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들어가며
이 글을 시작하기 전에 우선 구별해야 할 개념들이 있다. 첫째는 돈과 신용을 구별하는 것이
고, 둘째는 인플레이션과 물가를 구별하는 것이다.
첫째, 돈과 신용은 전혀 다르다. 돈과 신용을 구분하지 않기 때문에 많은 혼란이 있다. 돈은
모든 상품의 교환수단이며 최종적인 지불수단이다. 이에 반해 신용은 돈의 유통을 담당하며
그 외형이 어떠하던 결국은 '미래의 지불의무(부채)'와 '미래의 청구권(채권)'의 연쇄고리다.
흔히 쓰는 M2는 돈이 아니라 은행의 부채로, M2가 늘어난다는 것은 돈이 아니라 은행의 부
채, 총신용이 증가하는 것이다.
둘째, 인플레이션은 흔히 전반적인 상품가격의 인상이라는 의미로 쓰이지만 이는 결과일 뿐,
화폐공급량의 증가가 진정한 원인이다. 개별 상품 가격이 오르는 것은 화폐공급량의 증가와
개별상품의 수요증가가 함께 작용한 결과다. 후자의 경우에 모든 재화와 서비스 수요가 함께
같은 시기에 증가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전반적인 상품가격의 인상은 화폐
공급량의 증가가 근본 원인이 되는 것이다.
2. 양적완화로 돈을 찍어내도 전면적인 물가인상이 일어나지 않는 이유
여기에 대한 답은, 화폐공급이 엄청나게 늘어났기 때문에 인플레이션은 당연히 일어났지만
신용수축이 더 크기 때문에 물가인상으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을 예로 들어
보자. (우리 나라의 필수생필품 가격은 비정상적으로 고공행진을 해왔는데, 이는 화폐공급
증가가 필수생필품 수요와 결합한 결과다. 이와 같이 물가인상은 부문 별로 다르다)
이 챠트는 신용이 아니라 순전히 돈의 증가량을 나타낸다. 2009년 이래 FED는 2조달러라는
역사상 유례가 없던 천문학적인 돈을 찍어냈다.
그렇게 찍어낸 돈을 FED는 국채와 모기지를 사들이는데 모두 썼다. 위의 챠트는 FED의
총자산인데 거의 대부분이 유가증권이다. 그 유가증권의 구성이 아래 챠트로 국채 아니면
모기지 증권이다. 그렇게 풀려나간 돈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1조 6천억달러 이상이 FED에 맡겨놓는 예치금으로 FED금고로 다시 돌아왔다. FED의 예치
금 이자는 불과 0.25%다. 그래도 은행들은 그 이자를 감수하면서 기꺼이 FED 금고에 돈을
맡기고 있다.
이러니 아무리 많은 돈을 찍어낸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 돈이 실물경제에 전달이 되어
회전이 되야 물가가 오르던지 무슨 일이 생기던지 할 것이 아닌가?
인플레이션, 즉 화폐공급의 증가는 이미 크게 일어났다. 그러나 증가한 돈은 FED 금고에서
잠자고 있기 때문에 전면적인 물가인상으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
3. 양적완화가 계속된다면 그 결과는?
나는 위에서 인플레이션은 크게 일어났지만 물가인상으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고 썼다. 허나
양적완화가 계속되어 화폐공급량이 더 늘어나고 금리가 더 내린다면 어떻게 될까?
현재 FED의 예치금 금리는 0.25%이고 ECB의 예치금 금리는 0.75%다. 이 금리수준은 현재
통상 말하는 인플레이션율, 즉 물가인상률로 보았을 때는 마이너스 금리다. 얼마 전 ECB가
금리를 1.0%에서 0.75%로 낮췄을 때 있었던 일은 이 물음에 힌트를 준다.
