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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독소전쟁에 관심을 가지면서 독소전쟁이 2차 세계대전 중에는 물론이고 그 사망자 수가 장난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처음에는 승승장구하던 독일이 왜 결국에는 소련에게 패배했는지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사실 진짜 옛날(중학교 다닐 적/참고로 현재는 성인)에는 독일이 소련에게 묶여있는 사이에 영미연합군이 상륙해서 독일이 패배한 줄 알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연합군이 독일군 20개 사단을 물리치는 사이 소련은 바그라티온 작전으로 독일군 300사단을 물리치고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연합군의 역할이 적었다는 것은 아닙니다. 미국과 영국은 소련에 물자지원을 충실히 해줬고 이를 통해 소련은 무기생산에만 집중하며 독일군을 상대했습니다. 또한 노르망디에 상륙해 버림으로써 독일은 서쪽으로 공격하는 아르덴 공세라는 실수를 저질렀고 이 틈을 타 소련은 베를린으로 진격하는데 성공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독일 입장에서 소련을 공격하는 것은 일본이 진주만 공습을 통해 미국을 공격했던 것처럼 무모한 것은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소련은 스탈린의 대숙청으로 유능한 장교들을 상당수 잃었고(단, 게오르그 주코프 등은 보험용으로 살려두긴 했지만) 스탈린 및 정치장교들은 독소전쟁 직전까지는 군사적으로 매우 무능했습니다. 심지어 2차대전 초기 겨울전쟁에서 핀란드군에게 3만명의 손실을 입히고는 30만명의 소련군이 학살당하는 참사까지 일어난 뒤였고 그 뒤로도 그리 나아진 모습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히틀러는 이 모습을 보면서 "프랑스도 6주만에 이겼는데 소련쯤이야 못이기겠어?"라는 안이한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히틀러는 소련으로 쳐들어간지 4년만에 소련에게 완벽하게 패배하고 이를 통해 소련군을 포함한 연합군들은 나치독일을 멸망시킬 수 있었습니다.
왜 잘나가던 독일군은 소련군에게 패배했는지 한 번 생각해 봤는데 만약에 독일군이 이 6가지만 충실히 지켰다면 독일군은 독소전쟁에서만큼은 패배하지 않고 최소한 우랄산맥 및 카자흐스탄 지역까지는 무난하게 진출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가집니다.
1. 만약에 나치독일군이 동유럽 방면의 민간인들 및 포로들을 학살하거나 강압적으로 대하지 않고 삼대기율 팔항주의에 의거해 민간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이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 노력했다면...
>>> 당시 동유럽 주민들은 소련에 대해 이를 갈고 있었기 때문에 1번만 철저히 지켰어도 소련은 독일을 이기기 매우 힘들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이들의 환심을 사면 이들을 독일물자를 생산하는데 이용할 수도 있고 아예 독일군에 자진입대시킬수도 있으며 그리고 아예 이들이 모스크바까지 점령해서 독일에게 바쳤을 겁니다. 그랬다면 모스크바의 철도, 도로망 등을 통해 물자를 지원하던 연합국에게는 큰 타격이 왔을 것이구요.
>>> 하지만 실제로 나치독일군들은 처음에 해방자로 맞이하던 동유럽 민간인들을 잔혹하게 학살했습니다.
대표적인게 200만명의 벨라루스 사람들을 학살한 벨라루스 초토화사건으로 그 잔혹성과 학살규모수준이 절대로 난징대학살에게 밀리지 않습니다. [단, 2차 세계대전 동안 독일군이 학살한 민간인 총수보다 중일전쟁+태평양전쟁 동안 일본군이 학살한 민간인 총수가 더 많았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 일로 반소련감정이 극한에 있던 폴란드 사람들과 우크라이나 사람들을 독일편으로 끌어들이는데 실패하였고 독일에게 매우 큰 부담으로 다가옵니다. 독일군 점령지 내부에서 저항군들이 곳곳에서 독일군들을 괴롭히고 있었기 때문이죠. 물론 독일군 중에서도 최전방 부대들은 학살이나 폭력, 약탈 등을 자제했습니다. 민간인을 자극해봤자 좋을게 없다는 생각이었죠. 하지만 후방에서 보급된 일부 독일군들이나 히틀러친위대인 슈츠슈타펠들은 평소부터 슬라브 민족은 열등하다라는 교육을 받았던 만큼 동유럽 주민들을 잔혹하게 학살하고 다닙니다.
