이 많아 양속은 마음이 아팠으며, 양속 자신은 항상 찣어진 옷을 입고 초라한 식사를 하면서 누더기가 있는 마차를 타고 다녔다.
과거에 부에 있던 승이 생선을 바친 적이 있어서 양속은 이를 뜰에 있는 나무에 매달았는데, 후에 승이 생선을 권하자 나무에 매달아 놓은 생선을 주면서 그 제의를 거절했다.
후에 양속의 아내와 아들인 양비가 군의 관청에 찾아오자 양속은 문을 닫고 안에 들이지 않았으며, 아내는 양비를 데리고 가서 양속의 곳간을 열어 내용물을 꺼내게 했지만 허술한 이불과 찣어진 옷, 소금, 보리 몇 섬만이 있었을 뿐이었다.
양속은 돌아서서 양비에게 자신이 가진 것은 이런 것 뿐이라면서 어머니에게 무엇을 주겠냐고 묻자 양비는 어머니와 함께 돌아갔다.
189년에 영제가 양속을 태위에 임명하려 했고 당시 삼공에 임명된 자는 소부에 속한 관청인 동원에 천만 전을 바쳐야 했는데, 이를 좌추(左騶)라 했고 궁중의 사신이 오면 맞이해 예로 공경하고 후하게 뇌물을 줬다.
양속은 궁중의 사신을 낡은 거적떼기에 앉혀놓고 솜을 둔 도포를 들어보이면서 신의 재물은 오직 이것 뿐이라 했으며, 이로 인해 양속은 공의 지위에 오를 수 없었다. 대신 부름을 받고 태상에 임명되었지만 출발하기 전에 양속은 48세에 병으로 사망했다.
장례식은 간소하게 하고 부조금을 받지 않도록 유언을 남겼으며, 옛 제도는 2천 석(태수)의 관리가 죽었을 때 관의 조의금은 백만전이었지만 부의 승은 양속의 유지를 받들어 한 푼도 받지 않았다. 황제는 조서로 이를 칭찬해 태산태수에 임명하고 군과 부의 돈을 양속의 집에 하사했다.
⏹ 청렴(淸廉)
반듯한 건축물은 우람하고 멋지다. 그래서 사람의 성정(性情)을 그에 빗대 표현하는 경우가 흔하다. 그 대표적인 단어 중 하나가 청렴(淸廉)이다.
앞 글자 청(淸)은 '맑은 물'을 표현한다. 다음 글자 렴(廉)이 집을 지을 때 건물의 가장자리인 '변(邊)'을 가리키는 명사다.
번듯한 건물의 가장자리는 곧아야 한다. 직선으로 옳게 뻗어 있어야 다른 요소들이 엉키지 않는다. 조금이라도 휘어지면 건물 전체가 일그러진다. 따라서 건물의 정각(正角)을 잡아주는 '기준'이라고 생각해도 좋다.
'맑은 물'을 가리키는 淸(청)과 廉(렴)이 합쳐지면 뜻은 더 청아해진다. 깨끗하고 맑으며 반듯하고 곧다는 뜻이다.
그 변이 모아지는 구석이나 모퉁이를 한자로는 隅(우)라고 적는다. 이 隅(우) 또한 곧아야 한다. 그래서 생겨난 단어가 廉隅(염우)다. 올바른 행실, 깨끗한 몸가짐을 가리킨다.
세분하는 경우도 있다. 높은 공직에 오른 사람이 곧고 바름을 유지하면 廉(렴), 남의 재물을 엿보거나 받는다면 貪(탐)이다. 청렴한 관리는 염관(廉官) 또는 염리(廉吏)다.
그런 성정으로 공직에 올라 주변을 샅샅이 살펴 혼탁함에 물들지 않는 경우를 성어로는 청렴명찰(淸廉明察), 단어로는 염명(廉明)이라 적는다.
고도의 자기 절제가 따라야 생기는 덕목이다. 탐심에 욕심, 사리사욕(私利私慾)이 곁들여지면 결코 나올 수 없는 덕이다. 특히 많은 사람의 공익을 관리해야 하는 공직자에게 필요한 품성이다.
