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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요 8:31-36
1 죄를 짓는 자마다 죄의 종이다
“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요8:34)
왜 죄를 지으면 죄의 종이 되는가?
사람은 그 순종하는 자(것)의 종이 되기 때문이다.
“너희 자신을 종으로 내주어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죄로부터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 이제는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내주어 거룩함에 이르라”(롬6:16-19)
사람은 죄의 종이 되든가 의의 종이 되든가 둘 중의 하나이다.
죄에게 종 노릇하는 자가 의의 종이 될 수는 없다.
온갖 죄는 다 저지르면서도 자기는 의인이라고 여기고 안심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착각은 자유라지만 단지 자기를 그렇게 합리화하고 자기를 의롭게 여길 뿐인 것이다.
세상은 이로 인하여 날로 악해져만 가고 있다.
그 이전 사람들의 죄는 그에 비하면 순진하고 덜 악한 것에 속한다.
사람은 죄와 의를 동시에 함께 섬길 수가 없다.
재물을 섬기든가 하나님을 섬기든가 둘 중의 하나인 것과 같다.
보물을 하늘에 쌓든가 땅에 쌓든가 둘 중의 하나인 것과 같다.
인류는 종교로부터 국가로부터 권력으로부터 자유를 외쳤다.
‘자유 아니면 죽음을 달라!’고 외치며 피를 흘리며 혁명들을 해왔다.
그 자유로 우선 눈에 보이는 악으로부터는 벗어났지만 더 큰 악을 향하여 돌진하여 왔다.
믿음생활이 자유를 구속하는 것 같아서 스스로 해방하고 벗어나는 사람들이 있다.
확실한 것은 교회(진리,하나님)로부터 자유하여 죄의 종이 되고 육체와 세상과 사탄의 종이 된다는 것이다.
사람은 한 굴레로부터 자유하여 다른 굴레로 속하는 자유 밖에 없다.
자유 자유 하지만 죄로부터의 자유가 아니라 죄에로의 자유일 뿐이다.
자유 자유 하면서 더욱더 죄의 종으로 빠져들어 간다.
죄의 종으로서의 신분과 특권을 확실히 할 뿐이다.
결국 사망에 이르고 멸망에 이르고 지옥에서 영생을 보내야 한다.
죄를 계속 짓는 죄의 종이 되든가 교훈의 본 진리의 본을 따라 의의 종이 되든가 둘 중에 하나밖에 없다.
그리스도인은 교훈의 본, 즉 진리의 법을 마음으로 순종함으로써 죄로부터 해방되어
의의 종이 된 사람이다.
이제는 우리 몸을 의에게 종으로 내주어 거룩함에 이르러가는 사람이다.
죄의 반대는 거룩이다.
진리를 마음으로 믿음으로써 죄로부터 해방되었다면 이제는 의에게 종이 되어 거룩을 이루어가야 한다.
죄는 진리의 말씀대로 살지 않는 것이다. 화살이 과녁을 빗나가는 것이다.
하나님을 거역하고 그분의 뜻과 진리를 거역하는 것이다.
세상의 지혜로 욕망으로 사는 것이 죄이다.
욕심이 잉태하여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하여 사망을 낳는다.
세상의 지혜로는 하나님을 알 수도 없고 복종할 수도 없다.
성령이 마음 가운데 오셔야 그래서 거듭나야 진리를 알 수 있고 진리를 살 수 있다.
교회 역사는 다른 복음 다른 영 다른 예수가 들어와서 교회와 구성원들을 어지럽혀 왔다.
교회는 종교적인 형식에 머물고, 그 내용과 본질을 잃어버리곤 하였다.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면서도, 속은 탐욕과 위선과 불법과 거짓으로 채웠다.
믿음으로 하지 않는 것은 다 죄이다.
“믿음을 따라 하지 않는 것은 다 죄니라”(롬14:23)
진리이신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것이 죄이고, 그분의 진리를 믿지 않는 것이 죄이다.
하나님은 영과 진리로 참되게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신다.
많은 숫자와 화려한 의식과 많은 절기와 복잡한 규례들을 찾으시는 것이 아니다.
사마리아 신전도 아니요 예루살렘 성전도 아니요 베드로 성전도 아니다.
로버트 슐러의 수정교회도, 조엘 오스틴의 레이크우드교회도 아니다.
이러한 허상들로 인하여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은 암흑의 사사시대가 되었고,
중세 천년도 기독교 왕국이라면서 암흑시대를 만들었고,
종교개혁 이후 5백년 동안 개신교도 같은 암흑시대가 되었는데도 깨닫지 못하고 있다.
항상 그랬다.
사사시대는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살면서 깨닫지 못했고,
중세시대도 교황과 권력의 옳은 대로 살면서 깨닫지 못했고,
개신교 5백년도 세상 지혜로 소위 현대신학으로 형통신학으로 살면서 깨닫지 못하고 있다.
구약시대에 선지자들이 진리를 외쳐도 귀기울이는 자들이 없었다.
