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12. 14. 주일 큐티
갈라디아서 2:1 ~ 5
예루살렘 회의에 참석하는 바울
관찰 :
1) 예루살렘 회의에 참석하는 바울
- 1절. “십 사년 후에 내가 바나바와 함께 디도를 데리고 다시 예루살렘에 올라갔노니”
a. 사도 바울은 예루살렘 회의에 참여하러 올라갔습니다. 그가 예루살렘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핍박을 받아 죽을 뻔했다가 성도들에 의해서 수리라와 길리기아로 피신하여 복음을 전하게 된지 십사 년 만이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바울은 바나바를 만났고, 전도 여행을 함께 했습니다. 그리고 평생 동안 신뢰하며 동역하게 될 디도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b. 디도는 사도 바울에게 있어서 매우 특별한 인물이었습니다. 디모데와 더불어 목회서신을 보내게 되는 사도 바울의 영적 아들이었습니다. 특별히 디도는 그레데 섬의 목회의 문제와 고린도 교회의 문제를 모두 해결하는 탁월한 리더십을 발휘하는 사람으로, 사도 바울의 오른팔과 같은 존재였습니다. 그는 해결사적 기질을 가지고 사도 바울이 맡기는 모든 문제들을 해결했습니다. 디도는 성령의 사람이었고, 젊지만 깊은 영성으로 나이가 많은 사람들일지라도 바른 길로 인도할 줄 아는 믿음과 용기의 사람이었습니다.
c. 사도 바울은 헬라 사람인 디도를 데리고 바나바와 함께 예루살렘 회의에 참여하러 올라간 것입니다.
2) 예루살렘 회의에서
- 2절. “계시를 인하여 올라가 내가 이방 가운데서 전파하는 복음을 저희에게 제출하되 유명한 자들에게 사사로이 한 것은 내가 달음질 하는 것이나 달음질 한 것이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a, 사도 바울이 예루살렘 회의에 참석하게 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에 순종하는 것이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1차 종교회의였던 예루살렘 회의가 그리스도의 계시에 의하여 이루어진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그 회의의 결정은 모든 성도들이 따라야 하는 그리스도의 명령이 되는 것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b. 사도 바울은 예루살렘 회의에서 자신이 이방에서 선교한 내용을 보고했습니다. 실제로 이 보고로 인해서 이방에서 어떻게 복음을 전할 것인지에 대한 결의문이 만들어지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사도 바울은 가감없이 복음의 내용을 보고했습니다.
c. 사도 바울은 자신이 전하는 복음에 대한 분명한 확신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 회의를 통하여 확인을 받고자 했습니다. 그것은 이 과정을 통하여 자신이 수고하고 노력하여 전하는 복음의 확실성을 더 분명히 하고자 한 것이라는 것을 밝히고 있습니다.
d. 사도 바울마저도 자신의 사역을 보고하고, 또 그 회의를 통하여 확증을 받는다면 오늘날 우리 시대의 사역에 대해서도 공식적인 평가를 받는 것은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자신의 보기에 옳기에 다른 사람이나 공동체의 확증을 받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분명히 사도 바울이 보여준 모범과는 다른 것입니다.
- 3절. “그러나 나와 함께 있는 헬라인 디도라도 억지로 할례를 받게 아니하였으니”
a. 예루살렘 종교회의에서 중요한 것은 믿음으로 받는 구원에 대한 확증을 세우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에서 불필요한 잡음을 없애기 위해서 디도에게 할례를 행하는 것이 지혜로운 방식이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자신의 영적 아들 디도에게 의도적으로 할례를 받지 않게 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b. 그 이유는 율법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이들의 악독한 궤계가 있음을 사도 바울이 간파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사역자인 디도가 할례를 받지 않았음에도 계속해서 목회를 하도록 하게 함으로 구원과 할례, 혹은 구원과 유대인의 율법은 상관이 없다는 것을 몸으로 보여주고자 한 것입니다.
- 4절. “이는 가만히 들어온 거짓 형제 까닭이라 저희가 가만히 들어온 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의 가진 자유를 엿보고 우리를 종으로 삼고자 함이로되”
a. 교회 공동체에 슬그머니 거짓 복음을 증거하는 자들이 이미 들어와 있다고 사도 바울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 회의 때 이미 그들은 존재했고, 예루살렘 종교회의를 통해서 믿음으로만 구원을 얻는다는 것이 계시에 의해 밝혀졌음에도 자신들의 뜻을 굽히지 않고 여전히 갈라디아 교회들의 성도들을 미혹하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 b.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으로 우리 모든 성도들에게 주신 참 자유를 빼앗고자 하는 악독한 의도가 그 안에 숨겨져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예수를 믿고 참 자유를 얻었다가 다시 율법의 종이 되게 만들게 되는 것이라는 것을 사도 바울은 지적하고 있습니다.
