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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식
새해가 밝아 우리는 이제 성인이라며 술 한잔 하자고 전화온 진성의 제안을
나는 가볍게 승낙했다. 우리는 미성년자가 아닌 성인이라는 이상 야릇한 감정과 술을
떳떳하게 마실 수 있다는 자부심 같은 것을 느끼며 시끌벅적한 분위기의 술집 안에서
그렇게 술을 주고 받으며 성인의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몇잔을 마셨을 무렵, 약간은 취기가 오른 내가 은근슬쩍 말을 건넸다.
"그렇게 징그럽던, 우리 GC고등학교 홈페이지를 정말 오랜만에 들어가 봤다."
"하, 강윤하 니가? 왠일로?"
홈페이지에 딱 들어간 순간 느꼈던 생생한 감정을 말하는 것 만으로도 벅차오름을
난 느꼈다. 난 고등학교를 3년 동안 다니면서도 수행평가가 없는 한 들어가보지도 않았던
홈페이지를 들어갔었다.
홈페이지에 접속한 순간, 훅 하고 느껴오던 그 생생한 감정이 가슴을 아련하게 만들고 있음을
느끼고 소주 한잔을 들이켰다.
씁쓸한 소주 맛과 함께 다시 입을 열었다. 약간은 또렷한 눈빛으로 진성을 바라보면서.
"…그냥 들어가보고 싶더라. 근데 내가 딱 처음에 느꼈던 감정이 뭔지 아냐?"
"학교 졸업하니까 상쾌하다? 하하. 그런거?"
진성의 말에 난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처음엔 나도 그럴 줄 알았다. 이제 졸업을 앞두고 있으니
홈페이지 들어가면 날아갈 듯 기쁠것이라고. 하지만 달랐다. 정말 달랐다.
나는 이젠 울쌍이 되어버린 내 얼굴도 모른 체 진성을 바라보았다.
“그리움. 그 단어가 제일 와닿았어.”
“……”
“난 그런 거 안 느낄 줄 알았거든? 왜 알잖아, 내가 고등학교 생활 내내 빨리 졸업이나 했으면 좋겠다고
늘 말했던거.”
“그거는 기억하지. 너가 좀 유별났냐? 빨리 졸업이나 했으면 좋겠다 라고 입에 허구헌날 달고 다녔지.”
진성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 내 소주 잔에 내 눈물이 똑 하고 떨어졌다. 맑은 잔 안에
내 눈물이 섞인 것을 보자 마음속에서 더 진한 그리움이 밀려 오는 듯 했다.
“근데 이젠 그립다. 그런 지겨웠던 학교가 그리워. 다시 고등학교 1학년 때로 들어가면 고등학교 추억을
쌓을만한 것들도 많이 해보고 싶기도 하고, 공부도 정말 전교 1등하고 견줄 만큼 열심히도 해보고 싶고.”
“니가 왠일로 그런 말 을 하냐? 술 취했냐 너?”
“야, 하진성. 내가 우리학교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딱 두 개의 글을 봤어. 신입생 예비로 공부하는 글이랑”
“…또?”
나는 차마 뒷말을 하기가 선뜻 어려워 소주를 한잔 들이켰다. 또 막상 말을 하려니 눈물이 흘러, 쓱
닦아냈다.
“우리 졸업식 날짜가 적힌 글.”
“강윤하 다컸다. 그런 걸로 감동 먹고.”
“진짜 정말 내 고등학교 생활이 그리워. 성인이 된다는 압박감 보단 편안하게 공부하고 뛰고 놀 수 있는
고등학교 생활이 정말 정말로…”
눈물이 한 방울 두 방울 흘리고 나서 나는 말을 이었다.
“그립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내 청춘의 시간을.”
