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 숱이 워낙 많아 내가 늘 부러워 하는 사람은 곱슬머리에 안경 쓴 사람이 그렇게나 부러웠다.
쭉 뻗은 생머리는 나를 더벅머리 무식쟁이처럼 보이게 만들어 내 외모에 심한 콤플렉스를 느끼고 있던 터 ㅡ
아는 이를 살살 구슬려 미장원에서 파마약을 구해 내 머리를 말았겠다.
옛날, 김 아무개라는 개그맨이 배추머리로 줏가를 올리고 있던 모습이 좋아 그런 스타일을 만드려고 했다.
머리에 뒤집어 쓴 보자기를 풀자 생전 보지 못한 새로운 스타일의 미남이 싱긋 웃는 모습이 거울 속에서 나를 보는 게 아니겠나.
이미 안경점에서 산 도수 없는 안경을 산지라 그 모습에 턱 하니 걸치니 지적이고 매력이 넘치는 50대의 학자풍의 신사가 되더란 말이다.
내 이 모습을 만드려고 얼마나 기다렸는지, 지적으로 생긴 새털구름 모습이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른다.
그 친구의 대학교수 같은 품위있는 모습을 말은 안 했어도 정말 부러웠다.
이 모습에 여인이 좋아할 메너 있는 대화만 구사한다면 몸도 마음도 빼앗을 수 있는 멋진 카사노바가 되지 않겠냐는 말이다.
무슨 놈의 팔자가 애인 하나 없이 마누라 엉덩이만 보고 한평생 늙는다면 이것은 사나이의 수치고 가문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것이 아닌가 말이다.
다른 녀석들은 그곳을 다녀오면 낄낄거리며 무슨 전리품을 자랑하듯 여인들과의 뜨거운 잠자리 얘기를 하면 배가 아파왔다.
그 녀석의 외모를 보면 볼품도 없었고, 녀석에 비교하면 나는 아랑드롱인데 못할 이유가 무언가.
단지 하나 그 녀석에게 못한 게 있다면 춤을 못 춘다는 것뿐이다.
캬바레는 외로움에 지치고 성애(性愛)에 눈멀어 멋진 남성을 구하려고 목마른 여인들이 모이는 곳이니 눈만 찔끔하면 따라온다고 하니 천국이 따로 있는 게 아니잖아.
그 녀석들이 하는 것을 들은 풍월로 배웠기에 춤은 못 추지만 싸구려 향수를 알려 준 데로 목, 겨드랑에 뿌리고 어둠이 서서히 드리우는 샹그리라를 향해 걸었다.
외로운 여인들이여 ㅡ
그동안 얼마나 긴긴 세월을 고통스레 보내셨습니까?
이제부터 아무 걱정 마시고 즐거운 인생을 보내십시오.
나는 그대들을 위해 언제라도 봉사하고 필요할 때 달려가는 마당쇠가 될 터이니 망설이지 말고 불러만 주오.
이미 많은 이들로 가득찬 사방을 둘러 봤다.
정말 녀석들이 말한대로 구석 구석에 물 좋은 수컷을 기다리는 발정난 암캐처럼 바람난 여인들이 둘러 앉아 있는 게 보였다.
그곳은 녀석들이 말한 것처럼 물 좋고 싱싱한, 그야말로 아방궁의 궁녀들 같은 미녀들만 있는 게 아닌가.
내가 왜 진작이런 곳을 몰랐을까, 왜 춤 배우기를 중도에서 포기했을까 하는 후회가 느껴졌다.
벌써 일주일째 아내가 토라져 곁에 가 본지 오래기에 내 눈에는 모든 여인들이 아름다움 그 자체였다.
어두운 조명에서 그녀들을 보자 나는 기뻐 하마트면 "야호!"를 발성할 뻔했다.
남자는 이럴수록 경거망동하면 안 되는 것!
가벼운 남성을 좋아할 여인이 없다는 것쯤은 나도 안다.
테이블에 앉아 입질이 올 때까지 기다리면 여인들이 훨씬 많아 쉽게 걸리게 되리란 게 녀석들의 말이었다.
사방에는 정말 그 녀석들 말처럼 남자는 가뭄에 콩 나듯 보였고 10 :2의 비율은 될 듯 여성이 훨씬 많았다.
맥주를 시켰다.
그녀들이 모두 나만 보는 것 같아 잔을 서서히 입으로 가지고 천천히 지적으로 마셨다.
캬바레에 오는 춤추는 여인들은 술고래는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다.
