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명대학교 설립 115주년, 총동창회 창립 56주년 기념 행사로 동문가족 캠퍼스 걷기대회를 개최한다고 합니다. 행운권 추첨이 있는 바, 일등에 승용차 한 대가 걸려있습니다. 형편 되는 분들, 오셔서 놀다 가시기 바랍니다. 막걸리도 한 잔 하고. 캠퍼스의 돌 - 라피스 라줄리 이경규 가을이다. 안개비를 맞으며 캠퍼스를 산책하는데 크고 작은 돌들의 촉촉한 눈길이 무척이나 정다웠다. 돌계단을 오를 땐, 떼 놓는 발걸음마다 돌의 속삭임이 들리는 듯했다. 초현실주의로 유명한 브르통은, 귀를 기울이면 돌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했다. 사실 태초부터 시간을 담아온 돌, 할 이야기가 얼마나 많을까. 아주 오래된 돌은 38억년에 가깝다고 하니 거의 지구의 나이와 맞먹는다. 돌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다면, 우주의 신비가 많이 풀릴 것이다. 예수님은 인간들이 진리에 잠잠하면 돌이 소리칠 것이라고 했다(눅19). 나이가 들수록 돌에서 생기를 느낀다. 이제 ‘목석같다’는 말을 쉽게 써서는 안 될 것 같다. 돌아보니 캠퍼스를 거닌 세월이 적지 않다. 20대 때는 예쁜 여학생에게 눈길이 갔고 30대 때는 멋진 건물에 감탄했다. 40대 때는 나무가 그리 좋을 수가 없었는데, 50이 넘으니 자꾸 돌이 눈에 들어온다. 성서 캠퍼스에는 돌(바위)이 참 많다. 새로 갖다 놓은 것도 있지만 있어도 보지 못한 것이 많다. 아는 만큼 보이고 관심만큼 인식되는 법이다. 나이를 먹어서인가, 오가며 마주치는 바위가 왜 그리 정겨운지! 식물인간을 넘어 광물인간으로 변하는 것일까. 하기야 우리 모두 언젠가는 흙으로 돌아가고 흙은 또 언젠가 돌이 될 것이다. 캠퍼스에 바위를 갖다놓은 이유가 뭘까? 일단 조경의 효과 때문인 것 같다. 알게 모르게 드넓은 캠퍼스를 장식하는 다양한 모양의 바위에서 웅숭깊은 정취를 느낀다. 그러나 내게 캠퍼스의 바위는 조경 이상의 함의가 있다. 나는 가볍고 조급한 이 시대의 지성을 눌러 잡아주는 서진의 뜻을 읽는다. 바람에 날리는 종이를 눌러 고정시키는 것이 서진(書鎭 paperweight)이라면 오늘날의 캠퍼스에 지성의 서진이 필요하지 않을까? 대학은 철따라 유행 따라 변화무쌍한 세상과 달리 시류에 초연한 묵직한 맛이 있어야 하지 않나 싶다. 바위처럼. 유치환의 바위까지는 아니더라도. “비와 바람에 깎이는 대로/ 억년(億年) 비정(非情)의 함묵(緘默)에/ 안으로 안으로만 채찍질하여/ 드디어 생명도 망각하고/ 흐르는 구름/머언 원뢰(遠雷)/ 꿈꾸어도 노래하지 않고/ 두 쪽으로 깨뜨려져도/ 소리하지 않는 바위”. 살로 캠퍼스를 산보하며 군데군데 놓여 있는 돌을 보는 감동이 적지 않다. 그런데 지난 5월에는 아주 특별한 돌 하나가 들어왔다. 본관 앞 잔디밭에 세운 커다란 청금석을 말한다. 청금석(靑金石), 서양 사람들은 라틴어를 그대로 써 lapis lazuli라고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도 ‘라피스 라줄리’라고 쓰는 경우가 많다. 이 경우 대체로 보석이나 장신구로서 순수 청색의 돌을 말한다. 그러나 본관 앞에 세운 돌은 라피스 라줄리 원석으로서 청색과 금색이 섞여있다. 단순히 섞여 있는 것이 아니라 아주 신비한 무늬를 띄고 있다. 자세히 보면 우주의 모습이 담겨 있다고 한다. 