2. 만약에 동부전선 총사령관을 따로 임명해서 히틀러가 군사일에 개입하기를 최대한 자제했다면...
>>>만슈타인,구데리안 같은 천재적 능력을 가진 장수들이 많았던 만큼 소련에게 쉽게 깨지지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나치독일 내의 X맨 히틀러는 동부전선 총사령관을 스스로 맡음을 물론이고 세세한 병력 배치까지 사사건건 간섭함으로써 전쟁을 패배로 몰아넣었습니다. 그래도 스탈린이 휘하 장수들에게 어느 정도의 재량권을 시원스럽게 넘겨준 것과는 대조적입니다. 군주가 장수 일에 간섭할 때의 위험성은 손자병법도 지적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군주와 정치지도자는 자신이 잘 알지도 못하는 전쟁터의 일을 궁궐에서 함부로 왈가왈부하고 참견해서는 절대 안 된다. 그래서 손자는 군주에게 세 가지의 금기사항이 있음을 이렇게 말하면서 경계하고 있다. 첫째, 군대의 진퇴를 잘 알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명령하거나 둘째, 삼군(三軍)의 사정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군정(軍政)에 참견하거나 셋째, 삼군의 권한을 알지도 못하면서 능력도 없으면서 직책을 맡으려 해서는 절대 안 된다고 지적한 것이다. 전쟁의 실무자인 장수는 전권을 쥐고 일을 소신껏 추진하라는 것이다. "
수나라 양제가 손자병법을 무시하고 113만대군(보급대까지 합치면 300만대군)을 이끌고도 휘하 장수들에게 재량권을 전혀 주지 않은 결과 요동성에서 저항하는 고구려군사들은 수월하게 막아낼 수 있었고 송나라 2대 황제 태종 조광의 역시 본인이 장수 출신 황제임에도 불구하고 휘하 장수들에게 재량권을 전혀 주지 않은 결과 100만대군으로도 거란을 제대로 공격하지 못했습니다.
3. 만약에 홀로코스트, t-4프로그램 등의 대량학살, 생체실험 등을 아예 단행하지 않거나 설령 반유대주의를 외치면서 홀로코스트를 하더라도 열혈 유대교신자나 랍비 수천여명을 죽이는 정도로 끝내버렸다면...[그렇다고 해서 특정 혐의가 없는 유대교신자나 랍비를 죽이는 것 역시 학살로 옳지 않는 행위입니다. 즉, 일어난 학살수준이 무솔리니 정도의 규모로 끝났다면 즉, 악행이 일어났더라도 최악보다는 차악이었다면...]
>>> 그랬다면 당시 나치독일은 더 많은 양질의 인재들을 확보할 수 있었을 겁니다. 또 독일의 기술자들 및 과학자들이 t-4프로그램을 하지 않고 더 건설적인 역량으로 쏟아부음으로써 더 많은 전쟁물자 및 신무기들을 확보했을 거고 그 물자들은 소련과 전쟁했을 때 매우 큰 힘이 됐을 겁니다. 어떤 이는 독일이 홀로코스트와 t-4프로그램 등 학살행위나 잔혹행위를 전혀 하지 않았다면 독일이 세계 최초로 핵폭탄을 만들었을지도 몰랐다고 했을 만큼 이들중에도 양질의 인재가 아주 많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독일은 히틀러가 자살하기 직전까지 악착같이 유대인들을 포함한 공산주의자, 반대파들을 학살했는데 이 때 학살당한 유대인 중에서는 나치독일 장교 출신도 있었다고 합니다!!! 사실 유대인 명목으로 학살당한 피해자들의 절대 대다수가 본인들이 유대인인지에 대한 자각도 없었다고 합니다. 즉, 조상들 중 한 명이 유대인이니 유대인이라는 무서운 논리...
4. 만약에 독일군이 독소전쟁이 일어나자마자 모스크바를 집중공격해서 모스크바에 집중되어있는 도로망, 철도 등을 최대한 빨리 확보해놨다면...
>>> 그랬다면 소련군은 반격을 하기 위해 많은 애를 먹었을 겁니다. 모스크바를 통해 우랄산맥 서부 동유럽 지방을 자유자재로 다니면서 괴롭혔을 것이고 미국의 랜드리스 물자 공급에 매우 큰 차질이 생겼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 하지만, 히틀러는 곡창지대나 석유라는 눈앞의 이익에만 팔려 모스크바는 아예 쳐다보지를 않았습니다. 모스크바를 지켜낸 뒤 소련군은 모스크바의 도로망, 철도 등을 이용해 미국, 영국의 랜드리스 물자들을 꾸준히 받고 있었고 이를 통해 소련군은 오직 무기생산에만 집중하면서 모스크바도로, 철도망들을 이용해 독일군들을 몰아내는데 성공했습니다. 아예 바크라티온 작전때부터 소련군은 매우 빠른 속도로 독일군들을 격파해 나가면서 독일군에게 치명적인 한방을 먹입니다.
