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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글 반포 반대에 대한 세종의 질책 ■
1장: 사대주의와 '오랑캐 문자'라는 반대
최만리: "전하, 우리 조선은 대대로 명나라를 섬기며 성리학과 한자 문화를 모범으로 삼아왔습니다. 그런데 이제 한자를 버리고 별도의 문자(언문)를 만드는 것은 중국의 사대 예의에 어긋나며, 주변 오랑캐들이나 하는 짓입니다."
세종대왕: "그대들은 한자만을 숭상하는 것이 진정한 사대라 보는가? 명나라 언어와 우리말은 음운 구조부터 다르다. 백성들이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글자를 몰라 제 뜻을 펼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워 만든 문자일 뿐인데, 어찌 이를 사대 예의와 연관 지어 그릇되다 하는가?"
2장: 이두(吏讀)면 충분하다는 주장
최만리: "우리에게는 이미 신라 때부터 쓰던 '이두'라는 문자가 있습니다. 이두로도 행정 업무나 백성들의 상소문 처리가 가능한데, 굳이 생소한 새 문자를 만들어 혼란을 일으킬 이유가 없습니다."
세종대왕: "이두 역시 어려운 한자의 음과 뜻을 빌려 쓰는 것 아니더냐? 이두 또한 배우기 어려워 글을 모르는 어리석은 백성들은 억울한 일을 당해도 법 조항조차 읽지 못한다. 새로 만든 문자는 쉽고 명확하여 며칠이면 익힐 수 있으니, 이두와 비할 바가 아니다."
3장: 학문의 깊이 저하 우려
최만리: "쉬운 글자가 보급되면 백성들이나 선비들이 어려운 한자와 성현의 경전을 깊이 공부하려 하지 않고, 쉬운 언문만 쓰려 할 것입니다. 이는 장차 유학 발전을 저해하고 학문의 퇴보를 불러올 것입니다."
세종대왕: "글자를 쉽게 익히는 것이 어찌 학문의 퇴보인가? 백성들이 유교 경전과 윤리를 우리글로 풀어서 쉽게 읽을 수 있다면, 오히려 나라 전체의 교화와 윤리 의식이 높아지지 않겠는가?"
4장: 세종대왕의 질책과 신하들의 처벌
세종대왕: "너희가 음운(音韻)의 이치를 나보다 더 아느냐? 내가 이번에 문자를 만든 것은 백성들을 편리하게 하려는 뜻인데, 너희는 사리판단을 하지 못하고 오직 관습에 얽매여 비방만 하는구나. 정창손, 너는 예전에 '백성은 단단하게 가르쳐도 바뀌지 않는다' 하였는데, 어찌 선비로서 그런 언행을 하느냐?"
최만리 외 신하들: "전하, 저희는 오직 국정과 학문의 유지를 위해 아뢰었을 뿐입니다.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세종대왕: "경들의 주장은 백성의 고통을 외면하는 눈먼 반대일 뿐이다. 어명을 어기고 국정을 어지럽힌 죄를 물어 최만리 등은 부의(의금부)에 가두라."
세종대왕은 신하들의 강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훈민정음의 실용성과 백성 교화의 필요성을 강하게 주장하였으며, 결국 1446년 훈민정음 해례본을 세상에 완성하여 반포했습니다.
* 최만리는 당시 집현전 부재학..정인지는 집현전 대제학
한글은 세종이 직접 만든게 맞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