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28년만에 미국땅을 밟고 왔다. 1996년1월 우리가족 4명과 고모 둘하고 로스엔젤레스와 샌프란시스코에 살고 있던 한국의 시중은행의 현지법인에 발령나 근무중인 매제가족과 당시 미국에 이민온지 28년째인 작은형님가족을 만나 지낸후 하와이를 들러 13박14일간의 긴여행을 즐기고 온적이 있다. 이번에는 집사람 칠순기념으로 꼭 가고 싶었던 나이야가라폭포를 보기위해 뉴욕.워싱턴. 보스턴등 미국동부3개 도시와 캐나다 동부 3개도시인 몬트리올. 토론토. 퀘백등을 번갯불에 콩볶아 먹듯이 최고령인 78세.75세인 부부와 최연소 9살인 2학년등 도합 50명이 대형버스 한대에 타고 돌아 다녔다.
첫관문인 뉴욕JFK공항 나는 입국자 관리창구에서 생각지도 못한 일로 입국이 되질 않아 심한 고초를 겪었다. 2년전 수술한 하안검,상안검수술과 올봄에 한 눈썹문신으로 여권사진과 다르다고 일행 26명은 무사히 다 빠져나갔음에도 나만 홀로 출입국관리사무소로 경찰손에 인계되어 한시간이상 그야말로 억류되었다가 재검사로 나오게 되었다. 기다리다 못해 여행객 일행은 먼저 행선지로 떠났고 공항서 나오기를 노심초사 기다린 집사람은 마침 뉴욕에 사는 큰조카부부가 공항으로 급히 우리를 구출하러와 3시간후 여행객들과 미국인의 자부심인 브루클린 부릿지밑에서 조인할수 있었다.
8박10일동안 가이드가 네번바뀌였는데 세사람은 반나절씩 잠깐들하고 5박6일간 메인코스는 올해 53세인 가이드가 전담을 했다. 처음엔 27명이 여행을 미리 시작하다 이틀이 지난후 전날온사람들 7명. 이틀전 온사람 16명등 무려 50명이 움직였지만 말잘듣고 질서잘지키는 한국인들이라 무리없이 잘다녔다. 가이드는 한국서 고3때인 1990년 부모따라 이민을 와 미국서 전문대학을 마치고 치과기공사를 12년하면서 돈을 제법 벌어 집도 사고 결혼하여 쌍둥이 아들을 기르다 3D프린터기 등장으로 치기공사일을 그만두고 10여년째 가이드를 하면서 스킨케어를 하는 부인과 함께 등록금비싼 대학생 둘을키우는 사연등 주변의 한인들의 생활상을 과장없이 말해 주었다.
지금도 200만명의 한국인이 미국으로 이민와 살고 있는데 그숫자는 더 늘어나지 않는게 과거에 비해 너무나도 잘사는 나라가 된 한국인지라 더이상 아메리칸드림을 꿈꾸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은 이민초창기인 1970년 전후부터 갖은 고생을 하며 그야말로 근면성실만을 무기로 세탁소, 야채가게. 비디오가게. 한인식당. 햄버거집을 하면서 얼굴색 다르고 영어가 능숙하지 못한 알려지지 않던 아시아 작은나라에서 온사람들이지만 어려운 난관과 외로움을 잘 이겨내고 자리잡고 잘살고 있었다. 미국온지 30년된 조카도 세계적인 카메라, 복사기회사인 캐넌에 근무하면서 미국전역으로 수시출장을 다니며 두아들을 잘키워 큰아들은 워싱턴 백악관옆에 위치한 미국재무부 연방공무원이고 둘째는 의대진학을 준비중이다.
3년전인 2021년 미국 시골도시인 아칸소주로 이민온 한국이민가족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영화로 만든 <미나리>는 전세계인에게 흥미로운 감동을 주었고 그해 77회 골든글로브에서 외국어영화상을 비롯하여 할머니 역할을 한 개성파 배우 윤여정은 2021년 아카데미 영화상시상식서 여우조연상을 받았고 연달아 미국과 영국에서 주는 각종 배우상을 모두 휩쓰는 국가적 경사가 있었다. 낯선땅에서 뿌리내리고 사는게 얼마나 힘들고 눈물나는 일이 많은가. 미나리는 어디에서는 잘 자란다. 미나리는 어쩌면 한국인의 모습을 상징하는 것으로 이번 미국여행에서 부존자원없는 후진국서 중진국대열에 합류하여 이제는 잘살게 되어 미국 캐나다의 주요 관광지마다 마주치는 서너대의 한국인을 실은 버스를 보면서 오늘도 열심히 뿌리내리고 살아가는 현지 동포들에게 감사하고 격려박수를 보냈다.
