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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로하신 분들을 섬기는 데에 이것보다 더 좋은 것이 없다는 것은 아내가 내게 한 말이다. 혼자 가면 효과가 반감된다며 내가 꼭 같이 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가고 싶은 마음이 일지 않았다. 아내는 지난 달, 이 교육에 참석하고 와서 많은 은혜를 받고 온 것 같다. 하지만 엄연히 남자인 내기 할 일이 있고 아내가 할 일은 따로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발 치유 사역은 남자인 나보다 아내에게 더 적합한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아내의 말을 빌리면 한 가지 더 가야 하는 이유가 있다고 했다. 우리 교회 노년부 박옥남 할머니가 지난 금요일(7월 27일) 넘어져서 등과 가슴 부분을 다쳤다. 젊은이라면 맺혔던 통증을 시간이 해결해 주겠거니 하고 생각할 터이지만 아흔이 넘으신 노인 분들은 좀 다르다. 작은 부상도 회복되기까진 꽤 긴 시간을 필요로 한다. 금요일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고 약을 져서 돌아왔다. 병원 입원하라면 어떡하나 하고 걱정을 했는데, 통원 치료를 받아도 된다고 했다.
나와 아내는 홀로 사시는 할머니를 보호할 계획을 세웠다. 병원엘 다녀온 당일 날은 아내가 할머니와 함께 자기로 했고, 밥이 떨어져 며칠 분을 전기 밥솥에 앉혔고, 또 노인들이 드시기에 좋은 국을 끓이는 등 나름대로 노(老) 환자를 위해 필요한 것들을 준비했다. 그리고 5일 후엔 예약된 병원에를 가야만 했다. 이렇게 되고 보니 일만교회 세우기 운동본부에서 주관하는 '발 치유 교육'에는 참석할 수 없게 되었다. 아내는 교육보다 환자가 우선이라며 흔쾌히 일정을 수정했다.
그런데 토요일(7월 28일) 서울에 사는 박옥남 할머니의 따님이 내려왔다. 어머니의 병환이 걱정스러워 급한 행차를 한 것이다. 따님은 아흔이 넘으신 노모를 멀리서 혼자 사시게 하는 데 대해 늘 마음 아파했다. 그런데 그것이 아픔으로 그칠 수밖에 없는 것이 서울 따님의 집으로 모시려고 몇 번 시도를 했지만 성사되지 못했다. 농촌의 나지막한 단층 한옥에서 평생을 사신 분이 서울 고층 아파트에서의 편리한 삶이 도리어 불편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불편해도 김천 내 집이 낫다며 며칠만 묶고 내려오시곤 했다.
그런 할머니가 이번에 따님과 함께 서울을 가신다는 것이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육체와 정신의 한계를 절감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목사님 부부가 잘 돌보아준다 해도 혼자 사시다 세상이라도 뜨는 날엔 할머니 자신뿐 아니라 딸네들에게도 짐을 지우는 격이 된다고 생각하신 것 같다. 또 교회 목사님에게 폐를 끼쳐 미안하다는 생각도 보태진 것 같다. 그래서 주일(7월 29일) 오후에 따님과 함께 서울로 가시게 된 것이다.
할머니가 넘어져서 다친 것 때문에 발 치유 교육을 가지 않겠다고 생각을 수정한 아내인데, 다시 일정을 조정할 필요가 있었다. 아내는 그새 다시 나와 함께 발 치유 교육을 가면 좋겠다고 생각을 가다듬었다. 주일을 보내고 월요일 아침, 아내는 나에게 다소곳하게 제안을 했다.
"여보, 박옥남 할머니가 다치시는 바람에 월요일부터 진행되는 발 치유 교육 참석하지 않기로 했었잖아요. 그런데 할머니가 예상과는 달리 서울 따님 집에 가게 되었어요. 하나님께서 발 치유 교육에 참석하라시는 사인(sign)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함께 참석하도록 합시다."
농촌 주민의 노령화는 도회지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지금 농촌의 주 노동력은 노인들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 농촌에서는 60대도 젊은 축에 속한다. 70, 80대의 노령 인구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이런 환경에서의 목회는 어떻게 하면 노인들을 더 잘 섬길 수 있을까 하는 방향으로 모아진다. 그런 노인 분들과의 접촉점으로 '발 치유'만한 것이 없다고 아내는 주장했다. 내가 동조해 주는 말을 하니까 그 때부터 함께 이 교육에 참석하면 좋겠다고 입버릇처럼 되뇌이곤 했다.
