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여에서 >
하루 종일 에어컨을 켜며 여름을 보낸 건 생전 처음이다. 그동안은 아무리 더워도 아침저녁으론 시원했었다. 에어컨은 일년에 대여섯 번이나 틀었었나? 특히 에어컨 바람이 싫은 나는 웬만하면 선풍기로 버티며 살았다.
그런데 올 여름은 아니다. 정말 기록적인 더위이다. 이러한 무더위 속에 미술 전시회 때문에 부여 땅을 밟았다. 삼년 전인가? 부여 외산 쪽에 무량사를 가보긴 했는데 부여 시내를 돌아본 건 진짜 오랜만이다. 공주는 더러 가 보았지만 부여 쪽엔 딱히 갈 일이 없었던 것 같다. 기희가 전시회 보러 오겠다고 했지만 이런 삼복더위에 머나먼 길 오기엔 무리였기에 적극 말렸다.
서울서 부여 오는 게 어디 그리 쉬우냐구요? 기희야! 네 마음은 내가 알아. 고마워!
차로 운전하여 공주갈 때는 그렇게 멀게 느껴지지 않았는데 부여는 굉장히 멀게 느껴졌다.
3시간도 넘게 걸렸다. 길도 편안하지는 않았다. 무슨 고가도로가 그리도 많은지...
같은 학교 근무하는 후배는 그렇게 오지 말라고 말렸는데도 기어이 꽃 사들고 찾아왔다. 자기가 미술반이어서 아는 동기나 선 후배가 많을 것 같다면서 부득 부득 우기고 왔다. 전시회장을 둘러보고는 대전에 있는 친정으로 간다며 저녁도 먹지 않고 바로 갔다. 그래도 학교 다닐 때 미술반이어서 회원 중에 아는 사람이 많아 대화를 나눈 게 그나마 다행이다. 거의 30년 만에 만나는 거라고 했다.
8월 1일부터 7일까지 부여 문화원에서 제44회 교대 동문 종합 미술 전시회가 있었다. 오랜만에 보는 동문들이 반가웠다. 그림이나 조각 공예품들이 졸업하고도 이렇게 오랜 세월 서로 이어주고 만나게 해 주는 끈 되어 주고 있다. 졸업하고 이렇게 동문들을 만날 기회가 흔치 않다. 그나마 이런 모임이라도 있으니 후배 선배 동기들을 볼 수 있다. 오랜만에 만나는 반가움에 모두 함박웃음을 짓는다. 그림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사람이 그동안 어떤 생각을 하며 어찌 살았는지 대강 알 것 같다. 공통점은 모두 자기 주어진 삶을 열정적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거다. 서로 안부를 묻고 그림 이야기도 하며 부여 롯데 리조트에서 하루 밤을 보냈다. 다음날은 부여 국립박물관 관람을 했다. 부여의 건축물이나 공예품에서는 신라의 화려함은 없지만 우아하고 기품이 느껴진다고 한다.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우리 선조들 솜씨는 정말 뛰어나다. 오늘을 사는 우리보다 훨씬 더 세련되고 멋지게 살았던 것 같다. 전시된 물품들이 주로 무덤에서 나온 부장품이란 사실도 놀랍다. 땅 밖에 있었던 모든 귀한 것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없는데 지하의 세계에 깊이 묻혀 있었기에 지금까지 훼손되지 않고 우리에게 당시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특히 1993년 10월, 국립부여박물관 발굴 팀에 의해 논바닥 흙속에서 발굴된 백제금동대향로는 압권이었다. 당시 전문가들은 공주 송산리의 무령왕릉의 발굴처럼, 이 발굴을 백제의‘기적’이라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고 한다. 국보 제 287호 백제금동대향로는, 향을 피우는 물건이었는데 뚜껑 맨 위에는 날개를 펼친 봉황이 입에 여의주를 물고 서 있으며, 그 아래로는 5개 산봉과 그 사이마다 신선이 서로 다른 악기를 연주하는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고 한다. 그 아래로 물고기, 사슴, 학 등 물·땅·하늘의 27마리 동물이 배치돼 있다. 보물에 새겨진 그림들이 이런 깊은 뜻이 숨어 있을 줄이야!
