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팔공산(八公山1192,8m)
파계봉에서 바라본 팔공산
자연공원 팔공산은 신라의 5악 중에 중악으로 공산으로도 불리다가 고려태조 왕건과 후백제의 견훤이 팔공산전투(927년)로 장절공 신숭겸(壯節公 申崇謙 ?~927)장군 등 8인이 왕건을 도와 싸우다 파군(破軍)재에서 전사하여 팔공산이라 불려 지게 되었다는 설이 있다. 비로봉(毘盧峰1192.9m), 동봉(東峯1155m),서봉(西峰1147m),파계봉(把溪峰991.2m),은해봉(銀海峰891m),노적봉(露積峰891m),관봉(冠峰853m),가산(架山901m)등의 암봉을 거느린다. 산세가 독립적이나 웅장하여 높고 넓어 어디서나 보이고 영남의 중심에 위치하여 사통팔달 영남의 이정표로 주변 대구와 경북 경산, 영천, 군위, 칠곡등 여러 고을이 공유하는 산이기도 하다. 팔공산은 골육(骨肉)을 겸비한 산이다. 밖에서 보면 부드러운 육산이나 올라보면 거의가 암봉이고 암능으로 된 골산이다. 세계최대의 복수 초 군락지가 있으며 팔공산을 중심으로 고속도로 국도 철도가 연결된다. 예부터 군사적으로 중요해서 신라 때 삼국통일의 위업을 이룬 주역 김유신장군이 화랑들이 무예를 연마했고, 몽고군의 침입 임진왜란 최근에 한국전쟁 때도 낙동강전선의 다부동 전투와 가산산성 전투 등이 있었다. 팔공산은 대구앞산 비슬산 사이에 분지를 만들어 대구를 이루었고 대구 달구벌(達句伐)은 영남의 거점 도시이다. 팔공총림(八公叢林)동화사를 비롯하여 파계사, 은해사, 부인사등 고찰이 있고 정상에 서면 금호강을 따라 펼쳐진 달구벌 곧 대구시가지가 내려다보이고 가지산, 보현산, 비슬산, 화왕산, 가야산, 금오산, 유학산 등이 보인다.
안개속에 핀 눈꽃 길따라 걸어 본 팔공산
케이블카 정상 신림봉(神林峰820m)
동화사 집단시설지구 팔공산케이블카 승강장이다. 여기서 동봉까지 3.4km이다. 09시20분 대부분의 사람들은 케이블카를 타고 오른다. 케이블카 정상 신림봉(神林峰)까지 타고가면 2분이면 오를 수 있으나 걸어서 30분 이상 거리를 그러나 나는 굳이 걸어서 오른다. 힘든 것을 누가 좋아 할까 마는 목적이 분명하니 힘든 일도 해내야한다. 자욱한 안개라 산은 보이지 않고 그저 길만 보고 오른다. 숲이 좋은 계곡 길을 따라 깔닥 고개에 오르고 다시 능선 길을 오르니 케이블카 승강장이 있다. 승강장 뒤편에 있는 암 봉이 신림봉이다. 이곳에서 정상을 바라보면 정상 비로봉을 중심으로 좌우에 동봉과 서봉이 새가 비상을 하려는 자세처럼 펼쳐져있다. 오늘은 안개로 잘 보이지 않는다. 혹여나 강한바람에 안개가 걷힐까 싶어 잠시 기다려 본다. 신림봉에서 내려섰다가 다시 가파른 길을 올라서니 코끼리 봉이다. 전망대까지 설치되어 있으나 자욱한 안개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여기서부터는 설경도 좋고 따라서 적설량도 많다. 태풍에 버금가는 강한 바람에도 차가운 안개 바람으로 눈덩이는 더욱 견고하게 달라붙었다. 정상을 향해 다시 걸어 오른다.
11시40분 팔공산 정상 비로봉(毘盧峰1192.8m)이다.
비로봉 천제단 주변의 눈꽃
팔공산 정상 비로봉 천제단의 설경
이곳은 정상 시설물로 인하여 출입금지구역이었으나 최근에 정상일부가 개방되었다. 옛적 천제단이 있었다는 표지석이 있다. 짙은 안개로 시계가 10m 안팎이다. 멀리 볼 수 없는 것이 아쉽다. 정상 일대에는 습한 안개가 강한 바람에 달라붙은 상고대까지 피어났다. 강한 바람은 눈가루를 흙먼지처럼 날려도 그래도 정말 아름답다. 나는 여기서 나에 싯 적 재능이 없음을 아쉬워할 뿐이다. 옛 사람의 시나 한수 읊어나 볼까? 춘정 변계량 (春亭 卞季良1369~1430)선생의 시 雪晴(설청)이다.
