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경문 왕과 산수유나무)
국립 경주박물관에 가면 본관 동쪽 제1별관(고분관)둘레 북쪽과 서쪽에 산수유(山茱萸) 나무 예 일곱 그루가 서 있다. 이른 봄 삼월 중순이면 가지 끝에 노란 꽃망울이 방긋이 벌어진다. 4월 중순쯤에 노란색이 바래지면서 잎이 새록새록 돋아난다. 단오 때쯤이면 좁쌀만 하던 열매가 팥알만 해지면서 투명한 연두색이 초록색으로 진해졌다가 가을이 되면 잎은 노랗게 단풍이 들고, 열매는 빨갛게 익어간다. 열매는 따서 속에 있는 씨를 발가내고 말려 강장 해열제와 요통, 해수 등에 한약재로 쓰이고, 음력 구월 구일(중구:重九)에 열매가지를 꺽어 머리에 꽂으면 나쁜 기(氣)를 쫓아낸다는 풍속도 있다. 이 산수유와 신라 48대 경문왕(景文王)과 얽힌 이야기가 있으니...
경문 왕의 이름은 김응렴(金膺廉)이다. 열여덟에 국선(國仙,화랑)이 되었고, 스무살 약관(弱冠)이 되었을 때 47대 헌안 왕(憲安王)에게 김응렴이 말하기를 저는 아름다운 걸 세 가지를 보았심더 무엇인데? 남의 위에 앉을 만한 사람이 남아래 있는 것이 하나이고, 부유한 사람이 검소한 모습으로 있는 티를 내지 않음이 둘이요, 권세 있는 사람이 힘을 쓰지 않음이 셋이옵니다. 이 말을 들은 왕은 눈물을 흘리며 응렴의 심성이 착하고 어짐에 감동하여 말하였다. '나에게 두 딸이 있으니 그 중에 한 사람으로 낭의 시중을 들게 하겠노라' 즉, 사위를 보겠노라. 하니 응렴은 혼감하여 두 번 절하고 자리를 물러 나왔다.
헌안 왕은 45대 신무왕(神武王,김우징:金祐徵)의 아우다. 아버지 균정(均貞)이 조카 제륭(悌隆)과 서로 왕위 다툼을 하다가 죽고, 형 우징과 함께 청해진(완도)의 장보고에게 피신해 있다가 우징이 44대 민애왕(김명:金 明)을 죽이고 왕위에 올랐고, 그 아들 46대 문성왕이 후예없이 죽자 조카의 뒤를 이어 왕이 되었다.
헌안왕과 응렴과의 관계는 어떤 사이인가 하면 형 신무왕(김우징)의 딸이 김응렴의 어머니다. 즉 조카딸(질녀:姪女)의 아들이 응렴이다. 세상이 잘 되어갈 때라면 위의 세 가지 좋은 일에 왕이 눈물을 흘릴 정도가 아닐텐데, 당시의 형편은 그와 같은 일이 아름답게 보였고, 그걸 아름답게 본 응렴이 대견했던 것이다.
서로 왕이 되려고 피비린내 나는 장면을 겪은 헌안 왕이었고, 귀족들은 사치에 흘러 백성들의 피땀을 쥐어짜서 개인의 향락만 누렸으니, 왕은 응렴이 보았던 세 가지 아름다움이 가슴속에 울려와서 감동했던 것이다. 집에 돌아온 응렴이 부모님께 말씀을 드렸더니 집안에서는 서로 의논하여 정하기를 '맏 공주(公主)는 모양새가 지지리도 못 났고, 둘째 공주는 생김새가 아름답기 짝이 없으니 둘째 공주를 택하자' 하였다. 그 때 응렴이 이끄는 화랑무리 가운데 우두머리 되는 범 교사(範敎師)가 와서 묻기를 임금께서 낭(郎)을 부마(임금의 사위)로 삼으시려고 한다는데 누구를 택할랑기요? 부모님이 둘째 공주를 맞이하라 카니더. 만약에 낭이 둘째 공주를 택한 다카면 나는 그 자리에서 죽어 뿌고 말꺼시더. 그렇지마는 맏 공주를 선택 한다카모 세 가지 좋은 일이 있을 거니까 잘 생각해서 처리 하이소! 하고 물러났다.