진성이 말없이 내 등을 토닥 거려주었다. 나는 왜 그 고등학교 생활 동안 지겹다는 말만 입에 달고 살았는지
왜 그렇게 나만 힘들다고 투덜거렸는지 홈페이지에 있는 졸업식 날짜를 본 순간 그런 말들이 너무 후회스러워졌었다.
내 졸업식. 2월 10일. 그 날이 안왔으면 하는 마음에 눈물이 그렁한채로 진성을 바라보았다.
진성이도 내 눈물에 담긴 의미를 알아차렸던 걸까? 진성의 눈에서도 눈물 한방울이 흘러내렸다.
***
2월 9일.
한적한 교문 위에 달린 제 52회 졸업식 이 달린 천수막을 보고 낮은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은 졸업식을 앞둔
하루 전 날 이었고, 나는 꼭 오늘같은 한적한 이 교정에 발을 딛고 싶었다. 내가 정들고, 싸우고, 많은 일들을
겪었던 이 교정을 오늘 하루 만큼은…
꼭 내 마음속에 있는 그리움을 담아 사랑하고 싶었다.
“하아.”
입 안에서 내뱉어지는 숨소리와 함께 차가운 온도 때문에 퍼지는 하얀 입김. 그런 것 마저도 고등학교 땐
별볼일 없다고 생각했던 것인데, 왜 이제서야 이런 것도 추억이 되버리려고 하는지.
나는 교문을 한번 쓸어보고 운동장을 가로 질렀다.
“야! 나한테 패스 ! 패스! ”
“오! 골인!!! 잘했어, 강윤하 제법인데?”
“하하하. 내가 뭘 이정도야.”
“너 덕분에 우리 체육대회 축구 1등먹었어! 니 공이 크다 인마!”
운동장 곳곳에서 내가 열심히 뛰었던 운동장의 그리움과 대화들이 떠올랐다. 고등학교 1학년.
고등학생으로 처음 겪는 체육대회 축구 부분에서 2,3학년 들을 재치고 우리가 1등을 해냈던 기억이 있었다.
고등학교 1학년 시절엔 축구에 죽고 축구에 사는 맛에 학교를 다녔던 것 같기도 하다. 축구의 패스와,
골 넣는 쾌감이 뒤엉킨 그 느낌에 나도 모르게 열심히 운동장을 뛰고 달렸던 기억도 내 가슴속 어렴풋이
느꼈다.
신입생이라 하는 고등학교 1학년 땐 막연히 그 오글거리는 신입생이란 타이틀에 걸맞게 싱그럽고,
활발하게 교정을 누비며 돌아다녔었다. 단짝인 진성도 그때 만났었다. 진성과는 학교 매점을 통해서 얼굴만
익히다가 축구를 통해 본격적으로 친해진 케이스였는데, 아주 죽이 잘 맞은 친구였었다.
학교 운동장을 보고 문득 예전처럼 달리고 싶었다. 하지만 차마 그럴 용기가 나지를 않았다.
난 이제 이 학교 학생이 아닌 졸업생이라는 명분 때문에. 휑한 운동장에서 다시 한번 1학년 때 느꼈던
쾌감을 이젠 맛볼 수 없다.
그 순간에 느낄 수 있는 느낌을.
더 씁쓸해지는 마음을 애써 위로하고 우리학교의 작은 공원으로 향했다. 작은 공원은 역시 예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이 아담하고, 평온한 느낌이었다. 이 공원에서 진성이와 몸으로 싸웠던 기억도 있고, 그렇게 진성이와 격하게
싸우다 선생님한테 걸려서 이 큰 공원의 쓰레기를 줍던 일도 생각이 났다.
“쓰레기 주을 때, 너가 얼마나 꾀를 내던지 난 허리 아파 뒤지는 줄 알았다.”
청소가 끝났을 때 진성은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로 나한테 말했었다. 그러면서 서로 웃고, 또 공원에서 몰래
담배 피다가 걸려 된통 선생님한테 맞은 적도 있었다. 물론 그때도 진성이와 함께.
