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 고백
송진권
오래된 숲에서 그놈을 사로잡아 왔습니다
놈은 발굽이 무르고 뿔이 있었으나 뭉툭했습니다
목을 옭아매고 사지를 묶자 그 짐승,
눈만 희번덕이며 저항도 하지 못했습니다
겁에 질린 짐승의 울음소리라니
미나리꽃 하얗게 우거진 도랑에서 놈의 멱을 땄습니다
흰털을 적시며 핏물은 도랑물에 낭자하게 풀어지고
숫돌에 칼 갈아 가죽 벗겨 널어놓고
우리는 놈의 배를 갈랐습니다
뱃속에는 형체가 갖춰지지 않은 분홍색의 새끼들이 아홉 마리 들었고
우리가 칼을 대자 그것들은 뿔뿔이 달아나려고 몸을 뒤척였습니다
탯줄을 자르고 우리는 그놈들을 하나하나 물에 흘려보냈습니다
큰 통에 내장은 내장대로
고기는 고기대로 나눠 담고
둥글게 모여앉아서 생간을 먹었습니다
굵은 소금 찍어 붉게 붉게 웃어가며
탁한 술을 나눠 마시고
피 묻은 입술을 혀로 핥으며
물가에 앉아 손에 묻은 핏자국을 닦았습니다
낄-낄-낄-낄, 물에 비친 얼굴들은
기묘하게 일그러져서 일렁이며 흘러갔는데요
그 표정들을 물에 흘려보내고
무표정한 얼굴로 칼과 도구를 챙기고
저마다 고기를 나누어 가지고 우리는 돌아왔습니다
― 웹진《공정한시인의사회》 (2023 / 6월호), 공정한시인의사회::공시사 (gongsisa.com)
송진권
충북 옥천에서 태어나 2004년 창비신인시인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자라는 돌』 『거기 그런 사람이 살았다고』『원근법 배우는 시간』, 동시집 『새 그리는 방법』 『어떤 것』이 있다. 천상병시문학상과 고양행주문학상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