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 53. (보길도 윤선도 원림<세연정> – 애송마을 – 어부사시사 명상길)
보길도가 양팔을 펴고 한 쪽은 노화도와 손을 잡고 한 쪽은 예작도와 손을 잡고 있으니 사람들은 땅끝 선착장에서 피처럼 흘러 섬 투어를 시작한다. 이렇게 나서보면 쉽게 올 수 있었던 것을 몇 년을 미루어 오늘 보길도로 향한다. 땅끝 선착장에서 30분정도 배를 타고 가야하는 보길도에는 고산 윤선도의 흔적이 많이 남아있다. 그 중에서도 담양의 소쇄원과 영양의 서석지와 함께 조선의 3대 정원이라 일컬어지는 부용동 원림 세연정이 있어 그곳을 찾아 일찍이 봄을 마중하고자 나선다. 윤선도는 정치인이자 시인이었던 정철과 박인로와 더불어 조선 3대 시가인(詩歌人)의 한 사람으로 일찍부터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깨닫고 〈어부사시사>를 비롯한 주옥같은 시조를 남겼다. 그러나 정치 생활은 순탄치 않아 당파싸움에 휩쓸려 17년을 유배지에서 보냈고 19년 동안 세상을 떠나 자연 속에서 살았던 그를 알아가면서 예나 지금이나 글을 쓰는 문인은 특별한 고집을 지녔는가 하면 사람을 아끼는 따뜻한 인정이 넘치는 성향이라는 것을 알겠다. 그런 고산 윤선도가 아름다운 풍광에 반해 이곳에 눌러 앉아 세연정과 낙서재를 포함한 건물 25동을 짓고 은둔하며 자연 속에서의 삶을 즐겼다고 전해져온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어찌 즐겁거나 좋아서 즐김으로만 살았겠던가? 이곳에서 탄생한 오우가와 어부사시사를 들여다보면 자연친화적인 어부의 삶을 그리고 있지만 사실 어부의 일은 전혀 하지 않은 모습에서 현실과 어느 정도 괴리되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다만 다양한 표현법을 사용했다는 점에서 작품이 높이 평가되고 있는 것은 역시 주변의 아름다운 풍광이 훌륭한 작품을 낳게 하는 요소가 되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먼저 노화도 구석구석을 둘러보고 싶었으나 애당초 섬을 일주하려던 마음을 접고 목적지인 부용동 세연정으로 향했다. 부용동의 세연정은 고즈넉한 소류지였다. 세연정은 보길도에 정착한 윤선도가 풍류를 즐기며 자연 속에서 시를 지었던 공간이다. 세연정 입구의 매표소를 지나면 세연정의 역사와 윤선도에 대한 내용이 전시된 전시실이 있었고 이곳에는 윤선도가 보길도에 정착하게 된 과정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전시되어 있었으며 몇몇 관광객을 위한 문화관광해설사님의 해설도 진행되어지고 있었다. 어디를 가든 남편이 하고 계시는 일이기도 한 관광지 해설사님들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않으며 문화관광자원을 살펴보고 우리 지역과의 비교와 부러움도 늘 따라나서는 부분이다. 연못이거나 아니면 늪 같은 느낌까지 더해지는 그곳은 잘 굴러 다듬어진 곱고 집채만한 자연석이 세연정의 아름다움을 더해주고 연못을 돌아보는 내내 편안하고 정갈한 기분이었다. 한편 고즈넉한 풍경은 구태어 시인이 아니라도 시가 새어 나올 만큼 아름다웠다. 우리는 세연정을 둘러보고 남쪽 예송리 해안 길을 택하여 어부사시사 명상길을 트레킹 하기로 하였다. 예송리 갯돌 해수욕장에는 작은 자갈로 가득한 갯돌해변이 인상적이었다. 자갈들이 파도에 밀려 데굴데굴 구르는 세월이 얼마였는지 더 이상 고울 수 없이 고왔다. 자잘한 자갈밭에 엎드려 공기 돌을 주워보는 것은 아득히 추억으로의 여행이 되기도 하였다. 이곳 보길도는 자동차로 섬 일주를 할 수 있는 노선을 없었다. 보옥항과 예송마을간의 거리는 어부사시사 명상길 약 5km는 걸어야 일주가 되는 모양이었다. 우리는 어부사시사 명상길을 걷기 위하여 예송마을로 향했다. 보길도의 남동쪽 해안가에는 해안가를 따라 740미터 가량 이어지는 반달모양의 아름다운 숲, 이곳은 보길도 예송리 상록수림(완도 예송리 상록수림)인데 이 숲은 약 300여 년 전 이곳 주민들이 합심하여 바닷바람을 막기 위해 조성된 방풍림이란다. 과거에는 1.5km나 되었다고 하지만 일부가 훼손되어 현재는 절반만이 남아 이 정도라고 한다. 예송리 상록수림이 위치한 예송리 갯돌해변은 검푸른 빛의 조약돌로 이뤄져 있었다. 더불어 앞 바다에서는 남해안 김양식장과 원양어선이 줄지어 있어 그야말로 여행의 행복한 풍경이었다. 해안을 따라 태풍을 막기 위해 가꾼 숲과 맑고 푸른 남해바다를 배경으로 예송 상록수림에서 어부사시사 명상길로 접어 트레킹을 시작하였다. 오늘따라 봄이다. 보길도는 육지보다는 제주와 비슷한 아열대 기후에 가깝다더니 동백도 머물러 있고 마음까지 푸근해지는 완연한 봄 날씨다. 따뜻하게 단속하고 입고 간 겉옷을 벗어 허리에 두르고 바다와 산이 어우러진 섬을 거닐다 보면 김과 전복양식장의 바다풍경과 함께 걷는 보길도의 매력은 윤선도 그가 단순히 은둔한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이곳을 가꾸고 즐겼다는 점이 이 시대에도 와 닫는 부분이었다.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공간을 만들고 그 속에서 시문을 창작하며 풍류를 즐겼다니 우리네 인생을 조급하지 않고 헐렁하게 살 수는 없을까?를 문득 생각해본다. 오랫동안 벼르다 찾아온 보길도의 세연정은 마치 숙제를 마친 듯 홀가분하고 넉넉한 마음으로 다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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