생각해보면 고등학교 3년 내내 이 공원과 운동장은 진성과 나하고의 진득한 추억이 베어 있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젠 그 추억을 서서히 덮어둬야 한다는 느낌이 들자, 고개를 들고 하늘을 바라보았다.
“날씨 너무 좋네. 너무 좋아서 미칠 지경이다. 진짜.”
하늘에 걸린 햇빛에 인상을 찡그리지도 않고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너무 날씨가 좋아서 내 슬픔의 크기가
두배로 된게 서글퍼서 난 그 자리에 서서 눈물을 흘렀다. 조용히. 내 추억을 공간을 만들어줘서 고맙다는
마음과 함께, 내가 3년 동안 썼던 교실로 향했다.
물론, 가는 도중에 경비실 아저씨한테 혼나기는 했지만 내일 졸업식이라는 말에 아저씨는 웃으며 봐주셨다.
1학년 10반.
내가 생활했던 그 공간. 그 교실 속에서 내가 생활했던 흔적이라고는 벽에 있는 낙서뿐이었다. 그것도
구석에 하진성 멍청이.하고 악마를 그려넣은 작품.
“하하하하.”
짧은 실소가 터져나오고, 내가 제일 오래 앉았던 자리로 가서 앉아보았다. 지금 책상이 비록 새것이지만
우리때도 새거였었다. 신입생이라며 우리 1학년들한테만 특별히 서비스 하는 학교 차원이라며 우리는 신나 했었던,
그래서 더 새 책상에 애착을 느꼈던 시절이었다.
“선생님, 너무 여자애들 수가 없어요!”
“강윤하, 그런 소리 하면 못쓴다. 저기 저 아이들만으로도 충분하지 않니?”
“전 좀 많은 여자애들을 원해요. 쌤~ ”
“여자 그만 밝혀라! 이 녀석아!”
“하하하하하하”
내가 1학년 때 적은 여자 아이들 수로 선생님께 투덜거리자 선생님은 나를 여자 밝히는 놈으로 아예
말을 했었다. 선생님의 말씀에 반 아이들은 다 같이 웃었고, 나도 웃었다. 그때는 내가 짓궂게 해도
이해해주는 시절이었다.
내 잘못도 약간은 너그럽게 웃으며 봐줄 수 있었던 시절. 그만큼 나에 대한 책임감도 부족할 정도로
천진난만한 시절이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2학년 때 내가 썼던 교실로 올라갔다. 올라가는 계단에서 언뜻 보이는 자그마한
매점에 살포시 미소를 지어보였다.
중학교엔 없는 매점이 고등학교에 있어서 참 생소했던 곳. 매점 빵이 맛있다는 등, 과자가 맛있다는 등
많은 사소한 걸로 이야기 꽃이 만발한 그 곳. 무엇보다
우리 1학년이 들어왔다며 굳게 닫아놓았던 매점이 열렸던 것. 배고플 때나 허기질 때 외상이라고 외치면
호탕하게 웃던 매점 아주머니까지. 두둥실 떠오르는 추억에 눈을 살짝 감았다 떳다.
고등학교 3학년 2학기 무렵 그 매점이 우리가 졸업하면 닫았으면 한다고 진성과 나눴던 대화가 어렴풋이 생각이 났다.
“우리가 졸업하고 나면 매점 문 닫았으면 좋겠다.”
“어? 너도 그 생각했냐? 나도 그 생각했는데.”
“매점은 우리만을 느꼈던 추억이었으면 하거든 난. 매점 빵과 과자가 모두 우리가 생활했던 것이니까,
물려주고 싶은 마음은 없다. 안그러냐?”
“오, 이 자식 너무 나랑 똑같은 생각인데.하하하하”
매점 빵을 맛있게 먹으며 나눴던 대화가 떠올라 난 입에 미소가 걸려 있는지도 모른 체 2학년 반으로 올라갔다.
2학년 3반.