무식쟁이처럼 벌컥벌컥 들이키면 매력남이 될 게 아니기에 아주 천천히 마셨다.
시끄럽던 밴드가 꺼지고 다른 음악이 들려왔다.
밴드가 잠시 쉰다고 생각하는 순간 섹소폰을 불던 녀석이 내 앞에 앉는다.
혼자 왔냐고 묻기에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부터 봤는데 왜 춤을 추지 않으시냐고 물어온다.
내가 붓지도 않았는데 녀석이 혼자 부어 마신다.
차마 춤을 못 춘다고 말할 순 없고 오늘은 영 춤출 기분이 아니라고 말했다.
녀석의 술을 자작하는 속도가 장난이 아니다.
사장님이라고 부르는데 저지하기에는 좀팽이처럼 보일 것 같고 말도 못하고 있는데, 어느새 그 녀석은 세 병을 다 비우고 시간이 됐는지 무대로 올라갔다.
성질 같아서는 멱살잡이를 하고 싶으나 이곳에 온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려면 참아야지 폭력적인 남자에게 그녀들이 무서워서 오겠는가.
그렇지만 그녀석은 내게 기분 좋게 해주려고 그랬는지 몰라도 내 신체조건이 여자들이 가장 좋아할 이상형이라고 말했다.
크지도 작지도 않게 적당해서 이곳에 오는 여성들에게 가장 인기있는 체형이라 말했다.
그 말은 친구 녀석들도 이야기 했으니 거짓은 아닌 것 같았다.
하기야 배가 나왔나 머리가 벗겨졌나 키가 작기나 하나.
내 단점은 단지 춤을 못 춘다는 것 이외 여성들에게 매력적인 것 같기는 했다.
맥주를 다시 주문했다.
뻔뻔스런 녀석이 나를 내려보며 섹소폰을 불며 나를 조롱하는 듯 튀어나온 배를 더 내민다.
저런 녀석도 발기가 되는지, 자기 고추를 볼 수 있는지 궁금했다.
남의 것을 염치없이 먹어대는 녀석이니 배불뚝이가 되는 게 아니겠나.
나는 속으로 "야! 임마! 지금 네 마누라는 어디서 다른 놈팽이와 뒹굴 거야."
그 녀석이 얄미워 제발 그렇게 되기를 빌었다.
몇 번 부킹을 주선하는 녀석이 춤을 추라며 어떤 여인을 가리켜도 춤을 출줄 알아야 나가지 어떻게 나가냐 말이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뛰어나가 와락 안고 싶은데 내 가슴은 안타까움으로 타들어갔다.
드디어 어떤 여인이 내게 왔다.
그 녀석들이 말한 입질이 시작된 거다.
나는 흐트러진 자세를 바로하고 앉아 그녀에게 최대한의 예의를 표하며 정중하게 대했다.
그녀의 모습을 보자 내 가슴이 두방망질하기 시작했다.
검은색 원피스에 검붉게 보이는 쉐터가 잘 어울리는 전형적인 바람둥이 모습에 정신을 잃고 머릿속은 정리가 안 된다.
"이곳이 처음이시죠?"
그녀는 선수였다.
나를 보자 대뜸 초보의 티가 나는지 보자마자 알아본다.
괜한 거짓말로 이미 알고 있는 도사에게 거짓말을 하면 무슨 대수겠냐 싶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술 한 잔 사겠냐고 물어왔고 나는 드디어 걸릴 게 걸렸다고 흔쾌히 수락했다.
이제 이 앞에 있는 여인은 친구들이 알려 준 것처럼 자리를 2차로 옮겨 은밀히 나를 유혹할 것이다.
내가 모텔로 잡아끌면 은근히 뿌리치겠지?
그런 여자의 내숭을 한두 번 보았냐 말이다.
그녀의 눈꼬리에 세상을 힘들게 살아온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무대 쪽을 휘둘러 보는 눈에는 한없는 외로움이 배어있는 게 보인다.
외로운 여인일수록 서로 나누는 사랑은 농도가 짙을 수밖에 없고 체취 또한 얼마나 강렬하고 향기롭던가.
나는 마음 속으로" 여인이여! 조금만 참아주오. 내 그대의 외로움을 달래주려고 이렇게 먼길을 달려왔나이다."라고 말했다.
이제 잠시 후면 내 앞에서 수줍은 척하며 벗을, 아니면 내가 하나씩 벗기어 나타날 그녀의 나신을 상상해 봤다.