雪晴(설청)
風急雪花飄若絮 (풍급설화표아서) 불어오는 강풍에 눈꽃은 솜처럼 날리고
山晴雲葉白於綿 (산청운엽백어면) 산이 개이니 구름잎사귀 솜보다 더 희구나
箇中莫怪無新句 (개중막괴무신구) 여기서 좋은 시 없음을 이상히 여기지 말라
佳興從來未易傳 (가흥종래미역전) 예부터 좋은 흥취 쉽게 전하지 못 한다네
서봉 등산로 주변의 눈꽃
정상에서 내려와 1km 떨어진 서봉으로 향한다. 발이 푹푹 빠지는 눈길을 걸으면서도 눈꽃터널을 이룬 아름다운 설경에 두 다리 아픈 줄도 모른다. 서봉(西峰1153m)이다. 본명은 삼성봉이나 동봉(東峰1167m)과 비대칭(非對稱)으로 요즘은 서봉(西峰1153m)이라 부른다. 이봉 정상에는 송곳니처럼 생긴 비슷한 높이의 두 개의 바위 봉이 20m 거리를 두고 있는데 북쪽 것은 삼성봉 정상석이 있고 남쪽 것은 서봉 정상석이 있다.
이곳 서봉에서 서쪽 능선을 타고 20km 정도 가면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때 축성된 가산(架山901m)에 가산산성(架山山城;사적 제216호)이 있고, 팔공산 가산(架山)과 유학산 (遊鶴山839m)이 만나는 곳에 6,25전쟁 때 낙동강전선 다부동 전투 전적지가 있다. 지금도 다부동 뒷산 유학산에는 그때 전사자의 유골이 발견되고 있다. 능력을 뛰어넘어 악착같이 큰일을 해 내었을 때 우리는 <다부(多富)지다>라고 말한다. 이때 생긴 말이다.
조국의 운명이 풍전등화와 같을 때 이곳 다부동에서 국군1사단(사단장 白善燁장군1920년~ )은 보잘것없는 전투장비로 이 땅을 지키겠다는 불타는 애국심 하나로 온몸을 던져 싸워 지켜냈다. 국군은 미8군사령관 워커(Walton Harris Walker 1889~1950)장군이 이끄는 미군의 화력지원을 받아 침략군과 다부지게 싸워 적은 2만4천여 명의 사상자를 내고 아군 1만여 명의 사상자를 냈다. 이로써 낙동강전선 다부동 전투는 전선을 사수하고 반격을 하는데 결정적인 발판을 마련한 전투이다. 우리가 이 땅을 지키기 위해 피 흘려 몸 바친 선열들의 공훈을 잊고 감사할 줄 모르고 산다면 더 큰 비극이 기다릴 뿐이다. 조지훈 (趙芝薰1920~1968)선생의 시를 음미해 본다.
多富院에서
한 달 농성 끝에 나와 보는 다부원은/얕은 가을 구름이 산마루에 뿌려져있다/피아공방의 포화가/한 달을 내리 울부짖던 곳/아아 다부원은 이렇게도/대구에서 가까운 자리에 있었구나/조그마한 마을 하나를/자유의 국토 안에서 살리기 위해서는/한해살이 푸나무도 온전히/제 목숨을 다 마치지 못했거니//
사람들아 묻지를 말아라/이 황폐한 풍경이/무엇 때문의 희생인가를/고개 들어 하늘에 외치던 그 자세대로/머리만 남아있는 군마의 사체/스스로의 뉘우침에 흐느껴 우는 듯/ 길옆에 쓰러진 괴뢰군 전사/일찍이 한 하늘아래 목숨 받아/움직이던 생령들이 /이제 싸늘한 가을바람에 /오히려 간 고등어 냄새로 썩고 있는 다부원/
진실로 운명의 말미암음이 없고/그것을 또한 믿을 수가 없다면/이 가련한 주검에 무슨 안식이 있느냐/살아서 다시 보는 다부원은/죽은 자도 산자도 다함께/안주의 집이 없고 바람만 분다.
