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동일기(1)- 양동(양평군)의 단기거주를 시작하다
1. 천안에서의 6개월 단기거주가 장소를 바꿔 계속 이어진다. 이번 장소는 양평군 양동면이다. 경의중앙선의 <양동역>이 있는 곳이다. 원래 생각에는 겨울을 지나고 다음 봄부터 새로운 단기거주를 시작하려 했지만, 가을과 겨울의 강원도와 한반도 동부지역의 낙엽과 설경을 보고 싶다는 생각에서 계속 하기로 결정했다. 우연하게 찾은 <양동역> 근처의 집도 가격이나 조건이 내가 정한 규정에 맞은 점도 빠른 결정을 하게 된 요인이다. 추석연휴가 끝나고 계약하려 했지만, 10월 초 안동에서 열리는 <탈춤 축제>을 관람하려면 좀 더 일찍 베이스 캠프를 확보할 필요가 있어 9월 25일(월) 아침에 내려가 계약을 맺었다. 1년 계약에 보증금 300만원, 월세 40만원이다.
2. 40만원은 보통 중소 도시 원룸의 월세이다. 임대주택의 규모는 방 2개와 제법 큰 거실을 갖춘 구조이다. 이 집의 장점은 넓고 여유로운 것이겠지만, 겨울에는 보일러 등유값이 추가로 들고 인터넷도 쓸 수 없으며 TV도 볼 수 없다는 점에선 많은 점이 열악하다. 하지만 이번 기회에 의도적으로 영상과 거리를 두고 음악을 집중적으로 듣는 시간으로 활용하면 좋을 듯싶다. 상황은 새로운 변화와 실천을 요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바로 옆에 도서관이 있어 필요한 영상은 그 곳을 이용하면 된다는 점에서 아주 불편한 것만은 아니다. 도서관과 역 사이에 있는 집, 가장 익숙하고 사랑하는 것과의 동거인 셈이다.
3. <안동역>까지의 철도편은 안정적이다. 안동을 직행하는 하루 4차례 열차는 아침 7시 30분에 출발하며 마지막 돌아오는 기차는 저녁 9시 50분 도착이다. 그밖에도 양평역까지 운행하는 열차가 많기 때문에 시간을 잘 체크하여 이동하면 다양한 곳을 시간에 쫓기지 않고 여행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 곳과 주변 환경이 비슷한 <봉양역>보다는 교통의 편리함에서는 우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기차역 지도를 보니 한반도 동부쪽 역은 방문하지 않은 곳이 대다수이다. 과거 이문열의 소설 <그해겨울>이나 최인호의 <고래사냥>에서 느꼈던 겨울여행의 감성을 지금 느끼기에는 어렵겠지만, 여전히 낭만적이고 인간적인 동해의 공간 속으로 기차를 타고 갈 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젊은 날의 청춘을 다시 떠오르게 하는 것이다.
4. 숙소에서 조금 걸어나가면, 양평의 <물소리길>이 이어진다. 양평 둘레길의 특징은 역과 역 사이를 이어준다는 점에서, 경춘선 북한강길과 비슷하다. 하지만 경춘선길이 주로 강을 따라 걷지만, 양평의 물소리길은 강을 따라가다 산으로도 들어가고 다시 넓은 평야와 만나게 한다는 점에서 좀 더 다양하고 농촌적인 느낌을 물씬 경험하게 만들어준다. 9월말의 들판은 벼가 무르익는 황금색의 들판을 앞두고 있다. 그 풍성한 분위기가 좋다. 경기 북부의 ‘파주’와는 비슷하면서도 다른 듯한 경기 남부의 ‘양평’의 들판이다.
5. 1년간의 단기거주 기본 프로그램은 일요일 밤에 내려가서 월요일에는 도서관을 이용하고, 화요일에는 강원도와 경기도의 둘레길을 걸으며 수요일에는 ‘역답사’를 하고 목요일에는 다시 도서관에서 책을 보다가 밤에 귀가하는 것으로 설정했다. 천안의 ‘단기거주’때보다 하루 더 체류시간을 연장한 것이다. 앞으로 생활하면서 변화할 수도 있겠지만 기본적 일정은 비슷할 것이다. 다만 주말에 일이 있거나 좋은 프로그램이 있다면 당연히 남아서 즐겨야 할 것이다. 정치가 갈수록 엉망진창으로 바뀌고 있다. 대안 세력이 부재한 암담한 상황에서 필요한 것은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자유로운 몸과 정신을 확보하는 일일 것이다. 양동에서의 단기거주가 그것을 가능하게 해주길 기대해본다.
첫댓글 - 어디든 머무는 곳, 꿈꾸는 그 곳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