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거벗은 철제구조물인 에펠탑마저
잎새를 잃은 앙상한 나무인양 보이기 시작하면
파리에 가을이 온것이다
그리하여
다리아래로 강물보다 안개가 더욱 더 흐르고
강가에 산책객보다 낙엽이 더욱 더 무리지어 헤메이면
세느는 우리 모두를 깊은 우수로 끌고 들어간다
금년 가을초입에
파리는 그러나 전혀 다른세계로 우리를 인도하고 있다
르네상스의 세계로…
이곳 파리에서
보티첼리(Botticelli 1445-1510) 전시가 시작된것이다.
< 보티첼리의 자화상 >
아침에
초 가을의 상쾌함이 가득한
뤽상부르그 공원으로 향했다.
전시회가 열리고 있는 미술관은
공원 한쪽을 차지하고 있는 상원의회에 달려 있었다
사실 이곳보다 전시에 더 알맞은 장소가 있을까?
이 상원의원 건물은
원래 앙리4세의 미망인인 마리 드 메디시스를 위해
그의 아들 루이13세가 지은 성이었다
마리 드 메디시스(1573~1642),
그녀는 이탈리아 메디치 가의 공주였다
그녀를 위해 성도 공원도
르네상스 이탈리아식으로 꾸며진 이곳에서
보티첼리 전시회가 열리고 있으니
참 묘한 인연이라는 생각이 든다.
마리 드 메디사스가 태어 나기도 전
보티첼리는 사실 플로렌스에서
메디치 가문의 후원을 받으며
그들의 주문에 의해 그림을 그렸다.
보티첼리는 메디치 가문의 장인이었던것이다
그로부터
500여년의 세월이 지난 오늘
르네상스를 일으킨 메디치가에서
시집온 여인을 위해 지어진 궁전은
메디치가의 한 장인이었던 위대한 르네상스 예술가를
맞이하고 있는것이다
전시회장 앞
입장을 기다리는 줄은 길지 않았다
말미를 차지하고 서서보니
불현 르네상스로 가는 긴 시간의 줄로 느껴진다
그것은 르네상스에서 오늘로 이어지는 역사의 줄이었다
이 역사의 줄을 따라 어느덧 나는 르네상스로 거슬러 올라가고 있었다
보티첼리
그리고 그의 작품들…
과연 그것은 무엇인가?
누구에게나
보티첼리와의 만남은
“비너스의 탄생”으로 시작한다
긴 머리카락의 물기마저 채 마르지 않은
바다에서 막 태어난 모습의 비너스,
조개위에 치부만을 가린채 수줍게 서 있는 나신의 비너스는
탄생 첫 시간의 순결성, 무죄성, 천진성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서 비너스의 얼굴만을 따로 살펴보라!
주위의 격정적인 상황과는 전혀 상관없다는듯
그녀의 얼굴표정에서 나타나는 순진무구성은
이후 그 어떠한 작품에서도 만날수 없는 젊음의 영원한 이상형이다
이 첫 만남에서의 감명은
“프라마벨라(봄)”에서 이어진다
꽃 잔디와 과일숲을 배경으로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8인의 모습은
몸과의 경계를 모호하게 할만큼 자유롭고 투명한 의상
표정과 동작의 우아함 그리고 신체적인 건강함으로
우리를 충분히 압도하고도 남음이 있다
이렇게 보티첼리는
순진무구성, 자유로움, 화려함, 우아함, 건강함으로
르네상스 예술의 본질을 표현한 작가로 기억되고 있는것이다
사실 우리가 보티첼리에 대해 갖는 애정도
대체로 이 범위내에서 이루어진것이요
이 너머의 보티첼리는 우리에게 그저 막연히 신비이거나
아니면 무지로 남아있을뿐이라고 말해도 틀리지 않을것이다.
하지만 보티첼리 역시
미술사의 기나긴 역사과정의 한 인물이고
그의 예술은 경이스러운 면과 함께 한계도 있음을 알게될때
우리는 우리안에서 새로운 “보티첼리의 탄생”을 경험하게 될것이다
보티첼리…
그는 어디에 있는가?
그는 실로
르네상스의 한 복판에 서 있다
보티첼리를 만나러 가는 길…
따라서 그것은 르네상스의 한 복판을 행해 가는길이다
한 복판!
시작도, 완성도 아닌
르네상스의 한 복판을 향해 가는길..
그것이 바로 보티첼리를 향해 가는길이다
무슨 의미인가?
보티첼리
그는 르네상스의 시작도 아니고 완성도 아니다.