약간은 낡아보이는 푯말을 쓰윽 보고 교실 안으로 발을 내딛었다. 교실안은 내가 생활했던 때보다
훨씬 깨끗했다. 책상도, 교탁도, 의자도. 다. 우리 때는 청소를 너무 안해서 더럽기만 했던 교실이었는데
이렇게 탈바뀜이 되자, 느낌이 이상했다.
“오늘 우리 원어민 교사 온대! 대박이지?”
“얼굴은 이뻐? 이쁠까?”
“외국인이니까 이쁠거야. 엄청. 흐흐흐.”
우리반 남자 아이들은 그때 처음으로 우리학교에 온다는 원어민 교사에 대한 흥분으로 기대했었다.
하지만 원어민 교사는 여자가 아니라 흑인 남자분이셨다. 그것에 약간 실망을 한 우리는 뒷담화도 했지만
워낙 흑인 교사분이 착하셔서 그런 뒷담화도 나중엔 안하게 되었다. 후에 친해진 흑인 교사분한테 선물 같은 것도
드리고, 스승의 날엔 영어 편지까지 겨우겨우 써서 드렸던 기억도 있었다.
그때가 또 다시 그리워 진다. 영어를 잘 못하는 내가 영어 사전과 포털사이트를 뒤지고 뒤져서 겨우 써낸
문장들. 하지만 나중에 읽어보니 무슨 뜻인지 도통 모르겠었다. 하지만 그 흑인 교사분은 나의 애쓴 마음을 아신건지
맑은 미소를 지으며 “thanks.”라고 했었다.
난 그 말이 너무 좋아 진성이에게 다른 친구들에게도 자랑했었다.
나는 교실을 쭈욱 보고 나서 창가로 향했다. 교실 창가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면, 미니 족구대가 있었는데
거기서 남자 아이들은 점심시간이나 석식시간 때 족구를 하고는 했었다. 나는 축구는 잘하지만 족구엔
흥미가 없어 물끄러미 구경만 했었는데도 너무 재밌었다.
어쩔때는 창가 반대편인 다른 학년 복도에서 나와 눈이 마주치고 싱긋 웃는 여자 후배를 보면 약간은
설레기도 했던 때였다. 우리 학교 구조는 티읕(ㅌ)자 형인데 창가 마주편은 다른 반의 복도로 이어지는
구조였다. 나는 그런 구조 때문에 1학년 땐 헤맸지만 차차 익숙해지니까 되게 편했던 구조라고 생각이 들었었다.
나는 창가에서 뒤돌아 3학년 교실로 걸음을 가볍게 옮겼다. 1학년, 2학년 반에서 3학년 교실. 감회가 새로웠다.
3학년 2반.
내일이면 아마 이 교실에서 난 3년 개근상과 졸업장을 받을 것이다. 눈물을 흘릴지도 모르겠다. 난 3학년때의
추억이 제일 강렬했던 것 같다.
19살. 고3. 이 두 글자가 나를 고2 겨울방학부터 압박감을 느끼게 했던 단어였고, 난 그 고3인 압박감에서 하루하루를
힘들게 공부와 씨름하며 살았었다. 놀기를 좋아했던 내가 축구를 그만두었을 때도 그 무렵이었다. 난 축구 없이
못산다고 외쳤었는데 막상 고등학교 3학년이 닥쳐오니 그런 축구도 끊게 되는 힘이 있었나보다.
난 축구를 끊고 정말 미친듯이 공부를 했었다. 야자를 12시까지 감행하면서 대학에 대한 열의와 공부에 대한
열정으로 들끓던 시절엔 정말 힘들었고 견디기 어려워 도중에 포기 할까라는 생각도 수십번 들었다.
하지만 나를 믿어주시는 담임선생님과 부모님께 그런 모습은 보여 드릴 수가 없어 열심히 더 공부에 박차를
가할 수 밖에 없었다.