어깨를 덮은 긴 머릿결이 그녀의 가슴을 가리겠지.
여인의 하얀 나신 위에 흔들릴 긴 머리는 얼마나 내게 자극적으로 보일는지 가벼운 흥분이 인다.
그녀는 그렇게 긴 머리는 아니라도 내가 안고 싶고 기다리던 긴 머리의 여성상에 근접해 있었다.
그녀가 내 애인이 되어준다면 머리를 자르지 말라고 말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교회에서도 여성의 긴 머리는 남성의 성욕을 자극시킨다고 해서 천으로 가린다고 그랬다.
그런데 2차를 가자고 말을 해야 될 시간이 지났음에도 그녀에게 소식이 오지 않는다.
내가 매력적인 그녀의 이상형이 아니기에 그런가?
그래도 인내를 갖고 맥주가 다 떨어질 때까지 기다렸다.
그녀가 무대를 보던 얼굴을 돌리며 내게 말을 건네왔다.
아름다운 여자를 소개시켜 주겠노라고 제안했다.
나는 그대면 된다고 말하려는 순간, 그녀가 명함을 주는 게 아닌가.
그러면서 자기 소개를 하는데, 자기는 춤을 가르치는 사람인데 오늘 이곳은 실습하러 온 것이고 주로 낮에 교습을 한다고 했다.
지금 다섯을 데리고 와서 실습한다고 말했다.
이런 떡을 할.... 오늘도.... 싹수가 노랗다.
망할 여편네, 다 먹고는 자기의 신분을 알릴 게 뭐람 ㅡ
그녀가 가르키는 곳을 보니 여자들이 수북히 앉아 떠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합석하겠냐는 말을 했지만 내가 그런 수작에 넘어가고 싶지는 않다.
한둘이면 모를까 그곳에 가면 적잖은 지출을 각오해야 하는데 목적도 이루지 못하면서 돈만 날릴 게 될 말인가?
어쩐지 쉽게 풀리는가 했더니 오늘도 섹소폰 자식의 초장에 재 뿌리는 바람에 재수가 옴 붙어 틀린 거다.
약속을 핑계로 나오고 말았다.
자리에서 일어나는 순간 섹소폰 소리가 유별나게 크게 들리는 듯했다.
아마 그 녀석은 내가 바가지를 쓰는 광경을 보며 나를 골 빈 녀석이라며 비웃었을 게 뻔하다.
춤쟁이 그녀도 내가 맘에 든 게 아닌 제자로 만들어 수입을 늘리려는 계산이겠지.
예전에는 술집에서의 인연은 쉽게 만들어지던데 새해들어 벌써 몇 번째 시도해도 안 된다.
특히, 캬바레에서는 춤을 못 추면 인연을 만들기란 더 어렵다.
그녀에게 받은 명함을 만지작거리며 배울까 말까 생각했지만 낮에 어떻게 시간을 내냐 말이다.
밤으로는 엄처의 감시가 심하니 죽을 맛이다.
춤! 춤만 배우면 세상이 다 내 것 같은데 춤과의 인연은 끈질기게도 악연만 계속된다.
오늘은 슬며시 아내에게 춤 이야기를 꺼냈다.
내 뜻 깊은 속내는 감추고 운동에는 그만이라는 말로 무도학원을 다니겠노라고....
그랬더니 자기도 배울 테니 함께 가지고 말하는 게 아닌가.
자기도 운동을 하겠다고 말한단 말이다.
뭐, 배우는 것이야 상관 없지만 춤이란 걸 배우면 여인의 십중팔구는 바람이 난다는데.. 이놈의 여편네가 바람이 난다는 건 죽어도 못 보겠더란 말이다.
세상에는 나보다 잘나고 잘생긴 녀석이 많고 많은데 바람이라도 나면 그 꼴을 어떻게 보냔 말이다.
의심 많은 여편네는 이제 오후만 되면 학원에 직원을 두고 내 사무실에서 보초를 선다.
이렇게 남편의 일거수 일투족 속박하니 어디 사는 게 사는 맛이 나겠냐 말이다.
파마머리 만들 때 이미 알았다고 뱁새눈을 뜨고 앙탈을 부리니 저 놈의 여편네 선견지명을 따를 자 누구인가.
차라리 어디 아파트 경비나 서는 것이 백 번 낫다.
그 좁은 구석에 앉아 있어도 이보다는 자유로울 게다.
춤 배우려는 계획도 수포로 돌아가고 파마머리도 아주 짧게 삭발을 해버렸다.
