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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신임 수령을 만나러 온 고을 이방은 으레 읍총기邑總記라는 책자를 바치는데, 거기에는 백성들의 고혈을 어떻게 세금으로 짜내는지 자세하게 적혀 있다. 대개의 수령들은 그 책자를 보고 조목조목 이방에게 물어보며 백성들에게 돈을 끌어내는 방법과 원리를 알아보기 십상인데, 그렇게 되면 바로 그들 아전들과 한통속이 되어 백성의 고혈을 짜내게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백성의 고혈을 짜낸 수령이 아전들과 관계가 나빠지면 아전들은 수령의 비리를 감영에 고발하여 수령 자리에서 내쫓아버리기 일쑤였다. 말하자면 수령이 부정을 저지르도록 유도하여 자신들의 손아귀에 넣고서는 고을 행정을 자신들 마음대로 주무르다가 수령과 감정이 틀어지면 오히려 수령의 부정을 감영에 고발하여 내쫓아버리는 것이다.
- <경험과 지혜로 가득 찬 지방관의 행정 지침서, 정약용의 《목민심서》>에서
당시 이일은 조선을 대표하는 용장으로 이름이 높았지만 이순신에 대해서만큼은 악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이순신이 녹둔도에서 여진족의 침입을 받아 패전할 당시에 이순신의 지원 요청을 받고도 묵살한 함경도 북병사가 바로 이일이었다. 이순신은 이일에 대해 1595년 1월 21일 일기에 이렇게 썼다. “장흥 부사(전봉)가 와서 만났다. 그에게 들으니 순변사 이일의 처사가 지극히 형편없고 나를 해치려고 몹시 애쓴다고 한다. 참으로 가소롭다.” 이일이 삼도 순변사의 직책을 맡고 파견되었으니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 삼도의 장수들을 사찰하는 것이 그의 주된 임무였다. 물론 이순신도 그의 사찰을 받아야 했다. 사실, 이순신은 상관들과의 관계가 매끄럽지 않았다. 도원수 권율에 대해서도 이순신은 불만이 많았다. 1595년 3월 30일의 일기에 이순신은 권율에 대해 이렇게 썼다. “아침에 권율의 보고 문서와 기씨와 이씨 두 죄인의 진술 초안을 보니, 원수가 근거 없이 망령되게 고한 일들이 매우 많았다. 이와 같은데도 원수의 지위에 눌러앉아 있을 수 있는 것인가?”
-<세계적인 명장의 생생한 전란 일기, 이순신의 《난중일기》>에서
우리는 흔히 한나라가 고조선을 멸망시키고 설치한 한사군이 한반도 안에 있다고 생각하는데, 연암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구체적인 사료들을 들이대며 자신의 논리를 펼친다. “우리나라 인사들은 기껏 안다는 것이 지금의 평양뿐으로, 기자가 평양에 도읍을 했더라 하면 이 말을 꼭 믿고 평양에 기자묘가 있다면 이 역시 믿으나, 만약에 봉황성이 평양이었더라 하면 깜짝 놀랄 것이요, 더구나 요동에도 평양이 있었느니라 한다면 아주 괴변으로 알고 야단들일 것이다.” 사실 조선 선비들뿐 아니라 지금의 역사학자들도 연암의 말을 괴변으로 아는 것은 비슷하다. 현대 학자들 대다수가 여전히 평양은 오로지 평안도의 평양밖에 인정하지 않으니, 연암이 살아 있다면 통탄할 일일 것이다.
-<18세기 최고의 베스트셀러, 박지원의 《열하일기》>에서
이익은 어느 날 그의 땅을 돌보던 외거 노비 한 사람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익은 간단히 제사 음식을 챙겨 들고, 그의 묘에 가서 제사를 지내주며 이런 제문을 읊었다. “모년 모월 모일 초야에 묻혀 사는 성호가 옛 종 아무개의 무덤에 제사하노라. 임금이 어질면 신하가 반드시 은혜를 갚는 것은 당연하지만, 주인이 박대하면서 종에게 충성을 바라는 것이 어찌 이치이겠는가? 너는 평생 부지런히 윗사람을 받들었으니, 내 사실 네 덕을 많이 보았다. 그런데 어찌 차마 너를 잊겠는가? 너의 자식이 불초하기에 내 일찍 훈계한 적이 있는데, 과연 파산하여 살 곳을 잃고 떠나버렸다. 살아서 고생이 심했는데, 죽어 귀신이 되어서도 늘 굶주리니, 어찌 슬프지 않으랴?” 이익은 종에게 제사 지내주는 것을 남들이 알면 자신을 비웃을 것이라고 하면서도 남의 시선에 개의치 않고 이 일을 행하였다. 무슨 일을 하나 해도 체면만 중시하던 그 시절에 이렇듯 인간의 근원적인 의리를 지키고 정을 베푸는 성호 선생의 모습에 ‘아 선각이란 이런 것이구나! 학문을 하는 선비의 용기란 이런 것이구나!’ 하는 깨달음을 준 글이다.