나는 그렇게 좋은 명문 대학교에 수시로 합격을 했다. 합격을 한 뒤엔 정시로 가는 진성이의 공부를
도와주는 일을 하며 시간을 보냈고, 그리고 내가 자주 들락날락 거렸던 도서관에서 많이 지냈다.
난 3학년 교실을 쭉 본 뒤 5층에 자리잡고 있는 도서관으로 향했다. 학교 도서관은 비록 문이 잠겼지만
그 옆에 기대어 담배 한개피를 물었다.
“후우.”
담배의 짙은 향기와 함께 계단에서 올라오는 듯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 계단을 바라보자, 거기엔 진성이가
웃으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
나는 희미한 미소를 띤체 이 쪽으로 다가오는 진성에게 담배 한개피를 건넸다.
“하진성 니가 왠일이냐 여긴?”
“너가 생각하는 거하고 같은 마음이랄까. 너도 1,2,3학년 교실 돌아봤지?”
“어, 감회가 새롭더라.”
진성은 짙은 미소를 지었다.
“나도. 저번엔 그렇게 못느꼈는데, 너가 말한 그 그리움을 느꼈다.”
피식. 내가 웃자 진성이 능글맞게 표정을 지었다. 뭐야? 수상한 눈으로 보자 진성이 새끼 손가락을
들어보였다.
“그건 왜 드는데?”
“기억 안나냐? 강윤하. 너 1학년때 도서관에서 같은 반 류이진한테 고백 받은거?”
“아, 그거?”
“그거 원래 니가 고백 하려고 했는데, 류이진이 먼저 선수쳤잖아.큭큭.”
진성의 말에 나도 같이 웃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내가 첫눈에 반했던 여자 아이가 있었다.
류이진. 1학년 10반의 부반장을 겸했던 여자애가 너무 마음에 들었다. 오글거리는 느낌에 사로잡혀
고백을 하려고 꽤 준비도 했었는데, 대뜸 그 여자 아이가 도서관에 있는 날보고 그대로 고백을 해버렸다.
나는 그 고백을 받아 들였지만 2학년 올라와서 헤어졌다. 류이진한테 다른 남자친구가 생겼기 때문에,
내가 그냥 놔주었다. 그렇게 결혼까지 할만한 아이는 아니였고 고등학교 들어가면 느끼고 싶어하는 뜨거운
사랑을 느껴보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요새 류이진 유학 준비 하고 있대.”
“그 아이라면 야무지게 하겠지.”
“넌 안보고 싶냐? 류이진?”
난 진성의 물음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보고 싶다.이 네 글자가 솔직히 류이진한테 와닿는 건 아니였다.
보고 싶기 보다는 단지 1학년때 내 뜨거웠던 첫 사랑이니까 그걸로 간직하고 싶었다. 난. 첫사랑에 매달리고,
보고 싶은 것은 추억을 저버리는 것만 같았다.
그 뜨거운 감정을 고스란히 심장에 묻어두고 싶었다.영원히. 나는 담배를 끄고 걸음을 옮겨 진성과 함께
학교 교문까지 걸어갔다.
가는 도중 서로 나눈 대화가 없었다. 나는 나만의 내일의 졸업식을 생각하며 슬픔과 어른이 된다는 생각에
휩싸였고, 진성이도 아마 그런 생각에 잠긴 듯 멍해보였다.
교문에 다다르자, 진성이 먼저 입을 열었다.
“내일은 울지 말고, 웃자.”
“울기는 누가.”
“너 눈가에 눈물이 그렁 그렁 맺혀 있는데 뭘. 자식. 나도 그래. 뭐랄까. 그냥 내일 졸업식이 안왔으면 해.”
“졸업식말고 입학식을 했으면…”
“그건 아니다? 내일 보자.”
나는 내가 생각에 잠겨 있는 동안 눈물이 가득 찬지도 몰랐나보다. 너무 추억이 강렬해서?