양속이라는 동한(東漢) 때 관리가 다른 사람이 선물로 들고 왔던 생선을 건드리지도 않은 채 마루 앞에 걸어뒀단다. 그렇게 생선을 오래 놔두고 있다가 다른 사람이 또 선물을 들고 오면 그를 말없이 보여주며 돌려보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양속현어(羊續懸魚) 또는 현어(懸魚)라는 성어다.
◼ 양수청풍(兩袖淸風)의 주인공, 우겸(于謙)의 교훈
뇌물이 관행으로 자리를 잡아 성행했던 명(明)나라 조정에서도 깨끗함을 유지한 사람 하나가 있다.
지방 벼슬아치였던 그가 수도를 잠시 방문하자 높은 사람에게 인사를 해야 한다는 친구의 권고를 받았다. 그러자 그는 "상관에게 바칠 뇌물은 없고 두 소매에는 깨끗한 바람 뿐이라"고 했다.
우겸(于謙)이라는 인물 이야기다. 그 스토리는 지금까지 '두 소매에는 깨끗한 바람 뿐이라'는 뜻의 양수청풍(兩袖淸風)이라는 성어로 남았다.
옛 복장에서 폭이 넓었던 소매는 높인 이에게 바치는 뇌물을 넣고 다니는 용도로 쓰이기도 했던 것이다. 이 모두는 청렴한 관리를 뜻하는 말들이다.
맹자(孟子)는 그런 대목에서 항상 멋진 충고를 던진다.
可以取, 可以無取, 取傷廉.
가져도 좋고, 가지지 않아도 좋을 때, 가진다면 청렴함을 떨어뜨린다.
可以與, 可以無與, 與傷惠.
줘도 좋고, 주지 않아도 좋을 때, 준다면 은혜의 깊이가 떨어진다.
可以死, 可以無死, 死傷勇.
죽어도 좋고, 죽지 않아도 좋을 때, 죽는다면 용기의 진정성을 손상한다.
여운이 남는 말이다. 그 담긴 뜻은 곰곰이 살필 필요가 충분하다. 청렴함의 덕목이야 사실은 특정한 영역을 가릴 수 없다. 우리가 살아 숨을 쉬며, 어쩔 수 없이 공적(公的)인 관계를 맺고서 살아야 하는 사회 모든 분야에서 다 필요한 덕목이다.
◼ 청렴의 덕목이 필요한 이유
그렇다면 맹자의 충고를 가끔씩이라도 떠올리면 좋겠다. 꼭 가져도 좋지 않을 것이라면 가져야 한다는 마음을 접자. 청렴함을 해치는 일일 수 있기 때문이다.
욕심을 줄이면 마음이 가벼워진다. 그러면 행동은 떳떳해지는 법이다. 더구나 그 욕심이 제 몫이 아니라는 점을 일찍 알아챈다면 탐내는 마음은 크게 줄어들 수 있다.
건축물에 들어 있는 반듯한 선은 그래서 옛 사람들에게 눈에 띄었던가 보다. 곧게 뻗어 흔들림이 없는 바른 직선(直線)을 보며 청렴(淸廉)의 단어를 조합했던 옛 사람들의 지혜가 돋보인다.
그렇게 바르고 곧은 직선을 만나면 늘 내 마음도 한 번 그에 견주자. 내 자세는 비뚤어지지 않았나, 마음은 곧게 제 자리를 향해 뻗어가고 있는가 등을 새기면서 말이다.
국회 청문회만 열리면 드러나는 고관과 대작들의 부정(不正)과 비위(非違), 청렴과는 거리가 먼 고위 공직자들의 여러 모습을 보면서 오늘도 떠올려 본 맑고 곧음이다.
⏹ 염리(廉吏)와 삼염(三廉)
廉(렴)이란 '청렴, 검소, 곧고 바름'이라는 의미를 가진 한자(漢字)이다. 염검(廉儉), 염우(廉隅), 염치(廉恥)는 곧고 올바른 행실, 절조(節操)있고 검소한 행동거지로서 염리(廉吏)의 행동준칙이었다.
옛날부터 염리(廉吏)는 '청렴하고 정의를 지키는 관리(淸廉守正的 官吏)'라는 뜻으로, 중국의 한(漢)나라 문제(文帝) 12년(서기전 168년)에 "염리는 백성의 표상(表象)이다"고 하면서 포상을 하였다.