종교개혁자들과 청교도들이 진리를 말해도 듣지 않고 고문하고 불태워 죽였다.
지금도 교회들이 ‘큰 강 유브라데’(계16:12)가 메말라 세상과 한 통속이 되었는데도 깨닫는 자가 없다.
일만 악의 뿌리인 돈을 사랑하고 권력으로 다스리고 거짓을 설교하고 가르치고 있다.
예레미야 선지자의 말씀은 구약 이스라엘 뿐 아니라 현대 교회들을 향하여 하시는 말씀이다.
“이 땅에 무섭고 놀라운 일이 있도다 선지자들은 거짓을 예언하며 제사장들은 자기 권력으로 다스리며
내 백성은 그것을 좋게 여기니 마지막에는 너희가 어찌하려느냐?” (렙5:30-31)
이사야 선지자의 말씀도 바로 오늘 현대 교회를 향한 외침인 것을 알아야 한다.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그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하셨도다.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 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갔도다 ---
딸 시온은 포도원의 망대 같이, 참외밭의 원두막 같이, 에워 싸인 성읍 같이 겨우 남았도다”(사1:2-8)
대부분의 교회들은 크나 작으나, 부와 권력과 명예를 하나님으로 섬기고,
영과 진리로 예배하고 가르치지 않고 있다.
행복하고 잘사는 세상 지혜로, 자유주의의 아류인 현대신학으로 설교하고 가르치고 있다.
성경 말씀은 읽고 가르쳐도 세상 지혜와 철학을 덧씌우는 껍데기일 뿐이다.
진리의 말씀보다는, 상담학 지식이 영혼을 치유하고, 경영학 지식이 교회 덩치를 키우고 있다.
거기다가 외롭고 공허한 영혼을 달래느라, 이교, 특히 힌두교와 뉴에이지의 신비주의가 만연하고 있다.
그러한 스승들이 목사와 신학자로 둔갑을 하고, 그들이 쓴 책들이 교회의 베스트 셀러가 되고,
그 가르침에 환장들을 하여 구름떼처럼 벌떼처럼 모여들어 급속히 초대형교회들을 이루고 있다.
기독교의 참 진리를, 오직 성경 중심으로, 성령을 따라 쓴, 보석같은 귀한 경건서적들은,
인쇄되지도 않고, 팔리지도 않고, 가르쳐지지도 않고 있다.
가까이하는 책을 보면 그 사람의 사상을 알 수 있다.
종교개혁자들과 청교도들은, 성경을, 성령의 서재(書齋)로, 진리의 보고(寶庫)로 알았다.
오늘 우리는, 성령을, 성경에서가 아니라, 집회에서 산에서 은사에서 찾고 있고,
진리를, 성경이 아니라, 시대의 베스트셀러에서, 유명 선생들에게서 찾고 있다.
이 세대를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본받느라,
마음을 새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 시대의 흐름에 마음을 맞추느라, 바쁘다.
진리로 변화를 받는 것이 아니라, 더욱 완고해지고 교만의 탑을 쌓고 있다.
주님의 경고, 바울의 경고를 오늘 들어야 한다.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마7:15)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버지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내가 복음으로써 너희를 낳았음이라”(고전4:15)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지 아니하고 곧 순전함으로 하나님께 받은 것 같이
하나님 앞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 말하노라”(고후2:17)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오직 진리를 나타냄으로 하나님 앞에서
각 사람의 양심에 대하여 스스로 추천하노라”(고후4:2)
참된 교회의 모습은 이렇다.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행2:42)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니라”(딤전3:15)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이 될 것임이라”(사56:7,막11:17)
진리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해지고 하나님을 섬기고 예배하고 성도들끼리 교제하는 곳이 교회이다.
2 진리가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
진리가 무엇인가?
빌라도가 예수님께 물은 질문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진리는 사상이나 이론이 아니다.
나는 그것을 깨닫는데 25년이 걸렸다.
철학과 문학과 각 과학의 이론과 사상에 진리가 있는 줄 알고 그 진리로 25년을 살았다.
그 결과는 흑암과 혼돈과 공허 뿐이었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창1:2)
하나님이 없으면, 하나님이 창조하지 않으면, 세상과 인생은 그 3요소가 전부이다.
여러 가지로 채색을 하지만 본질과 내용은 3요소, 흑암과 혼돈과 공허이다.
일반은총으로 지혜를 주시지만 그 원천과 분리된 사상적 진리는 이론일 뿐 생명이 없다.
이론은 회색이기에 생명이 없고 그래서 살 능력도 없다.
진리라고 말은 하고 책을 쓰고 가르치기도 하지만, 정작 본인은 그 진리로 살지 않는다.
사람은 머리에 있는 것을 살지 않고 마음 속에 있는 것을 살기 때문이다.
공자와 그 제자들은 ‘상가집의 개’라는 비난을 받았고,
이조 5백년 동안 과거에 합격한 사람들이 공맹의 진리대로 살지 않고 통치하지 않았다.