동봉 석조약사여래입상(지방유형문화재20호)
동봉에서 바라본 팔공산정상 비로봉
동봉에서 바라본 노적봉과 아래 팔공산 골프장
서봉에서 내려와 동봉으로 향한다. 오던 길로 다시 1.1km 을 가면 동봉이다. 비로봉 아래에 마애약사여래좌상(지방유형문화재 제3호)이 있는 곳을 지나 동봉 아래 석조약사여래입상(지방유형문화재20호) 앞이다. 거센 바람은 눈가루를 뿌려 석불은 온통 눈가루를 뒤 집어 쓰고 서 있다. 여기서 다시 계단을 타고 동봉에 오른다. 일명 미타봉(彌陀峰)이라고도 하는 동봉(東峯1155m)은 팔공산에서 두 번째로 높고 조망과 주변경관이 좋아 정상 비로봉이 개방되기 전까지 정상을 대신하여 인기를 누리던 봉우리다. 사람들은 바람막이 바위 밑에 쭈그리고 앉아 있다. 동봉에 올랐으니 여기서 정상 비로봉을 감상하는 것도 빼 놓을 수 없는지라 바람을 피해 잠시 안개가 걷히기를 기다려본다. 거센 바람은 안개를 걷어가는 경우도 있으나 오늘 보니 오히려 안개를 몰고 오는 것 같다. 사랑은 오래 참는 것이라 했다. 아름다운 자연을 사랑하기에 15분을 참고 기다린 끝에 잠깐 하늘이 열렸다. 전혀 가망이 없을 것 같았는데 신기하리만치 정상 쪽만 조명(照明)됐다. 성공이다. 이제 목적을 이루었으니 여기서 능선을 타고 7.3km에 통상 4시간 거리의 갓 바위로 향한다. 이 구간은 거리도 멀고 난이도가 높은 암릉 구간인데 눈이 쌓이고 결빙까지 되어 오늘은 상당한 체력과 주의를 요한다. 이 능선 길을 아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누가 말리지 않아도 스스로 비교적 길 좋은 동화사로 바로 내려갔다.
갓 바위로 가는 암능
나도 여러 차례 이 길을 다녀보았기로 오늘은 정말 긴장된다. 팔공산은 골육을 겸비한 산이라 밖에서 보면 부드럽게 보이나 막상 산에 들어와 보면 바위가 많다. 봉우리는 거의 암 봉들이고 능선 길은 바위길이 많다. 여기서 가파른 계단 길쯤은 태평로이다. 바위틈사이로 빠져나가고 바위를 타고 넘고 곳곳에 바위절벽을 밧줄 하나에 매달려 오르내려야 한다. 얼핏 보면 저런 곳에 무슨 길이 있겠나 싶지만 그래도 길은 있다. 면암 최익현 (勉庵 崔益鉉1833~1906)선생은 경치를 즐기려니 두 다리 아픈 줄 모른다 “耽景何嫌雙脚苦 (탐경하혐쌍각고)” 라고 했는데 나도 지금 경치를 즐기려니 두 다리 아픈 줄 모른다. 다만 지금 두 팔이 아플 뿐이라고 해야겠다. 팔공산 종주도 해 보았지만 오늘은 이 능선길이 왜 이리 멀꼬? 다행이도 동봉에 내려 설 때 갓 바위까지 동행하기로 한 사람이 있어 그래도 마음이 든든했다. 부산에 산다는 그는 나보다 젊고 안 다녀본 산이 없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산에 관한한 선수다. 그런데 처음부터 나더러 앞장서란다.
은해봉 쪽에서 바라본 관봉
신령재다. 일명 도마재라고도 한다. 옛적 영천 신령면 주민들이 대구로 넘나들던 고갯길이다. 아직도 갓 바위까지 4.6km 남았다. 동봉에서 여기까지 오는 동안 길은 험하고 바람까지 심해 여기에서 휴식이다. 고개란 능선에서 가장 낮은 곳에 있어 내려왔던 만큼 또다시 올라가야한다. 오르막이다. 이제 체력이 소진되어 상당히 힘이 들어간다. 내가 가면 그는 따라오고 내가 서면 그는 따라 쉰다. 따라오는 속도를 보니 그도 힘들기는 마찬가지인가보다. 영천 은해사로 내려가는 갈림길이 있는 은해봉(銀海峰891m)을 지나고 팔공산 골프장이 몸의 흉터처럼 내려다보이는 노적봉(露積峰891m)을 넘어 마지막 봉우리 갓 바위가 있는 관봉(冠峰853m)이다. 이제 처음 약속한데로 함께하여준 동행자를 먼저 떠나보내고 나는 여기 갓 바위에 남아 낙조를 보고 갈 계획이다.