7월에 ECB가 예치금 금리를 0.25% 내렸을 때 8000억유로가 넘던 ECB 예치금이 3200억
유로까지 떨어졌다. 4800억유로가 ECB 금고에서 빠져나간 것이다. 이 돈은 가장 먼저 유럽
국채시장에 들어갔고 나머지는 주식, 선물시장에 풀려나간 것으로 추측된다. 이 막대한 돈이
금융시장에 풀려나갔기 때문에 이머징 마켓에 속하는 우리 나라 채권, 주식도 슈퍼마리오가
게임오버될 때까지는 상당한 랠리가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 사례는 비록 실물경기가 나쁘고 신용수축이 일어나고 있다고 해도 마이너스 금리를 물어
가면서까지 돈이 금고에서 잠을 자는 것은 아님을 보여준다. 현재 세계 각국의 중앙은행이
찍어낸 돈은 6조달러나 되고 중앙은행의 자산(그 실제는 은행들로부터 받은 부실모기지증권
이다)은 20조달러로 GDP의 30%에 이른다. 이것은 인플레이션과 잠재적인 물가인상 위험이
막대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화폐공급량을 더 늘리고 금리를 제로 이하 마이너스로 내리면, 손실을 피하기 위해서 어느
순간에는 금고에서 돈이 빠져 나와 실물부문으로 풀리는 때가 올 것이다.
4. 양적완화의 궁극적인 끝에 있는 것은 하이퍼인플레이션
어떤 한 나라가 그 나라의 지폐를 무한정 발행할 수 있을까? 이론적으로는 가능하지만 실제
로는 짐바브웨나 바이마르 공화국 사례처럼 그렇게 할 수 없다.
1. 정부가 지폐를 증가시키고 은행들이 신용을 팽창시키는 초기에는, 이 과정의 진정한
성격에 대해 인식하지 못하는 일반 대중이 재화들의 가격상승이 일시적이라고 믿으면서
예전보다 더 많은 화폐를 보유하는 경향이 있다. 인플레이션으로 화폐의 가치가 하락을
하기 때문에 예전보다 더 많은 현금을 보유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재화들의
가격은 화폐량의 증가와 비례하여 증가하기 보다는 오히려 덜 상승하는 경향이 있다.
2. 그러나 궁극적으로 대중은 현실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깨닫기 시작한다. 가
격이 지속적으로 상승할 것이 예측되기 시작하면 사람들은 화폐의 보유를 줄이고 재화를
구매할 것을 서두르기 시작한다. 다시 말하면 화폐의 사회적 수요는 감소하고 재화들의
가격은 화폐공급의 증가보다 더 빠르게 상승한다. 인플레이션이 이런 단계에 이르면 런
어웨이인플레이션 또는 '하이퍼인플레이션'이 시작되는 것이다.
3. 가격상승이 지속됨에 따라 이제 일반대중은 '화폐로부터의 탈출'을 시작한다. 화폐로
부터의 탈출이란 최대한 화폐를 팔고 미래의 가치저장소로서 '재화'들을 사기 시작하는
것을 의미한다. 화폐에 대한 수요를 실질적으로 '제로'로 떨어뜨리기 때문에 재화의 가격
은 '천문학적으로' 상승한다. 이러한 상황에 접근하면 사람들은 화폐를 사용하여 재화를
구매하는 일에 몰두하기 때문에 일할 동기를 잃고, 그 결과 생산은 급격하게 위축된다.
그런 축소는 재화들의 가격을 더 한층 상승하게 만든다. 경제가 이런 단계에 도달하면
그 경제는 사실상 붕괴되고, 시장은 실질적으로 끝장이 난다. 그런 사회는 신용경제에서
화폐교환 경제로, 물물교환상태로 환원되고 사람들은 모두 완전히 빈털털이가 된다.
일단 금고에서 무지막지한 돈이 풀려나오기 시작하면 재화의 가격이 짧은 시간 내에 치솟기
시작할 것이고, 사람들은 순식간에 부자가 된 듯한 착각에 빠질 수도 있다. 그러나 곧 진실을
깨닫게 될 것이고, 짧은 자산버블붐이 지나면서 하이퍼인플레이션이 시작될 것이다. 모든 것
을 삼켜버리고 파괴해버리는 거대한 패닉이......
하이퍼인플레이션이 덮쳤던 바이마르공화국이 유일하게 만들어낸 것은 히틀러였다.
5. 맺으며
통화주의자들은 디플레이션을 막기 위해서 더 많은 돈을 찍어내고 금리를 더 내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경험으로도 충분하다. 돈은 모든 재화와 서비스의 교환수단이
고 최종적인 지불수단이 되는 것이지 실체적인 부는 아니다. 그들이 신용의 붕괴를 막기 위
해 찍어낸 돈은 결코 공짜가 아니다. 거기에는 대가가 따른다. 그들이 지금처럼 양적완화를
반복한다면 그 대가는 상상 이상으로 크게 될 것이다.
