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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한 것과 부정한 짐승 3 짐승의 사체
레 11:24-40
24 이런 것은 너희를 부정하게 하나니 누구든지 이것들의 주검을 만지면 저녁까지 부정할 것이며
25 그 주검을 옮기는 모든 자는 그 옷을 빨지니 저녁까지 부정하리라
26 굽이 갈라진 모든 짐승 중에 쪽발이 아닌 것이나 새김질 아니하는 것의 주검은 다 네게 부정하니 만지는 자는 부정할 것이요
27 네 발로 다니는 모든 짐승 중 발바닥으로 다니는 것은 다 네게 부정하니 그 주검을 만지는 자는 저녁까지 부정할 것이며
28 그 주검을 옮기는 자는 그 옷을 빨지니 저녁까지 부정하리라 그것들이 네게 부정하니라
29 땅에 기는 길짐승 중에 네게 부정한 것은 이러하니 곧 두더지와 쥐와 큰 도마뱀 종류와
30 도마뱀붙이와 육지 악어와 도마뱀과 사막 도마뱀과 카멜레온이라
31 모든 기는 것 중 이것들은 네게 부정하니 그 주검을 만지는 모든 자는 저녁까지 부정할 것이며
32 이런 것 중 어떤 것의 주검이 나무 그릇에든지 의복에든지 가죽에든지 자루에든지 무엇에 쓰는 그릇에든지 떨어지면 부정하여지리니 물에 담그라 저녁까지 부정하다가 정할 것이며
33 그것 중 어떤 것이 어느 질그릇에 떨어지면 그 속에 있는 것이 다 부정하여지나니 너는 그 그릇을 깨뜨리라
34 먹을 만한 축축한 식물이 거기 담겼으면 부정하여질 것이요 그같은 그릇에 담긴 마실 것도 부정할 것이며
35 이런 것의 주검이 물건 위에 떨어지면 그것이 모두 부정하여지리니 화덕이든지 화로이든지 깨뜨려버리라 이것이 부정하여져서 너희에게 부정한 것이 되리라
36 샘물이나 물이 고인 웅덩이는 부정하여지지 아니하되 그 주검에 닿는 것은 모두 부정하여질 것이요
37 이것들의 주검이 심을 종자에 떨어지면 그것이 정하거니와
38 만일 종자에 물이 묻었을 때에 그것이 그 위에 떨어지면 너희에게 부정하리라
39 너희가 먹을 만한 짐승이 죽은 때에 그 주검을 만지는 자는 저녁까지 부정할 것이며
40 그것을 먹는 자는 그 옷을 빨 것이요 저녁까지 부정할 것이며 그 주검을 옮기는 자도 그의 옷을 빨 것이요 저녁까지 부정하리라
레 11:24-40 / [부정한 짐승에 닿으면 부정 탄다] 지금까지 말한 짐승이나 곤충의 사체에 몸이 닿은 사람은 저녁때까지 부정하다. 이러한 짐승이 부정하기 때문이다. 25) 이러한 짐승의 사체를 들고 다닌 사람은 입고 있던 옷을 빨아야 한다. 이런 사람은 저녁때까지 부정하다. 26) 또한 굽이 두 쪽으로 갈라지지 않고 새김질하지 않는 짐승은 부정한 짐승이다. 따라서 이러한 짐승을 만지면 부정 탄다. 27) 네 발로 걸어 다니는 길짐승 가운데에서 발바닥으로 땅 위를 걸어 다니는 짐승은 부정한 짐승으로 여겨야 한다. 따라서 그 짐승의 사체에 몸이 닿은 사람은 저녁때까지 부정하다. 28) 뿐만 아니라 그 짐승의 사체를 들고 다닌 사람도 부정 탄 것으로 여겨 입고 있던 옷을 빨아야 하며 그 사람도 저녁때까지 부정하다. 이러한 짐승이 부정하기 때문이다. 29) [기어 다니는 짐승도 부정하다] 땅 위에서 기어 다니는 작은 짐승 곧 두더지, 쥐, 큰도마뱀 종류, 30) 수궁, 육지악어, 도마뱀, 모래도마뱀, 카멜레온 등은 부정하다. 31) 이 작은 길짐승들은 부정하므로 이 짐승이나 그 시체에 몸이 닿은 사람도 저녁때까지 부정하다. 32) 이 짐승의 사체가 어떤 물건 위에 떨어져 닿았으면 그 사체에 닿은 것은 부정하게 된다. 나무 그릇이든 옷가지이든 가죽이든 피륙으로 짠 자루이든지간에 그 시체에 닿은 것은 어떤 것이나 부정하게 된다. 그러므로 그런 것에 닿은 물건은 물에 담가두어라. 저녁때까지는 부정할 것이지만 그 다음부터는 깨끗해질 것이다. 33) 또한 이렇게 부정한 것이 질그릇 안으로 떨어졌을 경우 그 그릇 안에 들어 있던 것은 부정하게 된다. 그러므로 너희는 그 그릇을 깨버려야 한다. 34) 물기에 촉촉히 젖어 있던 먹거리가 그 속에 들어 있었다 할지라도 부정하게 된다. 그 그릇 속에 물이 들어 있었다고 하면 그 물도 부정하게 된다. 35) 앞서 말한 부정한 짐승의 시체가 어떤 물건 위에 떨어지면 그 물건은 부정하게 된다. 그러한 물건이 가마든 화로든 부정 탄 것이므로 깨뜨려야 한다. 너희에게 이러한 물건들은 부정하다. 36) 다만 샘이나 웅덩이같이 물이 괴어 있는 곳은 설령 그 짐승의 사체가 닿는다 하여도 부정하게 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그런 짐승의 사체에 몸이 닿은 사람은 부정하다는 사실을 명심해 두어라. 37) 그런 짐승의 사체가 종자 씨앗에 닿았을 경우에 그 씨앗은 부정하지 않다. 38) 그렇지만 물에 담가 두었던 씨앗에 그런 짐승의 사체가 떨어졌을 경우에는 그 씨앗이 부정하게 된다. 39) [깨끗한 짐승이 죽었을 경우] 너희가 먹어도 괜찮을 짐승이 죽었을 경우에도 그 짐승의 사체에 몸이 닿은 사람은 저녁때까지 부정하다. 40) 이 죽은 짐승의 고기를 먹은 사람도 입고 있던 옷을 빨아야 한다. 그래도 저녁때까지는 부정하다. 또한 이 짐승의 사체를 옮긴 사람도 입고 있던 옷을 빨아야한다. 그래도 저녁때까지 부정하다.
