넬슨항의 추억 지 석 동
어선이 화재로 침몰한 뉴스를 봤다. 울부짖는 가족들을 보며 하늘이 야속하던 지난날이 떠올라 가슴이 뻐근했다.
84년 8월 16이었다. 우리는 뉴질랜드 남섬 북쪽 끝 넬슨에서 500톤급 트롤선 태백88호 중간수리를 마치고 다음날 새벽에 출항할 예정이었다.
저녁을 먹은 선원들은 근무자만 빼고 일찍 잠자리에 들고, 나와 선장과 기관장은 넬슨을 가로지르는 강가의 풍치 좋은 모텔 River Side로 갔다.
새벽에 출항하려면 일찍 일어나야 해 샤워만 하고 누웠다. 잠이 안 왔다. 왠지 배에 무슨 일이 있는 것 같아 주섬주섬 옷을 주워 입고 나섰다. 선장이 자고 같이 가자고 했지만 모텔주인더러 콜택시를 불러 달래서 타고 갔다.
잔파도가 뱃전을 핥는 소리를 들으며 택시에서 내렸다. 자정이 넘은 넬슨항은 멀리 간 배를 기다리는지 환한 수은등 아래 꾸벅꾸벅 졸고. 우리 배 갑판에서는 근무자 둘이 푸른 달빛을 이고 앉아 술을 마시고 있어
“별일 없어? 새벽에 출항하려면 고단할 텐데 그만 마시고, 근무교대 잘 해.”
“네, 이상 없으니 걱정하지 말고 주무세요.”
늘 그랬듯 출항은 불안했다. 유난히 바람 많은 바다라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뱃사람 손에서 물이 마르면 주머니도 마르니 어쩌겠는가.
부모님께 편지를 썼다. 한 달 동안 잘 놀다가 출항한다는 말 뒤에, 고기를 잘 잡았으니 결과도 좋을 것이라 써놓고, 아내한테도 따로 몇 자 썼다.
“건강하니 걱정하지 말아요. 아이들 잘 크고 당신이 집을 잘 지키고 있으니 든든하오. 동틀 때 출항하니 눈 좀 붙여야겠소. 전보 자주 할게요.”
편지를 봉하고 시계를 보니 2시가 넘었다. 부지런히 옷을 벗고 누우며 여느 날처럼 보고 싶은 아이들한테도 인사를 했다.
"정은, 정임이 잘 있지. 아빠도 잘 있어. 내일 또 만나자. 안녕!"
금방 잠든 것 같은데 우당퉁탕 뛰어나가는 소리에 놀라 나가봤다. 코가 매캐했다. 선원들이 팬티 바람에 뛰어나와 갑판에서 웅성댔다. 무슨 일이냐고 물었더니 기관사가 떨리는 목소리로 불이 났다고 했다.
“뭐야. 불이 났어? 어디서 불이 났어?”
갑판장이 참담한 얼굴로 고기 담는 박스창고에서 불이 난 것 같다고 했다.
선원들은 다 나왔어?”
그는 파악 중이라고 했다. 빨리 찾아보라 하고 하늘을 바라보며 기원했다.
'큰불은 아니죠. 45명의 일터이고 집인 것을 아시잖아요. 그런데 이게 무슨 저주입니까. 우리 형편을 다 꿰시면서 이러시면 거기 계실 자격 없어요!'
남이 위급할 때 치는 SOS만 듣다가 막상 내가 당하니 정신이 없었다. 놀란 갈매기도 걱정하는 듯 끼룩댔다.
선실 입구에서 시커먼 연기가 올라왔다. 순간 다리가 휘청댔다. 태백88호는 고기를 잘 잡아 돈이 되겠다 싶었는데 이게 무슨 불운인가? 지휘하는 사람이 없어 모두 허둥대고 우왕좌왕했다. 시간을 놓치면 배가 폭발할 수도 있어 2등 항해사한테 빨리 가서 선장을 불러오라고 보냈다. 그때가 4시 15분. 어찌 알았는지 구경꾼이 모여들었다.
항해사더러 빨리 소방서에 알리라 하고, 불을 끄기 위해 선원을 몇 팀으로 나눠서 선내로 들여보냈다. 시커먼 연기의 독성으로 목이 아팠다. 선원들이 들어간 지 얼마 안 돼서 콜록대며 뛰어나왔다. 불길이 워낙 세차 불가항력이었다. 그러나 그때까지만 해도 불자동차만 오면 금방 불을 끌 줄 알았다. 기관사와 항해사한테 불 끄러 들어간 선원들이 다 나왔느냐고 물었다. 기관사가 '신광복'이만 안 보인다고 했다. 입에 침이 마르고 가슴이 벌렁댔다.
갑판이 연기로 자욱한데 아무리 찾아봐도 그가 안 보였다. 그는 큰누이의 둘째 시누이 남편이었다. 사업에 실패하고 따라온 사람이었다. 그 순간 울부짖는 그의 가족이 떠오르고, 어쩌면 좋으냐고 발을 구르는 큰누이가 보였다. 만약 그가 불행한 일을 당했다면, 귀국해서 뭐라고 변명해야 할지 눈앞이 캄캄했다. 참으로 난감했다. 그때 시커멓게 검정을 뒤집어쓴 그가 기관실 입구에서 나왔다. 어찌나 반갑든지 뛰어가서 시커먼 손을 덥석 잡고
“아니 어떻게 된 거야. 남은 다 있는데 안 보여 얼마나 애가 탔는지 알아!”
