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 P. 러브크래프트의 계보를 잇는 초자연적 공포소설의 거장 토머스 리고티의
픽션보다 더 무시무시한 철학 에세이!
해외 호러 팬덤에서 전설적인 논픽션으로 알려진 토머스 리고티의《인간종에 대한 음모》가 드디어 번역되었다. 코스믹 호러 장르의 염세적인 세계관을 담은 이 책에서 리고티는 인간을 자의식이라는 끔찍한 잉여를 지닌 무(無)에 불과하다고 보는 노르웨이의 반출생주의 철학자 삽페(Zapffe)의 파격적인 주장을 빌려와 자신만의 근본주의적 비관론을 펼쳐나간다. 인간을 ‘두 발로 걸어 다니는 비실재’로 보고, 세계를 ‘악의적으로 쓸모없다’고 치부하는 염세주의 극좌파 리고티에게 쇼펜하우어는 변절한 비관주의자이고 니체는 온건한 허무주의자일 따름이다. 염세주의에 관한 철학과 문학, 신경과학의 탐구를 통해 공포가 우리 상상력의 산물이 아니라 적나라한 현실 자체임을 보여주려는 이 책은 독자에게 예기치 못한 부정성의 해방감을 맛보게 해준다. 최고의 호러 문학상이라 불리는 브램 스토커상 논픽션 부문에서 최종 후보로 올랐으며, 걸작 드라마 〈트루 디텍티브〉에 세계관적 영감을 제공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호러 장르 마니아에게는 공포의 본질을 탐구하는 호러문학 개론서로, 인문학 독자에게는 한국에 널리 알려지지 않은 염세주의 및 반출생주의 철학의 개론서로, 콘텐츠 창작자에게는 초자연적 공포를 연출하는 법을 다루는 작법서가 될 것이다.
작가정보
저자(글) 토머스 리고티
미국의 컬트적인 공포소설 작가. 1953년 디트로이트에서 태어났다.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일하며 1980년대 초반부터 작품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초자연적 공포소설의 대표 작가 중 한 명으로 꼽히지만 공포소설들이 남발하는 노골적인 폭력 대신 섬세한 표현을 반복해서 비관적인 분위기를 조성하여 독자를 동요하게 만드는 것을 선호한다. 에드거 앨런 포와 H. P. 러브크래프트의 기이한 공포, 카프카의 부조리에 영향을 받았으며, 가장 깊은 실존적 수준에서 충격을 주는 자신만의 공포 스타일을 만들었다.
1986년 출간된 그의 첫 번째 이야기 모음집 《죽은 채 꿈꾸는 자의 노래Songs of a Dead Dreamer》와 1991년 출간된 《그림스크라이브Grimscribe》는 공포소설의 고전이 되었다. 단편 모음집 《악몽을 만드는 공장The Nightmare Factory》과 중편소설 《붉은 탑The Red Tower》, 장편소설《나의 일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My Work Is Not Yet Done》로 각각 브램 스토커상(Bram Stoker Award)을 수상했고, 그중 《악몽을 만드는 공장》은 브리티시 판타지상(British Fantasy Award)과 국제 호러 길드상(International Horror Guild Award)도 수상했다. 2019년 호러작가협회가 공포 장르에 큰 영향을 준 이에게 수여하는 평생 성취상(Lifetime Achievement Award)을 수상했다.
추천사
마크 피셔 (영국의 작가, 《기이한 것과 으스스한 것》 저자)
“전문 철학자의 작업에서 종종 결핍되어 있는 형이상학적 갈증에 의해 나오는 최고의 아마추어 철학”
책 속으로
“대부분의 사람은 의식의 내용을 인위적으로 제한함으로써 스스로를 구하는 법을 터득한다.”(36쪽)
생존하고, 번식하고, 죽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하면, 우리는 부당하다고 느끼게 된다. 우리는 그 이상이 있기를 바란다. 혹은 그 이상이 있다고 생각하기를 원한다. 이것은 비극이다. 의식은 우리의 본질을, 즉 우리가 분해되어가는 뼈에 붙은 부패해가는 고깃덩어리라는 것을 스스로 의식하지 못하도록 애쓰는 역설적인 상황으로 우리를 몰아넣는다. (38쪽)
거짓의 수레바퀴 위에서 우리 등이 서서히 부러져 가는 와중에, 이런 자기기만을 끝내려면, 즉 의식을 지니면서도 의식을 억제해야 하는 역설적 명령으로부터 우리 종을 자유롭게 하려면, 우리는 번식을 중단해야 한다. (39쪽)
행복한 결말로 끝나는 인생 이야기는 없다. 오로지 공포라는 발명품, 그런 다음 무로 끝날 뿐. 그밖에는 아무것도 없다. 자유로운 삶에의 의지도 없고, 죽음에의 의지로 말미암은 구원도 없다. 참으로 우울하게도. 팔아먹을 철학은 없다. 비관론은 팔리지 않으며, 낙관론은 통과하기 위한 조건이 너무 사악해서 문을 닫아야 했다.(31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