본문은 부정한 것으로 규정된 모든 생물의 사체를 접촉했을 때의 부정함을 씻는 정결 예법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런 것은 너희를 부정하게 하나니(24-28) 부정하게 하는 '이런 것'은 지금까지 부정한 모든 짐승, 물고기, 새, 곤충들을 가리킵니다. 이러한 부정한 것들의 주검을 부득이하게 접촉한 자는 그날 저녁까지 부정했습니다. 부정한 것의 사체를 옮기는 자도 저녁까지 부정했습니다. 여기서 저녁은 해질 때를 말합니다. 히브리인에게 있어서 저녁은 새 날이 시작되는 때인데 부정한 짐승, 물고기, 새, 곤충의 사체와 접촉하였던 자는 이때에야 비로소 그 부정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부정한 것을 만진 자는 그때 입은 옷까지 깨끗이 빨아야 했습니다. 이는 물론 위생적으로 세균 감염 등을 제거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보다 더 큰 의미는 의식법상 부정함을 완전히 씻어버린다는 상징적 행위였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작은 모양의 죄라고 할지라도 단호하게 버리는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살전 5:22).
길짐승 중에 부정한 것은 이러하니(29-38) 땅에 기어 다니는 것 중에 부정한 길짐승은 두더지와 쥐와 큰 도마뱀 종류와 도마뱀붙이와 악어와 카멜레온 등입니다. 이러한 종류의 파충류를 부정한 것으로 규정한 이유는 그러한 것들이 하늘 대신에 땅에 속한 것에 더 애착을 가지고 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또한 배로 기어 다니는 뱀은 저주를 받았을 뿐만 아니라 인간과 적대 관계를 형성하였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이러한 것들의 주검 자체와 그 사체에 접촉한 모든 생활 도구(의복, 그릇, 생활용품, 식물 등)는 부정하게 되어 세탁하거나 깨뜨려버려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부정한 것에 접촉되어 부정하게 되지 않도록 해야 할 뿐 아니라 그 부정함을 규정에 따라 떨쳐내야 했습니다.
그 옷을 빨 것이요(39-40) 먹을 수 있는 정결한 짐승의 사체 역시 부정한 것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는 모든 생물의 죽음은 죄의 결과에 기인하기 때문입니다(롬 5:12; 6:23). 정결한 짐승이라도 그 사체를 만지거나 옮기거나 먹는 자는 부정하여 그 옷을 빨도록 했습니다.(참고 계 7:14)
적용: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이 정결하다고 하는 것을 정결하게 여기고, 부정하다고 하는 것을 부정하게 여겨야 합니다. 여러분은 이 말씀에 동의하고 살아가는지 나누어 봅시다.
예수가 오심과 더불어 신약에서는 거룩의 움직임이 능동적 차원으로 변했습니다. 그 분은 더 이상 정결한 자격을 갖추고 '찾아가야 하는 성전'이 아니라 더러운 자로 직접 '찾아오는 성전'이셨습니다. 거룩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정한 세계로 진입하셔서 부정한 세력을 밀어내시고 스스로 죽음을 받아들인 뒤 부활의 능력으로 죄와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셨습니다. 그 분의 십자가 희생으로 우리 죄는 사라지고 그 분의 거룩한 속성을 따라 우리 역시 거룩해졌습니다.
< 설 교 >
정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 6(레위기 11장 강해
레 11:24-40 / 창조신학연구소 소장 조덕영 박사(조직신학)
1. 부정한 사체 접촉 금지(24-28)
1) 사체를 만지면 저녁까지 부정하다(24절)
부정한 짐승은 살아있을 동안에도 만지거나 먹는 것은 부정한 행위였다. 하물며 부정한 (곤충) 사체를 만진다는 것은 당연히 부정한 행동이었다. 부정한 자가 정결케 되기 위한 시간적 제한은 부정의 경중(輕重)에 따라 달라졌다. 당일 저녁까지의 시간은 정결케 되기 위한 최소한의 기간이었다.
2) 사체를 옮기면 저녁까지 부정하니 옷을 빨 것(25절)
영적 의미를 떠나 우리 몸을 감싸는 옷은 늘 더러운 병균의 통로이다. 옷을 빤다는 것은 정결케 하는 당연한 의식이었다.
3) 부정한 사체 규정(26-28절)
굽이 갈라진 짐승 중에 쪽발이 아닌 것이나 새김질을 하지 않는 것이나 네 발로 다니는 모든 짐승 중에 발바닥으로 다니는 것의 사체는 모두 부정하니 만지는 자는 저녁까지 부정하고 사체를 옮기는 자는 옷을 빨아야 했다.
2. 땅에 기는 동물 접촉 시 정결법(29-38절)
1) 부정한 동물 종류(29-30절)
(1) 족제비, 쥐, 도마뱀 종류, 합개(蛤蚧, 도마뱀의 일종), 육지 악어, 수궁( (守宮, 작은 유사 도마뱀), 사막 도마뱀, 칠면석척(七面蜥蜴, chameleon카멜레온을 닮은 일종의 도마뱀) 등은 부정한 동물들이었다.
