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 가장 친한 벗 정병욱 가옥 있어
- 윤 시인이 맡긴 시 19편 마루 밑에 보관
- 해방 후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출간
- 200m 더 가면 '황병학 의병 전투지'
- 1908년 어업권 침탈 日 어민 배 불태워
- 코스 막판 '섬진교' 건너면 영남땅 진입
전남 광양시 진월면 망덕리 망덕포구. 전북 진안의 데미샘에서 발원해 550리를 흘러온 섬진강이 비로소 남해를 만나는 곳이다. 가을이 손짓하는 망덕포구 하늘에는 먹구름으로 가득 차 있다. 윤동주의 시 '별 헤는 밤'의 첫 구절인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라는 문장이 저절로 떠오른다.
본지 창간 67주년 기획시리즈 '영·호남 화합길 열다' 첫 구간 첫 발은 바로 이곳 망덕포구에서 뗀다. 섬진강 하류의 서쪽 강변길을 따라 걸어가서 하동읍에서 다리를 건넌 후 하동 송림에서 끝맺는다. 거리는 14.5㎞. 걷는 시간은 4시간이다.
호남 사람들에게는 망덕포구는 유명한 어촌이다. 그야말로 '이야기의 보고'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선 이 마을은 백두대간 줄기에서 갈라지는 13개 정맥 중 최남단에 있는 호남정맥이 비로소 바다와 만나는 망덕산(197m) 아래 자리잡고 있다. 백두대간의 실질적인 남쪽 끝인 셈이다.
또한 섬진강과 남해가 만나는 기수지역이어서 옛부터 전어 장어 백합 굴 재첩 등이 많이 났으며, 요즘도 매년 9월 '망덕 전어축제'가 열려 방문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하지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따로 있다. 민족 저항시인 윤동주(1917~1945년)의 유고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이 마을이 있었기에 세상의 빛을 볼 수 있었다는 점이다. '영호남 화합길'을 열기 위해 찾아온 작은 어촌에서 시인 윤동주를 만날 줄 어찌 상상이나 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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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광양시 망덕포구의 특산물을 형상화한 전어 조형물. |
이야기는 윤동주와 국문학자인 정병욱(1922~1985년) 전 서울대 교수 사이의 백두대간을 관통하는 끈끈한 우정에서 비롯된다. 망덕포구에서 양조장과 정미소를 함께 운영했고, 진월면장까지 지낸 부친 정남섭 슬하에서 자란 정병욱은 1940년 연희전문에 입학해 2년 선배인 윤동주와 운명적 만남을 갖는다. 둘은 각별한 우정을 쌓는다. 2년 뒤 윤 시인은 일본 유학을 앞두고 시 19편을 묶어 연희전문 졸업 기념 시집을 내려고 했으나 지도교수인 이양하 선생이 일제의 탄압을 우려해 만류하는 바람에 포기한다. 윤 시인은 필사본 3권을 만들어 1권은 일본으로 가져가고 1권은 이양하 교수에게, 또 1권은 믿었던 후배이자 절친인 정병욱에게 맡긴다.
하지만 윤 시인은 일본 교토 도시샤대학 재학 중 독립운동을 했다는 죄목으로 체포돼 갖은 고초를 겪다가 해방 직전인 1945년 2월 16일 새벽 후쿠오카형무소에서 만 27세의 꽃다운 나이로 운명한다. 그 사이 정병욱도 징용돼 전장의 총알받이로 끌려가게 됐다. 징집 직전 망덕포구 고향집에 들른 정병욱은 어머니 박아지 여사에게 윤동주의 시 필사본을 맡기며 "절대로 잃어버리거나 빼앗겨서는 안 됩니다"라고 당부했다. 자신 조차 언제 죽을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그는 윤동주의 시만큼은 지키려 했던 것이다.
천신만고 끝에 생존해 해방과 함께 귀국한 정병욱은 그때서야 윤동주의 사망 소식을 접했고, 어머니가 고향집 마룻바닥을 뜯어내고 그 아래 묻은 항아리에 넣어 보관해오던 필사본을 꺼내들고 오열했다. 나머지 2권의 필사본 행방이 묘연한 상태여서 정병욱이 보관한 이 필사본이 유일한 윤동주의 작품집이었다. 이 필사본에 '서시', '별 헤는 밤', '자화상' 등 윤동주의 대표작 대부분이 담겨 있다. 상경한 정병욱은 친형의 발자취를 찾아 다니던 시인의 동생 윤일주(1927~1985년·전 부산대 성균관대 건축학과 교수)와 만나 "유고시집이라도 내자"며 의기투합했다. 필사본에 담긴 19편에다 시인의 동창생인 강처중 당시 경향신문 기자가 갖고 있던 다른 시 몇편을 덧붙여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라는 제목으로 1948년 비로소 세상에 내놓게 되는 것이다. 백두산 너머의 간도 용정 땅과 남쪽 바닷가 마을에서 자란 두 사람의 백두대간을 관통하는 우정의 결과물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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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왼쪽) 시인과 후배인 정병욱 전 서울대 교수가 연희전문학교 시절 함께 찍은 사진. |
1925년 건립된 정병욱 가옥은 2007년 근대문화유산 제341호로 지정됐다. 코스 출발지인 망덕포구 백두대간 시종점 안내판에서 50m쯤 떨어진 곳에 정병욱 가옥이 있으니 반드시 둘러볼 필요가 있다. 문화유산 지정 이후 소액의 지원금을 받아 보수했다고 하지만 그 개·보수 수준이 조악하기 이를 데 없어 보는 이의 마음이 착잡해진다.