중국 동한(東漢) 때 양속(羊續)이라는 관리가 누군가 선물로 들고 온 생선을 건드리지도 않은 채 마루 앞에 걸어두고서 다른 사람이 또 선물을 들고 오면 그것을 말없이 보여줬다는 양속현어(羊續懸魚)라는 성어,
뇌물이 성행했던 명(明)나라 조정에서 '상관에게 바칠 뇌물은 없고 두 소매에는 깨끗한 바람 뿐이라'고 했던 우겸(于謙)의 양수청풍(兩袖淸風)이라는 고사성어가 바로 염리의 행동거지였다.
다산 정약용은 '목민심서'에서 청렴한 것은 수령의 본무요, 모든 선의 근원이며 덕의 바탕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염(廉)에 관한 글은 다산 정약용이 영암군수 이종영에게 보낸 글이 압권이다.
이종영은 정약용의 친구 이재의의 아들인데 1812년에 영암군수로 발령을 받아 근무하였고 1816년에 평안도 함종부사로 영전하였다.
그러면 정약용이 영암군수 이종영에게 보낸 편지 글을 읽어보자.
옛날에 소현(중국 절강성에 있는 현)의 현령이 부구옹(한나라 초 재상)에게 고을 다스리는 방법을 물으니, 부구옹이 이르기를, "나에게 6글자의 비결이 있는데, 그대는 3일 동안 목욕 재개를 하여야 들을 수 있을 것이다"고 하였다.
현령이 그 말과 같이 하고서 청하니, 옹이 먼저 한 글자를 주었는데 '염(廉)'자였다. 현령이 일어나 두 번 절하고 얼마 있다가 다시 한 글자를 주기를 청하니, 옹이 또 한 글자를 주었는데 '염(廉)'자였다.
현령이 두 번 절하고 말하기를 다시 가르쳐 주기를 청하니 옹이 마지막으로 한 글자를 가르쳐 주었는데 역시 '염(廉)'자였다.
현령이 다시 두 번 절하고 "염(廉)이 이렇게 중요합니까?"고 말하니, 옹이 말하기를, "자네는 그 중 한 글자는 재물에 실행하고, 또 한 글자는 여색(女色)에 실행하고, 또 한 글자는 직위에 실천하라"고 하였다.
현령이 말하기를, "여섯 글자를 모두 받을 수 있겠습니까?"고 하니, 옹이 말하기를, "또 목욕재개를 3일 동안 하여야 들을 수 있다"고 했다.
현령이 그 말에 따라 하니, 옹이 말하기를, "그대는 듣고자 하는가. 염(廉), 염(廉), 염(廉)이다"고 했다.
현령이 말하기를, "이와 같이 중요합니까?"고 하니, 옹이 말하기를, "앉으라, 내가 그대에게 말하리라. 청렴함은 밝음을 낳나니(廉生明) 사람이 그 마음을 숨기지 못 할 것이요, 청렴함은 위엄을 낳나니(廉生威) 백성들이 모두 명령을 따르지 않을 수 없을 것이요, 청렴함은 곧 강직하게 되니(廉則剛) 상관이 감히 가벼이 보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데 능히 다스리지 못할 것인가"고 하였다.
현령이 일어나 두 번 절하고 허리띠에 써서 떠났다.
정약용은 목민관의 도(道)는 첫째 청(淸)이요, 둘째는 신(愼)이요, 셋째는 근(勤)이라 하였다. 청(淸)은 청렴이요, 신(愼)은 삼가는 것이며, 근(勤)은 부지런하게 백성을 살피는 것이다. 그 중에도 청렴이 가장 지켜야 할 윤리강령이다.
지금 대한민국은 총체적으로 부패와 비리의 온상이 되었다. 모든 분야에서 온통 썩고 있다.
대한민국의 공직자들이여! "청렴함은 밝음을 낳고(廉生明), 청렴함은 위엄을 낳고(廉生威), 청렴함은 곧 강직하게(廉則剛)된다"는 다산 정약용의 말을 단 한번이라도 새겨 들을지어다.
⏹ 청렴결백으로 첫손꼽는 조선 제일의 명재상 - 황희 정승
◼ 황희 정승이란 누구일까?
조선왕조 500여 년에 걸쳐 가장 어질고 슬기로운 재상으로 손꼽히는 황희 정승은 고려말 개성에서 태어나 어린 나이에 과거에 급제한 고려의 신하였다.
