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기름부은 자에게 손을 대지 말며”라고 아래 본문에서도 분명히 증거되어 있는데 정말 다윗은 사울 왕이 3000명의 별동대를 거느리고 자신을 죽이려고 추격하는 상황에서, 곧 현실적으로 볼 때 자신이 절체절명의 위기를 당한 것일 뿐 아니라 실제로 죽게 될 가능성이 아주 큰 실상 속에서도, 게다가 한편으로는 당시 사울 왕을 곧바로 죽일 수 있는 완벽한 기회였음에도 불구하고..
사무엘상 24장 5~7절에서 “그리 한 후에 사울의 옷자락 벰으로 말미암아 다윗의 마음이 찔려 자기 사람들에게 이르되 내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내 주를 치는 것은 여호와께서 금하시는 것이니 그는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됨이니라 하고 다윗이 이 말로 자기 사람들을 금하여 사울을 해하지 못하게 하니라 사울이 일어나 굴에서 나가 자기 길을 가니라"라고 증거되어 있는 것에서 잘 알 수 있는 것이듯이 단지 사울 왕이 하나님으로 인해 기름 부으심을 받은 왕이라는 사실 한 가지 이유만으로 죽이지 않았을 뿐 아니라 그 옷자락을 벤 것뿐인데도 마음에 찔려 하면서 뉘우치기 까지 한 것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다윗은 그 정도로 진정한 말씀의 신앙이었다는 것이고, 심지어는 한 두 구절의 말씀을 위해 자기 목숨까지 걸 정도로 신실하고 치열하며 절실한 말씀의 열정이었다는 것으로..
바로 그러한 다윗이었기에 들판에서 양을 칠 때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창과 칼이 없이 곰과 사자도 물리쳤고, 물맷돌 하나로 블레셋의 거인 장수 골리앗을 쓰러뜨렸으며, 목동에서 이스라엘 모든 지파의 왕이 되었고, 그 주변의 강한 민족들과의 계속되는 전쟁들에서도 누구든, 어디를 가든 이기게 되었으며, 결국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이 되어 이스라엘 하나님의 백성들과 그 후손들 뿐 아니라 오늘날 이 시대 우리들에 이르기까지 깊은 은혜와 믿음들, 선한 영향력과 열매들이 되고 있음을 알 수 있고, 심지어는 마태복음 1장 2절에서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라고 증거되어 있는 것이듯이 구주 예수님의 메시야 계보 한 가운데에 까지 위치하게 된 것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에 있어서의 이유와 원인은 조금도 복잡할 수 없는 것인데 근원적으로 다윗에 있어서의 모든 은혜와 승리와 복들, 합력하여 선을 이루심을 위시해서 우리 인생들이 이 세상에서, 또한 세상 끝 날과 부활과 영생에 이르기까지 경험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의 중심, 근본, 실체이신 분인 것일 뿐 아니라 삼위일체라는 그 존재와 개념 상 구약과 신약 시대, 오늘날 우리들, 모든 인류 역사들, 심지어는 천지창조와 창세 전, 세상 끝 날과 영원에 이르기까지 잠시라도 분리, 별개, 변개이실 수 없는 반면 언제나 함께 이시고 그 역할에 따라 완벽하게 조화되시며 완전히 하나되시어 한 뜻을 이루시는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본질적으로는 그 자체가 바로 말씀이신 것이고, 오직 말씀으로 하나되시어 말씀과 함께, 말씀대로 모든 것을 실행하시며, 다 이루시는 분인 것이기 때문인 것으로..
