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우 피하기(2일차)
일시 : 2009. 7. 14 ~ 15
1일차 : 순천만 -> 낙안읍성 -> 무창포해수욕장
2일차 : 무창포해수욕장 -> 석탄박물관(보령) -> 부소산(부여) -> 관촉사 -> 계백장군묘 -> 개태사
은진송씨종가(대전) -> 쌍청당회관(대청댐) -> 약초박물관(산청)
둘째날~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언제나 스물네시간
그런데 오늘하루 왜 이렇게 욕심을 부리게 되는지?
그것은 자주 나서지 못함 때문이 아닐까?
지도에 선을 그어놓고 들러야 할 곳이 너무 많다,,,,
무창포에서 출발하여 보령방향으로 가면서,,,
길가엔 보이는 곳마다 석재진열장이다..
사진은 운전하며 지나가다가 운전석에 앉은채로 찍었다.
지난 1989년부터 석탄의 급격한 수효감소에 따른 석탄산업의 합리화 조치로 다수의 비경제 탄광이 폐광됨에 따라 과 거에 국민의 주된 연료로써, 근대산업 발전의 원동력으로 크게 공헌한 석탄산업의 역사성을 보전하고, 중요 산 탄지인 충남 탄전과 이 지역 탄광 근로자들이 석탄산업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기념하고 탄광 발달 과정, 작업환 경, 장비 등 현장의 보존 또는 재현을 통한 후손들의 산 교육장으로 활용하기 위해 1995년 5월 18일 석탄 박물관으로써는 국내 최초로 건립 개관하였습니다. (보령석탄박물관)
부소산성
부여 부소산 도착(석탄박물관->부여 구드래공원 약 40분 소요)
논산으로 가려면 부여를 지나가는데,,, 부여라 하면 생각나는것이 낙화암, 고란사라....
네비에 고란사라 입력하고 달려왔더니 강가에서 길이 끊어지고,,,ㅜㅜ
한창공사중인 강변도로엔 포장도 안된데다 큰비로 더 나아갈 수 없을 것 같고 해서
차에서 내려 카메라 들고 지형을 살피고 있으니 어떤 아저씨가 오토바이를 타고 부리나케 달려온다.
잘됐다 싶어서 길을 물으니 자세하게 안내해주면서 하는말이,,
수해피해 조사하러 나온 줄 알았다고~~~ㅠㅠ
부소산성에서 낙화암까지 30분거리,,,
산책길이 숲속으로 잘 조성되어 있고
시간이 넉넉하면 산책삼아 한바퀴 돌았으면 좋으련만,,,
오늘의 중점 답사코스는 개태사와 계백장군묘,,,
그리고 나의 뿌리를 찾아서 은진송씨대종가 및 유조비재실 방문,,,
관촉사에서 은진미륵에 대한 공부를 마치고 발걸음 재촉하여 계백장군묘를 네비에 입력하고 출발하니,,
네비가 안내하는 길이.,,...ㅠㅠ
네비가 이 강을 건너가라고 한다..ㅠ
다리폭도 좁지만 흘러가는 물살때문에 어지럼증이,,,
건너가도 될려나?????
주위에 둘러봐도 차량은 커녕 지나 다니는 사람도 없고,,,,,,,,,,,,
조심조심해서 다리를 건너는데,,,,,
3분의2쯤 건너니깐 다리위엔 떠내려온 온갖 쓰레기가 길을 막고있다...
이런,,,,아직 아무도 이 다리를 건너지 않았단 말인가???
다리를 건너고 농로를 지나고 작은 마을을 지나니 탑정호 순환도로가 나온다.
고요하고 아늑한 분위기와 맑은 물로 충남의 자랑거리라고 하던 탑정호가 쓰레기로 완전히 덮혔다.
계백장군묘역에 건축된 백제군사박물관
이름은 군사 박물관이지만 주변에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고,
국궁, 승마, 민속놀이 등 각종 체험장을 설치하여 가족공원형태로 꾸며 놓았다.
넓은 잔디밭과 소나무 숲 그리고 박물관 주변의 조경도 아기자기하게 잘 꾸며놓았지만 아직은 공사를 한지 얼마되지 않아서 자연스럽지는 못하다.
