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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사상>, 2015년 봄호.
현대시에 나타난 가족관계
맹문재
1.
통계청이 발표한 ‘한국의 사회 동향 2014’에 따르면 한 부모 가구 및 1인 가구가 증가되었다. 우리나라의 가구원 수는 지속적으로 축소되어 1985년에 평균 4.1명이던 것이 2010년에는 2.8명으로 감소했다. 3세대 이상 확대가족의 비율이 줄고 그 대신 2세대 가구나 1인 가구의 비중이 높아진 것이다. 그중에서도 1인 가구의 비율이 1990년에 9.0%이던 것이 2010년에 23.8%로 늘어난 사실이, 즉 3배 이상 증가한 면이 관심을 끈다. 미혼율이 높아지고 독거노인이 늘어나고 이혼율이 증가한데 기인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1인 가구의 증가 추세는 현재의 수준에서 멈추지 않고 지속되어 2015년부터는 2인 가구보다 많아지고 2035년에 이르러서는 전체 가구 중 34.3%나 될 것으로 예상된다.1) 이렇듯 혼자서 생계를 유지하는 1인 가구의 증가는 바람직한 가족관계의 형성으로 볼 수 없다.
또한 이혼으로 인한 한 부모 가구의 비율이 늘어나고, 배우자가 있는 경우에도 직장이나 자녀 교육 등으로 떨어져 지내는 주말 부부나 기러기 가족이 증가하고 있다. 가족의 분거가 증가하고 있는데, 이 역시 가구원 수의 감소에 영향을 미치고 가족관계의 유지에 방해가 되고 있다.
늦은 밤 회귀하는 그의 발걸음 소리가 들린다
복도 양쪽으로 나뉜 열 개의 방은
열 개의 귀
다가갈 수 없는 그를 조립하고 해체하는 도미노 조각들이다
누구도 그와, 그를 상상하는 그와
그를 상상하는 그를 상상하는 그와 눈인사조차 나눈 적 없다
기댄 채 음 소거로 우는
벽을 사이에 둔 유령이랄까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가 들린다
낯선 음으로는 결코 웃음 짓지 않는 세계
그가 자신의 궤도 속으로 사라진다
퍼석거리는 하루의 햇살을 영혼인 듯 벗어놓고
구겨진 몸을 씻는 속도
그 느린 구동 속도에 대해
깜빡깜빡 욕실 등이 투덜거린다
그가 젖은 머리로 침대에 걸터앉아
닦아도 마르지 않는 몸을 인사하듯 닦는 동안
누군가 내 방안을
어제처럼 걸어 다니는 소리가 들려온다
― 김유섭, 「유령들의 집」 전문
“그”는 외따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복도 양쪽으로 나뉜 열 개의 방”을 이웃으로 두고 있다. 그렇지만 “열 개의 귀”만 존재할 뿐 서로 소통하지 않는다. “누구도 그와, 그를 상상하는 그와/그를 상상하는 그를 상상하는 그와 눈인사조차 나눈 적 없다”. 그리하여 “그”는 “비밀번호를 누르”면서 자신의 집만을 들어가고 나간다. “낯선 음으로는 결코 웃음 짓지 않는 세계”에, 즉 “그” “자신의 궤도 속으로 사라”지는 생활에 익숙해져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그”의 모습은 오늘날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자화상이다. 도시인들은 수많은 이웃을 둔 아파트에서 살아가지만 서로 간에 인사를 나누지 않을 정도로 소통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에게 해를 끼치지는 않을까 하고 조심하고 경계하며 거리를 유지한다.
“그”는 다른 사람과 소통하지 않으며 살아가기 때문에 가족 간의 관계 역시 소원해질 수밖에 없다. 혼자서 취사나 취침 등을 책임지며 생계를 이어가는 경우 가족과 소통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친척이나 이웃과도 마찬가지이다. 그리하여 집안에서의 생활은 “어제처럼 걸어 다니는 소리”를 낼 뿐이다. 가족으로서 대화를 하거나 행동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2인 이상 동거하고 있는 경우에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의식주를 함께 해결해가는 혈연관계가 아니라 동거인에 불과한 것이다. 이처럼 도시인들의 가족관계는 사회 상황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고 있다.