1392년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개국하자 황희는 벼슬을 버리고 고려의 충신 임선미 등 71명과 함께 고려 태조 왕건의 묘가 있는 개성 송악산 두문동에 은거했다.
그런데 황희는 왜 지조를 버리고 조선왕조의 신하가 되었을까?
황희도 처음에는 두운동에 들어가 일생을 마칠 뜻을 두었다. 태조도 밝고 조행이 단정한 선비를 선발할 때 그를 여러 번 올렸으나 응하지 않다가 두운동 제현들이 "황희가 나가지 않으면 백성이 어떻게 되겠느냐?"고 권했다고 한다.
세종은 나라를 다스리던 후반에 들어서는 한글을 창제하는 등 문화 창달에 전념하고 거의 모든 정사를 영의정 황희에게 맡겼다.
그러므로 조정 신료와 백성은 영의정 황희에게 나라의 대소사를 모두 의뢰하였으며, 세월이 흐를수록 그의 일관된 바른 정치와 탁월한 능력, 그리고 국량이 큰 인품이 더욱 돋보였다.
◼ 우리 역사상 가장 태평성대했던 시기는 언제였을까?
역사학자를 비롯한 많은 사람이 조선 전기, 세종이 다스리던 시기를 꼽는데 주저함이 없다. 세종 시기는 왕권과 신하의 권력이 조화를 이루며 토지제도, 지방 수령제도, 군사체계 등 백성들이 평화롭게 살 수 있는 각종 제도가 정비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태평성대는 성군 세종대왕과 명재상 황희 정승이 힘을 합쳐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후대 사람이 세종을 세종대왕으로, 황희를 황희 정승으로 높여 부르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이다.
황희 정승이 청렴하게 살아온 일화에 대해서 살펴보자.
○ 정승몰래 쌓는 담
황희가 정승이 되었는데도 다 쓰러져 가는 초가집에서 담장도 없이 살아 마당이 더럽다는 얘기를 들은 세종은 황희를 위해서 비밀리에 공조판서를 불러들여 황희의 집 주변에 몰래 담장을 쌓으라고 지시하였다.
그래서 공조판서는 건축업자 여러명을 모아 비가오는 밤 시간을 맞추어 황희의 집으로 갔다. 그리고는 서둘러 집 둘레에 담장을 쌓기 시작했는데 어찌어찌 하다가 갑자기 저쪽의 담장이 무너지면서 황희가 방문을 열어 이들의 행실이 밝혀지게 되었다.
그래서 공조판서는 황희에게 불려갔는데 공조판서가 원래는 이러이러해서 이렇게 됬다고 말하자 황희는 비록 자신의 정승이지만 아직 백성들은 가난하게 담장이 없이 사는 사람들이 많다며 담장을 쌓으라고 했던 세종의 명을 거두어 달라고 주청하였다.
그러자 세종과 주변의 신하들은 황희의 청렴함을 확실히 알고 감동하며 울기도 하였다.
○ 혼수 준비없는 딸이 시집 가는 날
황희는 너무 청렴하게 살다보니 자신의 딸이 시집을 가는데도 혼수품을 살 돈 조차 없을 지경이었다.
그래서 이 소식을 들은 세종은 황희의 청렴함이 크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므로 신하들과 상의하여 황희의 딸이 시집을 갈 때 혼수품을 살 돈은 물론 그 규모도 공주나 옹주 못지 않게 성대하게 열어주었다.
이를 본 백성들은 황희는 하늘이 내려주신 인물이라며 더욱더 존경하고 따랐다.
◼ 청렴결백(淸廉潔白)
미국의 16대 대통령이었던 링컨이 대통령으로 당선되기 전에 이런 일이 있었다고 한다.
주 의회 의원에 출마한 링컨에게 소속 당으로부터 선거 운동비로 쓰라고 200불을 보내왔다. 그리 큰돈은 아니었지만 지극히 가난했던 링컨에게는 큰돈이었다.
그 후 선거는 끝났고 링컨은 주 의회 의원으로 당선이 되었다. 그런데 링컨은 그가 받았던 200불의 선거 운동비 중에서 199불 25센트를 당본부로 되돌려 보냈다.
당 본부에서는 놀랐다. 그러나 돈과 함께 온 링컨의 편지 내용 앞에서 모두들 숙연해졌다는 것이다.