5. 만약에 히틀러가 한고조 유방처럼 유능한 참모진들 및 전략가들의 거듭된 의견개진을 빠르게 수용하고 현지사수명령을 남발하지 않고 최대한 자제했다면...
>>> 그랬다면 프랑스 침공 당시 영국군 됭게르크 철수작전을 실패했을 것이고, 역시 동부전선의 독일군들 역시 원없이 충분한 기량으로 소련군을 상대하면서 소련군의 진공을 늦춰냈을 것입니다. 또한 독일군들은 전략적 후퇴 방법으로 재보급 시간을 가짐으로써 전쟁 후반에도 소련군에게 일방적으로 털리지는 않았을 겁니다.
>>> 하지만 히틀러는 독단적으로 명령하고 간섭했으며 유능한 인재들의 거듭된 간언을 끝까지 무시했습니다. 게다가 미친 듯이 남발해대는 현지사수명령은 독일군들에게 족쇄가 돼버렸고 전쟁 후반 이를 역이용한 소련군들에 의해 일방적으로 털리게 되는 계기가 됩니다.
6. 만약에 히틀러가 이탈리아및 일본과 동맹을 맺지 않았다면...
>>> 이탈리아는 그리스를 공격하다가 역으로 털린 결과 독일에게 구원요청함으로써 독일군을 분산시키는 역할을 하고 일본은 미국을 공격함으로써 독일에게 부담을 주었습니다. 게다가 독일이 원하던 소련침공을 일본군은 끝까지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일본군은 미국이라는 거대한 부담덩어리를 독일에게 팽개쳐 놓음으로써 미국의 우월한 물자에 의해 독일이 패배하는 결과를 초래햇습니다. [이 때 미국은 전체 전쟁관련 예산의 80% 이상을 독일 부분에 할당하고 10%정도를 태평양 부분에 할당했는데 일본군은 그 10%에게도 일방적으로 털리고 있었습니다. 만약 독일이 일본과 동맹을 맺지 않고 진주만 이후 미국에게 선전포고는 커녕 미국과의 관계를 지킬려고 애를 썼다면 미국은 총 국력의 80%이상을 태평양에 쏟아부음으로써 1년 안에 일본을 패망으로 몰아넣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깝다!!! ]
당시 나치 독일이 일으킨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수뇌부에는 뛰어난 인재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굳이 중옛날 중국,우리나라 위인들과 비교해보자면 유럽판 소하 알페르트 슈페어, 유럽판 한신 에르빈 롬멜, 유럽판 손무 에리히 폰 만슈타인, 유럽판 하후영(또는 관영) 하인츠 구데리안, 유럽판 척준경 오토 카리우스 등으로 비견될 만큼 많은 활약을 보여줬습니다. 하지만 그들 위에 올라있는 히틀러는 유럽판 한고조 유방이 되기는 커녕 유럽판 돌아이+멍청이 였습니다. 오히려 전쟁말기의 스탈린이나 미국의 루즈벨트 대통령이 한고조 유방에 비견될 정도의 개념있는 행동을 보여줬습니다.
전쟁의 승패를 결정짓는 가장 큰 요인은 어느 쪽이 각 전투에서 승리하는지가 아닌 어는 쪽이 삽질을 덜 하는지 입니다. 소련의 스탈린은 독소전쟁 중, 후반기부터 삽질을 그만두었지만 나치 독일의 히틀러는 삽질을 더 하기 시작하면서 나치 독일을 패망으로 몰아넣었습니다.
즉, 군주로서의 한고조 유방수준의 역할도 충분한 능력과 안목, 식견이 있어야 할 수 있는 자리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제 긴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첫댓글 그냥 전쟁을 일으키지 않았다면...
원숭이가 나무에서 내려오지 않았다면...