(2) 이들 야생동물들은 주로 질병의 매개체(쥐 종류 등) 역할을 하며 이들 동물의 체내는 기생충과 바이러스의 집합소라 할 수 있다. 더구나 사체는 병원성 바이러스에 감염되었을 가능성이 있었다. 당시의 위생상태 아래서는 이들 야생동물들의 사체와 접촉을 금지하고 매장하는 것이 최선책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이스라엘 공동체에 치명적인 사태를 불러올 수 있었다.
1918스페인 독감이 바이러스가 알래스카의 브레비그 미션 마을에 도착한지 5일만에 이누이트 족 주민 80명 중 72명을 사망케 한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하나님께서 낯선 동물들과의 접촉을 금한 분명한 이유가 있다.
2) 시체 접촉 시 처리 방법(31-38절)
이들 기는 동물들은 부정하니 사체를 만지는 자는 저녁까지 부정하며 이들 사체가 나무 그릇이나 옷이나 가죽이나 부대에 떨어지면 저녁까지 물에 담근다. 질그릇에 떨어지면 그릇을 깨뜨려 버려야 했다. 샘물이나 웅덩이는 부정하지 않았다(가나안 땅 물은 계속 솟아나오며 물을 금지하면 유대 공동체 전체가 심각한 위기에 처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 제주도 지하수가 유사하다).
3. 정결한 짐승 사체 접촉자(39-40절)
정결한 사체 접촉자도 저녁까지 부정하였다. 그것을 먹는 자는 그 옷을 빨아야 하며 저녁까지 부정하였다. 그 주검을 옮기는 자도 당연히 부정하였으니 그 옷을 빨고 저녁까지 부정하였다. 여기서 죽은 때(“Mut”, 39절)는 먹기 위해 잡은 사체가 아닌 죽음의 원인을 알 수 없는(자연사나 사고사인) 사체를 말하였다. 하나님의 선민인 이스라엘 민족은 이 사체를 먹으면 안 되지만 이방인에게는 주거나 파는 행위가 허용 되었다(신 14:21).
레위기 11장 24~47절
찬송가 266장 ‘주의 피로 이룬 샘물’
앞선 단락에서 부정한 짐승과 정결한 짐승에 대해 설명했다면, 이어지는 본문에서는 ‘만일 사람이 먹지는 않았지만 실수로 부정한 것을 만질 경우 그 사람은 어떻게 될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답하고 있습니다. 본문은 먼저 부정한 짐승의 주검을 만졌을 경우, 그리고 땅에 기어 다니는 짐승들의 주검을 만졌을 경우, 또한 정결한 짐승의 주검을 만졌을 경우에 대해 말씀합니다. 그리고 결론적으로 음식에 대한 정결 규례의 목적을 정리하여 설명합니다.
짐승의 주검에 대한 규례(24-40)
(24-25) 이런 것은 너희를 부정하게 하나니 누구든지 이것들의 주검을 만지면 저녁까지 부정할 것이며 그 주검을 옮기는 모든 자는 그 옷을 빨지니 저녁까지 부정하리라
먹을 수 있는 짐승들을 제외하고 부정한 짐승들은 그 사체를 만지는 것이 부정하다고 규정합니다. 누구든지 정한 방법에 따라 짐승을 도살할 경우, 예를 들어 소와 양과 염소 등 제사를 드릴 때를 제외하고는 짐승의 주검을 만질 경우 부정하게 됩니다. 또한 저녁까지 부정하다는 것은 그날 저녁 곧 사체를 만진 그 날 저녁을 뜻합니다. 앞선 5장 2절에서 사체를 만진 후 모르고 있다가 자기가 만졌다는 사실을 깨달은 경우에는 속죄제를 드려야 했습니다. 본문에서는 만진 사실을 저녁이 되기까지 계속 의식하고 있는 경우를 말하며 이는 새날이 됨과 동시에 부정이 없어지는 것을 뜻합니다. 짐승의 사체를 물건 나르듯이 옮기면서 만졌을 경우에도 부정하게 됩니다. 이럴 경우에는 지나치다가 우연히 주검을 만진 자에 비해 부정함이 더 크기 때문에 그의 옷을 빨아야 했습니다. 제사까지는 드리지 않아도 되기에 상대적으로 크지 않은 죄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어떠한 죄와 잘못에 대해 돌이키고 회개하고 바로잡을 기회를 주십니다. 그 옷을 빨아 부정함을 면하게 하도록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미워하시지만,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그것이 속죄제, 속건제이고, 또 그 옷을 빠는 방법이 있었습니다. 신약에 와서 우리는 모든 죄를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의 보혈을 통해 사함을 받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죄를 인정하느냐입니다. 죄를 깨달았다면 우리는 그리스도 앞에 나아가 주님의 보혈로 사함의 은총을 받을 수 있습니다.
(26-28) 굽이 갈라진 모든 짐승 중에 쪽발이 아닌 것이나 새김질 아니하는 것의 주검은 다 네게 부정하니 만지는 자는 부정할 것이요 네 발로 다니는 모든 짐승 중 발바닥으로 다니는 것은 다 네게 부정하니 그 주검을 만지는 자는 저녁까지 부정할 것이며 그 주검을 옮기는 자는 그 옷을 빨지니 저녁까지 부정하리라 그것들이 네게 부정하니라
굽이 갈라진 짐승 중에서 쪽발이 아닌 것은 앞선 4절의 낙타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발바닥으로 다니는 짐승은 굽으로 다니는 동물과 대조되는 개나 고양이, 사자, 곰 등을 표현하는 말입니다. 마찬가지로 이러한 부정한 짐승의 주검을 만진 자는 저녁까지 부정하며, 주검을 손으로 들고 옮긴 자는 그 옷을 빨아야 했습니다.