치마부에, 지오토, 안젤리코 프라, 마사치오…
이들에게서 볼수있는 르네상스 초기의 경직성을 그에게서 볼수 없고
다 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에게서 이르는 완성의 극치를
우리는 보티첼리에게서 발견할수 없다.
바로 이점에서
보티첼리는 르네상스의 한 가운데 서 있는것이다.
보티첼리의 비밀을 푸는 열쇠는
바로 이 “한 복판”에 있다.
무슨 의미인가?
최소한 두가지 의미를 지적해 볼수 있다
첫째,
보티첼리는
주제상에서 초기 르네상스의 성서적 주제라는 한계에 머무르지 않는다
이점에서 그는 더 이상 르네상스의 시작에 서 있지않다.
당시 메디치가의 로렌초 대공의 보호를 받던
인문주의자, 시인, 철학자들에게서 영향을 받은 그는
신화적 요소도 과감하게 자신의 주제에 포함시켰다
비너스의 탄생,
봄,
마스와 비너스,
나스타지오 데글리 오네스티의 이야기등
보티첼리 이전에서는 볼수없는 신화적 주제들을 가진 작품들이
그 예이다.
물론 그는 종교화를 완전히 떠난것은 아니었다
말년의 보티첼리는 오히려 종교화에 전념한다
이렇게 보티첼리는
성과 속 그 사이, 그 한 복판에 서 있는것이다
둘째,
기법상에서 보티첼리는
전에 비해 분명히 발전을 의미하지만
아직은 완성을 기대하게 한다
그가 그린 인물들의 표정은
르네상스 초기의 초기의 경직성을 넘어
인간상호간의 감정교류가 따듯하고 우아하게 표현되어 있지만
그렇다고 다 빈치등에게서 느끼는
더 이상 바랄바 없는 경지의 완성까지 충족되어 있는것은 아니다
. “비너스의 탄생”은
바람을 부는 서풍의 신 제피로스의 격정
비너스의 천진무구함
계절의 여신 호라이의 걱정스러운 눈길이 교차하는
상호 역동적인 표정을 보여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기에서 파도는 문양화 되어있으며
자연은 현실성과는 관계없는
이상화된 장식용 배경일 따름이다
또한
보티첼리의 거의 모든 작품에서
화폭의 인물들은 같은 크기의 평면 병렬식으로 그려져 있다
게다가 모든 인물들이 같은 정성과 수준의 정밀성으로 그려져 있다보니
사실 누구에게 눈길을 던져도 우리는 같은 거리, 같은 관계를 갖게된다
다른작품을 예로 들것없이
봄을 다시 한번 살펴보면 이점에 동의하게 될것이다
미켈란젤로도 누누히 비판해 마지않은
이 구도상의 문제는 사실 보티첼리가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자신의 고집이었다
보티첼리의 관심은 지리적 원근이 아니라
영적인 배열이었던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해서
보티첼리는 미술사가 그를 넘어
지나만 가야하는 한 과정이 되고 말았다.
요즈음 한 경계인의 비극이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고 하지만
보티첼리는 무릇 사람들이 그를 거치되
머무르지 않고 지나가야만 하는
“한복판인의 비극”의 전형이라고 할수 있을것이다
그러나
진정으로 우리가 보티첼리에게서 유감스럽게 느끼는것은
그가 스스로 르네상스의 정신을 포기했다는 사실에 있다
이것은 충격이며 의외이며 수수께기이다
보티첼리는 당시 폴로렌스의 인문적 분위기와 타락상을
신랄하게 비판하던 교회 개혁 운동가 사보나놀라에 매료되어 있었다
사보나롤라는 타락의 근원으로 메디치가를 공격했고
보티첼리는 메디치가의 후원으로 살아가던 예술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메디치家가 아닌 사보나롤라를 택했다는 사실
달리말해 르네상스의 예술정신보다
자신의 종교적 신념을 선택했다는 사실은 우리를 놀라게 한다
당시 권력과 문화의 심장부를 공격한 사보나롤라는 급기야 화형에 처해진다
이에 상심한 보티첼리는 모든 세속화를 끊고
신비적 경향의 종교화로 돌아가는것이다
르네상스가 그에게서는 종말을 고한것이다
이것은 르네상스를 위해서 그리고 미술사를 위해서는
대단히 유감스러운 후퇴였다
화려하고 개방적인 르네상스보다는
자신의 신앙에 충실하는 길을 선택한 보티첼리의 개인의 결단을