한 바퀴 돌며 바라보면 보는 각도에 따라 형상이 가지각색이다. 높이 2.5m에 폭 1.6m, 무게 6.7t의 돌이다. 아프리카 나미비아산인데, 중국 푸젠성 샤먼(廈門)의 석재상에서 구입했다고 한다. 얼마인지는 모르나 동문들이 자발적으로 모금운동을 펼쳐 구입한 것이다. 계명대가 캠퍼스에 저 청금석을 세운 뜻은 뭘까? 대학이 교석을 세우는 일도 흔한 일이 아니지만 돌 중에도 청금석을 택한 이유가 뭘까? 학교 홈페이지의 자료를 보면 몇 가지 이유가 나와 있다. 청금석은 밤하늘을 닮았다고 생각하여 일찍부터 신성한 돌로 인식되었는데, 특히 청색은 지혜를 상징했다. 이 상징성이 계명대학교의 교육이념에 잘 들어맞는다는 것이다. 종교적인 맥락도 밝혀놓았는데, 모세가 십계를 새긴 돌이 청금석이다. 역사적으로 청금석의 청색은 영감을 불러일으키고 정신적 의지를 북돋운다고 하여 예술가들에게도 사랑을 받아 왔다. 계명석 라피스 라줄리는 금색이 많이 섞여 있는데, 만일 전체가 파란색이면 엄청나게 비싼 보석이 된다. 밖에 세워 둘 수도 없을 것이다. 계명석은 먼데서 보면 녹색 잔디를 바탕으로 파란색과 금색이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파랑은 하늘, 녹색은 자연, 금색은 인간, 천지인의 조화를 느낄 수 있다. 라피스 라줄리는 세계의 문화사 속에 자주 등장하는 보석이다. 1922년에 발굴되어 일약 세계적인 문화재가 된 투탕카멘의 황금마스크가 라피스 라줄리로 장식되어 있다. 특히 청색의 라피스 라줄리로 둘레를 친 눈의 아름다움과 신비는 지상의 것으로 보이지 않을 정도이다. 부활과 신성에 대한 동경이 라피스 라줄리에 현현되어 있다. 저 소년 왕 투탕카멘이 산 때가 기원전 1340년 정도라고 하니 라피스 라줄리에 대한 관심이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라피스 라줄리는 문학과도 깊은 관계가 깊다. 19세기 중엽에 발굴되어 고고학계에 일대 파란을 일으킨 수메르의 유적은 문학계에는 더 큰 파란이었다. 여기서 발견된 「길가메쉬 서사」 때문이다. 「길가메쉬 서사」는 호머의 작품이나 창세기보다 1000년 이상 앞서 기록된 인류 最古의 문학 텍스트이다. 내용적으로도 문학적 의의가 지대하다. 주인공 길가메쉬는 기원전 2500년 경에 산 우륵의 왕이었다. 그는 일부 신성까지 부여받은 탁월한 영웅이었지만 그의 삶은 인간 보편적인 문제들과 씨름한 여정으로 꽉 짜여있다. 사랑, 우정, 에로스, 폭력, 죽음, 불멸, 신 등의 주제가 심도 있게 다루어져 있다. 「길가메쉬 서사」는 길가메쉬가 친구(Enkidu)의 죽음을 보고 불사의 비밀을 찾아 나서는 데서 발전한다. 천신만고 끝에 불로초까지 획득하지만 맛도 보기 전에 뱀에게 빼앗기고, 결국 인간의 유한성 앞에 무릎을 꿇는다. 대신에 이름만이라도 영원히 남기겠노라고 자신의 행적을 돌에 자세히 기록하여 보관했다. 그 돌이 다름 아닌 라피스 라줄리이다. 이미 4500년 전에 라피스 라줄리는 미와 신성의 표상으로 인식되었다는 뜻이다. 즉, 수메르인들은 저 청색의 돌을 무척 귀하게 여겼고 여성들은 그것으로 만든 장신구를 애용했다. 길가메쉬의 남성미에 반한 여인 이슈타르는 길가메쉬에게 청혼할 때, 라피스 라줄리로 만든 전차를 제안하기도 했다. 그러나 길가메쉬의 마지막 깨달음은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존재의 비극이었다. 다만 거기에 좌절하지 않고 육신의 불멸 대신 작품의 불멸을 도모했다. 