마지막계단을 올라서니 유명한 팔공산 갓 바위다. 시간상으로는 아직 해가 지지 않았을 텐데 해가 보이질 않는다. 어제가 동지 지금시각16시50분인데 보안등이 켜져 있다. 여기는 지대가 높아 아직은 해가 저물지 않았는데 구름이 가려 어둑어둑하고 수백 미터에 이르는 가파른 계단 길은 결빙이 되어있기 때문에 안전을 위해서 일찍 점등 했으리라.
관봉석조여래좌상(보물 제431호) 속칭 팔공산 갓 바위
팔공산 관봉(冠峰850m)에 있는 속칭 갓 바위의 공식명칭은 관봉석조여래좌상(冠峰石造如來座像; 보물 제431호)이다. 입상인 은진미륵 외엔 좌상으로 갓을 쓴 부처상은 그리 흔치않다. 전국제일의 기도처로 알려진 갓 바위는 대구사람이라면 갓 바위에 한번쯤 갔다 올 정도로 유명하다. 갓 바위 일대는 입시철은 물론 평소에도 밤낮 찾는 사람들이 많아 대구 쪽과 경산 쪽에 두 개의 등 로에는 계절에 관계없이 밤이면 불야성을 이룬다. “한 가지 소원은 꼭 들어 주신다”는 현수막이 걸려있는 갓 바위 기도처에는 평소 같으면 발 디딜 틈 없이 없다. 기도하려면 차례를 기다려야 할 정도인데 오늘은 한산한 편이다. 춥고 길이 미끄러워서인지 일반인들은 별로 없고 대부분 산행을 왔다가 지나는 길에 들려 기도하는 사람들이다. 남에게 말 못할 사연도 있을 것이고 건강, 사업, 당선, 승진, 합격 등등 사람마다 이루고자하는 소원이 있을 것이다. 중생(衆生)의 신음(呻吟)을 들어주시는 부처님이신데 사람들은 고통이 아닌 자신의 욕심을 자꾸만 들어 달라고 하니 이럴 어쩔까? 자신이 노력해서 이루어야 할 일들까지도 노력은 않고 기도하면 들어주실까? 성기주(1947~ ) 시인의 갓 바위 기도가 생각난다.
갓 바위기도
팔공산 끝자락 /우뚝 솟은 갓 바위/덩그렇게 높이 앉은/부처님 모습 보고//약사여래 불 약사여래 불 /하고많은 소원 이곳에서 이룬 다고./가파르고 힘든 계단 /오르고 또 오른다.//전생에 지은 업장/가만히 묻어두고/이승에 지은 업장/모두다 없애주고/버리지 못한 욕심/하나만 들어 달라고//약사여래 불 약사여래 불/반복하여 읊조린다/갖지 못한 소원 하나만 들어달라고
팔공산 갓 바위는 낙조의 명소로 알려져 있다. 불상은 서쪽을 보고 앉아있다. 그런데 갓 바위 주변에 전에 없었던 건물 등 시설물이 생겨나서 시야를 가린다. 오늘 산행에서 이곳 낙조를 보는 것이 대미를 장식하는 것으로 마음에 두어왔다. 때문에 늦어도 일몰직전까지는 갓 바위에 도착할 계획이었다. 산행 내내 안개와 구름으로 해를 보기 힘들었다. 4시 이후부터 자꾸만 서쪽하늘에 눈길이간 것은 그런 뜻이 있어서다. 이곳에 도착하고서도 여전히 구름이 해를 가리고 하늘을 열어주질 않는다. 20분을 기다린 끝에 해지기 직전에 구름사이로 잠시 해가 보이다가 영영 닫혀 버렸다. 1분도 안 되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아! 통쾌하다.