그 위치와 역할 상 모든 주권과 통치와 섭리의 하나님 아버지께서야 말로 근본적으로는 말씀으로 존재, 창조, 통치하는 분인 것이고, 뿐만 아니라 온 세상과 전 인류, 모든 시간과 공간보다 더 크신 성자 하나님이신 그 목숨값으로 십자가에서 시대와 나라들을 넘어 모든 구원을 다 이루신 구주 예수님께서도 본질적으로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말씀대로 모든 구원을 다 이루신 분인 것이며, 게다가 직접적, 현실적, 경험적인 측면에 있어서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으로 모든 실제와 경험과 성취들이 되게 하시는 성령님께서도 단적으로 말해 말씀의 영이신 것이기에 실제로 그 다윗 뿐 아니라 모든 신실한 믿음의 선배들에게서도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는 것과 같이 다른 그 무엇보다 말씀, 말씀의 신앙, 말씀대로의 믿음, 치열하고 절실하며 뜨거운 말씀의 열정이 그와 같은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하나되심과 기뻐 역사하심과 풍성하심들에 가장 합당할 수밖에 없는 것이고, 참으로 온전함과 생생함과 강렬함들에 있어서 모든 전제와 기준, 관건과 통로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그와 동일한 이치와 원리 상 그 다윗이 한 때 밧세바를 범하고 그 남편을 죽게 만들었을 때 그로 인해 아무 일도 없을 수는 없었던 것이고, 실상 하나님께서는 그 백성들의 죄악들에 있어서 더욱 사랑하셔서 라도 아비의 심정으로 그러한 죄악들의 모양과 정도와 강도에 따라, 또한 하나님의 시간과 계획과 섭리에 따라, 그리고 그 당사자의 그릇과 쓰임과 준비도 등에 따라 더 이상 죄악들을 반복하지 않고 하루바삐 돌이키며 속히 제대로 된 믿음에 서게 되도록 하나님의 시간까지 응답과 승리와 복들 등은 막으시곤 하고, 대신 반대로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들 등과 같은 징계들을 아끼지 않으시곤 하는 것으로..
물론 결국에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이 되기는 했지만 어쨌든 그러한 사악하고 심각하며 있을 수 없는 죄악들로 인해 그때 밧세바에게서 낳은 아들이 금세 죽게 된 것일 뿐 아니라 오랜 기간에 걸쳐 별의 별 일들이 다 있었는데 실제로 그에게서 난 배다른 자녀들 사이에 성폭행과 살인도 있게 되었고, 그 아들에게 일정 기간 왕위를 빼앗기게도 되었으며, 반란도 있게 된 것 등 깊은 곤고와 시련과 비참의 시간들이 있었음을 사무엘하 12장 이후부터 계속해서 확인할 수 있는 것입니다..
진정 오늘도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이 날마다 순간마다 죄악들과 피 흘리기까지 싸우고 하나님의 말씀들을 생명처럼 사모하며 가까이 해야 할 이유들이 여기에 있는 것이고, 실상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며, 사실상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바로 서고 강건하며 견고하기 힘든 것임은 물론 살아 있고 깨어 있는 믿음이 되는 것은 아예 불가능이 아닐 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인데..
그렇지만 사실 그렇게 죄악들이 아닌 말씀의 신앙이 되는 것부터가 결코 인간적인 힘과 의, 세상적인 능력과 방법들로는 안 되는 것이고, 악한 세력들이 가득한 이 험악한 세상에서 연약한 육신의 몸을 입고 살아야 하는 것이기에 어떤 면에서는 오직 한 가지 방법, 통로 외에는 다른 것들은 있을 수 없는 것으로 다름 아니라 처음에 믿음으로 구원에 참예케 된 사랑, 이치와 마찬가지로 하나님 아버지의 창세 전부터의 뜻과 약속과 섭리 안에서 어떤 식으로든, 특히 사도 바울과 같이 순간순간 오직 한 분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를 자랑하고 붙잡으며 그 이름으로 기도하고 찬미하면서 바로 그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으로 인한 하늘의 힘과 은혜와 실제를 덧입어서 죄악들과 싸울 수 있는 것이고, 혹 범하게 된 죄악들에서는 자복하고 돌이키면서 다른 그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정말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모하고 가까이하며 읽고 들으며 묵상하고 실천하며 증거하는 등과 같은 결단과 몸부림들이 가능한 것이며, 그로 인해 가면 갈수록 직접적으로는 말씀의 영이신 성령님으로, 근원적으로는 말씀으로 하나되신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기뻐 역사하심들로 더욱 생생해 지고 강렬해 짐으로 인해 더욱 더 죄악들과 싸울 수 있게 되는 것이고, 더더욱 말씀의 신앙으로 치열해 지고 뜨거워 질 수 있게도 되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는 사람이 그들을 해하기를 용납하지 아니하시고 그들 때문에 왕들을 꾸짖어
이르시기를 나의 기름 부은 자에게 손을 대지 말며 나의 선지자를 해하지 말라 하셨도다"
(대상16:21~22)
*양범주목사의 '21세기 두란노서원'/2024년 5월 13일(월)1부/사진 조연진사모, 이미지 박원영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