3) 사도 바울의 대처
- 5절. “우리가 일시라도 복종치 아니하였으니 이는 복음의 진리로 너희 가운데 항상 있게 하려 함이라”
a. 율법의 요구에 부응해야 구원을 받는다는 사상에 대해서 한 순간이라도 굴복하지 않았다는 것을 사도 바울은 결연히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위해서 디도가 할례를 받지 않았던 것이고, 구태여 그런 디도를 예루살렘 회의에 목숨을 걸고 참여시켰던 것입니다.
- b. 사도 바울은 자신이 이방인을 위한 사도임을 언제나 인식했습니다. 그렇기에 예루살렘 종교회의에 그리스도의 계시에 의해 참석을 하게 되면서 그 회의를 통하여 믿음으로 얻는 구원을 분명히 하기 위해 결의를 가지고 참석했다는 것을 그리스인 디도를 통하여 보여주었습니다. 그 모든 행위가 어쩌다보니 하게 된 것이 아니라 사도 바울이 깊은 지혜를 가지고 의도적으로 한 행위였다는 것을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까지 한 이유가 바로 복음의 진리가 갈라디아 지방의 성도들인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에게 항상 있게 하기 위함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가르침 :
1) 사도 바울은 처음부터 복음에 대해 온전한 그림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계시가 열린 자였기에 다른 이들에 의해 다른 내용이 덧붙여질 필요가 없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권위에 순종하고, 예루살렘 회의에 참석하게 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에 의한 것으로, 복음의 온전함을 이방인들에게 드러나게 하고자 하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사람들에게 잘 보이려고 한 것이 결코 아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바나바와 디도와 참석을 하면서, 디도를 통해서 할례받지 않았을지라도 구원을 받을 수 있으며, 심지어 복음을 증거하는 일에 동참할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했던 것입니다.
2) 사도 바울과 바나바에게 더 많은 제자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무할례자이자 헬라 사람인 디도를 데리고 예루살렘 종교회의에 참석한 것은 이렇듯 전략을 내포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3) 디도는 알아갈수록 정말 멋진 사람입니다. 예루살렘 종교회의에 예수를 믿을지라도 할례를 받아야 하고 율법을 지켜야 한다는 것을 이데올로기 적으로 믿는 유대교에 속한 자들이 있었습니다. 이들 앞에서 자신이 할례받지 않았음을 드러내는, 어쩌면 자신의 성기를 보여주어야 하는 그런 상황을 감수하며 목숨을 걸어야 하는 상황에서도 진리를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걸고 회의에 참석한 것입니다. 디도는 진리를 위해 이렇듯 젊어서부터 목숨을 걸었던 자이고, 그로 인해서 그가 가는 모든 곳에서 분쟁을 해결하고 진리를 수호하는 일에 실패한 적이 없습니다. 복음의 진리가 우리 이방인들에게 온전히 증거되기 위해 많은 이들의 희생이 있었고, 특별히 사도 바울과 디도의 헌신적인 노력이 있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적용 :
1) 주님의 복음을 계시하시기 위해 주님은 여전히 일하고 계십니다. 예루살렘 종교회의 때도 주님은 바울과 디도를 통해서 일하셨습니다. 오늘날도 주님께서는 주님의 사람들을 통해서 이 진리의 복음이 온전히 증거되도록 일하십니다. 그것을 위해 부름을 받은 자들은 목숨을 걸지라도, 그래서 죽임을 당한다 할지라도 그 길을 걸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목숨이 위태로웠던 십사 년 전의 과거를 기억했을지라도 다시 예루살렘으로 향했고, 그곳에 디도를 동행하는 초강수를 두며 복음의 진리를 전하는 길을 걸어갔습니다. “내가 바르게 복음의 진리를 증거하는 길을 간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에 대해서 주님께 묻고, 응답을 기대합니다. 주님이 응답하실 것을 믿습니다. 내 중심에 깨닫게 하실 것을 기대합니다.
2) 내 영어 이름이 디모데이지만 디도와 같은 성품을 소유할 수 있기를 간구합니다. 주님의 복음을 위해 나의 유익을 내려놓을 수 있는 희생과 포기와 헌신이 내 삶속에 있기를 간구합니다.
3) 생각이 조금씩 더 정리되고 있음에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일어날 일들에 대해서 감당할 수 있는 믿음을 주시고, 주님께서 인도하시는 길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걸어가는 용기를 잃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