첫댓글
참으로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인데 정치하는 친구들의 허접스런 경거망동에 부끄러운
요즈음을 안타깝게 보내고 있씀이네요 어서빨랑 정치인들이 정신을 차렸씀 좋켓어요
한국은 정치만 잘하면 선진국대열에 갑니다만 허접한 국회의원들이 너무 많습니다. 국민이 잘못 뽑은 결과이지요.
기행문과 이민사가 재밌네요
맞아요 우리나라 위상이 높아져 이제야 세계인들이 알게 된 거죠
유수한 작가들이 많았음에도 이제서야 알아 보고 노벨상(문학)을 안겨 줬다는 것
한국은 이제 아시아의 변방국가아니라 세계가 주목하는 중심국가가 되였습니다.
미나리를 개봉일에 보았드랬습니다
이민 간 동포들 애환을 많이 느꼈지요
이젠.. 자랑스럽습니다
참 열심히 사시는 해외동포들.. 미나리처럼 질기고 생명력강한 한국인들이 자랑스럽니다.
미국으로 이민 갔다가
정년퇴직 하고서 이제는 귀향하여
살고 있습니다.
매년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그런데로
살아 갑니다.
미나리는 어디서건 잘 자란 다는 말
정확하게 맞는 이야기 같습니다.
한국인들 어디에 내어놓아도
적응하며 잘 살아갑니다.
수구초심이란 말처럼 귀향하셨군요. 저의 형도 70될때까지 한국으로 돌아오려고 애를 썼습니다만 여건이 여의치 못했습니다.
자랑스런 선배 님들의 삶이죠
선배 님의 글을 읽으면서 다시한번
우리 선배 님들의 삶에 감사함을 느낍니다
1995년 12월말 우리식구들 4명하고 두누이들과 미국을 가서 그랜드캐년서 1996년 새해 1월1일을 맞이했습니다. 28명일행은 버스에서 내려 언덕배기서 이민와 돌아가신 선열들을 위해 묵념했고 다같이 애국가를 불렀습니다.
참으로 감동적인 내용입니다 평화로님^^
미나리 보면서도 이란 감동 같았어요
그간 우리나라가 눈부신 발전을 한 것도
사실입니다
요즘엔 역이민이야기가 종종 들려오지요
귀소본능도 한 역할을 하겠지만
의료시장의 턱이 낮다는 점이
큰 몫을 차지하지요
어디서든 행복한 조국민들이
많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한 가운데
이런 뿌듯한 소식을 주시니
힘이 솟습니다
감사 드려요 ^^*
내가 뉴욕가는날 뉴욕서 30년살던 친구는 한국으로 역이민왔습니다. 부인이 치매가 있어 병원비를 감당하기 어려워 온것입니다. 뭐니뭐니해도 한국이 살기좋은 나라입니다.
딸이 결혼해 미국에 살기 시작한뒤 친정에 오던 첫해부터 올해까지
가져오는 선물의 내용을 보면 해마다 차이가 납니다.
제가 미국에 다녀갈때도 처음엔 가방이 미어터지게 사갈게 많더니
체력상 어쩌면 마지막 방문이 될 이번엔 손녀들에게 줄 선물이 고민이됩니다.
제가 사려는 물건마다 한국에서도 살수있는거라며 딸이 말리니 희귀성이 없지뭡니까
엄마가 치매로 세검정살던집을 작년에 3달간 재택근무하러 와서 싸악정리하고간 뉴욕사는 조카는 이번여름에도 엄마보러 왔습니다. 요번에 느낀거지만 뉴욕은 너무나 먼곳입니다. 조카의 갸륵한 마음을 새삼 느꼈습니다. 조카는 올때마다 세고모들하고 우리집사람에게 건겅보조식품인 관절약을 사옵니다. 이번에도 호텔로 부부가 찾아와 바리바리 간식거리를 주고 갔습니다.
잘 사시는 해외 동포 분들을 보면 존경심이 절로 우러납니다.
누이분들과 그랜드캐년서 1월1일을 맞이해
이민와 돌아가신 선열들을 위해 묵념하고 애국가를 부르셨다니 그 감회가...
정말 부럽기도 합니다. 건강하십시요,
28명이 그랜드캐년을 갔을때 어느분은 소아마비로 휠체어를 타야하는 장성한 딸과 같이 왔습니다. 넓은 세상을 보여 주고 싶다고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