아내의 바람을 들어주어야 할 것 같았다. 못난 남편의 최후 양심의 발로라고나 할까. 나는 가기로 결정하고 준비에 들어갔다. 당일 아침에 발 치유 교육에 참석을 결정하고 보니 시간이 급격하게 움직이는 것 같았다. 휴가나 피서가 아니라 교육이라고 해도 2박3일 머물기 위해서는 준비할 것들이 적지 않다. 아내는 기쁜 마음으로 재빠르게 짐들을 챙겼다. 장거리 여행에 속하기 때문에 대중교통을 이용하기로 했다. 그렇다면 가급적 짐을 줄여야 한다. 그래도 가방이 세 개나 되었다.
교육장인 양평 RGMF 갈운수련원을 가기 위해서 행선을 그려보았다. 교회에서 김천역까지는 택시, 김천역에서 기차를 타고 영등포역 하차, 영등포역에서 용산역까지 전철 1호선, 용산에서 다시 용문산 행 전철을 탄다. 용문역에서 갈운수련원까지는 김승희 전도사님의 차를 타고 가기로 되어 있었다. 김 전도사님은 남양주 진접에서 목회를 하고 있는데, 일부러 용문역까지 나와서 우리의 마지막 교통편을 돕기로 한 것이다.
잠깐 교통편을 소개했지만 참으로 어렵게 교육에 참석하게 되는 셈이다. 이용한 교통편만 해도 택시, 기차, 전철(2회선), 승용차 등 모두 다섯 개의 차편에 몸을 의지해서 교육에 참석한 것이다. RGMF 갈운수련원은 폐교를 임대해서 사용하고 있었다. 수련원으로 사람들이 이곳을 이용하고 있겠지만 초등학교 때의 아름다운 추억은 찾을 길이 없었다. 듬성듬성 살아있는 잔디하며, 한여름의 오수(午睡)에 젖어있는 듯한 울타리 나무들 그리고 교사(校舍) 앞에 세워져 있는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의 이승복 군 생기 잃은 동상만이 옛 흔적으로 남아 있었다.
교육장으로 사용되고 있는 1층 강당으로 들어가니 바깥 분위기와는 달리 생동감이 돌았다. 안내를 하고 접수를 받는 스탭들의 얼굴엔 형식이 아닌 진정 환영하는 마음으로 교육받으러 온 사람들을 맞고 있었다. 개회 예배가 있었고, 발 치유 1차 교육이 있었다. 김창일 목사님이 맡아 진행한 발 치유 교육은 단기간에 교육의 효과를 배가하기 위해 치료의 순서를 연상 기법으로 외우게 했다. 1(스크럽)은 일심기도, 2(횡경막)는 이등분, 3(양쪽 이완시키기)은 삼삼하게 등처럼 외우기 쉽게 억지 책(策)을 강구하기도 했다.
그 중 이런 것도 있다. 7(발등 감싸주기)은 ‘칙칙폭폭’, 8(흉곽 이완시키기)은 ‘팔랑팔랑’, 12(발가락 이완시키기)은 ‘이빨빼기’, 13(피아노치기)은 ‘삼익피아노’ 등은 정말 친근한 언어유희에 해당되었다. 21 번 ‘늑골/상하반신 임파선’은 유일하게 연상 기법 이름을 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떠오르는 좋은 어휘가 있으면 알려달라는 말에 나는 즉석에서 '21'번이라는 것을 감안해 '이원(2 one) 근육‘으로 하면 어떨까 생각해 보기도 했다. 교육을 받으면서 참석자들은 이구동성으로 오기를 잘 했다고 했다. 사랑이 메말라 가는 시대에 사랑을 되살릴 도구로 발 치유를 생각하고 있었다.
이튿날 오후 자기 소개하는 시간이 있었다. 어디에 살며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그리고 발 치유 교육에 참석하게 된 동기 등을 같이 교육 받는 사람들에게 말하는 시간이었다. 필요 이상으로 자세하게 자신을 소개하는 사람들이 있었는가 하면 어떤 이는 이름만 밝히고 끝내기도 했다. 나는 간단하게 아래와 같이 말했다.