아내가 두 시간 잔업을 위해
꾸역꾸역 마른 빵 씹을 이 시간
혼자서 먹는 저녁밥 목이 메인다
내가 주간이면 아내는 야간이고
아내가 주간이면 나는 야간이다
한 주일씩 엇갈리는 교대근무
한 이불 덮으면서 주말부부다
지글지글 구운 고등어살 발라
밥숟갈에 얹어주던 때는 언제였던가
숲속의 뻐꾸기 그만 좀 울어라
발작한 천식기침 멈출 줄 모르고
찬밥 물에 말아 혼자 먹는 저녁밥
담 넘어오는 저 된장찌개 냄새
―이한걸, 「저녁밥」 전문
현대 자본주의 사회가 본격화되면서 노동자들은 “한 이불 덮으면서”도 “주말부부”로 살아가야만 한다. 자본주의의 전술을 습득한 사용자가 자신의 이익을 창출하기 위해 노동자에게 생산량의 증대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노동자는 “내가 주간이면 아내는 야간이고/아내가 주간이면 나는 야간”인 삶을 살아야 한다.
“한 주일씩 엇갈리는 교대근무”를 하는 노동자 부부는 한 집에 함께 살아가면서도 가족관계를 유지하기가 힘들다. 또한 “아내가 두 시간 잔업을” 하는 데서 볼 수 있듯이 노동자들은 장시간의 노동에 시달리고 있다. 그리하여 개인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없고, “지글지글 구운 고등어살 발라/밥숟갈에 얹어주”는 모습과 같은 가정생활을 영위할 수 없다.
우리나라 노동자들의 연간 근로 시간은 2011년에 2,090시간으로 장시간 노동 국가에 들고 있다. 1990년의 2,677시간에 비해서는 많이 줄어들었지만 선진국에 비해서는 과도한 것이다. 2004년부터 공공부문과 1,000인 이상의 대기업을 중심으로 단계적으로 도입된 주 40시간 근무제가 노동 시간을 줄이는 데 기여했지만, 아직 사회의 전반에 정착되지 않고 있다. 더욱이 우리나라 노동자들의 노동 시간은 길지만 시간당 생산성은 오이시디(OECD) 34개국 중에서 28위로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는 실정이다.2) 따라서 그동안 고도 성장기에 관행적으로 추구해온 장시간 노동을 극복할 필요가 있다. 노동자의 삶을 향상시키기 위해서, 또 장시간의 노동이 오히려 기업의 생산성을 저하시키고 비용의 부담을 높인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개선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2.
‘한국의 사회 동향 2014’에서 주목되는 또 다른 현상은 노인 가구가 지속적으로 증가되고 있는 것이다. 1990년에는 65세 이상 노인 중 75.3%가 자녀와 함께 살았지만, 2010년에는 30.8%로만 함께 살고 있다. 절반 이상 감소되었는데, 앞으로 더욱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가족들이 공동체의 관계를 이루기란 쉽지 않다.3)
전통적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은 자신의 입장보다 가족을 먼저 생각했다. 부모의 경우 자신보다 자식이 잘되기를 바라고 걱정하고 안쓰럽게 여겼다. 자식이 큰일을 해내었을 때 자신의 노고를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잘해주지 못했는데도 용하게 해내었다고 미안해하고 고마워했다. 또한 가문을 위해 큰일을 했다고 대견해하고 자랑스러워했다. 그리하여 우리나라 사람들은 가족이란 말을 들었을 때 무엇이 생각나느냐는 질문에 ‘같은 피로 맺어진 사람들의 모임’이라고 응답한 경우가 다른 나라보다 높았고(한국 48.8%, 미국 9.4%, 일본 34.3%), 성인이 된 자녀가 진 부채에 대하여 부모가 모두 갚아주어야 한다는 응답도 한국의 부모가 높았으며(한국 50.8%, 미국 23.7%, 일본 30.3%), 부부가 이혼을 하고 싶어도 자녀의 장래를 생각해서 그냥 같이 사는 것이 좋다는 의견도 높았다(한국 91.6%, 미국 30.4%, 영국 21.8%). 자식을 키우는 의미도 자신의 소망을 추구해줄 후계자를 갖고 싶다거나(32.1%), 가문의 대를 잇게 하기 위해서(62.8%)라고 대답했다. 자식들의 의식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이 잘못하거나 사업에 실패했을 때는 무엇보다 부모 뵐 낯이 없음을 걱정했고, 일을 잘했을 때도 부모의 고마움에 조금이나마 보답해드릴 수 있음을 기뻐했다. 그리하여 부모의 원수는 기꺼이 복수해야만 자식으로서의 도리를 다한다고 생각했다.4) 그렇지만 현재 자본주의 사회에 들어 가족관계는 급격히 와해되고 있다.
