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일 토요일
아침... 파스칼과 함께 유키 구라모토를 들으며 집을 나섰다.
유키 구라모토의 피아노 소리는 새벽을 닮았다.
오늘은 천지간에 제일이라는 그 이름에 끌려 천지갑산天地甲山(안동시
길안면 송사리 소재, 해발 452m, 안동에서 39km)에 다녀 왔다.
34번 국도를 타고 영덕 방면으로 가다가 안동대학교 조금 못가서 포진
교 다리를 건넜다. 다리를 건너니 임하면이고 우회전하면 갈라산 가는
길이고 좌회전해서 조금 가니 길안 13km, 영천 80km라는 이정표가
보인다.
35번 국도를 타고 건동대학교를 지나 조금 더 가니 임하면사무소가
나오고 10여분을 더 달리니 금소리이고, 금소교 다리가 나온다. 다리를
건너 지난 겨울 민이랑 몇 번을 오려다 결국 못 와본 금소 눈썰매장 입구
에서 물 한모금 마시고 다시 달렸다.
20여분을 더 달리니 약초, 산나물이 많기로 유명한 약산藥山 입구 이정
표가 나오고 조금 더 올라가니 길안 사거리다. 좌회전하면 길안면소재지
를 통과 청송, 주왕산 가는 길이고, 우회전하면 의성, 직진하면 영천
방향이다. 직진 신호를 받아 계속 달리니 길안면 만음리가 나왔다.
도로 양쪽 사과밭(길안은 청송과 더불어 사과가 맛있기로 유명해 사과
농사를 많이 한다)에 틀어 논 스프링클러에서 뿜어져 나온 물이 조금 전
동쪽 산위로 떠오른 해의 햇살을 받아 무지개를 만든다.
조금 더 달리니 묵계리가 나오고 길안천을 바로 옆으로 끼고 달리는
도로 좌우로 병풍처럼 늘어선 산들이 나를 계속 따라 온다.
조금 전 떠오른 해가 9시 방향에 있고 내가 지금 35번 국도를 달리고 있
으니 난 지금 정남향으로 달리고 있다고 ‘파스칼 내비게이션^^’(우리
나라 국도 번호는 짝수번호는 동서방향, 홀수번호는 남북방향을 의미한
단다)이 알려준다. 여기서부터 길안천은 상수원보호구역으로 출입이
금지되어 있다. 길안천은 옛날에 좋은 돌이 많이 나서 수석애호가들이
자주 오던 곳이었다고 하는데 애호가들이 헤집고 다녀서 천변이 많이
훼손되었다고 하는 소리를 들었는데 지금이라도 출입금지가 되어 늦었
지만 다행이다.
사람들이 못 들어가는 길안천엔 백로와 물오리떼만이 한가로이 노닌다.
묵계리를 지나니 금곡리가 나오고 금곡교를 지나자 계명산자연휴양림
입구 이정표가 나오고 조금 더 가자 송사삼거리가 나온다.
죄회전하면 대사리, 직진하면 송사리다. 삼거리 지나 조금 올라가니
송사리 마을 입구에 천지갑산 이정표가 보인다.
송사리 마을은 조그마하고 아늑한 마을이였는데 마을 안쪽에 600년 된
느티나무가 날 반긴다. ..오래 된 마을 입구엔 어딜 가나 저런 나무가 꼭 있다.
느티나무를 끼고 왼쪽으로 돌아 들어가니 송사교가 나오고 다리 건너니
천지갑산 주차장이다...지금 시각 8시 30분.. 집을 떠난 지 3시간만이다.
주차장 한모퉁이에 ‘영천댐 도수관 공사’ 표지판이 붙어 있어 읽어 보니
안동 임하댐에 있는 물을 산을 뚫고 매설한 이 관을 통해 영천댐으로
인공적으로 흘려보내 영천, 포항, 경주의 식수에 보태고, 일부는 대구
금호강으로 흘려보낸단다..91년에 시작한 공사는 2000년에 완공되었고
그 도수관의 끝 지점이 바로 이곳 주차장 앞에 있다.....자연도 위대하지
만 그 자연을 극복하고 살아가는 인간도 위대하다.
주차장에 파스칼을 두고 조금 걸어가니 천지갑산의 일곱 봉우리 기암
괴석과 그 앞을 용처럼 굽이굽이 감아 도는 길안천이 한눈에 들어온다.
산행을 시작하자마자 급경사에 로프를 잡고 올라가야 하는 암벽길이
나온다...등산하는데 해발은 별의미가 없다..금방 콩죽 같은 땀이 흘러내
린다.
30여분을 오르니 제2봉이 나타나고 조금 더 가니 제3봉이다. 암벽에
100년은 더 자랐을 것 같은 소나무 들이 곳곳에 우뚝하다.
3봉 정상에서 길안천을 내려다보니 길안천이 태극 모양으로 흘러 가고
있다..그래서 이 곳 길안천을 태극천이라고 부르기도 한단다...
조금 더 올라가니 천지갑산의 정상인 제4봉이 나타난다.
정상에서 90도 방향으로 내려와 모전석탑방향으로 돌아 내려오니 제5
봉이고 조금더 가니 제6봉이다..이곳 조망이 제일 좋아 길안천과 송사리
마을이 한 눈에 들어 온다.
