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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제 토요일 광화문 집회에 나가지 못했다. 이 글을 쓰는 도중에 핸드폰으로 문자 연락
이 왔었다. 대통령 탄핵안이 가결되기 이전에 카페의 학생 회원이 집에 찾아오기로 했던 약속
이 그때서야 떠올랐다. 아차 하며 나는 혀를 차고 말았다. 집회에 나가지 못한 안타까움은 솔
직히 아니었다. 오늘 아침 뉴스를 듣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시위현장에 나가 목놓아 민주주의
를 외칠 마음이었다. 그러나 정국운영대책이랍시고 드러난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시국안정
발언은 내가 취해야 할 자세를 다시 짚어보게 했다.
사실 시국의 흐름이야 뻔했다. 총선을 앞둔 정국에 탄핵안 가결까지 덧붙여졌으니, 정국은
거대 보수연합의 밀착과 소수의 개혁 진보정당으로 나뉘어 대립양상이 굳어질 판이었다. 국
민도 탄핵안에 대한 반발과 찬성으로 나뉘기는 마찬가지였다. 아주 단순하고 분명하게 정치
권과 국민이 갈리는 형상인 것이다. 다만 탄핵안을 반대하는 국민의 목소리가 꼭 노무현 대통
령이나 열린우리당 지지자들에게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국
정처리 과정에서 있어서는 안 될 정치권의 집단 야합체제나 전반적 불신과 실망감, 국회의원
들의 도덕성 실추, 등 이유는 갖가지였다. 그런데 이런 대립구도나 여론의 반발이 너무나 뻔
히 보이다 보니, 보수연합의 어떤 잔머리가 있지 않나 하는 의구심이 국민을 더 불안하게 하
기도 한다. 총선은 없고 내각제 개헌을 위한 음모라는 주장이 일각에서 크게 일어나고 있다.
이런 불안심리에 젖어들 만큼 우리는 그 동안 정치인들에게 속아온 것이 기정 사실이다.
아침 뉴스에서 접한 골자는 이렇다. 한나라당이 전체 8개 부처의 분과위원회를 조직했다. 민
주당도 탄핵정국 안정 대책회의를 개최하고 전담반을 구성에 들어갔다는 것이다. 고건 대통
령직무대행체제 하의 정국안정을 도모하고 민정쇄신과 민생안정에 주력해 나가겠다며 나섰
다. 뉴스를 듣자니, 이것은 마치 거대 보수야합이 국정을 주도하겠다는 뜻으로 내 귀에는 전
해졌다. 대통령이 직무정지에 이른 불행한 사태 속에서 국민의 불안감을 해소하고 안정시키
기 위해 이제는 국회가 나라를 책임지고 이끌어야 한다는 한나라당의 발언이 잇따랐다.
한나라당이 조직한 분과위원회 중에는 이른바 법사위원회라는 것이 있다. 이 조직은 소위
'노사모'와 '한총련' 등 특정단체의 탄핵 항의시위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기구라 했다. 이것이
무슨 뜻인가. 겉으로야 시국안정을 위한 조직기구라고 내세우지만, 탄핵에 대한 국민의 항의
를 특정세력 주도의 대립과 혼란상황으로 인식시키려는 그들의 꿍꿍이가 들어앉아 있는 것이
다. 이는 한나라당과 특히 그 지도부가 뿌리를 둔 전두환, 노태우 군부독재 세력이 민주화운
동을 툭하면 좌익용공이나 사회불순세력으로 탄압해온 발상을 그대로 빌린 권력 지키기다.
소위 색깔론의 다른 양상에 지나지 않는다. 색깔론은 대립과 갈등을 사회안정을 위한 선전 선
동으로 이용한다. 결국 국회는 거대 보수연합이 차지한 채 앞으로 벌어진 국민의 찬반 갈등을
특정집단 주도의 위기상황으로 몰고 가겠다는 속셈이다. 곧 총선 정국을 보수와 개혁의 대립
구도로 각인 시켜 40대 이상 경제생활인구와 노년층의 안정주의 지지를 이끌어내기 위한 정
치적 전략은 아닌가.
어제 대담프로에서 민주당 박 모 의원의 발언을 보면 안하무인이다. '우리 젊은이들 2, 30대
들은 잘 들어주세요. 특히 학생들이 자제해야 합니다. 함부로 나서서는 안 될 때란 말입니다.