������참사랑 요양병원������
세상의 것들이 다 음식이 되는
어머니 입 안은 요란하다
수선스러운 입놀림 속에서 환하게 피는 한 송이 카네이션, 아들이 헌화(獻花)한 어버이날 꽃이 한 접시 요리가 된다 세상의 논리를 어머니 논리로 요리를 하는 입놀림
아들 눈에는 어머니, 입만 커다란 동굴이다
꽃을 입에 물고 앉은 어머니 몸은 달아 붉은 화씨 212°, 미끈거리는 기억이 몸을 휘저으며 생(生)의 무늬를 감춘다 지난 날 많은 일들로 가슴을 쟁였던 여자, 어머니 이름 안에 갇힌 여자 고운 얼굴이 웃는다 쩌억 갈라진 시간 수렁 안에서 이제는 세상마저 삼키려는 여자
어머니는 이제 세상을 기억하지 않는 미지수X
입만 살아 있는 환형동물로 산다
― 정진경, 「세상의 것들은 다 음식이 된다」 전문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가는 자식은 “어머니”를 “참사랑 요양병원”에 모실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어버이날을 맞이해도 양로원에 있는 “어머니”를 찾아가 “한 송이 카네이션”을 달아드릴 뿐이다. 더 이상 함께하기가 힘들다. 실제로 초고령으로 생존하는 노인들이 많아지면서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노인들은 경제적인 어려움은 물론이고 만성적인 질환으로 인해 일상생활을 하기가 어렵다. “세상을 기억하지 않는 미지수X/입만 살아 있는 환형동물로” 살아가는 것이다. 산업사회가 본격화되기 이전에는 가족이, 특히 장남과 며느리가 노부모를 돌보는 것을 당연한 도리로 여기고 모셨다. 그러나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아들과 며느리 모두 경제 활동을 해야만 되기 때문에 어렵게 되었다. 노부모를 모실 수 있는 근무 조건이나 임금 조건을 마련하기란 매우 힘든 것이다.
자식을 대신해 배우자가 상대를 돌보는 경우가 많아졌는데, 그 역시 노인이기에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기가 어렵다. 더욱이 황혼 이혼의 증가로 인해 배우자가 함께하는 것도 보장할 수 없다. 우리나라의 이혼 건수는 2003년 정점에 도달한 이후 점차 낮아지고 있다. 그리하여 2013년에 이혼한 건수는 총 11만 5,300건으로 2009년에 비해 7% 감소했다. 2008년부터 도입된 이혼 숙련 기간 의무화와 이혼 전 상담 제도가 나름대로 효과를 발휘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혼의 연령이 지속적으로 높아지고 있기에 주목된다. 다시 말해 결혼 생활을 15년 이상 한 부부의 이혼이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이혼한 부부 중 20년 이상 결혼생활을 한 부부의 비율이 1990년에 5.2%였는데 비해 2013년에는 28.1%나 증대되었다.5) 이와 같은 현상은 평균수명이 늘어남에 따라 일어나는 것일 수도 있으나, 자녀들이 독립하고 난 뒤 부부의 결속력이 약화되었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노인 배우자가 상대를 돌보는 일은 점점 어려워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더욱이 부모와 자식의 별거가 일반화되어 있기 때문에 정서적으로도 함께하기가 쉽지 않다. 그리하여 노부모가 경제적 형편이 어렵거나 만성질환을 앓고 있는 경우 자식으로부터 버림받기가 일쑤이다. 그만큼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가족관계는 경제적 조건에 얽매여 위협받고 있는 것이다.
경남아파트 1204호에 사람들이 모인다
귀신은 좀만 기다리라 하고 바둑판 집을 세다가 싸움이 난다
아무 것도 아닌 일일수록 불은 부리나케 살아난다
저 형님 또 저래 늙어도 목청은 크제
불난 사람 푹 삶겨 젯상에 오르고 느적느적 훈수가 놓인다
김이 펄펄 나는 밥을 찬물 묻혀가며 고봉으로 담아도
메는 걸어 모신 연장이니 서늘하기만 하다
넙죽 절하다가 얼굴은 식은 땅바닥을 만난다
생볼따귀를 치던 재 너머 바람
얼얼하기도 하여 저들끼리 잔불이 남기도 하여
낯은 여직 붉다
끓는 탕국같이 펄럭이다가 개켜놓은 겉옷을 입고
사람들 가지런한 육체를 연다
뿔뿔이 되돌아가는 지상의 검은 보자기
자기도 모르는 새 길게 자란 무덤 속으로
―이선형,「펄럭이는 제사」 전문
조상의 “제사”를 지내기 위해 “경남아파트 1204호에” 후손들이 모인 것만으로도 대견한 시대이기는 하지만, 조상을 대하는 후손들의 자세는 무례하기만 하다. “귀신은 좀만 기다리라 하고 바둑판 집을 세다가 싸움”을 하는 모습에서 여실하게 볼 수 있다. 제사를 올리는 것은 조상의 은혜에 감사드리는 것으로 경건한 자세를 가져야 하는데 바둑을 두는 놀이를 하거나, 조상 앞에서 큰소리를 내거나, “저 형님 또 저래 늙어도 목청은 크제”라면서 “불난 사람 푹 삶겨 제상에” 올리는 것은 무례한 행동이다. 부모와 함께 살지 않아 의사소통이 제대로 안 되고 정이 깊지 않아 존경하는 마음이 부족한 것이다.