갓 바위에서 바라본 낙조
오늘은 힘든 산행을 했다. 10년 전만해도 산악회에 가면 선두 그룹에 속 했는데 이제는 중간으로 밀려났다. 오늘의 내가 어제의 내가 아니요, 오늘의 내가 내일의 내가 아님을 나이 들어가면서 실감한다. 눈 산행은 힘이 든다. 거기다 얼어붙은 암릉을 타고 산길을 걷기란 평소보다 배로 힘이 든다. 인생행로도 이와 같아서 때로는 힘이 많이 들 때가 있다. 이제 내 나이도 60대 중반에 이르렀으니 지는 해와 같아서 제 몸 하나 간수하기 바쁘다. 권력 명예 재물 등으로 몸과 마음에 짐이 되지 않아야겠다. 인생살이가 힘이 들수록 욕심을 내려놓아야 몸이라도 가벼워지지 않을까? 태고(太古普愚1301~1382)선사의 선시 인생무상을 생각하면서 말이다.
人生無常 (太古普愚1301~1382)선사
人生命若水泡空 (인생명약수포공) 인생의 목숨이란 물거품이니
八十餘年春夢中 (팔십여년춘몽중) 팔십 여년이 물거품처럼 지나갔네
臨終如今放皮帒 (임종여년방피대) 가죽주머니를 버리고 돌아가나니
一輪紅日下西峰 (일륜홍일하서봉) 한 덩이 붉은 해가 서산으로 지누나!
이제 오늘 하루도 저물고 다사다난했던 임진년(壬辰年) 한해도 저문다. 금년은 임진왜란 칠갑주(七甲周) 곧 420주년이 되는 해다. 나는 임진년을 맞이하면서 국가적으로 총선과 대선이 있고 여기에 북한의 도발이 예상되어 정치적으로나 국가안보적으로나 매우 어려운 한해가 될 것으로 생각했다. 용띠 해인 임진년 특별 산행을 기획하고 첫 산행지로 경기도 양평 용문산(龍門山1157.2m)을 등용문(登龍門) 했다. 오늘은 예정에 없던 임진년 송년 특별 산행으로 대구 팔공산(八公山11928m) 산행을 했다. 몸담아 사는 내 나라가 잘되기를 바라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고 나는 나 개인적인 사사로운 일보다 우선하여 나라를 걱정하는 것이 이 한해의 나의 기도였다.
이제 갓 바위에서 가파른 계단을 타고 조심조심 내려온다. 갓 바위 시내버스종점까지 2km 남은 마지막코스다. 얼어붙은 계단 길을 미끄러워 난간을 붙잡고 내려오니 다리보다 팔에 힘이 더 들어간다. 이렇게 얼어붙은 가파른 계단 길을 밤인데도 올라오는 사람이 많다. 계단길이 끝나는 곳에 첫 번째 암자가 있고 여기서부터는 자동차길이다. 갓 바위 시내버스 종점에 도착하니 18시 정각이다. 갓 바위 집단시설지구 상가는 동절기가 아니면 이 시각쯤엔 사람들로 북적일 텐데 차가운 날씨만큼이나 썰렁하다. 오늘의 행로는 동화집단시설지구 케이블카 승강장~케이블카정상 신림봉~코끼리봉~팔공산정상 비로봉~서봉~동봉~신령재~은해봉~노적봉~관봉(갓 바위) 15.5km 8시간40분이다. 오늘은 안전을 우선하다보니 평소보다 1시간 이상 늦었지만 좋은 산행을 했고 험한 산길 사고 없이 마친 것을 그저 감사할 뿐이다.
2012년 12월22일 토요일 안개 후 구름
첫댓글 눈이 소복히 쌓인 팔공산 설경 멋짐니다.
멋진 사진과 멋진 글에 멋진 시까지 읽게 해 주시는 산이좋아님 감사합니다.
함께 따라 간듯한 이 기분까지...
태풍에 버금가는 거센 바람과 짙은 안개로 많은 사진을 담아오질 못했네요.
사정으로 산행을 못하신 분들과 자연의 아름다움을 공유하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人生無常 (太古普愚1301~1382)선사
人生命若水泡空 (인생명약수포공) 인생의 목숨이란 물거품이니
八十餘年春夢中 (팔십여년춘몽중) 팔십 여년이 물거품처럼 지나갔네
臨終如今放皮帒 (임종여년방피대) 가죽주머니를 버리고 돌아가나니
一輪紅日下西峰 (일륜홍일하서봉) 한 덩이 붉은 해가 서산으로 지누나!
一輪紅日下西峰! 지난 한해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