-<시대를 뛰어넘는 선지식의 탁견 사전, 이익의 《성호사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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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이름만 아는 조선 명저들을 가장 실감나게 즐기는 고전 가이드북!
조선은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읽었는가?
《목민심서》는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명저다. 하지만 그러나 이름만 유명할 뿐 실제로 읽은 사람은 백에 하나도 되지 않는다. 《경국대전》, 《난중일기》,《연려실기술》, 《발해고》, 《동의보감》, 《열하일기》 등 조선 명저들 대부분의 처지가 비슷하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문제는 접근의 어려움에 있다. 명저들의 세계에 접근하고 싶지만 길을 찾지 못해 망설이는 것이다. 현대인에게 조선은 미지의 세계다. 비록 그 과거의 전통이나 관습이 조금씩 남아 있고 그에 대한 지식을 조금씩이라도 가지고 있지만, 그래도 현대인에겐 조선이 낯설고 막막한 미지의 세계다. 조선시대의 역사와 문화와 삶을 담은 저서를 읽어내는 일 또한 미지의 세계를 방문하는 것처럼 낯설고 막막한 일일 수 있다. 이 책은 조선 명저의 세계를 여행하는 독자들을 위한 가이드북이다. 조선을 빛낸 16종의 명저들을 정치, 역사, 기행, 실학, 의학 등 5개 분야로 나눠 소개하면서 탄생 과정을 서술하였고, 내용의 핵심을 요약하였으며, 그중에 재미있는 부분들을 골라내어 소개하고 해석하였다. 또한 명저가 당대에 어떤 의미를 갖는 책이었는지, 현실성과 합리성은 겸비한 것인지 등을 통해 냉정한 평을 담았다. 명저의 탄생에 영향을 끼친 다른 저서와 저자, 그리고 같은 분야의 또 다른 명저들을 함께 소개하는 작업도 병행하였다.
올바른 목민관으로 사는 법, 정약용의 《목민심서》
정약용이 주어라면 《목민심서》는 항상 술어처럼 따라다닌다. 그만큼 《목민심서》는 다산의 대표작으로 인식되어 있다. 정약용은 책의 제목에 대해서 목민牧民이란 곧 치민治民, 즉 ‘백성을 다스리는 것’을 의미하고 ‘심서心書’란 ‘마음속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을 담은 글’이라고 밝히고 있다. 따라서 《목민심서》는 목민관, 즉 ‘지방의 관리가 지켜야 할 지침서’ 정도로 이해하면 될 것이다. 그렇다면 목민관은 어떻게 해야 향관과 아전을 제대로 부리며 고을을 다스릴 수 있을까? 다산은 목민관이 관아의 수하들을 제대로 다스리려면 발령받는 그 순간부터 절대로 향리의 농간에 말려들어서는 안 된다고 서술한다. 부임 행차부터 조심해야 한다.
행차는 반드시 일찍 출발하고 저녁에는 반드시 일찍 쉬도록 한다. 동이 틀 때 말에 오르고 해가 지기 전에 말에서 내려야 한다. … 말은 달리지 말아야 한다. 말을 달리면 수령의 성질이 경박하고 조급하게 보인다. 작은 길이 구불구불한 곳에서는 돌아보지 말아야 한다. 돌아보면 말을 탄 아전들이 비록 진흙이라도 말에서 내려야 하니 또한 생각해주어야 한다. 돌아보지 않을 뿐 아니라 형세에 따라서는 아예 외면하여 그들이 몸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것은 단순히 아랫사람들에 대한 배려일 뿐 아니라 목민관 자신의 위신을 세우고 스스로를 지키는 일이다. 그리고 부임하면 그날 바로 좌수와 관속들이 찾아와 배알하는데, 그 우두머리인 좌수를 불러 앉혀놓고 이렇게 말한다.