진리 그 자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영접할 때 비로소 진리를 알고 진리를 살기 시작한다.
예수님은 내가 곧 진리라고 하셨고,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이고, 성령이 진리이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인격이 진리이고 그 말씀이 진리이고 그 영이 진리인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 곧 성경 없이, 하나님의 인격 없이, 하나님의 거룩한 영 없이는
진리는 알 수도 없고 살 수도 없는 것이다.
그분의 말씀대로, 성경대로 사는 것이, 성령을 따라 사는 것이 진리를 사는 것이다.
그 진리의 인격과 영을 모시고 그 진리의 말씀을 살 때, 죄에서 해방되고 우리는 자유롭게 된다.
진리에의 순종으로 의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8:31-32)
주님의 말, 곧 성경 말씀에 거해야 참으로 주님의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게 된다.
그리고 그 진리가 우리를 참으로 자유케 하는 것이다.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는 것이다.(눅4:18)
회심을 경험한 사람들은 다 이 자유를 경험한 사람들이고 이 자유를 가진 사람들이다.
종은 영원히 집에 거할 수 없지만, 아들은 영원히 거한다.
그 아들이 우리를 자유케 하면 우리는 참으로 자유할 수 있다.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로우리라”(요8:36)
아들이 주는 자유로 참으로 자유롭게 된 사람들이 참교회를 이루고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것이다.
딸 시온은 포도원의 망대 같이, 참외밭의 원두막 같이, 에워 싸인 성읍 같이 겨우 남는 것이다.
구원 받는 자가 적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은 것이다.
그러나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은 것이다.
어느 문으로 어느 길로 가시렵니까?
문이 크고 길이 넓어 가는 자들이 많은 곳으로 몰려 가겠는가?
아니면, 주님의 말씀대로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겠는가?
그럴려면 주님의 말씀대로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야 한다. 일만 스승들을 삼가야 할 것이다.
3 그 자유를 육체의 기회로 삼지 말라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갈5:1)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 하라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 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서 이루어졌나니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갈5:13-15)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심으로 우리를 죄로부터 해방하시고 자유를 주셨는데,
또다시 죄를 범하고 죄의 종이 된다면 다시 종의 멍에를 메는 것이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았으니 의의 종이 되어 거룩한 길로 가야 한다.
그럴려면 주님이 주신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아야 한다.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우리 자신을 깨끗하게 하는 일에 전력투구해야 한다.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고 진리의 허리띠, 복음의 신발, 믿음의 방패, 구원의 투구, 성령의 검(말씀),
성령 안에서의 기도에 힘써야 한다.
자유를 육체의 기회로 삼는 자들은 진리에 서지 못하고 아비 마귀를 따라 행하는 것이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요8:44)
진리가 속에 없고 진리에 서지 못하면, 결국 거짓의 아비에 속하고 아비의 욕심대로 행하게 된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진리의 말씀을 사랑하고 즐거워하고 주야로 묵상하는 것이 복된 길이다.
다른 영을 따라 다른 복음 다른 예수를 받고 따라 살면 저주가 있을 뿐이다.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다.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하고 순전한 대로 듣지 않는 자들은 하나님께 속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모르면 어떻게 듣는지 안 듣는지 분별을 할 수 있겠는가?
세상 일, 자기 일도 엿새 동안 힘써야겠지만
진리이신 하나님,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 없으면, 죄의 종이 되고 만다는 것을 알고,
진리의 말씀인 성경과 진리 그 자체이신 주님을 아는 일에 시간을 내고 헌신을 하자.
진리의 말씀인 성경을 항상 가까이하고 읽고 묵상하자. 그 말씀을 따라 살자.
기독교의 귀한 유산인 경건서적들을 읽자.
하나님을 더욱 깊이 사랑하게 되고 성경을 더욱 귀히게 여기게 될 것이다.
참으로 자유하고 그 자유로 거룩함을 이루고 축복과 영광을 이루게 될 것이다.
이 땅에서도 천국을 살고 천국을 이루고 저 곳에서도 천국을 영원히 누리게 될 것이다.
우리가 받는 잠시의 고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이루게 될 것이다.
첫댓글 아멘.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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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자들과 청교도들은 카톨릭이 세워 놓은 절기들을 다 없앴습니다.
사도들이 유대인의 절기들을 다 없앤 것처럼 말입니다.(골2:16, 갈4:9-10)
그 대신 매주일을 엄숙하고 충실하게 온전히 주의 날로 지켰습니다.
주일은 소홀히 하면서 절기와 규례들을 만들면서 교회는 예나 지금이나
부패와 타락의 길을 걸었기 때문이지요.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면서도, 속은 탐욕과 방탕으로 채웠고,
하루살이는 걸러내고 낙타는 삼켰고,
작은 십일조는 드리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기 때문입니다.
매 주일이 주님의 부활절이요, 안식일만 주의 날로 절기로 거룩하게 지킴으로 족하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