그 편지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선거 연설 회장 비용은 내가 갚았고 또 여러 유세장을 돌아다니는 데는 말을 탔기 때문에 비용이 들지 않았소. 다만 유지 가운데 한 사람이 목이 마르다는 분이 있어서 사이다를 한잔 사준 것이 75센트 들었어. 그 다음은 아무 비용도 들지 않고 무난히 당선되었소."
소크라테스가 죽기 전에 그의 제자인 플라톤에게 한말이 기억난다. "나는 이제 죽음을 향하여 아무런 거리낌이 없다. 그러나 에스크래피아스에게 닭 한 마리를 빌리고 갚지 못하였구나. 빚을 남기고 가니 부디 잊지 말고 갚아주기 바란다."
깨끗한 가치관과 사회 풍토가 조성되어야 한다. 뒤를 파보아도 떳떳하고 옆을 파보아도 깨끗한, 그래서 링컨처럼 75센트의 명세서를 내놓을 수 있어야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받게 되는 것이다.
▶️ 羊(양 양)은 ❶상형문자로 양의 머리를 본뜬 글자이다. 양의 머리 모양을 도형화한 것이며 牛(우; 소)자와 비슷하다. 아주 옛날에 양은 신에게 바치는 희생의 짐승 중에서도 특히 존중된 것이었다. ❷상형문자로 羊자는 ‘양’이나 ‘상서롭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羊자는 양의 머리를 정면에서 바라본 모습을 그린 것으로 구부러진 뿔이 특징되어 있다. 양과 소는 인간이 가축으로 기른 가장 최초의 동물이었다. 특히 양은 뛰어난 고기 맛과 유용한 털로 인해 상서로운 짐승으로 인식되어 제사에 쓰이는 희생양이 되기도 했다. 그래서 고대의 권력자들은 양의 뿔을 상서로움이나 권력의 상징으로 삼았다. 羊자가 부수로 쓰이는 글자들이 ‘양’이나 ‘양고기’, ‘상서로움’, ‘권력’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주의해야 할 것은 羊자가 다른 글자와 결합할 때는 하단의 획이 생략된 형태로 결합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羊(양)은 (1)면양(綿羊) (2)의지(依支)가 없이 약하다는 뜻에서 신자(信者)를 비유하는 말 (3)성질(性質)이 퍽 온순(溫純)한 사람의 비유 (4)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양(羊: 솟과의 동물) ②상서(祥瑞)롭다 ③배회(徘徊)하다 ④바라보다 ⑤자세하다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양의 털을 양모(羊毛), 양의 젖을 양유(羊乳), 양의 가죽을 양피(羊皮), 양털로 촉을 만든 붓을 양호(羊毫), 양의 무리를 양군(羊群), 양고기를 양육(羊肉), 양 뿔을 양각(羊角), 양가죽으로 만든 옷을 양구(羊裘), 양의 머리를 양두(羊頭), 양을 가두어 기르는 우리를 양사(羊舍), 털빛이 흰 양을 백양(白羊), 털빛이 검은 양을 흑양(黑羊), 소와 양을 우양(牛羊), 개와 양을 견양(犬羊), 양을 기름을 목양(牧羊), 양의 수컷을 저양(羝羊), 양의 암컷을 빈양(牝羊), 우리 안에 갇힌 양이란 뜻으로 자유롭지 못함을 함양(檻羊), 양 머리를 걸어놓고 개고기를 판다는 뜻으로 겉은 훌륭해 보이나 속은 그렇지 못한 것을 양두구육(羊頭狗肉), 양의 창자처럼 구불구불 휘고 좁은 길이라는 뜻으로 대학 입시나 입사 시험 등의 합격의 어려움을 양장소경(羊腸小徑), 속은 양이고 거죽은 호랑이라는 뜻으로 거죽은 훌륭하나 실속이 없음을 양질호피(羊質虎皮), 양을 잃고서 그 우리를 고친다는 뜻으로 실패한 후에 일을 대비함을 망양보뢰(亡羊補牢), 달아난 양을 찾다가 여러 갈래 길에 이르러 길을 잃었다는 뜻으로 학문의 길이 여러 갈래로 나뉘어져 있어 진리를 찾기 어려움을 다기망양(多岐亡羊) 등에 쓰인다.
