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구 前충남도지사, 당선자에게 바란다
‘정치-행정’ 균형 잃으면 결국 도민들에게 피해
4대강 사업, 금강 죽이기?
안희정 당선자 마음 열길
“시도지사는 ‘정치’와 ‘행정’이라는 양 날개로 균형을 이루면서 시정과 도정을 이끄는 자리입니다. 정치적인 자리로만 생각한다면 시도민이 피해를 보고 공직 내부도 마음으로 승복하지 않죠.”
이완구 전 충남도지사(사진)는 8일 동아일보 기자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이번 선거에서 당선된 일부 시도지사들이 너무 강한 정치적 성향을 드러내고 있다는 말을 듣고 있다”며 이같이 지적했다. 그는 지방선거일인 2일 저녁 미국 로스앤젤레스행 비행기에 올랐다. 로스앤젤레스의 한 로펌에서 인턴십을 밟고 있는 둘째 아들과 한동안 지내기 위해서다.
―오랜만의 망중한(忙中閑) 아닌가요.
“선거 기간 하루도 빠짐없이 충청지역 한나라당 후보 지원 유세를 하느라 몸도 마음도 많이 지쳤죠. 오랜만에 가족의 소중함도 깨닫고 심신도 재충전하는 기회를 갖고 있어요. 하지만 책은 한보따리 가져왔어요. 감세 및 증세, 남북관계, 녹색성장 등 국정현안에 관한 책들이죠. 관심은 있지만 도지사 생활로 바빠 읽지 못했던 것들이에요.”
―선거를 열심히 도왔는데 한나라당은 충청권에서 완패했습니다.
“야당의 정권심판론과 견제론도 일부 효과를 발휘했지만 더 근원적으로는 한나라당이 선거이슈(세종시, 4대강, 천안함 등)에서 국민의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했기 때문이죠. 충청도에서는 세종시 문제로 ‘한나라당 한번 당해봐라’라는 반감이 확산됐어요. 정부와 여당은 민심을 제대로 읽으려는 노력이 부족했어요.”
―이번 선거 결과로 세종시 수정 방침에 대수술이 불가피해졌는데요.
“정부는 서두르지 않되 어떻게든 이 문제를 종결해야 합니다. 복잡하고 상충되는 것 같지만 해법에는 이런 것들이 담겨야 합니다. 수도권 과밀화 해소와 국토균형발전 철학, 지방과 수도권의 윈윈 전략, 충청권 이외 지역의 박탈감 해소, 충청민과의 약속, 충청의 발전…. 정부는 충청민들의 염원을 이해한다는 전제에서 정서적으로 마음이 상한 충청민들이 다소 이성적으로 문제를 볼 수 있게 도와야 합니다.”
―안희정 민주당 최고위원이 충남도지사에 당선됐습니다. ‘세대교체’라는 말도 쓰던데….
“세대교체는 나이만 젊다고 주장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세대교체의 주역이 검증이 되고 경험과 정치적 깊이가 있어야 하죠. 책임 있는 자리를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들은 위험해요. 저는 36년간 경제, 치안, 외교, 국회 등에서 일했지만 아직도 쉬운 일이 없어 보입니다. 안 당선자는 뭔지 모를 막연한 기대를 갖게 한 것 같습니다. 선거 막판에 젊은층이 많이 가세했더군요.”
―이번에 당선된 일부 시도지사들이 중앙 정부와 대립각을 세우고 있습니다.
“시도지사는 무겁고 중대한 자리입니다.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혜안과 균형감각, 그리고 폭넓은 경험과 경륜이 요구됩니다. 편향된 사고와 이념적 가치를 갖고 경도된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본다면 대단히 우려스럽습니다.”
―어떤 자세가 필요합니까.
“중앙정부에 건의할 것은 건의하고 협조할 것은 협조해야 합니다. 전임자의 성과를 존중하면서 겸손한 자세로 시정 및 도정을 이끌지 않으면 엄정한 시도민의 평가가 기다립니다. 시도지사 임기는 4년이지만 그들의 행동은 여러 선거에 영향을 미칩니다. 저는 심대평 전 지사의 업적을 존중하면서 새로운 일을 추진한 결과 4년 후 50% 이상의 높은 지지를 받았습니다.”
―4대강에서 지방정부와 중앙정부의 충돌이 예상됩니다.
“4대강 사업에서 정부의 대국민 홍보와 의견수렴 과정이 취약했습니다. 갖가지 오해를 불식시키지 못했죠. 충남도의 금강 살리기 사업은 크게 문제가 안 됩니다. 오히려 국비로 지역을 발전시킬 수 있는 호기죠. 안 당선자는 ‘금강 죽이기 사업’으로 규정지었던데 좀 더 마음을 열어야 합니다. 아마도 도정 파악이 끝나면 어떤 방법이 국가와 충청을 위한 일인지 알게 될 겁니다.”
―향후 행보에 충청민들의 관심이 많습니다.
“자유로운 입장이 됐기 때문에 국가와 국민을 위한 일이라면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으려 합니다. 도민 그리고 국민과 함께 동고동락할 날이 오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