사진설명-교육 중 발 치유 교육에 참석한 내용을 기쁜 마음으로 페이스북에 쓰면서 함께 올린 우리 부부 사진. 하트 모양이 엉성하게 되었지만 교육을 받는 동안 마음만은 일심동체(?)였다.
"오늘 오전 교육 끝나고 페이스북에 사진과 글을 하나 올렸습니다. 사진은 함께 참석한 아내와 한 팔을 모아 하트 모양을 만든 장면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글을 올렸습니다. 일만교회 세우기운동본부(대표 김주상 목사)에서 주관하는 발 치유 교육에 참석하고 있는 중입니다. 이웃을 섬기는 데 유용하게 쓰일 것 같습니다. 휴식 시간에, 저를 이곳으로 이끈 아내와 하트를 그리며 포즈를 취했는데, 모습이 영 엉성하지요?"
이 글 속에는 이번 교육에 참석하는 내 마음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 발 치유는 전도가 목표이지만 내용은 사랑이 되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이 교육에 참석할 수 있도록 인도한 아내에 대한 고마움, 일만교회 세우기 운동을 벌이고 있는 김주상 목사님에 대한 동의와 찬사 그리고 이 발 치유를 배워 이웃을 섬기는 데 유용하게 활용하겠다는 의지 등이 농축되어 있다. 김 목사님이 시간을 내어 일만교회 세우기 운동과 그 운동의 효과적인 확산을 위해 하고 있는 발 치유 교육은 공감하는 바가 많았다. 2010년 2월에 시작한 이 운동은 이 시대에 필요한 하나님의 일임을 그는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일만교회란? 숫자적인 일만이 아니고 '천천이요 만만인 복음의 충만'인 하나님의 충만인 수이다. 그리고 이 일은 하나님이 하실 것을 믿는다. 또한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를 기대한다. 이 계획은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이다."
이 일만교회 세우기 운동에 다 같이 동참하면 이 나라와 전 세계는 하나님의 나라, 예수님의 세계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김 목사님이 추진하는 일만교회 세우기 운동은 그러니까 건물을 세우고 다수의 성도를 담은 그런 교회가 아니라 십자가 사건으로 죽으시고 죽으신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셔서 승천하신 후,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주시고 내 안에 들어오셔서 너와 내가 함께 먹고 마시는 곳이 바로 교회라고 이야기한다. 일만교회를 세우면 우리나라가 예수 천국이 된다는 것이다.
서울의 대학로에서 현수막 하나 걸어놓고 노상 예배를 드리면서 숱은 고난과 시련을 이겨온 지 25년의 김 목사님 사역이 하나 둘 열매 맺기를 바라는 마음이 일었다. 교계 부흥의 장점 뒤에 숨어 있는 단점들이 갈수록 드러나고 있는 시점에서 노방 전도의 대가가 되어 있는 김주상 목사님의 사역이 더 크게 보이는 이유는 너무나 분명하다. 이것은 어떻게 보면 기존 교계 질서에 대한 반기이며 권위에 대한 도전이고 큰 것에 대한 폐기에 다름 아니다. 낮은 곳에서 낮은 자들과 함께 하는 것이 전정 예수 그리스도의 정신임을 그는 증거해 보이고 있다.
둘째 날, 밤 시간은 은혜의 도가니였다. 세상적 일에 전념해서 꽤 성공한 사람에 속하는 끼 있는 여성 변명애 집사님의 간증은 성(聖)과 속(俗)의 접점에서 취해야 할 믿는 자의 올바른 태도를 제시해 주었다. 하나님 앞에 바로 서면 불가능을 가능으로 변화시켜 주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을 체험할 수 있다고 그는 간증했다. 간증 말미에 그는 이번 집회에 특별 참석한 한 스님을 앞으로 인도해서 통성으로 기도하며 김주상 목사님으로부터 안수 기도를 받게 하는 장면에서는 정말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역사하심을 눈으로 경험하게 만들었다.
사진 설명-이튿날 저녁 집회 시간, 변명애 집사님의 간증 직후 한 스님이 앞으로 나와 김주상 목사님으로부터 안수 기도를 받고 있다.