29절부터 31절까지는 땅에 기는 길짐승의 주검을 만지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32절에서는 부정한 짐승의 사체가 그릇이나 의복이나 자루 등에 떨어지게 될 경우 역시 그 사람이 부정하게 됨을 설명합니다. 어떤 일을 할 때 필요한 도구나 기구에 부정한 짐승의 사체가 접촉되었을 때도 부정하게 되었습니다. 그럴 경우 물에 저녁까지 담가두면 이후 부정이 사라지게 됩니다.
주검이 물건 위에 떨어져도 부정하게 되어 그것을 깨뜨려야 했습니다. 36절에서는 반면 샘물이나 물이 고인 웅덩이에 떨어지면 부정하게 되지 않는다고 말씀하는데 아마도 흐르는 물로 인해 물이 계속 교체되었기 때문이거나 물 자체가 정결하게 하는 효력이 있는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일 것입니다. 또한 37절, 38절에서는 파종할 종자 씨에 떨어질 경우에는 부정하지 않았지만, 종자에 물이 묻은 경우에 그것에 떨어지면 부정하게 되었습니다. 물이 묻음으로 생명 활동이 시작된 것으로 보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어서 먹을 수 있는 짐승이 죽은 경우에 대해 설명합니다.
(39-40) 너희가 먹을 만한 짐승이 죽은 때에 그 주검을 만지는 자는 저녁까지 부정할 것이며 그것을 먹는 자는 그 옷을 빨 것이요 저녁까지 부정할 것이며 그 주검을 옮기는 자도 그의 옷을 빨 것이요 저녁까지 부정하리라
먹을 만한 짐승이 죽은 것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허용된 짐승 곧 소, 양, 염소 중에서 그 짐승들이 자연사를 한 경우를 뜻합니다. 제사를 드리기 위해 죽인 경우에는 그것을 먹을 수 있었지만, 자연사한 짐승을 접촉한 것은 그 자체로 부정한 것이었습니다. 종합적으로 살펴볼 때 죽음 자체가 부정한 것과 연결이 됨을 알 수 있습니다. 주검 곧 사체를 만지는 경우에만 부정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가증히 여기고 혐오하라고 하신 짐승들도 살아 있는 상태에서는 부정을 옮기지는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을 아름답게 창조하셨고 모든 동물을 본래 거룩하게 만드셨습니다. 그러나 생명이 끊어진 죽음으로 인해 부정하게 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죽음이 생명에 반하는 것이고 죽음 자체가 창조의 목적을 파괴하는 것임을 가르쳐 줍니다. 신약 시대에 와서도 역사적으로 인간을 부정하게 만드는 것들이 있어 왔습니다. 오늘 이 시대에도 가정을 더럽히는 것들, 직장과 이 사회를 더럽히는 것들은 무엇인지 묵상해 보아야겠습니다. 세상적인 가치관, 또한 진리에서 벗어나는 말과 행동들, 누군가를 죽이고 파괴하는 모든 것들은 반기독교적인 것임을 봅니다. 기독교의 정신은 죽이는 것이 아니라 살리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죽음이 아닌 생명을 위한 일에 교회는 힘써야 합니다. 생명을 살리는 사역이 무엇인지 늘 점검하고 돌아보아야겠습니다.
음식 정결법의 결론(41-47)
(41-43) 땅에 기어 다니는 모든 길짐승은 가증한즉 먹지 못할지니 곧 땅에 기어다니는 모든 기는 것 중에 배로 밀어 다니는 것이나 네 발로 걷는 것이나 여러 발을 가진 것이라 너희가 먹지 말지니 이것들은 가증함이니라 너희는 기는 바 기어다니는 것 때문에 자기를 가증하게 되게 하지 말며 또한 그것 때문에 스스로 더럽혀 부정하게 되게 하지 말라
41절에서 43절은 앞에서 먹지말라고 구분했던 짐승에 이어서 땅에 기는 길짐승 곧 곤충을 비롯한 파충류와 설치류 등의 짐승을 먹지도 말고 접촉하지도 말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면서 그 이유를 설명합니다.
(44) 나는 여호와 너희의 하나님이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몸을 구별하여 거룩하게 하고 땅에 기는 길짐승으로 말미암아 스스로 더럽히지 말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왜 이렇게 부정한 것과 정결한 것을 구분하라고 하셨겠습니까? 44절을 새번역으로 읽겠습니다. “나는 주 너희의 하나님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몸을 구별하여 바쳐서, 거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게 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을 닮아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거룩을 요구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거룩에 우리가 참여하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 말씀에는 이 생명을 보호하려는 하나님의 의도가 포함되었다고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이 짐승들과 곤충들을 부정하게 만드심으로써 이 생물들이 생육하고 번성할 수 있도록 하신다는 것입니다. 먹는 것을 금하여 오히려 그 개체와 생명을 보존하려 하시는 것으로 보는 견해입니다. 제한된 짐승들 중에 꼭 필요한 만큼만 먹을 것으로 취하되, 나머지 짐승들과 곤충들은 끊임없이 생육하고 번성하여 하나님의 창조 섭리를 이어 나가도록 하라는 취지로 보는 것입니다.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이어서 나오는 부정한 짐승에 대한 말씀의 결론을 통해 그 의미를 좀 더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45-47)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이는 짐승과 새와 물에서 움직이는 모든 생물과 땅에 기는 모든 길짐승에 대한 규례니 부정하고 정한 것과 먹을 생물과 먹지 못할 생물을 분별한 것이니라
세상의 생물들 중에 먹을 수 있는 것과 먹을 수 없는 것을 분별하라는 말씀은 창세기 1장을 배경으로 합니다. 하나님은 창조의 처음 3일 동안 구분하는 사역을 하셨습니다. 빛과 어둠, 하늘의 물과 땅의 물, 바다와 육지를 구분하셨습니다. 이러한 창조 섭리가 정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의 구분에 암시되어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정한 것과 부정한 것을 구분하는 것처럼 선과 악을, 옮음과 그름을, 거짓과 진실을 구분할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정결한 것은 생명, 건강 그리고 거룩에 부합하는 반면, 부정한 것은 죽음, 병 그리고 속된 것에 부합합니다. 매일의 정결 의식 준수는 이스라엘의 사회적이고 영적인 발전에서 큰 힘을 발휘했습니다. 정결 의식은 이스라엘 백성의 유대를 강화시켰습니다. 이것을 충실히 준행하면 모든 신실한 이스라엘 사람들의 양심 속에 하나님께 대한 복종을 깊이 심어줌으로써 그 민족의 영적인 발전을 촉진시키게 됩니다. 이스라엘의 정결법은 그들이 어떤 사람들인지를 말해 주었습니다. 그들로 하여금 일정한 표준에 맞는 행동을 하도록 헌신하게 만들어주었습니다.