그건 아니다. 단지 추억이 너무
뜨거웠기 때문이다. 나는 진성의 가는 뒷모습을 향해 외쳤다.
“하진성! 내일 보자!”
나의 외침에 진성이는 손을 가볍게 흔들고 가버렸다.
나는 내일 있을 졸업식에 대한 뜨거움 때문에 한동안 그 자리를 벗어나지 못했다.
***
어제 그렇게 학교를 다녀온 뒤 난 잠시 공황상태에 빠졌었다. 정말 교복 입을 날이 딱 하루 밖에
남지 않았다는 그 사실 하나 때문에 나는 결국 잠을 자지 못했다.
“아하암”
그래서 였을까? 연신 하품이 나왔고, 학교 정문에서 진성이를 기다릴 때까지도 연신 하품이
나오고 있었다.
“강윤하!”
하품을 막 하려던 참에 부르는 목소리에 내가 고개를 돌려 보자, 진성이 어느때보다 밝아보이는
얼굴로 손을 흔들며 다가왔다. 진성이는 학교를 다녔을 때 입지 않았던 마이를 입고 단정하게
넥타이도 딱 맞게 입고 왔다.
자식, 졸업식이라고 신경 좀 썼네. 혼자 생각에 잠겼을 무렵, 진성이 옆구리를 쿡 찔렀다.
“야야, 저기 류이진 온다.”
“…어?”
내가 미처 말을 이을 새도 없이 더 없이 성숙한 모습으로 온 류이진이 나에게 반갑게 웃어보였다.
류이진은 나에게 조그마한 선물을 내밀었다. 내가 받지 않고 멀뚱하게 있자 진성이 냉큼 받고
히죽 웃었다.
“류이진, 그동안 이뻐졌다?”
“고마워. 강윤하, 넌 그대로구나?”
“하하. 그런가?”
진성의 말에 가볍게 대꾸한 류이진은 나를 보며 말하자, 나는 당황해 웃음으로 무마하고
류이진을 다시 한번 보았다. 진성의 말대로 류이진은 1학년때보다 더 이뻐졌고 수줍게 다가왔던
풋풋한 여고생이 아닌 이제 어엿한 여자의 모습으로 졸업식에 왔다는 생각에 나는 서둘러 진성의 팔을
잡고 류이진을 향해 말하고 뒤돌아 섰다.
“졸업 선물 고맙다. 다음에 한번 보자.”
류이진의 대답을 듣기전에 쌩하니 진성을 데리고 학교 안으로 들어와 버리자 진성은 내 모습이
웃긴지 연신 웃기만 하더니 자신의 손에 있던 류이진이 내게 준 선물을 나에게 건넸다. 그 자그마한
선물을 물끄러미 보고 있자니 류이진과의 추억과 함께 더불어 졸업이란 타이틀이 생각나 마음 속에서
울컥 하는게 올라왔다.
“야, 어제 동아리실은 가봤냐?”
뜬금없는 진성의 질문에 그제서야 아차 했다. 내가 고등학교 대부분이 축구에 미쳤다면, 한편으로는 고등학교 선후배 사이를
느껴보고 싶어 들어갔던 2,3학년 때 활동했던 동아리를 까먹었다는 생각에 진성을 뒤로 하고 재빨리 동아리실 앞으로
다가가 문을 열려고 했지만
문은 잠겨 있었다.
“강윤하 선배!”
동아리실 문이 열리지 않는다는게 허탈해서 잠시 동아리실 문에 기대어 있었더니 멀리서 낯익은 실루엣이
나를 부르며 다가왔다. 신문편집부 동아리 후배, 나를 가장 많이 따랐던 환 녀석이다. 환은 나에게 다가오더니 실쭉하고
웃었다. 환은 봉투에서 무언가를 나에게 내밀었다.