독소전쟁은 근본적으로 이념전쟁이자 약탈전쟁이었습니다. 보통국가간의 전쟁이 아니죠
이 전쟁관에 의하면 설령 최전선 국방군들이 대민이미지에 신경을 썼다 한들 누군가는 결국 양곡을 빼앗고 파르티잔 근거지를 불태우고 주민들을 쏴죽여야만 한다는 겁니다
너그러운 민사작전이라는게 사실상 어불성설에 가깝죠
그런 식이면 반대로 빠른 소련의 승리도 예상할수 있죠
스탈린이 군부를 숙청하지 않았다면?
그럼 늦어도 2년안에 독일이 패배합니다.
당이 군부 통제 못해서 나라가 망합니다 ㅇㅇ
@게임좋은 그리고 4조각으로 찣기는데....(카이저라이히 패러디)
그리고 영국이라는 적국을 등 뒤에 두고 양면전을 벌였죠.
스탈린과 히틀러는 재밌는게,
나름대로 군부 통제한 것은 비슷하지만,
히틀러는 프랑스 전격전->근본없는 자신감(나 전쟁 천재듯..)->소련 가자!->왜 안돼! 후퇴금지->너 해고, 내 생각대로 해!!->망함
반면 스탈린은 대숙청 및 군 장악->독소전 시작->후퇴 금지, 총전선 반격 등등 삽질->그게 안되니 멘붕->결국 자기의 군사전략전술적 안목 부족을 깨닫고 휘하 장군들 신뢰시작(물론 총감독자 입장에서 서서 간섭은 하지만, 전보다는 극단적이지 않음)->승리
즉, 독소전은 한쪽은 점차 몰개념인이 되어가고, 한쪽은 똑똑해진 건 아니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맡기고 그걸 나름대로 조율하는 개념인이 되어가는 과정을 보여주기도 한다고 봅니다
2가지로 압축해도될거 같은데
1.게르만 민족주의가 없었다면(비스마르크 때부터 슬슬 기어나왔죠.)
2.히틀러가 없었다면
...전쟁이 안일어났겠죠.
독일이 민족사회주의가 아닌 진정한 국가사회주의였다면 성공했을수도...
그거나 저거나 독일이 패망한건 우경화 때문임다..
@이림나일 ^^
@마황 국가 사회주의로 갔어도 전쟁을 안일으켰을 당시 독일이 아니고 '게르만'이라고 하는 것도 약간의 차이가 존재하는 각 독일민족들을 '독일'이라는 국가주의로 모으는 발상이었죠.
그 두 단어로 차이가 날 일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말씀하신 요소는 독일이 전쟁을 일으키게 한 요소를 모두 배제하면 전쟁에서 이긴다는 말입니다.
한마디로, 지금 말씀하신 것과 같은 선택을 할 독일이었다면, 애당초 전쟁을 일으키지 않았을 거라는 얘깁니다.
5번덕에 독일이 프랑스 바를수 있었던거죠. 국방군 고위장성들 대부분과 프란츠 할더도 낫질작전 반대했습니다. 근데 히틀러가 밀어붙인덕에 작전이 실행됐죠
근데 히틀러가 처음부터 군대에 간섭하지 말았어야 했다? 그랬으면 십중팔구 독일은 서부전선에 전력 쏟아붓고 이기지도 못하고 독소전 하지도 못했을겁니다
그건 아니지 않나 생각합니다. 초반에 히틀러가 간섭한 것은 만슈타인의 간절한 부탁이라는 것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후반의 간섭은 유능한 참모가 부탁해서 단행하는 간섭도 아닌데 지 혼자서 다 이길 것 같아서 하는 아집성 간섭이었습니다. 즉, 장군들의 의견이 서로 갈릴 때 이를 조정하고 중재하는 것이 군주 또는 지도자의 역할입니다.
그리고 전 독일의 패배요인중 가장큰건 총력전 안한거라 봅니다. 슈페어 말들어보면 독일은 43년까지도 전시경제체제 전환 안했어요. 당시 독일과 소련은 GDP는 비슷한 수준이었기 때문에 둘다 총력전을 한다면 생산력면에서 독일이 딱히 밀릴 일은 없었고(랜드리스 들어오긴 했는데 그건 스탈린그라드 전투 이후니까요) 그럼 41년에 모스크바 먹고 유럽러시아 먹을수도 있었겠죠
슈페어가 만든 사기극에 아직도 많이 낚이고 있긴하죠.
사실 그도 유대인 착취에 힘썻고 유대인 학살에 알건 다 알았습니다.
자신을 비호하기 위해 낸 비망록에서 다른많은 나찌독일 인사들이 그러하듯 책임을 모조리 히틀러와 죽은 놈들에게 떠넘긴 채 모른다고 잡아뗀거죠.