계백장군 묘 아래 지어진 충장사
백제말 위기에 처한 조국을 위하여 5천의 결사대로 신라의 대군과 맞서싸우다 장열하게 전사한 계백장군의 위폐와 영정을 모신 곳입니다.
계백의 달
- 윤순원 -
백중보름이라 했다
그런 날이면 어쩌다 붉은 달을 볼 수 있다 했다
나는 그 달을 가슴에 품었다
내 생애 처음으로 한 남자를 만나 품었던 뜨거운 가슴으로,
달이 울고 있었다.
붉게 멍든 가슴으로 울음 삼키고 있었다
아련한 등잔불 밑으로
다소곳이 아미 숙여오는 밤이면
하, 조신하여 하얀 보름달 같았을 백제의 여인
깊고 아득한 눈빛으로 裸身 슬어 내리며
굵고 단단한 두 팔로 그녀의 부드러운 허리를 안을 때마다
이 뜨거움은 무엇이란 말이냐
사랑이란 대체 무엇이란 말이냐, 곰삭이며
젊은 계백은 되뇌었을 것이다.
칼을 받아라
나의 마지막 사랑이니라
여인은 울지 않았다, 허리를 곧게 펴고
계백의 깊은 눈 속으로 빨려 들어가듯
그 큰 사랑이 황홀하여 목을 길게 늘였다.
늙으신 어머니와 아이들이 잠에서 깨어나고 있었다
백사장에서 평화롭게 모시조개를 건져 올리던 아이들
백강 위로 짙은 안개 서서히 풀리며 햇살 드러나고 있었다
계백은 울지 않았다
백제불멸의 제단에 바쳐질 운명
운명에 앞서 이미 스스로 내일을 정각했던 계백
그는 아들을 베인 칼을 함부로 휘두르지 않았다.
투구를 들어올린 소년은 입술이 붉었다
끝내 되돌아 온 화랑의 勇과 氣를 죽일 수는 없었다
아비의 가슴으로 관창의 머리를 돌려보냈다
죽이지 않는 것이 자극하지 않는 것임을 계백은 익히 알고 있었다
황산벌 불멸의 신화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제 시작일 뿐이다
세상의 그 어느 사랑이
목숨을 접수함으로 사랑을 완성한 계백의 사랑보다 더 고귀한 사랑 있으랴
하늘까지 뻗친 장도의 날 끝에서 영원히 빛 부실 휴머니즘이여,
21세기의 청명한 동편의 밤하늘에
피를 삼킨 붉은 달이 울고 있었다
계백의 달이었다
개태사
개태사(開泰寺)는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천호리에 위치한 사찰이다. 이규보 선생이 쓴 《개태사 조전원문》에 의하면 고려 태조 19년에 왕건이 후백제를 평정하고 이곳에 국찰로 창건토록 한 국립 개국사찰이다. 전쟁이 끝나고 나라가 안정되어감에 따라 왕이 명하여 개태사를 창건토록 하였는데, 이는 태조가 전쟁을 하면서도 백성이 생업을 유지하게 하며 나라를 세웠음은 부처님과 산신령의 도움이라고 생각하고 절을 창건하여 개태사라 불렀다. 이 일대는 백제의 계백 장군과 신라의 김유신 장군이 전투를 벌였던 곳에 가깝고 고금을 통해서도 군사, 교통상의 요지로서 사찰 주변에는 6km에 달하는 토성이 있었고, 승병이 주둔하여 사찰을 수비하였다. 이 지역에는 동시대의 철확(가마솥 ; 충청남도 민속자료 제1호)과 삼존석불상(보물 제219호)이 봉안되어 있다.(인터넷백과)
자료준비를 하면서 개태사가 대단히 큰 사찰이라는 생각에 시간을 많이 할애하였는데,,
역사속 고려시대의 개태사는 대단한 사찰이었지만 지금의 개태사는 자그마한 규모의 사찰이었다.
개태사지 5층석탑(문화재자료 제274호)
|
개태사지석불입상(보물 219호)
석조삼존불이 모셔진 용화대보궁내부의 모습
한창 법회가 진행중이어서 스님을 따라 열심히 불경을 외우는 신도들에게 방해가 될까봐 조심스럽게 옆문에서 잠시구경하였습니다.