때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레위기의 음식에 대한 규정도 그렇습니다. 그러나 목적은 분명합니다. 일상에서 정결한 것과 부정한 것을 구분하게 하는 것이 이 율법의 목적입니다. 성결한 삶은 주의 백성이 예배 처소를 찾았을 때, 혹은 종교적인 의식에 참여할 때만 요구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일상에서 매일 요구됩니다. 신약시대를 사는 우리는 비윤리적인 것과 부도덕한 것들을 구분하고 거룩한 삶을 살도록 힘써야 합니다.
또한 보다 근원적으로, 몸으로 들어가는 것이 우리를 부정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입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의 속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부정하게 한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정결법을 통해 배울 수 있는 것은 먼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구별되는 것의 중요성입니다. 세상 속에서 빛과 소금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구별된 삶을 의미합니다. 또한 로마서 12장 1절 말씀처럼, 우리 몸을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는 거룩한 삶을 살도록 더욱 힘써야 하겠습니다. 오늘도 눈을 들어 주님을 바라보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삶을 위해 주님과의 친밀한 교제의 자리, 기도의 자리로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는 하루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시고 그들에게 정결의식을 통해 거룩한 삶을 살도록 하신 의미를 묵상하게 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도 죽음이 아닌 생명을 살리는 일에 힘쓰며, 우리 자신을 주님 닮은 거룩한 모습으로 드려질 수 있도록 매 순간 저희를 붙들어 주시옵소서. 거룩한 삶을 위해 더욱 더 눈을 들어 밤이 새도록 기도하셨던 주님을 바라보도록 도와주시옵소서. 또한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의 시간,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 긴 호흡, 깊은 호흡의 기도를 드릴 수 있도록 저희를 인도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하나님은 거룩하셔서 우리에게도 거룩을 요구하십니다. 오늘날 가정과 직장에서 부정한 것들을 멀리하기 위한 방법은 무엇이 있을지 묵상해 봅시다.
2. 하나님은 부정하게 되었을 때 그 옷을 빨아서 정결하게 되는 방법을 제시해 주셨습니다. 오늘 그리스도 앞에 나아가 자백하며 정결하게 되어야 할 죄는 무엇입니까?
3. 그리스도인은 죽음이 아닌 생명을 살리는 일에 더욱 힘써야 합니다. 오늘날 교회가 앞장 서서 힘써야 할 생명 살리는 일은 무엇일지 묵상해 봅시다.
4. 눈을 들어 주님을 바라보며 거룩한 삶을 살기 위해 주님과의 친밀한 교제의 자리를 어떻게 만들어가야 하겠습니까?
성(聖)과 속(俗)을 구별하라
레 11:1-47 / 울산목양교회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이는 자기 백성들에게 사랑을 주시는 분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는 역설적으로 다가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죄인을 죽이는 것입니다.
우리가 죽어야 할 자리에 예수님을 대신 죽이셔서 우리의 죄를 도말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에게 십자가로 다가오십니다.
십자가로 다가오시는 것은 우리의 옛 사람을 죽이기 위함입니다.
세상에 대한 정과 욕심을 버리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우리 옛 사람은 흙에서 나서 흙에 기운으로 살아가는 자입니다.
흙에서 난 사람은 세상에 대한 정과 욕심으로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가 가장 좋아하는 세상에 대한 정과 욕심을 죽이는 일을 하십니다.
이걸 사랑이라고 합니다.
어째서 세상에 대한 정과 욕심을 죽이는 것이 사랑인가요?
이는 땅에 것을 빼앗음으로 하늘로 나아가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구약의 이스라엘은 애굽이 살기 좋았을 때는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애굽에서 핍박과 고난이 심하자 하나님께 살려 달라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그들을 애굽에서 뽑아내는 일을 하셨습니다.
이게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을 사랑하는 사랑 법입니다.
아담이 범죄하고 난 후 하나님은 땅을 저주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흙에는 나는 것으로는 생명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생명은 하늘로서 나는 것을 먹어야 합니다.
그것이 예수그리스도라는 생명의 떡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자기 백성들의 양식으로 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나는 하늘로서 온 생명의 떡이라고 합니다.
누구든지 나를 먹고 마시면 영생을 얻는다고 하셨습니다.
어떻게 예수를 먹을 수 있을까요?
이는 성령이 오셔서 먹게 하십니다.
그것이 주 예수를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나라는 하늘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떡의 가치로 살지 않고 하나님 말씀의 가치로 살았습니다.
신앙생활은 세상의 가치로 살지 않고 하늘의 가치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사실을 자기 백성들에게 알리시는 일을 하십니다.