“급하지 않은 공사는 출관까지 3일 정도 기다리되, 만일 시급한 공사가 있으면 비록 오늘이나 내일이라도 구애받지 말고 아뢰어도 좋다.”
그리고 관청이 화려해도 좋다는 말도 하지 말고, 청사가 퇴락해도 누추하다는 말을 하지 말아야 한다. 이것은 속내를 드러내지 않으려는 일종의 기싸움이다. 좌수와 관속들은 한동안 목민관을 관찰하고 성품과 행동 방식,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파악하는 시간을 갖는다. 이 기간은 길어야 한 달인데, 그 안에 그들에게 얕보이면 끝장이라는 것이다. 그들에게 얕보이지 않기 위해서는 합리적이고 관례에 맞는 원칙을 정해놓고 철저하게 지켜야만 한다. 우선 일을 시작하는 시간은 동트는 것과 같이 하고, 퇴청하는 시간은 이경, 즉 밤 9시로 정한다. 이를 지키기 위해서는 목민관 자신이 항상 새벽에 일어나 세수하고 옷을 단정히 입고 띠를 두른 다음 묵연히 앉아 정신을 수양하며 그날 할 일을 정해둬야 한다. 그리고 시중드는 관노가 업무를 시작할 시간이 됐다고 알리면 바로 시작해야 한다. 하지만 당시 목민관들치고 이런 원칙을 세워 지키는 자는 드물었던 모양이다. 다산이 그 현실을 개탄하는 소리가 이렇다.
“매양 보면 수령들이 기거하는 것에 절도가 없어서 해가 세 발이나 떠오르도록 깊이 잠들어 있고, 이속이나 장교 등 여러 일을 맡은 자들이 문밖에 모여서 느릅나무나 버드나무 그늘 아래 서성거리고 있으며, 송사하러 온 백성들이 무작정 머물러서 드디어 하루 품을 버리게 된다. 온갖 사무가 지체되며 만사가 엉망이 되니 매우 옳지 않은 일이다.”
인간에 대한 연민이 녹아든 이익의 《성호사설》
《성호사설》은 조선 실학의 중조中祖라고 할 수 있는 성호 이익이 남긴 책으로 그의 나이 30대 말부터 여든 살에 이르기까지의 짧은 기록들을 모아 엮은 책이다. 비록 ‘자잘하고 사소한 것들’이라는 뜻의 ‘사설僿設’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지만, 결코 가볍고 보잘것없는 내용은 아니다. 《성호사설》은 당대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역사, 지리, 인물, 풍속, 과학을 망라한 이익의 탁견을 여지없이 드러낸 명작이다. 그중 인사문 ‘노비’ 편과 ‘개자?者’ 편은 학문하는 자라면 모름지기 사람에 대한 연민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어느 날 이익은 그의 땅을 돌보던 외거 노비 한 사람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익은 간단히 제사 음식을 챙겨 들고, 노비의 묘에 가서 제사를 지내주며 이런 제문을 읊는다.
https://www.youtube.com/watch?v=xvezZ-HwsX4
모년 모월 모일 초야에 묻혀 사는 성호가 옛 종 아무개의 무덤에 제사하노라. 아, 나라의 풍속에 종과 주인의 관계를 임금과 신하에 비교하였다. 임금이 어질면 신하가 반드시 은혜를 갚는 것은 당연하지만, 주인이 박대하면서 종에게 충성을 바라는 것이 어찌 이치이겠는가? 너는 평생 부지런히 윗사람을 받들었으니, 내 사실 네 덕을 많이 보았다. 그런데 어찌 차마 너를 잊겠는가? 너의 자식이 불초하기에 내 일찍 훈계한 적이 있는데, 과연 파산하여 살 곳을 잃고 떠나버렸다. 네가 죽어 무덤에 풀이 우거졌는데도 벌초하기를 생각하는 자가 없구나. 살아서 고생이 심했는데, 죽어 귀신이 되어서도 늘 굶주리니, 어찌 슬프지 않으랴?
