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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맛 찾아…소래포구를 가다
금어기 끝나는 9월부터 본격 꽃게철 속살·알 통통하게 올라 담백함 ‘으뜸’
노릇노릇 구운 전어도 짭짤한 맛 별미 탱글탱글 차진 대하, 씹을수록 달큼
시간 따라 색색이 변하는 바다 풍경, 팔딱이는 해산물도 볼거리로 제격
포구의 매력은 바다와 육지가 어우러진 운치와 함께 신선한 제철 해산물에서 두드러진다. 도심에서 가까운 소래포구는 꽃게·대하·전어 등 가을 별미 삼총사를 만날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시기를 놓쳐 후회하기 전에 가을 별미 삼총사를 맛보고자 인천 남동구에 있는 소래포구를 찾았다.
수인선 월곶역에서 내려 소래철교를 건너고 있으면 소래포구가 보이기도 전에 갯것의 냄새가 먼저 코에 닿는다. 식욕을 자극하는 고소한 냄새에 이끌려, 포구를 둘러보기에 앞서 어시장으로 향했다. 1990년대 포구 한편에 만들어진 소래어시장에는 300여명의 상인이 어패류와 젓갈 등을 판다.
“오빠, 꽃게는 안 사? 관절 사이사이 알이 가득 찬 것 좀 봐.”
손님이 오빠나 언니로 불리는 이곳, 시장은 상인들 호객 소리로 왁자지껄했고 제철 먹거리를 찾아온 여행객으로 붐볐다. 골목골목 수족관에서 팔딱이는 해산물을 구경하는 것은 항상 즐겁다. 침을 꼴깍이며 시장을 누비는 길손의 눈을 먼저 사로잡은 건 꽃게였다. 금어기가 끝나는 9월부터 소래포구는 꽃게 풍년이다. 요맘땐 오동통 살이 오른 수게가 맛있다지만, 알을 잔뜩 품은 암게를 보니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지갑을 열고 말았다.
내친김에 대하와 전어 쇼핑에 나섰다. 철이 철인지라 하나같이 신선했을 것이 분명한데도 이 가게 저 가게 기웃거리며 요리조리 살펴보고 가격도 흥정했다. 그게 어시장에서 갯것을 즐기는 묘미 아니겠는가.
시장 근처엔 상차림비를 받고 시장에서 손님이 사온 해산물로 음식을 만들어주는 이른바 ‘양념집’ 수십여곳이 성업 중이다. 소래어시장이 선사하는 또 다른 묘미다. 이곳을 활용하면 일반 횟집보다 저렴하게 신선한 해산물 요리를 즐길 수 있다. 꽃게·대하·전어를 한봉지씩 들고 양념집 한곳으로 들어섰다.
이 시간을 얼마나 기다렸던가. 우선 달궈진 팬에 대하를 투하했다. 파닥파닥 날뛰는 대하가 익을 동안 조리돼 나온 전어구이를 맛봤다. 소금 간을 하고 노릇하게 구운 전어는 짭조름한 맛이 일품. 게다가 번거롭게 가시를 바를 필요도 없이 머리부터 뼈까지 오독오독 씹어 먹으니 별미였다. 전어를 먹는 사이 대하가 주홍빛으로 변했다. 큰놈 하나를 골라 껍데기를 벗겨 한입 베어 물었다. 탱글탱글 차진 식감에 한번, 처음엔 고소하나 씹을수록 달큼해지는 맛에 또 한번 놀랐다.
상에 대하 껍데기가 수북이 쌓일 때쯤 꽃게찜이 나왔다. 배가 불러 남겨야 할 것 같다는 걱정은 기우였다. 껍데기를 가득 채운 속살이 담백해 그야말로 게눈 감추듯 먹었다. 껍데기에 고소한 알과 쌉싸래한 내장, 밥을 비벼 먹고 나서야 수저를 내려놓을 수 있었다.
부른 배를 부여잡고 시장을 빠져나오니 해는 벌써 노랗게 익어 저물 준비를 하고 있었다. 미뤄둔 포구 구경을 하고자 부둣가에 자리를 잡았다. 조업을 마친 고깃배 몇척이 정박해 있는 부둣가는 시장과 달리 조용했다. 바다도 평온했다. 다만 해가 구름 사이사이를 오갈 때마다 바다는 청록과 주황으로 색을 바꾸며 여행객의 마음을 오래 머물게 했다. 경기 부천에서 온 임정웅씨(79)도 정중동의 바다를 감상하고 있었다.
“똑같아 보여도 바다는 계속 변해요. 한시간 전보다 물이 많이 들어왔어요. 나는 가끔 산책 삼아 이곳에 왔다가 바다 풍경이 지루해질 때쯤 돌아가요.”
그의 곁에서 변하지 않는 듯 변하는 바다를 보고 있자니 어느덧 마음에 느긋함이 들어섰다. 배는 든든하고 마음은 넉넉해졌다. 여행에서 이 정도면 모든 걸 얻은 것이다. 그렇게 포구로부터 넉넉함을 선물 받고,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소래포구를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