참석자들 모두 탄성을 자아내게 했다. 뿐만 아니라 과거 어두운 주먹 세계를 주름잡던 강지윤이라는 거인(?)이 예수 믿고 변화된 자신을 간증할 때는 세상의 힘이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무력한 것인지를 보여 주었다. 그는 지금 전국을 뛰어 다니며 복음을 전하고 있다고 한다. 약한 자를 들어 강하게 쓰시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 주님을 사주로 모시고 하는 그의 사업이 성장 발전하여 주님의 일에 귀하게 쓰여지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정연도 집사님도 발 치유로 주님의 영토 확장에 헌신하고 있는 사람이다. 늘 명랑 쾌활한 모습으로 그리스도인의 본을 보이고 있는 그에게도 여주동행하심의 은혜가 있기를 빈다.
이번 교육 기간 중 총 일곱 끼의 식사를 했다. 음식들이 정갈해 맛이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먹기만 하면 되지만 음식을 장만하고 식사 뒤 설거지하는 일은 만만찮다. 교육 받으러 온 사람들이 70여명, 스탭까지 합하면 100 여명은 넉넉히 될 터인데, 그 식사를 김 목사님 사모님을 비롯해서 서너 분이 맡아 하는 것 같았다. 노인 분들이 중노동(?)에 생각이 미친 분들이 설거지를 돕는 등 힘을 보탰지만 궁극적인 해결책을 강구해야 할 것 같았다. 참석자들이 분담을 한다든지 아니면 전기(前期) 수료생들이 와서 도와준다든지, 어떻든 이 교육이 장기적으로 이어지려면 현명한 방법을 찾아봐야 할 것 같다.
이 번 교육을 통해서 친교를 나눈 몇몇 분들도 소개해야 하겠다. 일만교회 세우기 운동본부 고문을 맡고 있는 박영률 목사님, 진공렬 목사님은 든든한 지도자로 교육 받는 사람들과 시종을 함께 했다. 고희가 넘으신 분들인데, 후배 목회자와 평신도 지도자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함께 해 준 것으로 여겨진다. 우상 숭배자에서 신실한 믿음의 사람으로 우뚝 선 변명애 집사님과 강지윤 회장님도 기억해야 할 분들이다. 이들은 생각만 해도 도전의 마음을 갖게 만든다. 이들의 사역을 지켜보는 것도 즐거움 중의 하나가 될 것이다.
사진 설명-이번 발 치유 교육을 주관한 일만교회 세우기 운동본부 대표인 김주상 목사님, 고문을 맡고 있는 박영률 목사님과 함께 우리 부부가 기념사진을 찍었다.
우리는 마지막 날, 파송 예배를 마치고 각자 주어진 교회로 달려갔다. 마침 수요일이어서 나의 경우는 밤 예배가 걱정되었다. 오후 3시가 넘어 끝났기 때문에 바쁘게 움직인다 해도 밤 예배 시간 안에 교회에 도착하기란 어려울 것 같았다. 일만교회 세우기 운동본부 대전충청 지역 본부장인 최성용 목사님의 주선으로 마침 대전에 사는 오영국 목사님 차편으로 편안하게 내려와서 제 시간에 당도할 수 있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닐 수 없다. 긴 시간 좁은 차 안에서 풍성한 들을거리로 귀를 즐겁게 해 주신 진 목사님과 최 목사님께도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 매달 마지막 주 월화수 2박 3일 동안 발 치유 교육이 있다고 한다. 다음 8월 말 교육에도 참석해서 발 치유사로서의 자격을 공고히 할 계획이다.
첫댓글 목사님 사모님 여러 방면으로 성도님들으 섬기기 위해
열정이 많으시내요 발 치유 교육 좋은 프로그램입니다
저의 신학교 동기 목사님도 자격증 따서 교회서 하고 있는데
꾸쭌히 받으면 당뇨도 고쳐지고 피 순환이 잘되서 건강에
도움이 많이 된다고 저도 몇번 받아 봤어요 참 좋았어요
부부 간에도 하면 좋답니다 목사님 사모님 사진으로라도
얼굴 뵈오니 넘 반갑습니다
목사님 사모님 더위에 건간하세요~~
언제 시간 되실 때 송 전도사님도 한 번 받아 보세요. 노인 분들을 섬기면서 복음 전하는 데에 이것보다 좋은 것은 없는 것 같습니다. 매달 마지막 주 월화수 2박3일 동안 교육이 진행된다고 합니다. 이번 교육은 제게 자연스런 휴가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