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독서 에페 1,11-14 형제 여러분, 11 만물을 당신의 결정과 뜻대로 이루시는 분의 의향에 따라 미리 정해진 우리도 그리스도 안에서 한몫을 얻게 되었습니다. 12 그리하여 하느님께서는 이미 그리스도께 희망을 둔 우리가 당신의 영광을 찬양하는 사람이 되게 하셨습니다. 13 여러분도 그리스도 안에서 진리의 말씀, 곧 여러분을 위한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리스도 안에서 믿게 되었을 때, 약속된 성령의 인장을 받았습니다. 14 우리가 하느님의 소유로서 속량될 때까지, 이 성령께서 우리가 받을 상속의 보증이 되어 주시어, 하느님의 영광을 찬양하게 하십니다.
복음 루카 12,1-7 그때에 1 수많은 군중이 모여들어 서로 밟힐 지경이 되었다. 예수님께서는 먼저 제자들에게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바리사이들의 누룩 곧 위선을 조심하여라. 2 숨겨진 것은 드러나기 마련이고 감추어진 것은 알려지기 마련이다. 3 그러므로 너희가 어두운 데에서 한 말을 사람들이 모두 밝은 데에서 들을 것이다. 너희가 골방에서 귀에 대고 속삭인 말은 지붕 위에서 선포될 것이다. 4 나의 벗인 너희에게 말한다. 육신은 죽여도 그 이상 아무것도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5 누구를 두려워해야 할지 너희에게 알려 주겠다. 육신을 죽인 다음 지옥에 던지는 권한을 가지신 분을 두려워하여라. 그렇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바로 그분을 두려워하여라. 6 참새 다섯 마리가 두 닢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그 가운데 한 마리도 하느님께서 잊지 않으신다. 7 더구나 하느님께서는 너희의 머리카락까지 다 세어 두셨다. 두려워하지 마라. 너희는 수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다.”
아마 화장실 변기를 옆에 두고서 식사하시는 분은 없을 것입니다. 너무 배가 고프고 식사할 장소가 없으면 그럴 수 있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정상적인 사람들은 아무리 깨끗한 화장실이라 할지라도 더럽다고 생각하면서 화장실 변기 옆에서 식사는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 변기보다도 더 더러운 것을 옆에 두고 식사를 하시는 분들이 태반입니다. 그것은 바로 휴대전화입니다.
언젠가 뉴스를 보니까 화장실의 변기보다 많은 사람들이 즐겨 사용하는 휴대전화에 세균이 더 많다고 하더군요. 하긴 화장실 변기는 자주 청소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휴대전화를 세제를 이용해서 깨끗이 닦는 사람이 있을까요? 전자 기계라서 물로 닦을 수도 없기에 휴대전화가 더러운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하지만 그 더러움을 우리는 잊어버리고 살지요. 그래서 휴대전화를 손에서 떼지 않고 살아갑니다. 식사할 때에도 계속해서 휴대전화를 옆에 두고 있습니다. 화장실 변기보다 더 더러운데도 말이지요.
눈에 보이는 것이 반드시 진실은 아님을 다시금 깨닫습니다. 따라서 진실을 제대로 볼 수 있는 마음의 눈이 필요합니다. 주님을 따르는 것 역시 마음의 눈이 필요합니다. 주님께서 부와 명예를 내게만 주고, 자신이 원하는 것만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해주셔야 주님을 따를 수가 있는 것일까요? 세속적이고 물질적인 것들의 만족만을 위해서 주님을 따르는 것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더 커다란 영원한 생명을 위해서 주님을 따라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바리사이들의 누룩, 곧 위선을 조심하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들은 겉으로 보이는 율법의 실천만을 강조했습니다. 613개나 되는 율법의 세부 조항을 강조하면서 열심히 지키고 있었지만, 마음속에서는 주님을 바라보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저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것, 자기 자신이 열심하고 올바르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나 숨겨진 것도 다 알아보시는 주님께서는 이런 모습을 어떻게 받아들이실까요?
주님께서는 “육신은 죽여도 그 이상 아무것도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라.”고 하시지요. 대신 “육신을 죽인 다음 지옥에 던지는 권한을 가지신 분을 두려워하여라.”고 힘주어 말씀하십니다. 사람들의 시선에 모든 신경을 기울이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시선에 맞출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누군가를 두려워한다면 그 사람이 싫어하는 행동을 절대로 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주님을 두려워해야 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바로 주님께서 싫어하시는 삶이 아닌, 주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삶은 바로 사랑의 삶입니다. 겉으로만 보여 지는 사랑이 아니라, 몸과 마음을 다해서 행할 수 있는 사랑이어야 합니다. 이 사랑이 영원한 생명으로 우리를 이끕니다. 사랑은 아픔을 동반합니다. 그러나 이 아픔을 이겨내는 것이 참 사랑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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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두려워하지 마라. 너희는 수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