그것이 현존하는 인류 最古의 서사문학으로 내려오고 있다. 누가 말했던가.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고. 뒤에 구원이니 천국이니 하는 개념을 유포시킨 어떤 문화권에 비하면 매우 인간적이고 사실적인 세계인식이다. 이런 맥락에서 또 계명석의 뜻을 새겨 볼 수 있다. 개별 계명인은 끊임없이 왔다가 가고 또 왔다가 간다. 그러나 계명으로 인해 그들의 이름과 작품은 남을 것이고 또 그로 인해 계명의 이름도 존속할 것이다. 소멸 혹은 죽음을 비극이라고 한다면 이 땅의 누가 비극을 피할 수 있겠는가. 문제는 비극에 대한 정신적 태도이다. 여기에 아일랜드의 시인 예이츠가 「라피스 라줄리」란 시를 통해 답을 시도하고 있다. 1936년에 나온 이 4연의 시는 생의 존재론적 비극을 감내하는 방안으로 예술을 제시하고 있다. 특히 마지막 연(stanza)은 라피스 라줄리에 부조浮彫된 중국 현자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중국인 두 사람, 그 뒤에 또 한 사람,/ 청금석에 새겨져 있네./ 머리 위로는 장수의 상징 학이 날고/ 시동(侍童)임이 분명한 세 번째 사람/ 악기를 들고 따라가네./ 돌에 패인 얼룩,/ 어쩌다 생긴 금이나 자국,/ 물 흐른 홈인가 눈사태인가/ 아니면 아직도 눈이 내리는 가파른 비탈인가./ 하지만 오얏 혹은 벚나무 가지가/ 그들이 쉬어 갈 산중턱 조그만 정자를/ 향기로 물들이고 있음에 분명하니/ 거기 앉아있는 그들 모습 기쁘게 그려보네./ 하늘과 맞닿은 산 위에서 그들은/ 온갖 비극의 장면을 내려다보네./ 현자 한 분이 구슬픈 가락을 청하자/ 능숙한 손가락으로 현(琴)을 타기 시작하네./ 그들의 눈, 주름투성이 얼굴 사이의 눈/ 그 현자들의 노쇠한, 빛나는 눈이 기쁨에 잠긴다. 온갖 흥망성쇠의 세월을 깊은 흔적으로 담고 있는 라피스 라줄리 위에 한 폭의 그림이 돋을새김으로 그려져 있다. 현자로 보이는 두 사람의 노인이 오얏 가지가 드리워진 산중턱의 정자에서 세상을 내려다보고 있다. 세상은 온갖 슬픈 역사로 점철되어 있다. 현자는 그 내막을 다 알고 있다. 한 현자가 음악을 부탁하니 현을 타고 구슬픈 멜로디가 흘러나온다. 그러자 노쇠한 현자들의 눈이 기쁨에 반짝인다. 이 변용(transfiguring)의 기쁨이 예이츠가 의도한 ‘비극적 기쁨 tragic gaiety’이다. 여기에 예술의 역설이 있고 미적 창조의 신비가 있다. 또 청(天)과 금(地)의 놀라운 조화가 여기에 있다. 예이츠는 앞서 3연에 이렇게 쓰고 있다. “모든 것은 무너지고 다시 건설된다. 그리고 다시 건설하는 자는 유쾌하다 All things fall and are built again,/ And those that build them again are gay.” 불멸의 구축에 기쁨이 있는 것이 아니다. 끊임없이 다시 짓는 과정에 인간의 기쁨이 있다. 계명대학교 본부의 뜰에 청금석을 세운 뜻은 계명의 영원한 발전을 소망함에 있을 것이다. 발전은 어떤 정태적 완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늘 시작하는 열정과 기쁨에 있다. 나는 시간 날 때마다 저 청금석을 찾아가 바라보는데 볼 때마다 새로운 형상을 발견하고 놀란다. 돌을 보며 괄목상대해야한다면 사람이야 일러 무삼하리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