그럴수록 국가위기의식이 고취되고 사회가 불안해지죠. 사람이란 게 그 나이 때는 아직 뭘
잘 모르지 않습니까. 분별력도 없는 젊은이들이 테레비전에 말 잘 하는 사람이 나와서 입만
놀리니까 그냥 선전 선동이 돼서 몰려다니는데, 그래선 안 되는 거예요.… 개혁, 개혁하니까
젊은 사람들은 무조건 지지하고 좋다고 하는데, 그게 다가 아니에요. 저도 나이가 쉰 둘인데
요. 제 나이도 간혹 잊어먹곤 해요. 나이가 들고 어느 정도 때가 되면 나갈 사람은 나가기도
해야 하지만, 사회는 이렇게 좀 살아본 사람들이 움직이는 거예요. 그래야 뭘 좀 알고 할 거
아니에요? 개혁하려고만 한다고 나라가 나아지는 게 아닙니다.' 똑같이 옮기지는 못했지만,
그 주된 내용은 결코 다르지 않다.
이런 정치적 전략을 주도해 줄 세력이 바로 그들을 비호하고 있다. 보수의 대부인 조선일보
가 바로 그들이고, 양심도 없는 이문열과 부정적인 자기중심적 사고에 빠져 있는 전연옥 같
은 썩은 지식인이 그들이다. 조선일보는 우리 전체 신문독자의 70프로를 독점하고 있다. 또
그 외 시장을 틀어쥔 동아나 중앙일보도 개혁성향은 절대 아니다. 언론기관은 구 독재권력들
의 비호와 묵인 하에 거대기업으로 자라온 정경유착의 대표적인 공룡집단이기 때문이다. 여
기서 우리는 저 보수연합 세력의 생각을 짚어볼 수 있다. 저들은 총선을 불과 한 달 앞둔 상
황이다. 또 70프로에 이르는 탄핵반대 여론을 총선에서 불리한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그럼
에도 불구하고 몸싸움까지 벌여가며 탄핵안을 가결시켰을 때는 믿는 구석이 있지 않았냐 하
는 것이다. 나는 이렇게 생각해 본다. 시국상황의 인식에 있어서 저들은 70프로에 이르는 탄
핵반대 여론을 표본조사의 오점과 젊은 세대인 네티즌들 주도의 현상으로 보고 있지 않았을
까. 소위 인터넷 시대를 맞아 국민들의 의사표명이 젊은 세대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을 뿐, 움
츠리고 있는 중년 이상 노년층의 보수 여론 지지를 이끌 수 있다는 확신에 차 있었던 것인지
도 모른다. 정치만이 아니라 학계, 예술, 경제, 교육, 공무원과 공공기관 등 우리 사회의 곳곳
에는 제 자리를 무슨 철가방으로 지키고 앉아 있는 권위와 아집의 보수파들이 득시글거리고
있다.
이 상황은 사실 검토를 해보면 전혀 근거 없는 논의가 아니다. 조선일보가 독식하고 있는 시
장 구조와 여타 신문사들의 보수성향, 그리고 국민은 언론을 통해 세상을 본다는 점을 감안할
때 저들 보수연합은 잠정적인 지지기반이 충분하다고 볼 수도 있다. 이는 지난 대선에서 노무
현 대통령이 네티즌과 '노사모'의 자발적 선서운동으로 깜짝 당선의 주인공이 되며 입증되었
다. 그것도 막판 뒤집기였다. 물론 앞으로 총선까지 이제 한 달은 결코 그런 급진적인 여론의
판도를 뒤집기는 힘든 기간이다. 그러나 세계헌정사나 사회사를 살펴보면 우리가 쳐한 현실
이 전무후무했던 것은 아니다. 야합과 밀실정치로 편을 짠 독재나 보수세력이 국민갈등을 부
추기고, 국정과 경제위기의 요인을 특정집단에 의한 갈등양상으로 언론 플레이를 획책했던
사례는 민주주의의 초기에 누누이 있었던 사건들이다.
이런 정치적 전략은 음모에 가깝다. 아니 분명한 음모다. 이 음모는 국가위기설이 팽배할수
록 힘을 얹는다. 국민들이 불안할수록 민생과 경제 안정에 대한 바람이 커지고 확실한 지지를
이끌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즉 너희는 싸워라, 재미는 우리가 보겠다 하는 정치적 도박인 것
이다. 이는 멀리 외국 헌정사에서 사례를 찾아볼 것도 없이 우리가 박정희로부터 노태우에 이
르기까지 그 질곡의 세월 동안 언론 통제나 검열, 선전미화 플레이, 스포츠와 상업문화의 이
간질을 통해 누누이 겪어오지 않았나. 때문에 나는 시위를 바라보는 관점을 바꾸기로 했다.