조금 더 내려가니 모전석탑이 나타난다. 이 곳에 옛날에 큰 절이 있었는
데 스님들이 빈대를 잡는다고 불을 놓다가 절 전체를 태워버려 한명은
해인사로 또 한명은 무슨절로 도망갔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지금은 절터
만이 남아 있다.
하산길은 암벽옆 오솔길로 이어졌는데 이곳에서 살모사를 만나 살모사가 놀란만큼 나도 놀랐다.
2시간의 산행을 마치고 내려오니 길안천이 바로 앞이다.
길안천 물에 땀을 씻고 목을 축인 후 다시 등산로 입구로 돌아와 앉아
쉬다보니 맞은 편 길안천 모래사장에 서너살쯤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가
자리를 깔고 앉아 있고 그 아이의 엄마로 보이는 아줌마가 허리를 90도
앞으로 숙이고 물속에서 골부리를(길안천은 골부리가 많이 난다) 줍고
있다...
송사리 마을 사람으로 보이는 저 아줌마는 이 이름아침에 당신 먹자고
젖먹이 어린아이를 업고 골부리를 주우러 오지는 않았을 것이다...저
아줌마에게 이 천지갑산과 길안천은 내가 보는 만큼의 아름다운 풍경으
로 보일까? 송사리 마을 사람들에게 이 산과 강은 매일 보는 마을 앞산,
앞개울이요, 삶의 터전일 뿐이리라.
돌아 나오는 길에 송사리 마을 입구에 있는 길안초등학교길송분교장안
에 있는 소태나무를 보았다.
그 열매와 가지가 매우 쓰고 위장병약 등의 약재로 쓰인다고 하는데
우리가 매우 쓴 것을 ‘소태같이 쓰다’고 하는 말이 이 나무에서 유래
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소태나무 중에 이것이 제일 크고
오래 되서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었는데 내가 보기 에 겉모양은 느티
나무와 비슷해서 구분이 잘 안되었다. 다시 페달을 힘껏 밟아 돌아오는 길을 재촉했다.
묵계리에 있는 묵계서원에 들렸다.
<묵계서원안에 있는 읍청루>
서원 안쪽으로 조금 더 들어가니 길안천이 휘감아 도는 전망 좋은 조그
만 산위에 정자하나가 지어져 있었다...우리 조상들은 이런 경치 좋은 곳
을 그냥 놔두는 법이 없다.^^
묵계서원을 나와 맞은편 길안천을 건너는 방향으로 만휴정 700m라는
이정표가 있다. 길안천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너 조금 들어가니 조그만
마을이 하나 나오고 만휴정 이정표가 보인다...조금 더 들어가니 길은 이
어져 있는데 종아리 높이만한 곳에 쇠사슬로 입구를 막아 놓아 차량이
들어가지 못했다...그러나 나는 내 차를 들 수가 있다.^^..파스칼을 살짝
들어 1분여 경사 급한 길을 올라가니 바로 만휴정晩休亭이다.
만휴정은 보백당寶白堂 김계행이 연산군의 폭정을 피해 관직을 버리고
고향인 안동으로 내려와 70세 되는 1500년에 지은 정자(그래서 만휴
晩休인 모양이다)로 정자 앞에 상,중,하 세 개의 폭포와 세 개의 소가
연이어 있고 정자 바로 뒤로는 병풍같이 산이 둘러싸고 있어 정자 주변
경치가 내가 안동에서 본 어느 정자보다 그 풍광이 아름다웠고 정자와
주변 경치가 조화를 잘 이루고 있었다.
<하 '폭포'와 '소' 저뒤로 만휴정이 보인다>
정자로 들어가려면 좁은 다리를 건너야만 했다.
이 사진엔 잘 안보이지만 중간 '소' 저 앞 바위에 寶白堂晩休亭泉石 (보백당만휴정천석)이란 글씨가 크게 암각 되어 있다.
정자를 떠나 묵계리를 지나 만음리를 지나니 시간도 12시가 넘었고
배도 고파온다...저 앞에 길안면소재지가 보인다..저 곳에 가면 왠지
골부리국을 잘하는 집이 있을 것 같다.
길안면소재지에 들어가서 땀을 뻘뻘 흘리며 먹은 짬봉 그릇만한 크기의
그릇에 가득 담긴 골부리국(길안천 가 어느 마을 아줌마가 코흘리개
아이를 등에 업고 나와 주워 팔았을..골부리를 삶은 물에 골부리 속을
듬뿍 집어 넣고 부드러운 배추, 부추, 고사리약간을 넣고 끓인 국)은
정말 시원해서 좋았다.
오늘 8시간여의 여정에서 다시 한번 깨달은 사실....
‘천지갑산도 골부리국 만 못하다^^’ |
첫댓글 좋았겠다. 난 6월6일 안동 봉정사와 안동댐, 산림박물관을 태백시 가족봉사단과 함께 다녀왔는데 집을 지나치며 들러보지 못했단다.
내가 다녀온것이 아니라 퍼온 것입니다.
아하~~ 그렇구나. 참 좋은것 같은데 우리 올해 추석에 일찍 와서 가보면 어떨까? 토요일부터수요일까지 5일간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