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여성시대 Aiiis
"이제 마지막 소원 말할래."
언젠가 교복을 입은 소미의 모습이 물려받은 넉넉한 교복을 입고 울상을 짓던 내 모습을 종종 떠올리게 했었다. 핏기 가신 얼굴로 내내 눈동자에 담았던 풍경이 땅바닥이 전부던 시절. 나는 그 시절 누구라도 좋으니 나를 안아주고 보듬어 주길 매일 바랐다. 소미가 태우던 담배의 불씨가 사그라 들어갈 때 나는 그녀의 헤진 교복 치마가 살랑이는 것이 제법 슬퍼졌다.
"벌써 마지막이라니. 시간 참 빠르다."
"소미야."
"내 이름 부르지마. 나 울 것 같거든."
이 세상 모두가 떠나갈 때 안녕이라고만 하면 얼마나 좋을까. 알기 쉬운 이별이어야 떠나갈 수 있는 마음이 뿌연 연기 사이를 둥둥 떠다닌다. 소미는 울 것 같을 때 흉터가 있는 눈꼬리를 살짝 접어서 웃는다. 나는 이 와중에도 소미의 처연한 미소가 담배향과 어울린다고 생각을 했다.
소미는 민들레 홀씨 같은 사람이어서 바람을 타고 날아갈 것만 같고 어쩌다 땅에 도착한다 한들 쉽게 꽃을 피우지 않을 사람이었다.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던 사실. 더 이상 소미에게 담배를 끊으라는 설교는, 방과 후 상담실에서 나눴던 나의 어린 시절에 관한 이야기는, 병원에 가지 않겠다는 소미의 상처를 어설프게 치료해 줄 일은 이제 없을 거라는 것을.
나는 소미를 처음 본 순간 알았다. 나와 너무 닮아서 그래서 너도 참 많이 아프겠구나. 호기심으로 시작해서 약간의 연민과 함께 소미를 보살폈지만 그래도 소미는 내가 아니었고 나 역시도 소미가 아니었다. 어쩔 땐 훌쩍 큰 나보다 소미가 더 커 보일 때가 많았다. 때로는 서로에게 구원과 다름없는 안식처가 되었고 소미가 도저히 긴 밤을 홀로 보낼 수 없을 것 같으면 나는 당연하게 내 방 한편을 내주었다. 누가 뭐래도 29살의 나와 19살의 소미는 그렇게 예상치 못하게 함께 흘러갔다.
"내일 아빠를 신고할 거야. 학교도 끝."
"..."
"그러니까 선생님을 보는 건 오늘이 마지막이야."
그래서 우리는 물길 속에서도 같이 흘러갈 줄 알았다.
/ 담배사탕
어떤 만남은 예기치 않게 혹은 예정대로 그것이 꼭 운명이었던 것 마냥 이뤄졌다. 헤어짐도 그랬더라면 시시껄렁한 문자를 보고 울었던 날들이 조금은 줄었을 거라 생각한다.
그래서 그렇게 지겹게 외치는 사랑이 뭔데 나는 도통 알 수 없었다. 그걸 느낄 만큼의 연애를 하지도 않았고 그런 사람을 만나지도 못했다. 모두들 쉽게 이야기하는 사랑, 나는 이해하기 어려우면서도 잔뜩 몸에 힘을 주고 아는 척을 해야 했다. 그러다 그게 무슨 대수인가 싶어 의미를 찾는 것도 그만두었다. 하지만 글을 쓰거나 되지도 않는 시를 읊어야 했을 때, 이르러서는 마음을 풀 곳이 필요했을 때, 그럴 때마다 나는 애타게 사랑을 찾았다. 그리고 선배가 아무 말 없이 학교를 자퇴하고 모든 습작들을 불태운 그날, 나는 결국 내 인생을 관통한 것이 사랑임을 알게 되었다. 사랑이 뭔지도 모르는 주제에 깨달은 사실에 지쳐 쓰러질 때까지 울고 소리쳤다. 정말 사랑이 뭔지도 모르는 주제에.
/ 퇴고는 원고의 2분의 1
어떤 슬픔은 꾹꾹 눌러 담아야 할 때가 있다. 그냥 세상에 내보내기엔 너무 거대하고 위험해서 결국 이리저리 눌러 담아야 할 수밖에 없는.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슬픔을 눌러 담는 이는 종종 작고 나약한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이를테면 부모의 장례식장에서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는 아이, 오래된 빚을 청산하고도 기뻐하지 못하는 사람들, 어른이 되어서도 자꾸만 몇십 년 전으로 돌아가 몸을 웅크리는 친구. 신께서는 고약하기 그지없다. 단단하고 강철같은 사람을 두고 어찌 그들에게 그런 슬픔만을 주시는 건지.
갑자기 너무 두려웠어. 내 생각에 내가 잡아먹힐 것만 같았거든. 이대로 가다간 정말 살점 하나 없이 잡아먹히겠다고. 그래도 그 누구에게도 심지어 너에게도 말할 순 없었어. 내 우울은 너무 피상적이고 감성적이어서 자랑처럼 말할 수 있는 게 아니었으니까. 그래 나만 이해할 수 있었던 거야. 오로지 나만. 이 뭣 같은 타이틀이 내 발목을 잡는지도 모르고. 나는 그게 마냥 독립적이고 나름의 강함인 줄 알았어. 네가 이 대목을 읽으면 얼마나 욕을 해댈지 상상이 간다. 한편으로는 울까봐 걱정도 되고.
믿기지 않겠지만 나는 정말 괜찮았어. 우울에 빠진다고 해도 마음만 먹으면(물론 더럽게 먹기 힘들었지만), 조금만 노력하면 언제든지 헤어 나올 수 있었거든. 그냥 괜찮아, 괜찮아 계속 기도처럼 외우다 보면 괜찮아졌어. 내가 너무 거만했었나. 어느 날 괜찮아, 괜찮아 하는데 머릿속에선 다른 목소리가 들렸어. 정말 괜찮은 거 맞아? 과연 괜찮을까?
나는 괜찮지 않았던 걸지도 몰라. 아직도 네가 날 바라보던 걱정스러운 얼굴이 뇌리에 남는다. 타인이 봐도 안쓰러웠을 텐데 왜 정작 내가 날 안쓰러워하지 못했을까. 이젠 이런 고찰들이 지겹고 야속하기만 해. 이제서야 모든 것에 지치기 시작해.
/ 인간사 치료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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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내내 장마라니 벌써 습하다,,
예전에 쓴 소설 일부랑 글귀를 가져왔어!
제목이 없는 건 그냥 정하지 않은 것들이야
여시들 모두 좋은 밤 보내~~
첫댓글 너무 좋다 여샤,, 늘 고마와🤍
좋은 글 고마워 여시야
헉 너무 좋다.. 눈물 주르륵
그냥 다 너무 좋다 구절마다 내 마음을 관통하는 것 같아 진짜 대박이다 너무 멋있어
너무 좋다
너무좋다 고마워멋진글
다 여시 자작소설이야? 너무너무 좋다
여시 글이 너무 좋아서 19년부터 올려준 글들 다시 읽고 왔어! 멋진글 고마워
여시가 쓴 글이라니 대박...마지막 글 넘 좋다...공감가ㅠㅠ
소미 민들레홀씨에 비유한 부분 너무 좋아서 되짚어읽다가 댓글달러왔어 ㅠㅠ 여시 넘 멋진사람이다
고마워
너무좋다 특히 마지막ㅠㅜ
너무 좋다 ㅠㅠㅠ
너무 좋다... ㅜㅜ
고마워여시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