당장 거리로 쏟아져 나가 시위를 하는 것은 저들의 계획을 돕는 일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 물론 내 생각은 섣부른 짐작인지도 모른다. 한 가지를 더 짚어보자. 그들이 텔레비전 대
담프로그램에 출연해 절대 개각이나 총선 연기는 없다며 못을 박고 있다. 정치인들의 말을 나
는 믿은 적이 없다. 그러나 이번엔 저들이 함부로 구실을 잡아 말을 바꾸지는 못하지 싶다. 일
단 총선을 연기하거나 개각으로 나갈 경우, 국민의 반감은 한나라당과 민주당에 대한 맹공으
로 나타나 제 함정을 파는 꼴이 될 게 자명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 국민은 또다시 민
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거리로 나설 것이라 나는 믿는다. 여러분들이라면 말을 바꿔 권력찬
탈을 벌일 때 컴퓨터 앞만 지키고 있겠는가. 나는 우리 국민이 그렇게 어리석다 생각하지 않
는다. 당장 노무현 대통령의 지지기반이 2, 30대 젊은 세대이라는 점과 민주화운동의 주력세
력이 현재 이 사회의 중심세력인 만큼 미리 지레 단정하고 불안에 시달려 극명한 대립양상으
로 가지는 말아야 한다. 오히려 시위가 과격해지거나 현장에서의 충돌로 나타날 경우, 그들
에게 사회불안을 빌미로 총선을 연기하거나 개각을 일으킬 구실을 달아주게 될 수도 있다.
따라서 열린우리당의 장외투쟁도 시위를 부추기거나 앞세우는 형국으로 나타나서는 절대 안
된다. 역시 국정혼란이라는 그럴듯한 명분만 제공하는 꼴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세계 헌정사
상 대통령 탄핵에 이르렀던 나라들 치고 직무정지가 지속될수록 국정혼란과 경제위기를 자
초해 주저앉았던 만큼 헌법재판소는 신속한 판결을 내놓아야 하고, 국정 변화는 있어서도 안
된다. 지금 네티즌 사이에서는 내각제 개편을 위한 시나리오라는 의견이 일고도 있지만, 이
런 정국현황을 놓고 보자면 그것은 지나친 무리수이지 싶다. 그만큼 불안감에 치여 소위 음
모론이 따라 다니는 것이라 본다.
따라서 내 생각은 이렇다. 현대 민주국가의 정치 발단은 사회단체와 젊은 유권자들에 의한
자발적인 지지와 참여의 형태다. 그런 만큼 자율적 집회는 국민의 의사표명임과 동시에 여론
형성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그러나 절대 집회가 찬반논자들간의 과격시위나 갈등양상으로 나
타나서는 안 될 것이다. 특히 분신이나 차량돌진 등은 그 분한 마음이야 짐작하고도 남지만,
보수세력과 일부 무지몽매한 국민들에게 자칫 모든 혼란의 책임이 대통령 탓이라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 어차피 우리나라가 껍데기만이라도 법치국가인 이상 대통령 탄핵안은 헌법
재판소의 판결을 기다릴 수밖에 없다. 그것을 중간에 무효화할 수는 없는 일이다. 판결 내용
에 따라 국민운동을 일으켜도 되지 싶다. 더구나 우리는 정당하게 심판할 기회인 총선을 바로
코앞에 두고 있다. 지금의 항의시위는 그 총선을 향한 국민의 정치적 운동으로 방향을 맞추면
좋겠다고 나는 생각한다. 격한 감정을 억누르고 좀더 냉철한 가치판단으로 멀리 내다볼 일이
기 때문이다.
이번 총선을 앞두고 정치전문가들은 인물 중심의 선출 양상이 되지 않을까 하는 전망을 내
놓은 바 있었다. 정치 전반에 걸쳐 불신과 배신감을 느낀 국민들이 이제는 특정정당이 아니라
전문적이고 새로운 인물에게로 관심을 돌릴 것이라 보았던 것이다. 그러나 탄핵소추안의 가
결은 이 전망을 뒤엎어버렸다. 현재 나타나고 있는 여론이 그렇듯 한나라당과 민주당에게 등
을 돌려 정치적인 선택을 할 것이란 진단이 나오고 있다. 단 노년인구가 지배적인 농어촌 지
역은 아무래도 표가 유동적이지 못하다. 또 일부 도시 특정 지역은 권력형 기업이나 지역 경
제집단의 부동표가 많다. 오랜 사회적 불균형과 그로 인한 곳곳의 권력야합 세력이 아직도 우
리 주변에 웅크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 피해자들이 우리들 자신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내 부
모와 가족이 그 피해자들인 것이다. 우리의 교육이 그렇고, 역사 문제도 똑같다.