“불을 끄다가 도저히 안 되겠어 그냥 나왔어요.”
가슴 졸인 생각을 하면 한 대 쥐어박고 싶었지만 무사한 게 다행이라 웃었다.
선장과 기관장이 헐레벌떡 달려와서 타는 배를 보자 실신하듯 쓰러졌다. 그때 불자동차 두 대가 왔다. 소방관들이 오면 호수를 잡고 배 안으로 뛰어들어가 진화작업을 할 줄 알았다. 그런데 배 외부에만 물을 뿌리고 있어, 왜 선내로 안 들어가느냐고 항의했다. 그들은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기름탱크에 불만 안 붙게 하면 된다고 했다. 그 소리를 듣고 화가 난 선원이
“남의 나라 배 타는데 목숨을 걸 일이 있겠어!”했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들은 또 자기들이 쳐놓은 안전선 밖으로 나가라고 내몰았다. 그때서야 짐을 챙기려고 배 안으로 들어가다 저지당해, 타는 배를 바라만 봤다.
1년이 넘게 몸을 부대낀 일터이고 집이던 정든 배에서 쫓겨나니 오갈 데 없는 비참한 신세가 됐다. 그렇게 난감하고 슬플 수가 없었다. 그때 고마운 사람들이 왔다. 새벽부터 천막을 쳐놓고 마실 것과 요깃거리를 만들어준 적십자사 봉사자들이었다. 또한, 자다가 뛰어나와 부샅만 가리고 있는 선원들한테는 옷을 갖다 줘서 알몸을 면했다. 정말 고마웠다.
이국땅에서 졸지에 실업자로 전락하자 이제 우리는 어떻게 되느냐고 말도 많고 사연도 많았다. 그중에 나이 든 한 선원이 한탄 조로
“타는 배마다 자초고 하재니 무신 팔자가 이렇노. 그라고 하늘은 와 불상한 우리들이 머 잘못했다고 저준교!” 하며 하늘에 대고 삿대질을 했다. 그 말이 꼭 나를 두고 하는 말 같았다.
그날 오후에 해난심판을 받으러 갔다. 불이 난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서 재판을 받았다. 모두 벌레 씹는 얼굴로 모른다고 했다. 비참했다. 출항을 앞두고 난데없이 불이나 구호물자를 얻어 입고 재판까지 받아야 했으니 말이다.
알거지가 된 그때 그곳에서 사귄 미녀들이 찾아왔다. 불난 것을 알고 옷과 먹을 것을 챙겨온 그녀들은 정을 나눈 남자한테 선물을 주며 귀국했다가 또 오라며 눈물을 보였다. 그 참담함 중에서도 마음이 뜨끈했다.
그 날밤 10시에 14인승 경비행기를 타고 웰링턴으로 가는데 어찌나 겁이 나든지. 우리는 3등 석이지만 보잉 747만 타고 다녔는데, 기체가 팔랑대는 작은 비행기를 탔으니 얼마나 무서웠겠는가. 웰링턴에서 이틀 밤을 자고 오다 일본 하네다 공항에서 다시는 배를 타지 않으리라 마음먹고 오메가시계를 사고 아내 줄 것은 프랑스제를 샀다. 그 시계를 15년을 찼다. 가끔 책상 서랍에서 잠자는 놈을 보면, 쫓겨오던 날이 눈에 선해 입맛이 씁쓸했다. 그러나 그때 부두에서 불이 난 것이 다행이었다. 뉴질랜드의 8월은 한겨울이라 사이클론이 잦았다. 만약 조업하다 그런 일을 당했다면 찬 바닷물로 뛰어내려 심장마비로 많은 선원이 희생당했을 것이다. 일자리와 번 돈을 잃고 왔지만 모두 무사했으니 하늘이 도왔지 싶다.
뉴스에서 본 3005황금호 사고 현장이 눈에 선했다. 선원들이 찬 바닷물에 뛰어들 때, 죽음을 직감하고 얼마나 공포에 떨었을까. 가슴이 먹먹했다.
물고기를 먹는 사람들이 있는 한 비극은 또 일어날 수 있어, 오늘도 목숨을 걸고 조업하는 그들이 무사하기를 빈다. 2013. 1. 26.
첫댓글 그는 큰누이의 둘째 시누이 남편이었다. 사업에 실패하고 따라온 사람이었다.
그 순간 울부짖는 그의 가족이 떠오르고, 어쩌면 좋으냐고 발을 구르는 큰누이가 보였다.
만약 그가 불행한 일을 당했다면...눈앞이 캄캄했다. 참으로 난감했다.
그때 시커멓게 검정을 뒤집어쓴 그가 기관실 입구에서 나왔다. 어찌나 반갑든지 뛰어가서 시커먼 손을 덥석 잡고...
알거지가 된 그때 그곳에서 사귄 미녀들이 찾아왔다. 불난 것을 알고 옷과 먹을 것을 챙겨온 그녀들은 정을 나눈 남자한테
선물을 주며 귀국했다가 또 오라며 눈물을 보였다. 그 참담함 중에서도 마음이 뜨끈했다..
드라마같은 사연 감상 잘했습니다선생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