비판할수는 없다해도 아쉬움이 남는것은 어찌할수 없다
이후 르네상스의 완성은
미칼렌젤로, 다 빈치에게 맡겨졌고
그는 조용히 사라지고 잊혀져 갔다
그리고 300여년이 지난후
영국의 미술사가 월테 페이터에 의해
19세기 말에 재 발견될때까지
그는 잊혀져 있었던것이다
설레임과 안타까움이 범벅된 想念속에서도
나는 어느덧 매표소앞까지 밀려 왔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잠시 후 나는 드디어 그의 그림앞에 설수 있었다
미리 알고 왔지만
비너스의 탄생이나 봄 같은 대작은 역시 보이지 않았다
전시장의 벽면은 생소한 혹은 약간 알려진 작품들로 채워져 있었다
대부분이 성모 마리아를 주제로 한 종교화였다
성 어거스틴의 초상화 2개
기타 몇개의 초상화
여러 바리아시옹의 성모화
비르기니의 이야기(Histoire de Virginie 1500)
베툴리로 돌아오는 유딧(Le Retour de Judith a Bethulie 1470)등…
그의 예술세계를 엿볼수 있게 하기엔 충분한 작품들이었다
그의 작품을 뒤로 하고 나오면서
나는 내가 항상 가지고 있었던 질문의 답을
더 이상 미룰수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오면서 부터
그리고 전시장내에서 그의 그림을 보면서
내내 한 질문을 던지고 있었던 것이다
보티첼리와 우리 사이의 미학적 공감대…
그것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것인가?
색채감각에 관한 한 나는 안젤리코 프라에 깊이 매료되어 있다
인체구조상의 미적완벽함은 미켈란젤로에게서 ?O게된다
전체구도상의 완벽함은 다 빈치에게서 만족을 느끼게 된다
그렇다면
보티첼리와 우리 사이의 미학적 공감대…
그것은 어디에 있는것인가?
이 전시회가 가져다 준 보티첼리와의 만남은
이 수수께기의 해답을 드디어 ?O을수 있게 해 주었다
그것은
다름아닌…
표정표현이었다
그렇다…
보티첼리의 표정표현!
나의 이 결론을
나 일개인의 미적주관으로 돌리기 이전에
그의 표정표현을 주목해 보기를 진정으로 권고하고 싶다
비너스의 탄생에서 부터
숱한 성모의 그림들, 천사의 그림들에서 표정을 살펴보라
보티첼리가 그려낸 표정은
인간적이면서 속되지 않으며
천상적이면서도 초월적이지 않다
달리말해
그가 그려낸 표정은
인간적인 자연성과 천상적 이상형을 동시에 갖추고 있으니
몸의 육감성에도 얼굴은 천진하고 단아하며
상황의 격렬함에도 얼굴은 우아하고 침착하며
성모의 그 거룩함에도 얼굴은 다감하며 따뜻하다
裸身이건 투명한 옷을 걸쳤든
아니면 보티첼리 그림 특유의 풍성한 옷을 걸쳤건
그와 상관없이 얼굴의 표정은 너무도 정갈하고 단아해서
감히 그 어떠한 에로틱한 감정도 허락하지 않는 반면
안고있는 어린 아기예수와 교환하는 성모의 시선은
너무도 헌신적이고 다감하고 부드러워서
감정의 냉정한 천상적 초월을 ?O아 볼수 없다
이러한 감정의 교환은
천사의 수태고지에서도 압권을 이루고 있는데
여기에서 표현되는 천사와 마리아간의 시선은
그야말로 온몸을 짜릿하게 할 만큼의 천상천하 최고라고 할만하다
맞닿을듯한 하지만 차마 서로 잡을수 없는 손
차마 마주치지 못하는 시선
어느 연인이 이 보다 더 아름다운 사랑의 시선을 주고 받을것인가!
마리아의 겸허와 천사의 경애사이의 시선교환을
최고의 사랑의 시선이라 부른들 결코 신성모독은 아니리라…
하긴 비너스의 얼굴과 성모의 얼굴이
많은 작품에서 거의 구분할수 없을 만큼
비슷하다는 비밀을 눈치챈 사람은 몇이나 될까…
바로 이 비밀속에
바로 이 표정과 시선의 무한공간속에
보티첼리 예술의 신비가 있는것이다
전시장을 나와
파리의 거리에 다시 내려 섰을때
나는 그 얼굴과 표정을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속에서 ?O아보려 했다
하지만 그것은 희망없는 시도였다.
나 자신 역시 그 표정의 주인공일수 없다는 절망이 느껴지는 순간
구름 사이로 가을햇빛 한 줄기가 어디론가 뻗치고 있었다
그것은 진정 또 하나의 신비한 시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