이와 같은 데는 산업사회의 도래가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산업사회는 개방성을 전제로 형성되기 때문에 사람들의 이동을 촉진시킨다. 그리하여 자식들은 더 좋은 일자리와 더 나은 삶의 터전을 찾아 나선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와 함께할 수 없어 결국 사이가 소원해지는 것이다. 따라서 “내 시집온깨내 살림살이가 아무것도 엄써 쌀독 열어 보이 쌀 두 되나 될랑가 너거 할배 계시재 삼촌들하고 식구는 많재 (중략) 시집와서 맨날 나물마 문깨내 배가 아파 몬 전디것어 그래 너거 할무이한테 배 아푸다 카머 지렁을 한 종지 주는기라 하이고 지금 생각하머 그때 우찌 살았던고 고상고상 말도 몬하는기라”라는 어머니의 말씀을 듣고 “들을수록 등골 서늘함이 있다 놀랍게도 이 절박한 옛 이야기할 때마다 류머티즘 관절염 통증을 잠시 멎게 하는 효과가 있”(문영규,「어무이」)음을 획득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3.
‘한국의 사회 동향 2014’에 따르면 가족의 형성 자체에도 큰 변화를 나타내고 있다. 가령 초혼의 연령이 꾸준하게 늘어나 남성의 경우는 1990년에 27.8세였는데 2013년에는 32.2세로 높아졌고, 여성의 경우에도 1990년에 24.8세였는데 2013년에는 29.6세로 높아졌다. 미혼율도 증가하고 있다. 여성이 사회에 진출하는 경우가 증가함으로 인해 남성에 대한 경제적 의존도가 감소하고, 결혼과 함께 책임져야 할 출산, 양육, 가사 등을 부담스러워하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6)
결혼이 늦고 미혼이 늘어나는 데는 노동시장의 불안으로 인해 청년실업이 증가하고 취업이 어려워지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실제로 경제적인 조건을 갖추지 못하면 결혼하기가 어렵다. 우리나라의 고용률은 2013년에 64.4%로 전년도에 비해 0.2% 증대하는데 머물렀다. 더욱이 15~29세의 청년층의 고용율은 2013년에 39.7%에 머무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전년도에 비해 0.7% 감소했다. 우리나라는 오이시디(OECD) 국가 중에서 실업률이 높은 편은 아니지만 고용률이 낮다. 그만큼 비경제 활동 인구가 많은 것이다.7)
뿐만 아니라 비정규직 노동자의 증가와 저임금 노동자의 증가 역시 결혼이 늦고 미혼이 느는 원인이 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오이시디 국가 중에서 저임금 노동자의 비율이 가장 높은 국가이다. 그만큼 임금의 소득이 평등하지 않게 배분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근무 조건과 임금 조선이 개선될 필요가 있다.
꽉 막힌 서민 경제와 상관없이
벗들이여 잘들 계시는지
잘 자시고 잘 싸시고
맺힌 데 없이 잘들 사시는지
꽉 막힌 자영업 경제와는 상관없이
얼마 전, 집 옮기고
벗들이 사다 준 화장지
‘술술 풀리는 집’처럼
맺힌 데 없이 잘 지냅니다
꽉 막힌 최저임금 경제와는 상관없이
우리 못 본 지 오래인가 봅니다
이번 가을에는
꽉 막힌 일용직 경제와는 상관없이
전어나 한 접시 합시다
곁들여 세발낙지 멍게도 썰어놓고
소주 한잔 합시다
소주 마실 때 갑갑하게
꽉 막힌 경제 이야기하지들 마시고
술술 풀리는 자식 이야기
술술 풀리는 재테크 이야기나 하면서
―문영규,「술술 풀리는 집」 전문
대부분의 서민들은 “술술 풀리는 집”을 희망한다. 서민들이 풀리기를 희망하는 사항은 “자식”과 “재테크”가 잘 되는 일이다. 중요한 사항이기는 하지만 지극히 소박한 것이다. 사회의 지배계급이 추구하는 명예나 권력이나 금력의 욕망이 아니라 가족을 영위하면서 갖는 최소한의 욕망인 것이다. 그런데 그 희망을 이루기란 여간 어렵지 않다. 서민들의 가족은 “꽉 막힌 서민 경제”와 “꽉 막힌 자영업 경제”에 영향을 받고 있다. “꽉 막힌 최저 임금경제”와 “꽉 막힌 일용직 경제”에도 주눅 들고 있다. 경제적 조건에 단순히 영향 받는 것이 아니라 위협받고 있는 것이다.