▶️ 續(이을 속)은 ❶형성문자로 続(속)의 본자(本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실사(糸; 실타래)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글자 賣(매, 속)이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賣(매)는 팔고 돌아다니는 일로, 또 育(육; 자라다), 屬(속; 붙다, 잇달다)과도 통용(通用)되어 씌어졌다. 이 말들은 계속한다는 뜻이 공통되어 있다. 실사(糸; 실타래)部는 실, 실이 계속하다의 뜻이 있는데, 전(轉)하여 물건이 이어짐을 일컫는다. ❷회의문자로 續자는 ‘잇다’나 ‘계속하다’, ‘이어지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續자는 糸(가는 실 사)자와 賣(팔 매)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續자는 무언가가 지속하고 있다는 것을 뜻하기 위해 만든 글자다. 그래서 물건을 ‘팔다’라는 뜻을 가진 賣자를 응용해 무언가가 지속해서 이어지고 있음을 뜻하고 있다. 내가 물건을 팔기 위해서는 먼저 남의 물건을 사들여야 한다. 그러니 續자는 물건을 사고파는 것이 끊임없이 되풀이되듯이 실이 끊이지 않고 계속 이어지고 있다는 뜻을 전달하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續(속)은 뒤를 이음의 뜻으로 ①잇다 ②잇닿다(서로 이어져 맞닿다) ③계속하다 ④이어지다 ⑤보태다 ⑥더하다 ⑦계승(繼承)하다 ⑧계속(繼續)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이을 사(嗣), 이을 접(接), 잇닿을 련(連), 이을 승(承), 이을 소(紹), 이을 락(絡), 이을 계(繼), 이을 찬(纘),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끊을 단(斷)이다. 용례로는 뒤를 이어 계속됨을 속속(續續), 일단 멈추었던 회의를 다시 엶을 속개(續開), 잇달아 나옴을 속출(續出), 계속하여 행함을 속행(續行), 이미 편찬이나 발간된 책에 잇대어 편찬 또는 발간한 책을 속편(續編), 원래 있던 서책에 잇대서 수집한 문집이나 시집을 속집(續集), 휴간이나 정간했던 신문이나 잡지 등을 다시 계속하여 냄을 속간(續刊), 잇대어 기록함 또는 그 기록을 속록(續錄), 옷의 두 폭을 맞대고 이어 붙여 꿰맴 또는 그렇게 지은 옷을 속임(續袵), 끊어지지 않고 뒤를 이어 나감을 계속(繼續), 같은 상태가 오래 계속됨을 지속(持續), 끊이지 않고 죽 이음을 연속(連續), 서로 맞대어 이음을 접속(接續), 뒤를 이어 계속됨을 후속(後續), 뒤를 이음을 상속(相續), 계속하여 존재함을 존속(存續), 끊어졌다 이어졌다 함을 단속(斷續), 일을 하는데 필요한 사무 상의 일정한 절차를 수속(手續), 근무를 한 곳에서 오래 계속함을 근속(勤續), 영구하게 계속함을 영속(永續), 음정의 높이를 바꾸어 같은 꼴의 가락으로 되풀이 되는 것을 모속(模續), 담비 꼬리가 모자라 개 꼬리로 잇는다는 뜻으로 좋은 것 다음에 나쁜 것을 잇는 것으로 쓸 만한 인격자가 없어 자질이 부족한 사람을 고관에 등용함을 이르는 말을 구미속초(狗尾續貂), 쓸 만한 인격자가 없어 그만 못한 사람을 등용함을 조롱하는 말을 속초지기(續貂之譏), 대를 이을 희망을 이르는 말을 사속지망(嗣續之望), 죽 이어져서 끊어지지 아니함을 이르는 말을 연속부절(連續不絶), 적자된 자 즉 장남은 뒤를 계승하여 대를 잇는다는 말을 적후사속(嫡後嗣續) 등에 쓰인다.