그것이 구약에서는 각종 정결 규례로 나타났습니다.
하나님은 출애굽 한 백성들에게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고 합니다.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내가 너희를 애굽에서 빼내 온 것은 너희를 거룩케 하고자 하심이라고 합니다.
너희가 어떻게 거룩함을 입었고,
그 거룩을 어떻게 지켜내는지를 가르치는 일을 하십니다.
이스라엘은 출애굽 시에 어린 양의 죽음으로 죽음의 재앙으로부터 살아났습니다.
그리고 홍해를 건너서 광야로 나옵니다.
사도 바울은 이스라엘이 홍해를 건너 온 것을 세례라고 하였습니다.
세례란? 옛 사람의 죽음을 상징합니다.
이스라엘이 홍해를 건넌 것은 애굽의 사람이 죽임을 당한 것입니다.
옛 사람이 죽고 새 사람으로 살아난 것입니다.
애굽의 사람은 죄 아래서 난 사람이고,
홍해를 건너온 사람은 어린 양에서 살아난 사람입니다.
죄 아래서 난 사람은 죄인이고,
어린 양 안에서 난 사람은 거룩함을 입은 거룩한 사람입니다.
거룩은 어린 양의 죽음으로 주어진 거룩입니다.
하나님은 이 사실을 기억케 하시려고 제사 제도를 주신 것입니다.
성막에서 드려지는 제사는 어린 양의 희생을 기념케 하는 제사입니다.
백성들은 자신들이의 죄를 대신하여서 흠 없는 제물로 제사를 드리면서 자신들이 살고 있는 것은 어린 양의 죽음 때문임을 알아야 합니다.
신앙생활이란? 어린 양으로부터 주어진 거룩을 보존하고 유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린 양으로 거룩함을 입은 자들에게 거룩한 삶을 요구하십니다.
너희는 거룩한 자이므로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거룩한 사람으로 살아가는지를 레위기를 통해서 말해주고 있습니다.
거룩한 삶의 모습을 날과 달과 절기와 월삭을 지키는 것과 입고 먹고 마시는 것과 또한 이웃과 어떻게 살아가는지 모든 삶의 부분 속에 담아 두셨습니다.
레위기는 거룩을 가르치는 말씀입니다.
1-10장까지는 어떻게 거룩해지는지를 5대 제사를 통해서 알려 주었습니다.
거룩은 흠 없는 제물의 희생을 통해서 주어진다는 것을 5대 제사를 통해서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리고 11장부터는 흠 없는 제물의 희생으로 거룩을 입은 자들이 어떻게 삶 속에서 그 거룩을 유지해 가는지를 여러 가지 정결규례를 통해서 말해주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정결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으로 말해주고 있습니다.
짐승 중에서도 먹어야 할 것과 먹지 말아야 할 것으로 말해주고 있습니다.
짐승의 특징을 가지고 거룩과 비거룩을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교육 중에서 은물 교육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어린아이들을 교제를 가지고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게 하면서 사물의 이치를 가르치는 교육법을 말합니다.
쉬운 말로 시청각 교육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짐승을 가지고 은물 교육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한 것들은 모두가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것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짐승 중에서 이러한 것은 거룩하고 저러한 것은 속된 것으로 규정을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거룩하고 속된 것이 없습니다.
다만 이스라엘에게 성(聖)과 속(俗)을 구별하는 교육 차원에서 짐승의 특징과 속성들을 가지고 설명을 하고 있는 것뿐입니다.
짐승 중에서 이런 신체적 구조를 가진 놈들은 정결한 것이고 저런 몸의 구조를 가진 놈들은 부정한 것으로 구분을 해 놓은 것입니다.
짐승의 특성을 가지고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율법 아래서 규정입니다.
미리 말씀 드리지만 예수님의 십자가 이후 새 언약 안에서는 성과 속의 기준이 달라졌습니다.
예수 안은 성이고, 예수 밖은 속입니다.
신약에서는 정결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은 없습니다.
그냥 짐승일 뿐입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옛 언약 아래서는 유대인은 정결하고, 이방인은 부정하였습니다.
그러나 새 언약 안에서는 예수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정한 자이고,
예수그리스도 바깥에 있으면 부정한 자가 됩니다.
하나님은 베드로에게 이 사실을 알려 주었습니다(행 10:11-16).
베드로는 기도 중에 하늘에서 큰 보자기에 각종 짐승을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잡아먹으라고 하였습니다.
이에 베드로는 율법적 기준으로 이러한 것은 부정한 것이므로 먹지 않겠다고 합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내가 깨끗하다고 하는데 네가 왜 부정하다고 하느냐고 책망합니다.
베드로는 이것이 무얼 뜻하는지 몰랐습니다.
그런데 기도가 끝나자 이방인인 고넬료의 집에서 초청이 왔습니다.
베드로는 이를 기도 중에 보여주신 응답인 것을 알고 이방인인 고넬료의 집에 가서 복음을 전하게 되고 고넬료의 집 사람들이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율법 아래서는 이방인은 부정한 짐승과 같습니다.
그런데 새 언약 안에서 유대인과 이방인은 차이가 없어졌습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베드로가 본 환상 속의 각양의 짐승들은 이방인을 뜻하고 있는 것입니다.
구약의 율법 아래서 말하던 정결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 이야기가 신약에서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와 그리스도 밖에 있는 자로 나타난 것입니다.
구약은 그림자이고 신약은 실상입니다.
하나님은 구약의 그림자 속에 신약의 영적 의미를 담아 놓은 것입니다.
율법 속의 먹고 마시는 문제가 신약에서는 복음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구약에서는 교육용으로 짐승으로 정결한 것과 부정한 것으로 구분을 하였지만,
신약에서는 복음 안에서 영적인 의미가 이해가 되었으면 짐승을 먹어도 되느냐 안 되느냐 로 가릴 것이 없습니다.