그리고 절대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이 있다. 오늘날 이 땅의 사회적 악순환과 부정부패
는 숙청하지 못했던 친일파들과 그 비호세력들이 자신들의 잘못을 감추고, 심지어 미화까지
일삼다 보니 권력야합과 비리가 관행으로 굳어진 56년 동안의 결과라는 것이다. 이런 사회 구
조적인 부조리에 대한 개혁이 단 한순간에 손바닥 뒤집듯 이루어질 수는 없다. 노무현 대통령
의 탄핵에 이르기까지 국정현안의 난항은 너도 나도 자기들 밥그릇부터 챙겨달라 싸움을 벌
였던 우리 국민 자신에게도 무거운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또한 저 국회의원들을 뽑아준 책임
도 무시할 수 없다. 개혁은 급진적이어서는 안 된다. 급진적인 변화, 즉 급변은 그만큼 많은
부작용을 낳게 되어 있음을 우리는 지난날 경제지상주의 속에서 피폐해진 지역경제와 환경과
정경유착이며 기초학문, 순수예술의 부진, 문화의 유실을 통해 그 하나 하나를 세세히 겪어오
지 않았는가.
이 모두가 당장 우리가 그 개혁의 대가를 바랬기 때문이다. 그 동안 고생한 보상을 받으려는
데야 나도 뭐라 할말은 없지만, 그런 조급함이 보수연합에게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의 탄핵 빌
미를 제공했음을 되씹어 보라. 개혁의 디딤돌조차 놓을 여유를 우리가 주었었는지 반성할 일
이다. 그 개혁의 대가를 꼭 내가, 우리가 받아야만 하겠는가. 나는 이제 서른 다섯이다. 스스
로 아직 푸릇푸릇한 젊은이라 자신하며 살아간다. 나는 그 대가를 꿈에도 바라지 않는다. 물
론 늘그막에 조금의 혜택은 떨어질지 모른다. 그러나 내가 진정 바라는 것은 우리의 아이들에
게 그 값진 국민의 노력이 돌아가기를 바란다. 내가 우리의 부모와 그 부모로부터 독립과 동
족상잔의 전쟁 속에서 그나마 이만한 나라라도 물려받을 수 있었듯, 나는 아이들이 우리와 같
은 아픔을 조금이라도 덜 받으며 정의와 이상을 향해 내달려 가기를 꿈꾼다. 자식이 없는 노
총각이지만, 이상을 품고 살아가기엔 이 땅은 너무나 춥고 배가 고프기에 우리 뒤를 이을 아
이들에게 미안함이 늘 앞선다. 그래서 참는 것이다. 당장 대가를 바라며 국민이 다툼을 벌이
기 보다 나라와 민족의 장래를 위해 집회에 나선 그 마음, 그 뜻으로 우리 세대가 좀더 참고
견디어 국민의 뜻으로 얻은 선물을 아이들이 받도록 해주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생각해 본
다. 이상이란 결국 내일을 살아갈 아이들이 이어받을 당당한 현실이어야 하지 않겠는가.
첫댓글 대통령의 힘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지금쯤 국민들의 원망, 원성을 듣든 자신이 생각하던 개혁을 실행중일텐데 대통령이 한가지를 던지면 의원들은 무조건 반대 반대 반대... 뭘 하려 해도 할 수가 있나요. 노대통령의 잘못 중에 가장 큰 잘못은 대통령의 힘을 너무 놓아 버린 것.. 자기들 이익 챙기려고
계속해서 써 나가야 할 역사를 엉망으로 만들고.. 나라를 위해 뽑힌 사람들이 '내 배가 대한민국 지도다', 하고 국민들에게 돌아가야 할 것들을 뱃속에 꾸역꾸역 넣고 있으니…. 국민들도 정부도.. 서로 노려 보기만 하고. 흐음...권력이란거 참 무서운거구나....정말 무서운거구나..
글 잘 읽었어요 우리 모두 자중하고 부디 총선이라도 무사히 치루워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국민이 살아있다는 것을 보여주면 더욱 좋겠어요
어제 서면에 부산모임 갔다가 촛불시위를 잠깐 바라봤습니다. 그들의 열정이 부럽더군요. 마음은 있지만 내색하지 않는 편이라.... 어쨌거나 누구든 할 건 해야지요.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