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입은 웨딩드레스
임 미 옥
어느 것으로 입을까…. 즐비한 웨딩드레스들 앞에서 서성거리고 있었다. “도와 드릴게요.” 스튜디오 여직원이 내 체형엔 이거라면서 그 중 하나를 벗겨 옆방에 내려놓는다. 하얀 눈이 방안에 소복이 내려앉는다. 아니, 하얀 물보라 파문이 이는 연못이다. 못 가운데 동그란 방바닥 섬이 떴다. 그 섬으로 들어서자 여직원이 물결자락을 끌어올려 등 뒤에 단단히 고정해준다. 애드벌룬 같이 크고 방방한 속치마 위로 얹힌 흰 물결자락이 내 몸에 매달려 방안가득 퍼진다. 36년 전에도 그랬던가? 그 세월 지나오면서 덕지덕지 시간의 무게가 보태진 겐가? 드레스부피가 만만치 않다.
웨딩드레스 품은 넓기도 하다. 보이고 싶지 않은 것들을 다 가리어준다. H자허리라인도 울퉁불퉁 뱃살도 숨어버렸다. 마법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평균치보다 작은 내 키를 한껏 늘려 공중으로 띄워 놓았다. 헐렁이는 브래지어 빈 공간 왼쪽에는 방금 벗은 내 브래지어를 뭉쳐 넣고, 오른쪽에는 손수건을 뭉쳐 넣어 요술을 부렸다. 기장은 얼마든지 길어도 상관없다. 길면 긴대로 땅바닥을 휩쓸면 되니까.
웨딩드레스가 왜 하얀색이냐고 묻는다면, 그냥 하얀색이어야 한다고 대답할거다. 그냥이란 말처럼 절대적인 말도 없어서다. 아름다움의 기준을 색깔로 말하라면 기꺼이 흰색을 꼽을 거다. 순백이란 말보다 절대적인 말을 찾을 수 없어서다. 무색이 주는 순수성을 감각적으로 뭐라 표현할까. 그것은, 구름에 얹혀 떠다니는 실바람을 잡아 노니는 손이요, 수채화 같은 하얀 머플러 파도를 감아쥐는 손길이다. 또한 신랑을 떠올리면서 설레는 분홍 꿈을 이불삼아 드리워 덮으며 움직이는 손사위다.
로마시대에서는 웨딩드레스들이 파랑, 보라, 노랑 등 다양한 색상들이 활용되었단다. 그런데 빅토리아여왕이 하얀 웨딩드레스를 입으면서 유럽사회에 빠르게 전파되었다고 전해진다. 하얀 웨딩드레스는 여성들에게 동경과 선망의 상징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요즘 시대상을 볼 때, 웨딩드레스가 순결을 의미하는 하얀색이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깨질 날도 멀지 않은 것 같다. 실제 아이보리색 웨딩드레스가 이미 등장했고, 외국에서는 화려한 분홍웨딩드레스를 입는 신부들도 등장하고 있다.
드디어 리마인드 웨딩사진을 촬영하는 스튜디오로 이동했다. 여직원 도움을 받아 뒤뚱뒤뚱 걷노라니, 36년 전 웨딩드레스를 입은 내 모습이 보인다. 융단 위를 걸으며 어머니를 보니 눈물을 닦고 계셨다. 순간 장대비가 얼굴로 쏟아졌다. 너무 당황스러워할 때, 친구가 뛰쳐나와 파우더로 꾹꾹 눌러주었다. 5년 전, 제 아빠 손을 잡고 순백드레스자락을 사락사락 끌면서 융단 위를 걷던 딸아이 모습이 그 촌스러웠던 신부위로 겹쳐진다. 딸아이는 환하게 웃으면서 걸었다. 하늘에서 천사가 내려와 봄날 실개울처럼 너울거리는 미래의 꿈들과 만나 대화하는 표정이었다.
두 번째 웨딩드레스를 입고 거울을 본다. 앳됨을 잃은 초로의 신부가 서있다. 저 얼굴은 살면서 나 자신이 만들어낸 작품이다. 웨딩드레스를 처음입고 융단을 걸을 때는 몰랐었다. 팔남매 맏며느리 자리가 무언지, 인생살이가 융단 위에 내렸던 소낙비 연속일 수 있다는 그런 건 모르는 철부지였다. 그저 순수를 향해 치닫는 그를 향한 열정만 있었다. 그럼에도 오늘까지 그런대로 무탈하게 올 수 있었던 건 절대적인 하나님 은총이 아닐 수 없다.
산다는 건 잃고 대신 받는 연속이었다. 목숨 같이 아낀 순결대신 두 아이를 얻었고, 남편에게 설렘을 잃어갈 때쯤 내 몸처럼 편안한 안정감이 찾아왔다. S자 허리라인은 잃어버렸지만, 힘든 일도 너끈히 배겨내는 근筋이 생겼고, 두 아이를 떠나보내었더니, 며느리 사위가 들어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손자손녀들을 안겨준다. 내 삶의 잔이 넘친다. 넘치는 잔을 들고 턱시도를 입은 신랑을 바라본다. 설렘보다 귀한 익음으로 얼마큼 남아 있을지 모를 미래를 위하여 건배하며 잔을 마주친다.
“어머님, 너무 아름다우세요.” 오늘만큼은 36년 전 신부처럼 세상의 주인공이 되어 의미 있는 추억을 만들라며 리마인드웨딩 이벤트를 준비한 며느리가 말한다. “엄마, 부케는 좀 더 올리고, 자신감을 갖고 활짝 웃어요!” 딸이 온갖 잔소리를 해댄다. 오늘 이벤트 비용절반은 당연히 자기 몫이라며 달려온 사위가 딸 옆에서 연신 미소를 짓고 있다. “엄마, 나는 왜 없어?” 하고 36년 전 결혼사진을 보고 말했던 아들이, 딱 고만한 제 아들을 안고 두 번째 웨딩드레스를 입은 나에게 엄지 척을 한다.
첫댓글 수채화 같은 아름다운 글과 사진, 감사합니다
이곳에서 종종 뵙기 원합니다^^
아름다우시네요. 잔잔한 느낌이 있는 진솔한 글도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