안식교에서처럼 돼지고기는 부정한 것이므로 먹어서는 안 된다고 하면 안 됩니다.
그건 구약을 살고 있는 사람입니다.
토요일을 안식일이라고 하는 것도 틀린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날과 달과 절기와 먹고 마시는 모든 것을 폐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음식으로 성과 속을 나누고 날을 가지고 성과 속을 구분하는 것은 스스로 율법 아래 있음을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지 않음이 되므로 이방인과 다름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구약의 먹고 마시는 율법의 조문들을 다 도말을 하셨기 때문에 믿음으로 받으면 돼지도 소나 양처럼 먹을 수 있는 짐승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짐승으로 정결하다 부정하다 나누일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에덴동산에서 뱀이 인간을 미혹하였습니다.
뱀은 사단을 상징하는 것이지 뱀 자체가 사단은 아닙니다.
뱀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입니다.
뱀은 그저 뱀일 뿐입니다.
하나님은 들짐승인 뱀을 사단의 표상으로 사용한 것입니다.
우리가 뱀을 보고 사단아 물러가라고 하면 안 됩니다.
정결하고 부정한 짐승도 마찬가지입니다.
예를 들어서 소는 정결하고 돼지는 부정하다고 분류를 해 놓았습니다.
그렇다고 소는 깨끗하고 돼지는 더럽다는 뜻이 아닙니다.
소는 먹어도 되고 돼지는 먹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율법 아래서는 부정하다고 분류한 돼지는 먹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신약의 은혜 아래서는 소나 돼지는 그냥 짐승일 뿐입니다.
노아의 방주에는 정결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이 함께 타고 있었습니다.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로 홍수 속에서 살아났습니다.
이렇게 되면 노아의 방주 안에서는 정결한 짐승이나 부정한 짐승이나 차별이 없습니다.
홍수가 끝이 난 후 노아는 정결한 짐승을 잡아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립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그 제사를 흠향하시고 노아 언약을 세우십니다.
흠 없는 제물의 희생을 근거로 다시는 물로 심판하지 않겠다고 하십니다.
이것은 흠 없는 제물의 희생으로 세상을 유지하시겠다는 뜻입니다.
홍수 후에 살아가는 자들은 자신들이 죄 아래서 살 수 있는 것은 흠 없는 제물의 희생이라는 것을 기억하여야 합니다.
그래서 율법이 있기 전에도 사람들은 흠 없는 제물의 희생 제사들은 드렸던 것입니다.
율법이 오기 전에는 정결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이 어떤 것인지를 몰랐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출애굽 한 이스라엘에게 율법이 주어지면서 그 정체가 드러납니다.
하나님은 짐승의 특징을 가지고 정결과 부정을 가르칩니다.
먹을 수 있는 것과 먹어서는 안 되는 것을 알려 주십니다.
그럼 정결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이 어떤 것인지 살펴봅시다.
첫째, 짐승들 중에서 구별법입니다.
정결한 짐승은 굽이 갈라지고 되새김질 하는 것으로 먹어도 되는 것이지만,
반대로 굽이 갈라지지 않거나 되새김질을 하지 않는 것은 부정한 것으로 먹어서는 안 됩니다.
둘째, 바다의 물고기 중에서 구별법입니다.
바다의 물고기 중에서 정결한 고기는 비늘과 지느러미가 있는 것으로서 먹어도 되지만,
반대로 비늘이나 지느러미가 없는 고기는 부정한 것으로 먹어서는 안 됩니다.
셋째, 하늘을 나는 새와 곤충들 구별법입니다.
하늘을 나는 새와 곤충들 중에서 먹을 수 있는 정결한 새는 날개가 있어 날아다니고 것이라야 하고 곤충은 땅에서 뛰는 것이라야 합니다.
반대로 날개는 있어도 땅에서 걸어 다니는 것은 부정한 것으로 먹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하늘을 나는 새 중에서는 고기를 먹는 맹금류와 같이 포악한 것들은 부정한 것으로서 먹어서는 안 됩니다.
짐승이나 고기나 새를 의인화 하면 신자와 불신자를 상징합니다.
사람들 중에서도 하나님이 받으시는 사람이 있고,
하나님이 받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거룩한 사람은 받으시고 부정한 사람은 거부하십니다.
누가 거룩한 사람이고,
누가 부정한 사람인가요?
그것은 정결한 짐승의 특성과 부정한 짐승의 특성으로 말해주고 있습니다.
굽이 갈라졌다는 것은 구별이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이는 세상 사람들과 구별되게 살아간다는 뜻입니다.
되새김질을 하는 것은 말씀을 듣고 묵상한다는 의미입니다.
하늘을 날고 땅에서 뛰는 것은 하늘의 기운으로 살아가고 천국에 소망을 두고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특히 하나님은 땅에 기어 다니는 것들은 가증이 여기므로 절대로 먹어서는 안 된다고 하십니다.
땅에 기어 다닌다는 것은 땅의 기운으로 살고 있다는 뜻입니다.
땅의 기운으로 산다는 것은 땅의 소속이라는 뜻입니다.
양식이 그 사람의 소속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늘 소속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늘의 기운으로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이를 알려 주시고자 어린 양의 피로 출애굽을 하여 광야에 나온 백성들에게 하늘에서 만나를 주어서 먹게 하신 것입니다.
신자와 불신자는 생명이 다릅니다.
신자는 하늘의 생명을 가진 자이고,
불신자는 땅의 생명을 가진 자입니다.
하나님은 각자 먹을 양식들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하늘에 속한 자들에게는 하늘의 기운으로 살아가는 것을 먹게 하셨고,
땅에 속한 자들에게는 땅의 기운으로 살아가는 것을 먹게 하셨습니다.