큰 공책이었다. 디자인이 하늘을 배경으로 담은 풍경이 있는 큰 스프링 공책. 나는 뭐냐는 듯 환에게 묻자, 환은
박수 한번 짝 치고 나의 손을 덥썩 잡았다.
“선배! 졸업 선물이요! 제가 정말 고심해서 골랐으니까 꼭 대학 가서도 쓰셔야 돼요!”
“…자식,”
갑자기 눈가가 뜨거워 지면서 눈물이 뚜뚝 운동화 위로 떨어져 말을 더 이상 잇지 못했다. 내가 아꼈던 후배가 이런
선물을 줬다는 게 너무 가슴깊이 고마워 어떻게 표현 할 수 가 없었다. 말없이 눈물을 손등을 훔치고 환을 보자, 환은
당황하지도 않고 늘 나를 위해주었던 그 모습 그대로 공책을 내 손에 꽉 쥐어주었다.
“강윤하 선배, 진심으로 졸업 축하드려요.”
“…고…맙다”
“선배가 저한테 너무 잘해주셔서 아마 그 추억들 잊지 못할거예요. 1년동안 저에게 베푸신 선배에 대한 정을 꼭 기억할게요.”
청산유수처럼 말을 잘하는 환을 눈물 젖은 눈으로 보자, 환은 싱긋 웃고 자신의 마이 주머니에서 휴지를 건넸다. 나는
그 휴지로 눈을 닦고 환을 보자 환은 시계를 한번 보더니 나에게 고개를 꾸벅 숙였다.
“선배, 졸업 축하 드리고 옆에 있고 싶지만 제가 학교 부회장이라서 지금 내려가봐야 될것 같아요.”
“그래, 잘가.”
“네! 선배 대학가서도 고등학교에 꼭 놀러오세요!”
환은 그렇게 말하며 점점 내 시야에서 벗어나고 나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 앉아버렸다. 선물 하나와 졸업식이라는 날짜가
맞물렸을 때의 느낌이 굉장히 슬프게 가슴속으로 파고 드는것 같았다. 저렇게 나를 따르던 후배와 나머지 후배들, 그리고 축구에 같이
미쳤던 아이들을 못본다는 느낌에 나는 고개를 떨구었다.
***
“동해 물과 백두산이…”
뒤늦게야 교실로 가자, 교실에서는 방송조회로 벌써 졸업식이 시작되고 있었다. 나는 조용히 자리에 앉아 반 아이들처럼
애국가를 어느때보다 크게 제창하고 상을 받는 아이들한테 열렬한 박수를 쳤다. 교실 뒤에는 많은 부모님들이 졸업식을 축하해주려고
오셨고 우리 부모님 또한 인자한 미소를 지으신 체 나를 바라보고 손을 흔들었다.
“자,자 조용! 오늘이 마지막 종례니까 선생님 말 잘 따라줘라.”
선생님의 마지막 종례라는 말에 떠들던 아이들은 숙연해지면서 조용해지자 선생님은 한명씩 아이들을 호명하며 졸업장과
3년 개근한 아이들에게 주는 선물을 나누어주셨다. 한명 한명 호명 될때마다 반 아이들은 박수를 쳐대며 축하한다는 말을 했다.
“강윤하!”
드디어 내 이름이 호명되자 아이들은 다른 아이들처럼 나에게 박수를 쳤고 나는 그 상장을 받고 자리에 돌아와 그 상장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위 학생은 3년동안 개근을 하였으므로 이 상장을 수여합니다.
내가 정말 이 지겹다던 학교를 3년동안 결석, 지각을 하지 않고 다녔다는 게 느낌이 이상했다. 정말 개근이구나. 지겨웠던 학교를
내가 3년동안 다녔구나라는 생각에 눈시울이 붉어지려는 데 내 옆으로 다가온 진성이 쯧쯧 혀를 찼다. 진성은 내 상장을 보더니
자신의 상장을 쫙 폈다. 진성이는 하루 이틀 빠지는 바람에 개근이 아니라 정근상을 받았지만 그래도 기쁜지 연신 웃어보이며
나를 툭 쳤다.