또한 통화주의자들은 Free Market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생산과 유통, 소비는
그 어떤 슈퍼컴퓨터로도 계산할 수도 없고 통제할 수도 없다. 그들은 인플레이션이 전면적인
물가인상으로 전이되는 것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지만, 지금껏 경제가 그들의 주장대로 이루
어진 일도 없고 앞으로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이 글은 제가 이럴 수도 있겠다 하고 생각하는 것을 적은 글일 뿐입니다.
논리의 비약과 오류가 많이 있으리라 생각하며, 이런 생각도 있구나 하는 정도로만 이해를...
오스트리아 학파를 아시는 분들은 제 글의 아이디어들이 어디에서 왔는지 금방 알 것입니다.
예, 저는 경제에는 '팽창과 수축의 싸이클'이 있고, 이것은 Free Market의 일부분이라는
오스트리아 학파의 주장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 아래 댓글 중 두분에 대해서는 답변을 드릴 필요가 있어 글을 올립니다.
1. straw 님의 "오스트리아 학파라면 하이에크 같은 인물들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극단적인 시장맹신주의?" 에 대해서:
오스트리아 학파의 이론도 완벽할 수는 없겠지만 현재 주류, 비주류를 모두 합해서 경기변동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은 오스트리아 학파가 유일합니다. 이것이 제가 오스트리아 학파의 이론을 공부하는 첫째 이유
입니다.
두번째 생각해 봐야 할 것은 모든 이론의 베이스에 Free Market의 기능에 대한 진정한 신뢰가 있느냐 없느
냐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따라 하나의 경제적 현상에 대한 대책도 달라집니다. 예를 들어 부동산버블에 대
해 수요를 높인다는 명목으로 금리를 내리고 세금을 낮추는 것은 단순하게 보면 프리마켓을 신뢰하는 것 같
지만, 실은 버블을 키움으로써 프리마켓의 기능을 해치게 됩니다. 부동산버블의 배후에는 프리마켓의 자연
이자율 결정 기능을 파괴하는 중앙은행의 인플레이션 정책이 있습니다.
양적완화도 인위적으로 화폐공급을 증가시키고 금리를 낮춤으로써 프리마켓의 기능을 파괴하고 경제를 좀
비경제로 몰고 갑니다. 오스트리아 학파는 프리마켓의 진정한 기능과 경기변동에 대해 바르게 이해할 수 있
는 틀을 우리에게 제시해 줍니다.
2. SOAR 님의 "에휴~ 아직도 하이퍼인플레이션을 말하는 사람이 있다니..." 에 대해서:
2008년 Great Ression이 시작될 당시에는 저도 인플레이션이 일어날 것이라는 의견에 반대했습니다.
그때로부터 수년이 지나 Q1, Q2, 오퍼레이션 트위스트가 실행되었고 6조달러에 달하는 천문학적인 돈이
뿌려졌습니다. 그럼에도 실물경제는 다시 리세션에 빠져들고 있습니다. 과거 수년 전에 예상했던 일입니다.
이 챠트는 미국의 그림자은행의 신용(부채)이 6조달러 정도 줄어든 것을 보여줍니다. 이처럼 아직도 신용
붕괴가 계속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중앙은행 금고에 있는 돈들은 실물시장에 풀려나오지 못하고 전면적인
물가인상은 일어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에서 제가 썼듯이 화폐공급량을 너무나 크게 늘렸기 때문에 인플레이션(화폐가치 하락)은 이미
발생했습니다. 그리고 ECB 금고에 있던 돈들이 대거 풀려나온 것을 보았을 때 양적완화는 한계에 온 것이
분명합니다.
제 글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적완화를 무리하게 계속 밀어붙였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까? 하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본 글입니다. 그리고 통상 생각하는 '인플레이션(물가인상)'과 자산가치 상승은 신용수축의 시기에
도 부분적으로는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습니다. 신용을 돈과 구별하지 못하기 때문에 인식에 혼란이 있을
뿐입니다.
첫댓글 좋은 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