생명이 다르다는 것은 먹을 양식이 다르다는 뜻입니다.
하늘의 생명을 가진 자는 하늘의 양식을 먹어야 하고,
땅의 생명을 가진 자는 땅의 양식을 먹어야 합니다.
하늘에 만나를 일컬어 하늘에 있는 천사들이 먹는 양식이라고 하였습니다.
출애굽 한 백성들에게 하늘의 천사들이 먹는 양식을 주신 것은 어린 양의 희생으로 살아난 자들은 하늘의 백성이라는 뜻입니다.
이를 땅의 접촉으로부터 벗어나 뛰거나 날아다니는 것들을 정결한 짐승으로 규정하고 먹게 함으로서 너희는 하늘에 속한 자라는 정체성을 알려주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정결한 짐승은 먹고 부정한 짐승은 멀리함으로서 우리는 땅이 기운으로 사는 자가 아니라 하늘이 기운으로 살아가는 자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애굽은 땅의 기운으로 살아가는 곳이고,
광야는 하늘의 기운으로 살아가는 곳입니다.
땅의 기운으로 살던 자는 출애굽 때 홍해에서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광야에 나온 자들은 만나를 먹고 하늘의 기운으로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애굽에서는 정결과 부정 구분치 않고 모든 것을 먹었습니다.
그러나 광야에서는 정결과 부정한 것을 구분하여서 기어 다니면서 흙의 기운으로 살아가는 것은 먹어서는 안 되고 땅에서 뛰면서 하늘의 기운으로 사는 것만 먹어야 합니다.
하늘이 백성이기 때문에 하늘의 것을 먹으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신약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도는 하늘에 속한 자들입니다.
그래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고 합니다(골 3:1-5).
너희는 하늘에 속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땅에 지체(육신의 소욕)를 죽이라고 합니다.
너희는 하늘 백성이니 하늘의 기운으로 살아가라는 뜻입니다.
신앙의 싸움은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새 사람을 입는 것입니다.
육신의 소욕을 죽이고 성령의 소욕을 쫓아가는 것입니다.
왜 전쟁이라고 할까요?
이는 진 자는 이긴 자의 종이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뱀에게 종신토록 흙을 먹도록 하였습니다.
흙이란? 이 세상을 말합니다.
그래서 마귀를 이 세상 신이라고 합니다.
세상 임금이라고 합니다.
마귀는 세상 것으로 미혹합니다.
마귀는 예수님에게 세상 것으로 미혹하였습니다.
자기에게 절만 하면 세상의 모든 부귀영화와 권세를 주겠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위임을 받은 것이므로 자기가 원하는 자에게 주겠다고 하였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사람이 떡으로 살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산다고 하면서 거절하였습니다.
마귀는 어느 시대이고 떡으로 미혹하였습니다.
온 인류가 이 미혹에 빠졌습니다.
우리가 죄 아래 있을 때는 마귀가 주는 떡의 기운으로 살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사람으로 살아났습니다.
그 증거로 우리 안에 하늘로부터 성령이 오셨습니다.
성령은 우리 안에서 하늘에 기운으로 살도록 간섭하십니다.
성령께서 육신의 소욕을 죽이는 전쟁을 하십니다.
세상 가치로 살지 않고 하늘의 가치로 살아가도록 하십니다.
세상에 대한 정과 욕심을 죽이게 하십니다.
이것이 우리 안에서 일어나는 거룩한 전쟁입니다.
성령의 소욕과 육신의 소욕이 싸우는 거룩한 전쟁입니다.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죽이는 전쟁입니다(요일 2:15-17).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은 모두가 세상으로부터 온 것입니다.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는 말은 세상의 기운이라는 뜻입니다.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은 죽음의 기운인 것입니다.
세상의 기운을 먹으면 세상을 떠나지 못하게 됩니다.
그래서 주검을 만지지 말라고 합니다.
주검을 만지지 말라는 것은 죽은 자들과 함께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늘에 속한 자는 산 자이고 땅에 속한 자는 죽은 자입니다.
산 자와 죽은 자와 함께 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함께 할 수가 없듯이,
믿는 자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할 수가 없습니다.
하늘에 속한 자와 땅에 속한 자는 멍에를 함께 할 수가 없습니다.
산 자와 죽은 자가 함께 하면 산 자가 피해를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멍에를 같이 하면 믿는 자가 손해를 입게 됩니다.
착한 아이와 불량아이가 놀면 착한 아이가 불량 아이로 물들어 버리는 것과도 같습니다.
부모들은 아이에게 불량한 아이는 멀리하고 착한 아이와 가까이 사귐을 가지라고 합니다.
이는 착함이 악함에게 먹힘을 당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성과 속이 함께 하면 속이 성을 삼켜버립니다.
그래서 구원이 애굽에서 빼내심을 입는 것으로 주어진 것입니다.
세상 속에서 교회로 빼내심을 입는 것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거룩이란? 구별입니다.
거룩한 삶이란? 구별된 삶을 말합니다.
세상 가치로 살지 않고 하늘의 가치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새 언약 안에서는 누구의 의로 사느냐로 성과 속이 구분이 됩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의는 성이고 인간의 의는 속입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의로 살아가는 것이 정결한 짐승을 먹는 것이고,
인간의 의로 살아가는 것은 부정한 짐승을 먹는 것입니다.
부정한 짐승은 먹지 말라는 것은 인간의 의로 살지 말라는 것이고,
정결한 짐승을 먹으라는 것은 예수그리스도의 의로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 살면 거룩한 자이고,
자기 의로 사는 자는 부정한 자입니다.
이 시대는 혼합 주의가 창궐하고 있는 때입니다.
인본주의가 교회 안에 휩쓸고 있습니다.
영적으로 깨어서 잘 분별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