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 진영이 넷플릭스에서 큰 화제를 모으고 있는 영국 리미티드 시리즈 '소년의 시간'(Adolescence, 사춘기란 뜻, 4부작)을 이민자 논쟁으로 변질시키려 애쓴다고 온라인 매체 데일리 비스트가 20일(현지시간) 전했다. 물론 제작진은 전혀 의도한 바와 다르다고 반박하고 있다.
영국의 어린 소년이 급우를 살해한 혐의로 체포된 날 그의 집과 경찰서(1화 65분), 72시간 뒤 학교(2화 51분), 7주 뒤 구치소(3화 52분), 13개월 뒤 그의 집 등(4화 60분)에서 벌어진 일을 리얼타임으로 생생히 그렸다. 모든 편을 '롱 테이크'('원 테이크')로 촬영해 박진감을 더한 것은 물론, 세상 어디에나 있을 법한 일로 관객들이 느끼게 한 것이 시리즈의 장점이다. 작가 중 한 명인 잭 손은 BBC 라디오 2 인터뷰를 통해 이 쇼는 “남성의 화, 남성의 분노"에 관한 것이라고 털어놓았다. 이 쇼가 방영된 영국 전역에서 남성 폭력에 관한 논의가 봇물 터졌고, 영국 의회는 물론 키어 스타머 총리까지 전날 입에 올릴 정도로 큰 화제를 모으고 있다.
손과 함께 시리즈에 문제의 소년 제이미 밀러(오언 쿠퍼)의 아빠 역을 맡아 빼어난 연기까지 뽐낸 스티븐 그레이엄은 남성 잡지 GQ 인터뷰를 통해 남성이 여성에게 휘두르는 폭력을, 그것도 "온라인 과격화'를 앞세워 극본을 썼다고 털어놓았다. 그레이엄은 자칭 여성혐오주의자 앤드루 테이트가 스토리 라인에 영향을 미쳤음을 인정했다.
그러나 MAGA와 영국 우파 모두 떨떠름해 하고 있다. 그들의 일부는 주인공으로 왜 백인 소년을 기용했느냐고 딴지를 걸고 있다. 지난 2023년 9월 열다섯 살 소녀를 흉기로 살해한 혐의로 지난주 종신형이 선고된 당시 열일곱 살 흑인 소년 하산 센타무 스토리에 바탕을 둔 시리즈란 설명을 붙였다.
아일랜드 극우 이데올로거 키스 우즈는 엑스(X)에 “이것이 넷플릭스가 영국의 열세 살 소녀 흉기 살해범을 묘사한 방식이다. 두 번째 이미지는 (이 시리즈가) 근거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설명을 달았다. 일론 머스크는 우즈의 포스트를 리트윗했다.
그는 주인공 제이미 밀러를 연기한 쿠퍼의 옆에 센타무를 배치한 뒤 엘리안느 앤덤을 살해한 그의 얘기가 '소년의 시간'에 유일하게 영감을 제공했다고 잘못된 주장을 늘어놓았다.
센타무가 우간다 태생인 것은 영국 우파들의 구미에 딱 맞는 얘기였다. 센타무는 세 살 무렵 런던으로 이주했다. 일간 더스탠다드는 센타무가 한 친구에게 "진짜 난 악마다. 시커멓고 비참하다"고 엘리안느를 죽이기 몇 주 전에 털어놓은 일이 있었다고 보도했다. 엘리안느는 헝겊 인형을 놓고 언쟁을 벌이다 흉기에 목숨을 잃었다.
주인공으로 백인 배우를 기용하려고 애쓴 것만 봐도 이민자들이 저지른 극악한 범죄를 윤색하려는 의도를 분명히 드러낸 것이라고 공격하는 이들도 있었다. 미국인으로 보이는 누리꾼은 “당신네 쇼가 살인자 인종을 바꿔친 것은 이민자 문제를 '유해한 남성성'(toxic masculinity)으로 바꾼 것이야말로 심한 악마성과 솔직하지 못함이며, 내 분노를 적절하게 표현할 수가 없을 정도”라고 적었다.
영국 초보수파 TV 네트워크 GB 뉴스의 진행자 패트릭 크리스티스는 그 쇼가 "백인 노동계급 소년들을 불공평하게 악마화하고 있다”고 개탄하고 있다.
미국의 조이 만나리노와 친한 영국 우파 치어리더 대런 그라임스는 이 쇼가 “반남성 프로파간다”라고 공격 수위를 올렸다. 그는 작가들이 "가공의 백인 악당들을 지어냈다"고 짐작했다. 그라임스는 자신의 홈페이지에 “넷플릭스의 ‘다시 그려진' 세계 안에서 가해자는 마법을 부려 백인이 됐다. 마치 현실이 그들의 편안한 내러티브에 깔끔하게 들어맞지 않는 것 같다면 거의 그런 식이다. 급진적인 백인 남자라고? 아보카도와 토스트처럼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라고 적었다.
영국에서는 센타무 말고도 지난해 7월 사우스포트에서 세 어린 소녀들을 살해한 혐의로 종신형이 선고된 액셀 루다쿠바나도 이민자 출신이며 흉기를 이용해 범행한 점이 사회문제로 거론되고 있다. 한 X 비평꾼은 “이것은 실제로는 이민자들인데 그들이 백인 남자들이 문제라고 우리를 어떻게 화이트워싱(백인이 아닌 캐릭터인데도 백인을 캐스팅하는 일) 하는지 잘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이런 주장은 지난해 7월 잉글랜드에서 세 여성을 살해한 혐의로 얼마 전 징역형이 선고된 카일 클리퍼드 같은 백인 여혐주의 살인범들이 있음을 못 본 척한다.
그레이엄은 넷플릭스 보도자료에 이렇게 말한 것으로 나온다. “우리 목표 중 하나는 '요즈음 우리 어린 남자애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그리고 그애들이 또래에게나 인터넷, 소셜미디어에게 받는 압력은 어떤 것일까'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넷플릭스는 '소년의 시간'이 영국의 황망한 흉기 범죄들에 영감을 얻은 것이 맞지만, 이 시리즈는 허구이며 어느 한 사례에 바탕을 둔 것은 아니라고 데일리 비스트에 해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