“우리 사진이나 찍자. 졸업식에서 남는 건 사진 밖에 없다더라.”
진성의 말에 진성의 어머니와 우리 어머니께서 진성이와 개구지게 찍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으시고 다시 뒤로 가시자
선생님은 교탁을 툭툭 쳐 아이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게 만드셨다.
“선생님이 너네들을 위해 준비 한게 있다. 직접 제작한 영상이니까 이것만 보고 인사하고 마치자.”
선생님은 노트북에서 동영상 하나를 클릭하셨다. 동영상이 재생되기 시작하면서 흘러나오는 발라드 노래와 우리반의 추억의
사진들, 진성이와 밀치며 찍었던 반 단체사진, 수능 기원제때 찍은 동영상들, 비록 졸업여행은 못갔지만-신종플루 유행으로 교육부
에서 가지 말라는 통보에 못갔었다-많은 사진과 추억들이 동영상으로 만들어져서 우리들 마음속에 짠하게 만들었다.
동영상의 마지막 부분 글이 나오자 아이들은 또 다시 숙연해졌다.
‘3-2 =1 1은 시작을 뜻하는 거니까 앞으로의 시작을 잘 준비하기를 바란다.’
선생님의 글에 반 아이들 몇몇은 눈물을 흘렸고, 나 또한 눈물을 주루룩 흘러내렸다. 우리는 3학년 2반이었고 아마 나중에도
기억될 추억의 반이라는 생각에 나는 연신 눈물을 흘리며 그 말을 되새겼다. 3-2 = 1. 시작. 나는 눈물을 흘리며 진성과 다음에
다시 만나자는 말과 나랑 친했던 몇몇 아이들과의 기념사진을 마치고 부모님께 먼저 차에 가시라고 한 뒤 학교 교문으로
성큼 뛰어나갔다.
‘GC고등학교’
교문의 팻말을 한번 쓸어보고 또 다시 눈물을 흘렸다. 다시는 오지 않을 이 고등학교 추억이 또 다시 떠올라 너무 가슴이
뜨겁게 불타오는 것을 느꼈다.
싸우고, 화해하고, 지겹다고 외쳤던 그 고등학교 3학년동안의 시간을 난 절대 잊지 못할 것이다.
영원히.
-THE END-
★ 오늘 고등학교 졸업식 날이라서 한달 전에 써두었던 부분을 추가해서 올려요.
첫댓글 우와 저두 어제 대학졸업했는데, 뭔가 뭉클하네여 저도 졸업식 전부터 학교가고 싶고 오빠들,애들보고싶구..... 그냥 슬푸네여 이제 그리움만 남는 뭐,
대학 졸업하신거 축하드려요!ㅠㅠ 전 3년간의 추억이 굉장히 많아 져서 무겁네요 ㅠㅠㅠ 졸업식 한지 이틀지났는데도 담임선생님이 보고 싶어요 ㅠㅠㅠ
저오늘 학교 마지막으로 가는 날이였는데요 쌤이 나 안아줄때 울었어요ㅠㅠㅠㅠㅠㅠㅠㅠ진짜 그리움만 남는것 같아요
저도 졸업식날 담임 선생님께서 준비하신 이벤트에 울었어요 ㅠㅠㅠ 그리움이 정말 깊이 남는 것 같아요.
삭제된 댓글 입니다.
ㅠㅠㅠ 저도 단편소설을 울면서 써본적은 이번이 처음인것 같네요 ㅠㅠㅠ
ㅜㅜ나도 오늘 졸업했는데 ㅋㅋ귀찮아서 사진안찍는다고 입 나온사진만 막 찍히고~~ㅜㅜ급후회중ㅋㅋ
ㅠㅠㅠ 졸업하셨군요! 축하드려요!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