출발지에서 강의 서쪽을 따라 200m만 가면 만나는 '황병학 의병 전투지'라고 표시된 정자에 닿는다. 황병학은 어업권을 침탈한 일본 세력에 맞서 1908년 광양 백운산에서 산포수 100여명을 규합, 그해 가을 망덕포구에서 일본 어민과 잡화상의 배와 가옥을 불사르는 등 일제에 저항한 우국지사다.
길은 하동읍 진입 직전까지 섬진강 자전거길을 따르게 된다. 썰물 때 갯벌로 변하는 강 하류에서 맛조개를 캐는 아주머니에게 큰 소리로 인사말도 던져본다. 남해고속도로 섬진강휴게소 뒤쪽 삼거리에서 청룡식당 쪽 강변 자전거길을 따라가면 남해고속도로 섬진강대교 밑을 지난다. 영남과 호남이 고속도로를 통해 연결되는 상징적인 다리다. 이후 살짝 오르막을 치면 강 건너 멀찍이 하동의 명산인 금오산(843m)이 구름에 살짝 가린 채 모습을 드러낸다. 30분 후 오사배수장에서 오른쪽으로 꺾는다. 이명박 정부 시절 4대강 사업 추진 과정에서 맹형규 당시 행정자치부 장관이 이 구간에 큰 애착을 보였다고 해서 '맹고불고불길'이라는 별칭이 붙었다. 쉼터를 지나고 빨간 우체통 모양의 화장실이 운치를 내뿜는 '별밤쉼터'도 지난다.
이윽고 돈탁마을 입구. 이곳은 정병욱 교수의 부친이 별도의 양조장을 운영했던 마을이다. 동네 입구 솔밭에서 쉬었다 가기 좋다. 이어지는 길 역시 강변 자전거길이다. 섬진강 철교 아래 대나무쉼터다. 이곳 역시 한적한 분위기 속에서 휴식을 취하기 딱 좋은 장소다. 15분 후 하동읍으로 진입하는 섬진교가 훤히 보이는 삼거리에서 자전거길을 버리고 왼쪽으로 휘돌아 간다. 곧바로 원동삼거리에서 2번 국도를 만나 오른쪽으로 꺾어 2분만 가면 하동읍으로 진입하는 섬진교 앞 삼거리다. 다리를 건너 호남에서 영남으로 진입한다. 오른쪽 하동 송림 앞 강변에서 철 늦은 '강수욕'을 즐기는 아이들 모습이 정겹다.
# "정병욱 가옥, 지역감정 허물 기폭제 될 수 있어요"
■ 관리인 박춘식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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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욱 가옥'을 지키고 있는 정 교수의 외종조카 박춘식 씨. |
"5·16 이전까지는 강을 사이에 두고 지역 감정 같은 것 없었어요. 나룻배를 타고 오가며 참 사이좋게 지냈죠. 말 그대로 이웃사촌이었어요."
전남 광양 망덕포구의 '정병욱 가옥(근대문화유산 제341호)'을 관리하고 있는 정병욱 교수의 외종조카 박춘식(59) 씨는 196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영호남의 지역감정 같은 것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실제로 정병욱 교수도 태어난 곳은 경남 남해 설천면이고, 경남 하동읍 하동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부산 동래고보를 다녔을 만큼 영호남의 차별 및 분리 의식이 없었다"고 증언한다. 정 교수는 서울대로 옮기기 전 부산대에 조교수로 재직하기도 했다.
이처럼 망덕포구와 '정병욱 가옥'은 윤동주의 '서시'가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었던 통로였음과 동시에 영호남 지역감정을 허물어뜨릴 기폭제가 될 잠재력을 갖고 있다.
윤동주 유고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모태가 된 필사본을 꺼내 취재진에게 보여주던 박 씨의 요즘 최대 관심사는 정병욱 교수의 발자취와 혼이 깃든 '정병욱 가옥'을 제대로 개·보수해 더 많은 국민들과 이 땅의 후손들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는 양철 지붕이 빗물에 녹슬어가고 있는 초라한 모습이다. 정 교수는 시인 윤동주와의 특별한 인연 외에도 판소리 여섯 마당 재해석과 시조 2500여 수의 집대성 등 한국 국문학사에 지대한 업적을 남긴 학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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