각설하고, 독일은 총력전을 못한거지 안한게 아닙니다.
1. 나찌독일은 1930년대부터 군비 확충을 위한 계획을 세웠고, 생산력 증대도 토트 시절에 이미 다 준비된 겁니다. 슈페어는 그 이득을 본 거죠.
2. 독재체제기 때문에 국민 상대로 아부를 해야 하기 때문에도 소비재 생산을 줄이지 못합니다.
3. 애초에 재벌들의 도구로 만들어져서 쉽게 이래라 저래라도 못합니다
@아르미셸 이미 독일애들이 기획짜놓은게 슬슬 정상계도에 오를때가 슈페어가 막 들어갓을때라서..
독소전쟁에서
히틀러는 독일군의 장군이 되려했고 스탈린은 소련장군들의 장군이 되려했지요
네. 맞습니다.
1. 동부전선은 보급상의 문제로 인해 우선순위에 있는 대독일 사단 조차도 탄약,연료,식량의 보급이 원할하지 않았습니다.
애초 선의를 갖고 들어갔다 하더라도 점령지를 수탈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내몰렸을겁니다.
2. 독일군은 애초에 총사령부라는 일원화된 지휘체계를 가지지 못했습니다. OKW, OKH, OKL, OKM, SS 등이 난잡하게
얽혀서 권력투쟁 중이었는데, 여기에 더해서 동부전선 총사령관 이라는 직책을 만들어 낸다는 건 혼란을 더 부채질 할
뿐이었겠죠. 전쟁중반이후 동부전선은 OKH, 그외 지역은 OKW 관할 이었습니다. 전쟁후반 밀릴대로 밀리자 동부전선
총사령관이라는 쓸데없는 아이디어가 나온거죠.
3. 나치가 집권하고 좌파와 유대인을 탄압하기 시작했을때 지식인층이 빠져나가기 시작한거죠. 홀로코스트 같은 경우
전세가 불리해지자 더 광적으로 집행되었습니다.
4. 어느 쪽으로 갔다 하더라도 결과는 비슷했을 겁니다. 1차세계대전 독일참모장 팔켄하인의 견해로는 페테르스부르크
를 점령한다면 몇 달치의 군수품을 확보할 수 있을 뿐이다. 모스크바는 교통의 요지라서 전술상의 이점을 가져다 줄것
이다. 우크라이나를 점령하면 독일은 자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광대한 러시아에서 전선을 확장하면 할수록
그 늪에 더 깊이 빠져들 뿐이다.
5. 전후 지휘관들이 잘한건 자신의 공이고 못한건 모두 히틀러탓으로 돌려서 빠져나갔죠. 덩케르크에서 대부분의 지휘관
들은 전진을 반대했습니다. 후퇴는 다가오는 파멸을 잠시 연기하는 것일 뿐이라고 히틀러가 말했었죠. 후퇴금지가 없었
다 한들 결과는 비슷했을 겁니다.
6. 독일에 영웅들이 모여있다고 했는데, 롬멜, 구데리안, 만슈타인, 슈페어 이런 사람들은 애초 소장파로서 히틀러에 의해
벼락 출세한 사람들입니다. 독일은 대미개전을 할 의무가 없었지만, 일본이 태평양에서 미해군을 잡아둘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독자적으로 한것입니다. 당시 대서양에서는 선전포고 없는 미국과 독일의 전쟁이 진행 중이었죠.
재밌게 잘 봤습니다 ^^
더 간단한 설명이 있죠. "한마디로, 소련이 더 강했어."
많은 사람들이 왜 독일이 패했는지에 대해 독일을 결과의 주체로 잡고 "독일이 이러해서, 저러해서..."라는 결론을 내리는데, 그건 "독일이 이러하지 않았으면, 대신 저렇게 했으면 이겼을 것이다"라는 것을 가정하고 있거든요. 분명 그 가정이 개연성이 있던 시점이 있긴 했지만, 그 시점이 지난 후 부터는 전쟁 내내 독일은 더 이상 승패를 결정하는 주체가 아니라 객체에 불과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미 42년부터 주체는 "소련"이 되었어요.
독일이 뭘 했든 결국 소련이 더 강해졌다는거죠. 45년 종전시점에서는 세계 최강이었을겁니다, 아마.
언제나 천조가 세계최강.....
이유는 딱한가지에요 정치적 붕괴가 일어나지 않았음. 독일의 침략을 받은 나라는 모두 정치적으로 붕괴가 일어나서 망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