이 사진은 인터넷에서 빌려왔습니다.
|
개태사지철확(충남 민속자료 제1호)
승려들의 식사를 위해 국을 끓이던 것으로 지름 3m, 높이 1m, 둘레 9.4m 조선조 절이 없어지면서 벌판에 방치된 채로 있던 것을, 가뭄 때 솥을 다른 곳으로 옮기면 비가 온다고 하여 여기 저기로 옮겨다니가 연산 읍으로 옮겨진 후, 서쪽 냇가에 묻혀 있다가 일제강점기 때 발굴하여 서울에서 열린 경성박람회에 출품되기도 한 사연 많은 솥이다.
후엔 연산공원으로 옮겨졌다가 지금은 개태사로 옮겨오게 되었다고,,,
요사채 우주정
대전에서 은진송씨대종중 방문 등 몇군데 들러고나니 가보고 싶은곳이 아직도 많은데 준비 불충분으로 찾아가기가 쉽지 않다. 시간은 이미 오후네시...모르는 길 찾아다니다가 시간만 낭비할 것 같아 고속도로에 차를 올린다. 네비에 부산으로 찍었더니 경부고속도로로 설정된다.
네비 명령을 어기고 통영간 고속도로를 따라 내려오다가 생초에서 고속도로를 빠져나온다.
도로외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고속도로를 달리기엔 너무 시간이 아깝다.
지방도를 따라 이것저것 살펴보며 갈 생각으로,,,,
덕양전
가락국 제10대 왕인 양왕과 왕비, 두 분의 위패를 모신 곳이다. 양왕은 신라 법흥왕 19년(532)에 나라를 신라에 선양하고 이곳 왕산 수정궁에서 생활하다 5년 후에 돌아가셨다. 그 뒤 제사를 올리다 전쟁 때문에 중단되었으나 1798년부터 다시 항례를 올렸다. 광무 2년(1898)년 덕양전으로 이름이 바뀌었고, 1930년 지금 있는 자리로 옮긴 후 1991년 고쳐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덕양전은 문이 잠겨 있어 담장너머로 살펴보고 약 2키로 떨어진 구형왕릉과 유의태약수터 등 역사속의 흔적들을 둘러보고 다시 꼬불길을 돌아서 고갯길을 오르니 왕산 자락에 위치한 약초박물관에 도착한다.
허준 동상
도착한 시간이 이미 오후여섯시가 되어 해가 기울어 역광때문에 뒤에서 찍어봤다.
약초박물관 정면
신의 유의태 동상
백리향
비비추
무늬둥글레
기린초
오늘하루 너무 많은 욕심을 부리다보니 제대로 담아온건 없다.
그런데 우연찮게도 오늘 다녀온 곳이
낙화암, 황산벌, 계백장군, 구형왕릉,,,,,
모두가 백제, 가락국의 마지막이된 역사현장이다.
역사속으로 사라지지 않는 것이 있으랴마는,,,
|
첫댓글 동무 덕분에 구경 잘했네. 네비가 가라면 무조건 가야된다는 것도 알게되었고 ㅎㅎㅎ 계백장군의 사랑에 가슴이 서려온다
네비만 믿고 국도라도 제대로 표시된 지도 한장없이 나섰는데 말 안들음 어디로 가겠는가??~~~~하루 단위로 정리하다보니 자세한 내용을 담지 못했다네~~
일상의 습관처럼 찿아들었다가 ... 계백의 달이라는 글제 속에서 ... 많이도 가슴 촐랑이다 갑니다 ...아름다운 세상에서 ..좋은 시대 타고나서 ...우리는 많은것 누리다 가는 것 같습니다 ...
아름다운 세상~~행복한 세상~~이 땅에 앞으로도 더욱 아름답게 만들어 가야하겠지요~~
아픈 글 가슴에 담아서 해 넘어가기전에 숲속길 한시간만 밟고 와야겠습니다 ....허락된 오늘의 축복에 감사함을 담아서 ....음악이 자꾸만 발 목을 잡는구료 ... 참 좋다는 애기겠지요 ... 감사해요 간만에 마음 붙잡는 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