그 후 대궐에서 사람을 보내니, 낭이 맏 공주에게 장가들겠다하므로, 이 말을 들은 왕과 왕비는 기쁘기 한량없었다. 그 뒤 헌안왕이 병들어 죽게 되었을 때 좌우 신하들에게 말하기를 짐에게 아들이 없으니 (실은 왕세자가 있었지만 먼저 죽었다) 맏사위에게 왕위를 잇도록 하라 하신 뒤돌아 가시니 김응렴이 왕이 되었다. 즉위한 뒤에 범 교사가 와서 말하기를 제가 아뢴 세 가지 일이 지금 모두 이뤄졌으니, 첫째는 맏 공주를 맞이함으로 왕과 왕비가 기뻐하신 거고, 둘째는 맏부마가 되었으니 왕이 된 것이고, 셋째는 지난날 탐내던 둘째 공주를 취할 수 있게 된 겁니더 이에 왕은 고맙게 여겨 그에게 대덕(大德)이라는 작위를 내리고 금 130량을 하사했다.
경문 왕은 왕이 되고 난 뒤 귀가 갑자기 길어져서 당나귀 귀처럼 되었다.왕비나 궁녀들조차 모르게 숨겼지만 복두장이(僕頭匠)만이 알았다. 잠잘 때도 머리 위에 쓰는 모자, 관(冠)을 만드는 복두 장이 인지라 왕은 절대로 말하지 말라고 닦달했다. 혼자만 알고 있는 복두장이는 하도 말을 하고 싶어 그만 울화병에 걸리고 말았다.
그래서 하루는 인적이 드문 도림사(道林寺) 대나무 숲에 들어가 행여나 누가 들을 새라 땅을 손으로 후벼파고, 구덩이를 만들어 거기다가 대고 고함을 질렀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다아.. 구덩이를 덮고 나니 속이 후련해졌다.
그런데 원 걸? 그 뒤로 바람만 불면 우수수 댓잎 흔들리는 소리에 섞이어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다...'하는 소리가 들리지 않나! 임금님은 그래서 대나무를 모두 베어내고 뿌리를 깡그리 파내고 거기다가 산수유나무를 심게 하였다. 산수유나무가 자라서, 바람이 불어 대면 '임금님 귀는 길다....'라는 소리가 은은히 들려왔다. 임금도 속으로 이 정도는 괜찮다 싶던지 그대로 두었다 한다.
경주에는 산수유나무가 잘 자란다. 특히 서쪽의 화천(花川)냇가에는 봄철이면 노란 산수유 꽃으로 뒤덮힌다. 그러니 마을 이름도 아름다운 꽃내, 즉 花川이다. 방내도 마찬가지다. 방내(芳內)란 꽃방(芳) 안내(內)이니 토박이말로 꽃내, 곶내, 곶안, 고단이라 부르기도 한다.
산수유는 경주지방에 자생하고 번식이 잘 되어 노란 꽃이 일찍 피는데다가 가을이면 빨간 열매가 익어 눈 속에서는 보석같이 아름다운 빛을 내고 그대로 두면 꽃 필 때까지도 달려 있는데, 따서는 약으로도 쓰이니 정원수로는 아주 그만이다. 경주문화원 정원의 몇 백년 된 고목 나무에는 매화보다 2, 3일 일찍 꽃이 피고, 요즘 심은 분황사 옆이나 곳곳의 녹지 대등의 어린 나무는 봄의 전령사 역할을 하는 꽃을 피운다.
첫댓글 자료 올려 주셔서 겉만 알았던 내용 을 알게도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