입에 담기조차 힘들 정도로 충격적인 사건들이 가족 내에서 연일 발생되고 있다. 그만큼 우리 사회의 가족은 위협받고 있는 것이다. 가족이 파괴되고 해체되고 있는 이유는 개인의 윤리나 도덕의 타락을 들 수 있지만, 경제적인 이유도 그 못지않다. 경제적인 토대가 위태로워 가족관계가 제대로 존속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위의 통계청 자료들에서 보았듯이 우리 사회의 가족은 위험한 상황에 놓여 있다. 한 부모 가구 및 1인 가구의 증가, 독거노인의 증가, 미혼율과 이혼율 증가, 노인 인구 증가, 장시간 노동, 노동 시장의 불안, 고용율 저하, 비정규직 노동자와 저임금 노동자의 증가 등에서 보듯이 원만한 가족관계를 이루기가 힘든 것이다. 따라서 가족애가 발휘될 수 있는 개인의 윤리는 물론 경제적 조건 역시 마련되어야 한다. 노동시장의 불안으로 실업이 늘고 취업이 힘든 상황이기에 가족관계는 근본적으로 위협받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가족 공동체가 사라지고 사회 공동체 또한 확립되지 않은 상황에 대한 안전망이 필요하다. 가족관계를 이루려는 노력을 사회 통합을 이루는 행동과 함께하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사회가 분열되거나 갈등하는 정도가 낮고 불평등이 심하지 않으면 사회의 규범과 규칙이 제대로 작동하고, 사회 구성원들 간에도 신뢰를 가지게 된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사회 조직이 매우 복잡하고 불평등한 면이 내재되어 있어 구성원들 간의 합의와 신뢰가 쉽지 않다. 따라서 선거의 참여, 사회단체의 참여, 봉사활동의 참여, 기부활동의 참여 등 사회 통합 활동에 적극성을 띠어야 한다. 바람직한 가족관계를 이루기 위해서는 효를 중심으로 하는 개인적인 윤리뿐만 아니라 사회적 윤리를 추구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맹문재(孟文在)
1991년 『문학정신』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론집으로 『한국 민중시 문학사』『패스카드 시대의 휴머니즘 시』『지식인 시의 대상애』『시학의 변주』『만인보의 시학』『여성시의 대문자』, 편저로 『박인환 전집』『김명순 전집』『김남주 산문 전집』 등. 현재 안양대 국문과 교수. 전태일문학상, 윤상원문학상, 고산문학상 등 수상.
1) 인용된 통계 자료는 한경혜, 「가족과 가구 영역의 주요 동향」(『한국의 사회 동향 2014』, 62~72쪽)에 실린 것임(http://kosis.kr/ups/ups_02List01.jsp?kor_id=13&pubcode=JK&type=).
2) 인용한 통계 자료는 김영옥, 「장시간 노동의 실태와 위험」(『한국의 사회 동향 2014』, 169~175쪽)에 실린 것임(http://kosis.kr/ups/ups_02List01.jsp?kor_id=13&pubcode=JK&type=).
3) 인용된 통계 자료는 한경혜, 앞의 글.
4) 맹문재, 「가족의 집, 존재의 집」, 『지식인 시의 대상애』, 작가, 2004, 166~167쪽. 인용된 통계 자료는 최상진,『한국인 심리학』(중앙대학교출판부, 2000, 270~291쪽)에 실린 것임.
5) 인용된 통계 자료는 한경혜, 앞의 글.
6) 인용된 통계 자료는 한경혜, 위의 글.
7) 인용한 통계 자료는 장지연, 「노동 영역의 주요 동향」(『한국의 사회 동향 2014』, 160~168쪽)에 실린 것임(http://kosis.kr/ups/ups_02List01.jsp?kor_id=13&pubcode=JK&typ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