▶️ 懸(매달 현)은 ❶형성문자로 县(현)의 본자(本字), 悬(현)은 통자(通字), 悬(현)은 간자(簡字), 縣(현)은 고자(古字)이다. 心(심; 마음)과 음(音)을 나타내며 동시에 걸다의 뜻을 가지는 縣(현)으로 이루어졌다. 마음에 걸리다의 뜻으로 본디 縣(현)과 똑같이 쓰이다가 나중에 縣(현)이 군(郡)이나 현(縣)의 뜻으로 사용되자 오로지 걸다의 뜻만 나타나게 되었다. ❷회의문자로 懸자는 ‘매달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懸자는 縣(고을 현)자와 心(마음 심)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縣자는 나무에 머리를 매달은 모습을 그린 것이다. 금문 나온 縣자를 보면 나무에 눈이 매달린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이것은 사람의 머리가 나무에 매달려 있다는 뜻을 표현한 것이다. 그래서 금문과 소전에서는 縣자가 ‘매달다’라는 뜻으로 쓰였었다. 그러나 후에 縣자가 ‘고을’이라는 뜻으로 가차(假借)되면서 해서에서는 여기에 心자를 더한 懸자가 ‘매달다’라는 뜻을 대신하게 되었다. 그래서 懸(현)은 ①달다, 매달다, 달아매다 ②매달리다, 늘어지다 ③(상을)걸다 ④현격하다 ⑤멀다 ⑥멀리 떨어지다, 동떨어지다 ⑦헛되다 ⑧빚 ⑨헛되이 ⑩멀리,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해결이 안 되어 걸려 있는 안건을 현안(懸案), 어떤 목적을 위하여 상금을 걸고 찾거나 모집함을 현상(懸賞), 글자나 그림을 새기어서 문 위에 다는 널조각을 현판(懸板), 사물의 차이가 뚜렷하거나 두드러진 상태를 현격(懸隔), 한문에 토를 다는 일을 현토(懸吐), 죄인을 죽여 높이 걸어 놓은 머리를 현수(懸首), 장부 따위 문서에 적혀 있음을 현재(懸在), 아래로 꼿꼿하게 달려 드리워짐을 현수(懸垂), 현상으로 내건 돈을 현금(懸金), 하늘에 있는 여러 물상으로 해와 달과 별 따위를 현상(懸象), 성벽의 군데군데에 위에서 아래로 낸 흠을 현안(懸眼), 매달아 놓은 북을 현고(懸鼓), 물이 곧장 쏟아져 내리는 높은 절벽을 현수(懸水), 죄인을 죽여 높이 걸어 놓은 머리를 현수(懸首), 물건을 얹어 놓기 위하여 널조각 따위의 밑을 받치어 놓은 것을 현반(懸盤), 아주 두드러지게 다름을 현절(懸絶), 두 쪽 언덕에 줄이나 쇠사슬을 건너질러 매달아 놓은 다리를 현교(懸橋), 마음에 두고 늘 생각함을 현념(懸念), 등을 높이 닮 또는 그 등을 현등(懸燈), 아래위로 여닫게 되어 있는 문을 현문(懸門), 보증인을 세움을 현보(懸保), 이름이 높이 드러난 조상을 현조(懸祖), 사고로 참여하지 못한 그 까닭을 적음을 현탈(懸頉), 도도히 흐르는 물과 같은 변설이라는 뜻으로 거침없고 유창한 말주변을 이르는 말을 현하지변(懸河之辯), 상투를 천장에 달아매고 송곳으로 허벅다리를 찔러서 잠을 깨운다는 뜻으로 학업에 매우 힘씀을 이르는 말을 현두자고(懸頭刺股), 적진으로 깊이 들어가서 후방의 본진과 연락도 없고 후원군도 없이 외롭게 싸운다는 말을 현군고투(懸軍孤鬪), 밝은 거울이 높이 걸려 있다는 뜻으로 사리에 밝거나 판결이 공정함을 일컫는 말을 명경고현(明鏡高懸), 섶나무 위에 앉고 쓸개를 걸어 두고 맛본다는 뜻으로 원수를 갚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함을 이르는 말을 좌신현담(坐薪懸膽), 허벅다리를 찌르고 머리털을 대들보에 묶는다는 뜻으로 분발하여 열심히 공부함을 이르는 말을 자고현량(刺股懸梁) 등에 쓰인다.
