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28일 [주님 만찬 미사]
오늘부터 교회는 파스카 성 삼일을 지내게 됩니다. 성서는 파스카에 대한 의미를 3가지로 보여 주고 있습니다. 첫 번째 파스카는 ‘지나가다.’라는 의미입니다. 모세는 파라오에게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광야에 가서 예배드리겠다고 하였습니다. 마음이 완고한 파라오는 모세의 청을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모세를 통하여 10가지 재앙을 이집트에 내렸습니다. 마지막 10번째 재앙은 이집트의 모든 맏배를 치는 것이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문설주에(Mezuzah) 양의 피를 바르라고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문설주에 양의 피를 발랐습니다. 그 표시를 보시고 하느님께서는 모든 맏배를 치는 재앙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맏배를 구해 주셨습니다. 지금도 유대인들의 문에는 문설주(Mezuzah)가 있는데 그 안에는 양의 피가 아니라 신명기 6장의 ‘들어라 이스라엘아!’가 있다고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재앙으로부터 구원받기 위해서는 하느님의 말씀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넣어놓은 말씀은 이렇습니다. “이스라엘아, 들어라!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 너희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희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그리고 너희 집 문설주와 대문에도 써 놓아라.” 그렇습니다. 파스카는 단순이 양의 피를 바르는 것이 아닙니다. 파스카는 하느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 파스카는 ‘건너가다.’라는 의미입니다. 파라오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예배드리는 것을 허락하였습니다. 그러나 마음이 바뀌어서 파라오는 군대를 이끌고 이스라엘 백성을 잡으려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진퇴양난의 어려움에 처했습니다. 앞에는 도저히 건널 수 없는 ‘홍해바다’가 있었습니다. 뒤에는 막강한 파라오의 군사들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렇게 불평하였습니다. “이집트에는 묏자리가 없어 광야에서 죽으라고 우리를 데려왔소 어쩌자고 우리를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어 이렇게 만드는 것이오 ‘우리한테는 이집트인들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나으니, 이집트인들을 섬기게 우리를 그냥 놔두시오.’하면서 우리가 이미 이집트에서 당신에게 말하지 않았소” 그러자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두려워하지들 마라. 똑바로 서서 오늘 주님께서 너희를 위하여 이루실 구원을 보아라. 오늘 너희가 보는 이집트인들을 다시는 영원히 보지 않게 될 것이다. 주님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워 주실 터이니, 너희는 잠자코 있기만 하여라.” 모세는 하느님의 말씀대로 지팡이로 바다를 치니 바다가 갈라졌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두 무사히 홍해바다를 건널 수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파스카는 지팡이로 바다를 가르는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따르는 것입니다. 임마누엘은 주님께서 함께 계시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함께 하시면 죽음의 골짜기를 간다할지라도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세 번째 파스카는 ‘넘어가다.’라는 의미입니다. 지나가고, 건너가는 것은 장소의 의미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넘어가는 것은 존재의 의미입니다. 굳이 지나가고, 건너가지 않아도 됩니다. 두려움에서 담대함으로 넘어가는 것은 존재의 의미입니다. 절망에서 희망으로 넘어가는 것은 존재의 의미입니다. 어둠에서 빛으로 넘어가는 것은 존재의 의미입니다. 죽음에서 부활로 넘어가는 것은 존재의 의미입니다. 우리는 그런 모습을 애벌레가 나비가 되는 모습에서 볼 수 있습니다. 땅위를 기어 다녀야 했던 애벌레는 죽음과 같은 ‘고치’의 과정을 거치면서 새로운 차원의 삶을 만나게 됩니다. 자유롭게 하늘을 나는 나비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성체성사’를 제정해 주셨습니다. 성체성사는 예수님께서 몸과 피를 제자들에게 아낌없이 나누어 주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모든 것을 아낌없이 내어 주실 때 ‘부활’의 존재로 넘어가는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한 일을 깨닫겠느냐 너희가 나를 ‘스승님’, 또 ‘주님’ 하고 부르는데, 그렇게 하는 것이 옳다. 나는 사실 그러하다. 주님이며 스승인 내가 너희의 발을 씻었으면,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어야 한다. 내가 너희에게 한 것처럼 너희도 하라고, 내가 본을 보여 준 것이다.” 주님의 말씀을 따라서 살아간다면, 우리는 새로운 차원의 삶을 지금 여기에서 시작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부활의 삶입니다.
그렇습니다. 구약의 파스카는 장소를 의미했습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을 향한 여정이었습니다. 신약의 파스카는 존재를 의미합니다. 내가 세상을 바꾸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나의 존재가 바뀌면 세상은 그만큼 바뀌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새로운 장소로 이끄시는 분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지금 우리와 함께 계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그런 믿음을 굳게 간직한다면 이 땅에서 이미 하느님의 나라는 시작되는 것입니다. “이는 너희를 위한 내 몸이다.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또 만찬을 드신 뒤에 같은 모양으로 잔을 들어 말씀하셨습니다. 이 잔은 내 피로 맺는 새 계약이다. 너희는 이 잔을 마실 때마다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
지인이 카톡으로 보내온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