글 뒤에 메일주소를 넣던 그 시절이 너무 그립다.
어즈버! 태평연월이 꿈이런가 하노라.
첫댓글 ㅎㅎ 솔직한 남정네의 심정과 카바레 입성기 재미있게 읽었습니다..그런데 여자들은 절대 이해 못하지요.. 마누라 두고 항상 다른 여자를 꿈꾼다는거...
솔직한 남정네의 심정 이네요...남자의 세계는 그렇군요..
남편들의 아내들은 절대 못배우게 하며 본인들은 하려구 하지여...지금껏 안하고 사셨는데 다른운동을 하시면 되지 굳이 부부 맘 불편한 운동을 해얄지요.^^*
가정의 평화를 위해 포기하신거 잘 하신 일입니다.ㅎㅎ
구구절절 솔직 하시네요,~ 항상 재미있게 잘~읽고 있습니다. 참 소재도 다양하시네요,ㅎㅎ 다음은 어떤 글을 올리시려나 기대합니다.
카바레가 어디 바람난 사람만 오겠습니까 아직 그쪽동네는 구경을 못해봤네요 ㅎㅎ
생짜배기가 주석에 앉았으니..어디 한번 이용 해 볼려는 캬바레 주변 짭새들이 어디 봉하나 들어왔구만 했겠지요. 색소폰이 눈치를 보내고..짭새는 능란한 말쏨씨에 주석에 주대만 올려놓았으니.. 그 짭새 잠시 동안에 초딩만나 해갈 잘 했네여... 깜깜한 곳에 박쥐처럼 이력이난 짭새들에게 보기좋게 당했으니..원래 캬바레란 곳에는 초보가 가서는 안돼는 곳인란걸.. 하다못해 인터넷 지식인 에서라도 ?아 보시고 가셔야 했는데.. ㅎㅎㅎㅎㅎㅎ 마음만 도둑인걸ㅎㅎㅎㅎ
자신은 다른 여인을 유혹하기 위해 이미 일탈을 꿈꾸었을지라도 아내만은 양처로 남아 있기를 바라는 이중성을 적나라하게 그려주셨네요.. 암튼 재미난 글에 한바탕 웃습니다 ..건강하세요~~~
춤은 나이트같은곳에선 짜가가 되고요. 캬바레에서 추어야 됩니다. 춤은 무도이기에 상당한 매너와 에치켓과 파트너쉽등이 요구되므로 술등을 마시곤 절대 춤을 추는게 아닙니다.해서 캬바레에선 술을 팔지 않습니다. 여성분을 리드함에 있어 적잖은 세월과 노력은 필숩니다. 한때 춤세계에서 제비로서 명성을 떨쳤던 소인이오나 결국 춤 때문에 사고가 나는탓에 얼굴도 많이 망가지고 그넘에 명예는 말할 나위도 ... 지금은 완전 발 끊었슴다.
춤문화를 이해못하는분은 카바레에 갈 자격이 없다고봅니다 아직도 그렇게 색안경을 쓰고보니 아직도 우리나라에선 먼 이야기로 느켜지네요 진정 운동을 하시는 거라면 댄스스포츠는 어떤가요
사교춤 캬바레춤 가정을 지켜내는자가 없어요...결국은 가정을버리거나 자신이 병들어가는 것이더군요...고향친구가 춤 때문에 이혼하고 혼자 이제는 나이들어 고생하고 살아요...이혼할때 친구들이 그렇게 말렸는데,,,참 안타깝더군요...
참으로 대단합니다. 축하를 드립니다.
최인호의 소설을 읽듯이 재미있군요.... 문장력의 구성도 탄탄하고..... 수준높은 글 주심에 감사드려요...
에고~ 춤춘다고 다 바람 나는건 아닐텐데,,바람날 사람은 춤추러 안다녀도 바람이 나드먼요...옆지기와 같이 배워서 같이 추러 다님 어떨지요...다른 뇨자들 겹눈으로 눈요기나 하믄서ㅎㅎ
윗 글 잘못된 점을 지적합니다. 캬바레에선 절대로 술을 팔지 않습니다. 아니 못팔게 되어있습니다. 자세히 알아보시고 글을 올리심이 타당할듯하옵니다.
세월은 가도 마음은 청춘 이십니다 솔직 하신 글 재미있구요 황혼에는 마음 다치는일 생기지않도록 아겨주세요
아유 도독님 땜시 긴 글 읽느라 눈이 앞으내요 소설가신가봐요 재미있게 머물다 감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