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집에 80대 할머니가 이사왔다.
원래는 4층에 살았던 어르신인데 한동안
안 보이길래 넒은 교외 단독주택으로 옮겼나보다
생각했다.
'왜 번잡스러운 곳으로 다시 왔을까?' 의아해 여쭤봤더니 "애들이 병원 가깝고 교통 편리한 곳에 살아야 된다고 우겨 다시 왔어." 라고 대답했다.
하루는, 무거워 보이는 짐을 들고 지팡이를
짚으며 힘겹게 걸어 오셨다.
얼른 짐을 받아들고 함께 엘리베이터를 탔다.
"드림타워(제주시에서 제일 높은 빌딩)에서 상담하고 오느라고.. "
"무슨 상담요?" 물으니
"아, 중국애들이랑 큰 건 하나 상담했지.
성사되면 수수료만 10억이야."
'허풍이 심한 할머니인가?'생각했다.
할머니는 지갑에서 명함 한 장을 꺼내 주며
"땅 팔 것 있으면 언제든 말해.
요즘은 부동산 매매가 없어."라며 말끝을 흐렸다.
반신반의하면서도 '아마 젊었을 때 복덕방을 했나보다.' 정도로 여겼다.
하지만 가끔 리무진이 할머니를 태우고 가는 걸 본
후로는 '정말 큰손인가?' 궁금하기도 했다.
무더운 여름날,
현관 문 틈으로 작은 벌레가 기어왔다.
자세히 보니 갓 깬 새끼 바퀴벌레였다.
놀라 관리실에 전화했더니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며칠 전에 할머니 아들이 바퀴벌레 소독을 했다."고 했다.
할머니 집 앞에는 항상 많은 물건이 쌓여 있다.
밀감철에는 밀감 박스가 쌓이고
무언지 모를 스티로폼 박스도 차곡차곡 포개져 있다.
호박 몇 덩이가 놓여 있기도 하고
푸성귀가 검정비닐에 담겨 있는 날도 많다.
며칠 전에는 엘리베이터 앞 계단 위에 앉아 사과 한 상자를 풀어헤치고 있었다.
"집에 들러다 드릴까요?"했더니
"아니, 집에는 더 들어갈 데가 없어.
누가 가져갈까봐 걱정돼서...."
이해가 안 갔다.
지나가면서 열린 문틈새로 슬쩍 보니 방과 거실에는 발 디딜 데 없이 꽉 차 보였다.
며칠 전부터 문 앞에 나무 두 그루와 플라스틱 화분이 놓여있다.
'돈을 불러 오는 나무' 라고 할머니가 말한다.
"내가 육지에서 불렀어."
"나무 이름이 뭔데요?"
"응, 나중에 말해줄게."
나무는 점점 말라가고 있다.
비싼 나무를 누가 가져갈까봐 이리 옮겼다,저리 옮겼다 바쁘다.
환기를 시키려고 문을 열었더니 지린내가
확 풍겨왔다.
요즘 들어 더 진하다.
빨래를 자주 못 하시나?
화장실 청소를 오래 못 하셨나?
세탁기 돌리는 전기료가 아까워서일까?
올해 같은 폭염에도 에어컨을 안 켜고
문 열어놓고 헤진 런닝 뒤집어 입은
할머니를 보면서
'난 절대 저렇게 살지 말아야지.' 다짐하지만
장담할 수 없는 일이다.
젊었을 때 부동산 거래로
돈도 많이 벌어
자식들한테 많은 땅을 상속해주었다고 한다
삶의 연륜이 깊으신 할머니를
깜냥도 안되는 내가 이해한다는 건 애시당초
틀린 일인지 모른다.
재산이 많아서 재가요양보호사를 부르지 못하는
것일까?
시간제 가사도우미라도 불러 깨끗하게 살면 좋으련만 죽을 때 돈 지고 가는 것도 아닌데
안타까워지는 건 나의 오지랖 때문일까?
첫댓글 재미있게 잘보앗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나이 들어가면 누구든 장담할 수 없는
일이지요.
오랜 세월 몸에 밴 조냥정신(절약정신)은
쉽게 없어지지 않죠.
평생 살아온 습관이란게 무섭죠.사람은 고쳐 쓰는게 아니라고 하는것도 습관 때문인가 봅니다.
그런가 봅니다.
쓰레기 수거함에서 쓸만한거 보이면
들고 오는 것도 문제입니다.
사용하지도 않으면서.
나이들어 깨끗하게는 못살아도 꾸질 꾸질 하게는 안살아 야지요
얼마나 좋은 세상에 돈아꺼 어디다 쓸러고 어른들 명심해야 합니다
젊어서는 돈도 없고 시간도 없지만 내가 쓸돈은 누구나 있을겁니다
눈치 보지 말고 욕먹지말고 주머니 열면서 대우받고 살면서 즐겁게 살자구요
고생해서 번 돈 기부하는 분도 계시고
상속을 미루다가 자식들 법정 싸움
시키는 부모들도 많습니다.
자신이 살아 갈 여윳돈은 남기고
노년은 깨끗하고 아름답게
마무리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돈버는 나무 준공할때 받았는데
비싼 나무가 아닌데
글을 읽으며 고우신 마음을 보며 내려놓으실줄 모르시는 것에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돈 버는 나무'가 진짜 있군요?
지팡이 짚고 절뚝거리면서도
강인한 삶의 의지와 욕망을 굽히지 않는
할머니가 대단하면서도 귀엽고
그렇습니다.
에휴
그분의 마음이 그러신 걸
어쩌겠나 싶군요
그러시는 자체가 행복이실테니요
화이팅! 외쳐드릴래요
아우라님 반가워용 ~~~♡
감사합니다.
가끔, 초인종을 눌러도 답이 없을 때는
미나리나 야채 넣은 비닐을 문 손잡이에
걸어 놓고 옵니다.
'잘 먹었다'고 건빵이나 쌍화차를 주더군요.
여러 번 얻어 먹기도 했습니다.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