서로 아쉬움을 뒤로 하고 다음 만날 날을 약속하고 다시 각기 자기 삶 속으로 돌아 가야한다. 대전 살다가 세종시로 이사한 후배가 하룻밤 더 유하다 가라고 강권하여 다른 후배와 같이 세종시에 들렸다. 아까 박물관에서 고대시대에 머물러 있다가 새로 세운 세종 신도시에 들어오니 느낌이 사뭇 다르다. 그래도 여기 저기 산이며 공원 호수들을 살리려 애쓴 흔적이 보인다. 호수는 인공적으로 더 넓혔다고 한다. 후배는 거주하는 아파트 말고 호숫가에 원룸 오피스텔 하나를 더 구입했다고 한다. 원래는 화실로 사용하려고 장만했는데 뜻대로 안 된다고 한다. 그림 작업 준비물이 보통 짐이 아니기 때문이다. 거기서 보는 야경이 기가 막혀 우리에게 보여주고 싶어 붙잡았다고 한다. 그 집에 유하다 보면 그 사람이 없어도 어찌 생활하고 있는지 그려진다. 후배 집에 가 보니 그리다 만 그림들이 많이 있었는데 정말 그림 속에 푹 빠져 사는 듯 했다.어느 때는 밤 12시가 넘을 때까지 그림을 그린다고 한다. 그림도 100호가 넘는 대작이었다. 놀랍다. 홀로 생활할 공간을 확보한 후배가 부럽기도 했다. 야경 속을 거닐다가, 다시 오피스텔 위에서 야경을 내려다보며 이런 저런 이야기하며 잠이 들었다. 다음날 일찍 집으로 돌아오며 참으로 귀한 사람들과의 만남과 귀한 곳에 가 본 것에 감사함이 느껴졌다. 이 더위에 내 한 몸도 귀찮은데도 친구들이나 후배들을 거침없이 초대하여 아무 부담 없이 하룻밤을 보내도록 하는 마음 씀씀이가 부럽다.
춘호씨의 조각품 옆에서: 모두 건강해 보여 기뻤다.
여전히 작품활동을 꾸준히 하는 김관진 화백님 그림 앞에서 한 컷 찍었다.
사는 이야기, 그림 이야기: 그림들이 그동안 어떻게들 살았는지 말해 주고 있다.
숙소인 롯데 리조트: 부여 외곽에 있는데 시설도 아주 좋고 부대 시설도 편리했다.
백제의 우아함이 돋보이는 도자기
너무나 사실적으로 표현된 웃음이 좋아서 한 컷!
동문인 부여문화원장의 멋진 작품이 박물관 입구에 전시되어 있다. : 웬지 뿌듯함이 느껴진다.
국보 제 287호 백제금동대향로 : 따로 사진을 잘 찍었는데 어디 숨었는지 못 찾겠다.
부여 롯데 리조트의 외관
세종시를 아시나요? 세상에 나도 모르는사이에 이런 신도시가 새로 생겼다.
다음날 후배가 소리질러 눈을 떠 보니 이런 일출광경이 보였다.
첫댓글 서울에서의 전시회는 언제 여니? 무더위 핑계로 가보지도 않고... 서해안 고속도로가 생기기 전에는 서산 댱진이 오지라 생각했는데 요즘은 부여가 오지라는 생각이 드는구나. 그래도 옛도읍지였었기에 체험거리가 있어 다행이라는 개인적인 생각... 그림을 통해 인연을 맺고 열정적인 생활을 하는 게 쉽게 되는 일이 아니기에 한편 부럽기도 하구나. 이제 진짜 정년 했으니까 여유로운 생활로 더 멋진 삶 영위하도록.. 초창기의 세종시와 지금의 세종시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엄청나더라고. 그만큼 주변 도시들이 영향을 많이 받겠어, 특히 나의 고향 대전이..
정년을 하고 집에 있으니 있을 만 하다. 명절 잘 지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