▶️ 魚(고기 어)는 ❶상형문자로 漁(어)의 고자(古字), 鱼(어)는 통자(通字)이다. 물고기 모양을 본뜬 글자로, 한자의 부수로서는 물고기에 관한 뜻을 나타낸다. ❷상형문자로 魚자는 ‘물고기’를 그린 글자이다. 魚자는 물고기를 그대로 그린 상형문자이다. 갑골문에 나온 魚자를 보면 물고기의 주둥이와 지느러미가 잘 묘사되어 있었다. 이후 해서에서 물고기의 몸통과 꼬리를 田(밭 전)자와 灬(불 화)자로 표현하게 되면서 지금의 魚자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魚자는 물고기를 그린 것이기 때문에 부수로 활용될 때는 주로 어류의 종류나 부위, 특성과 관련된 의미를 전달한다. 그래서 魚(어)는 성(姓)의 하나로 ①물고기 ②물속에 사는 동물의 통칭(通稱) ③바다 짐승의 이름 ④어대(魚袋: 관리가 차는 고기 모양의 패물) ⑤말의 이름 ⑥별의 이름 ⑦나(인칭대명사) ⑧고기잡이하다 ⑨물에 빠져 죽다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생선을 가공해서 말린 것을 어물(魚物), 물고기 잡는 그물을 어망(魚網), 물고기를 잡거나 기르는데 쓰이는 항아리 모양으로 만든 유리통을 어항(魚缸), 물고기의 알을 어란(魚卵), 물고기와 조개를 어패(魚貝), 생선 파는 시장을 어시장(魚市場), 물고기의 종류를 어종(魚種), 낚시로 고기잡이하는 데 쓰는 배를 어선(魚船), 물고기를 기름 또는 기른 물고기를 양어(養魚), 말린 물고기를 건어(乾魚), 미꾸릿과의 민물고기를 추어(鰍魚), 청어과의 바닷물고기를 청어(靑魚), 멸치과에 딸린 바닷물고기를 행어(行魚), 퉁가리과의 민물고기를 탁어(馲魚), 은어과의 물고기를 은어(銀魚), 가오리과에 딸린 바닷물고기를 홍어(洪魚), 가물치과에 딸린 민물고기를 흑어(黑魚), 학꽁치과의 바닷물고기를 침어(針魚), 멸치과의 바닷물고기를 약어(鰯魚), 동자개과에 딸린 민물고기를 종어(宗魚), 잉어과의 민물고기를 타어(鮀魚), 철갑상어과의 바닷물고기를 심어(鱘魚), 제사 상을 차릴 때에 어찬은 동쪽에 육찬은 서쪽에 놓음을 이르는 말을 어동육서(魚東肉西), 어魚자와 노魯자를 구별하지 못한다는 뜻으로 몹시 무식함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어로불변(魚魯不辨), 물고기와 물처럼 친한 사이라는 뜻으로 임금과 신하의 친밀한 사이 또는 서로 사랑하는 부부 사이를 일컫는 말을 어수지친(魚水之親), 물과 물고기의 관계와 같이 매우 친근한 사이를 일컫는 말을 어수지교(魚水之交), 고기 대가리에 귀신 상판때기라는 뜻으로 괴상 망측하게 생긴 얼굴을 형용하는 말을 어두귀면(魚頭鬼面), 고기가 솥 속에서 논다는 뜻으로 목숨이 붙어 있다 할지라도 오래 가지 못할 것을 비유하는 말을 어유부중(魚遊釜中), 잉어가 용으로 화한다는 뜻으로 과거에 급제하여 입신 양명함을 이르는 말을 어룡장화(魚龍將化), 물고기의 눈과 연산의 돌이라는 뜻으로 두 가지가 옥과 비슷하나 옥이 아닌 데서 허위를 진실로 현인을 우인으로 혼동함을 이르는 말을 어목연석(魚目燕石), 물고기는 대가리 쪽이 맛이 있고 짐승 고기는 꼬리 쪽이 맛이 있다는 말을 어두육미(魚頭肉尾), 물고기 떼나 새 때가 흩어져 달아난다는 뜻으로 크게 패망함을 형용해 이르는 말을 어궤조산(魚潰鳥散), 물고기가 변하여 용이 되었다는 뜻으로 어릴 적에는 신통하지 못하던 사람이 자란 뒤에 훌륭하게 되거나 아주 곤궁하던 사람이 부귀하게 됨을 이르는 말을 어변성룡(魚變成龍), 글자가 잘못 쓰였다는 뜻으로 여러 번 옮겨 쓰면 반드시 오자誤字가 생긴다는 말을 어시지혹(魚豕之惑), 용과 같이 위엄 있는 모양을 하고 있으나 실은 물고기라는 뜻으로 옳은 듯하나 실제는 그름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어질용문(魚質龍文)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