이익은 종에게 제사 지내주는 것을 남들이 알면 자신을 비웃을 것이라고 하면서도 남의 시선에 개의치 않고 이 일을 행하였다. 무슨 일을 하나 해도 체면만 중시하던 그 시절에 이렇듯 인간의 근원적인 의리를 지키고 정을 베푸는 이익의 모습은 학문을 하는 선비의 용기가 무엇인지 보여준다. 이익의 노비에 대한 연민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금민매노禁民賣奴’, 즉 ‘백성에게 노비의 매매를 금함’이라는 글에서는 노비법을 개혁할 수 없다면 노비의 매매를 금지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비를 소나 말처럼 매매하며 함부로 그들의 목숨을 끊는 것은 천리를 어기고 인륜을 저버리는 일이라고도 했다. 이익은 노비 매매가 금지되면 노비가 없는 사람은 부득이 자기 힘으로 농사를 지을 것이고, 노비가 많은 집에서는 노비가 여가를 누릴 수도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익의 노비관은 《반계수록》을 쓴 유형원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으로 보인다. 《성호사설》 곳곳에 《반계수록》에 대한 언급이 있고, 《반계수록》에서 노비 세습제를 천하의 악법 중의 악법이라고 했는데, 이익이 반계의 말을 고스란히 인용하고 있는 까닭이다.
체질 의학의 초석이 된 이제마의 《동의수세보원》
동무 이제마의 《동의수세보원》은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하는 조선의 의학 명저다. 《동의수세보원》의 ‘동의東醫’는 중국 의학이 아닌 조선의 의학을 의미하고 ‘수세壽世’는 사람의 수명을 연장시킨다는 뜻이며, ‘보원保元’은 세상 모든 것의 중심인 도를 보전한다는 뜻이다. 이 책에서 이제마는 사람의 체질을 소양, 태양, 소음, 태음으로 나누고, 타고난 체질에 따라 치료법을 달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사람은 양인과 음인으로 나눌 수 있고, 양인은 다시 소양인과 태양인, 음인은 소음인과 태음인으로 구분할 수 있다고 한다. 《동의수세보원》에 따르면 사상 중 소양인은 비대신소脾大腎小, 즉 비장은 강하고 신장은 약한 체질이고, 태양인은 폐대간소, 즉 폐는 강하고 간은 약한 체질이라고 한다. 또 소음인은 비소신대, 즉 비장은 약하고 신장은 강한 체질이고, 태음인은 간대폐소, 즉 간은 강하고 폐는 약한 체질이라고 한다. 따라서 소양인은 위장과 비장이 좋아 소화기관이 발달하여 활동적인 기질을 가졌으나 신장이 약해 생식기능이 약하고 참을성이 부족하기 십상이고, 태양인은 폐가 발달하여 공명정대한 기질을 가졌으나 간이 약하여 화를 잘 참지 못한다는 것이다. 또 소음인은 비위가 약하여 활동성이 부족하고 배가 자주 아파 내성적인 성질을 가지는 반면 신장이 발달하여 생식기능이 좋고 인내력이 강한 체질이며, 태음인은 간이 발달하여 화를 잘 삭이고 함부로 남에게 성질을 드러내지 않는 반면 폐가 약하여 활동성이 부족하고 맺고 끊을 줄 몰라 우유부단한 성정을 가진 체질이라는 것이다.
이제마는 각 체질마다 심장을 제외한 나머지 네 개의 장기 중에서 강한 장기 하나와 약한 장기 하나씩을 부여하는 방법으로 체질을 나눴다. 이를 테면 소양인은 비장은 강한데 신장은 약하는 식으로 설정한 것이다. 이렇게 하다 보니 결국 문제점이 생겼다. 그렇다면 심장은 모든 체질에 어떻게 작용하는가? 심장이 약한 사람과 강한 사람이 있는데, 이는 체질과 어떤 연관이 있는가? 이런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또 소양인은 비장은 강하고 신장은 약한데, 소양인의 간장과 폐장은 어떻단 말인가? 이제마는 이 문제들에 대한 해결점을 마련하지 못하고 죽었다. 하지만 이제마 이후로 한의사들의 체질 의학에 대한 연구가 꾸준히 이뤄졌고, 사상의학의 체계도 매우 견고하게 되었다. 덕분에 오늘날 체질 의학은 한의학의 새로운 조류가 되었다. 이는 이제마의 《동의수세보원》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조선의 명저들이란 어린 시절 높은 대문 집과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대문과 문패는 익숙한데, 선뜻 안으로 들어가기에는 너무 위압적인 집. 하지만 그 집 대문을 열어젖히는 순간, 위압은 사라지고 친숙함과 경이로움이 함께 찾아들 것이다. 결국 독서라는 행위도 새로운 길을 찾아가는 일이다. 낯선 길일수록 귀한 친구를 만나는 법이다. 조선의 명저를 읽는 일도 낯선 길로 들어서는 일이다. 독자들의 일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