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2.18~2.28
던져진 존재
1970년 초반 철학을 전공한 사진작가 아드리안 파이퍼는 14장의 <영혼을 위한 음식> 시리즈를 발표했다. 그녀는 칸트의 순수 이성 비판의 문구를 되풀이하는 녹음된 목소리와 거울 속의 자신을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어두운 조명으로 그림자 속으로 분해된듯한 self-portrait 사진을 전시하였다. 작품을 제작하는 동안 칸트의 금욕주의를 재현하면서 단식을 하고, 요가를 하면서 사회적으로 자신을 고립시킴으로써 자신의 삶과 정체성에 대해 깊은 고찰을 하였다.
청춘을 지나 지천명의 나이에 접어든 우리는 스스로에게 이러한 질문을 던져본다.
삶의 본질이란 무엇인가? 중년의 시기에 찾아온 정체성의 위기에 우리는 어떻게 답할 것인가?
하이데거는 <존재와 시간>에서 인간에겐 본질이 없다고 하였다. “인간은 그냥 존재하는 것” 존재하고 싶어서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나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그냥 태어나 진 것이며 “세상에 던져진 존재자”라고 하였다.
던져진 존재는 사명 같은 것이 있을리 없고 무엇을 선택하던 자유이다. 인간은 자유를 선고받았으며, 그래서 우리는 무엇인가 항상 스스로 자유의지로 선택을 해야만 한다. 하지만 선택은 어렵다. 인간에게 주어진 목적이나 기능이 없으니 정답도 없다. 그래서 선택이 어려워지고 인간은 불안해진다. 그것은 정답이 없는 문제지를 받은 것과 같으며, 불안을 피하기 위해서 때로는 자기기만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는 삶이 그렇게 의미 없는 것이고, 존재가치가 없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생각해 보아야 한다.
무엇을 선택하든 선택한 그것이 나에게 가장 가치 있는 것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선택을 하면 나의 욕망이 가장 가치있는 것이 되고, 내가 해야 할 일을 해야 되겠다고 선택을 하면 나의 의무가 가장 가치 있는 것이 된다.
인간은 선택을 하면서 계속 미래로 나아가야 한다. 하이데거는 불안하기는 하지만 무엇이든 선택을 하면서 자신을 미래로 던져야 하고 거기에 운명을 맡겨야 한다고 했다.
우리는 몇 개월 동안 매일 수십 번 수백 번의 셔터를 누르면서, 지나온 삶을 되돌아보고, 매 순간 무엇이든 선택을 하고, 결정을 내리며 살아온 자신이 만들어놓은 “ 그것” 그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고 사진으로 표현하려 노력했다.
그리고 지금 하고있는 행위 역시 우리가 선택한 일이고 앞으로도 계속해야 할 일들 중의 하나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이 전시는 사진을 찍고 그 사진을 통해 중년의 삶과 정체성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 기획되었다. 자신이 생각하는 “나”와 타인이 생각하는 “나”는 괴리가 있을 수도 있으며, 중년의 시대는 자아정체성의 확립시기에 가졌던 문제와 다시 부딪치기도 하고, 자기비난의 시기이기도 하다. 작품에 나타난 전반적인 구성은 이러한 생각들로 쌓여지고, 인생의 의문에 대한 고민과 살아온 날들에 대한 통찰로 해체와 반복을 통해 이미지들은 구축되어 졌다.
결코 짧다고는 할 수 없는 세월을 살아온 작가들이 사진을 통해 자신을 다시 발견하고 되돌아볼 수 있다는 것은 너무나 매력적인 일이다. 그러나 그 과정이 사진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쉽지 않은 주제에 끝까지 최선을 다해 작업을 마무리해준 참여 작가들에게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 이수철(지도 작가) -
이영화, Archival ink-jet print on paper, 78 x 33 cm, 2020/이영화, Archival ink-jet print on paper, 50 x 33 cm, 2020
김미자, Archival ink-jet print on paper, 50 x 33 cm, 2020/김미자, Archival ink-jet print on paper, 50 x 50 cm, 2020
황미라, Archival ink-jet print on paper, 70 x 35 cm, 2020/황미라, Archival ink-jet print on paper, 35 x 35 cm, 2020
고태영, Archival ink-jet print on paper, 60 x 40 cm, 2020/고태영, Archival ink-jet print on paper, 100 x 25 cm, 2020
김현재, Archival ink-jet print on paper, 45 x 60 cm, 2020/김현재, Archival ink-jet print on paper, 67 x 30 cm, 2020
이수철, Archival ink-jet print on paper, 70 x 52 cm, 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