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경5가해52-2-1.zip
설의:소승의 열반의 성(化城)을 쳐서 거꾸러뜨리고 현묘한 관문(玄關)도 밟아버리니 如來의 광대한 세상을 활보하도다. 이미 능히 부처님과 더불어 살림살이가 같은데 대자비로 이끌어줌을 어찌 다시 구하랴?
대승설, 최상설이여! 한 방망이가 가히 오천부에 해당하고 한 손바닥으로 한량없는 모든 법(八萬)문을 쳐버리도다. 다만 이것도 많은 일을 이룬 것이거늘 어찌 다시 혀를 놀려 중언부언(??) 번뇌(葛藤)를 말하리오. 한 가닥의 흔적과 한줌의 피여! 하늘과 땅이 모습을 잃고 日月이 빛이 없도다.
청봉착어:한 주먹에 팔만 사천 법을 설하고
한발로 차서 일체를 쓸어 뜨리도다
대승설, 최상승설 모두가 잠꼬대이니
부처와 더불어 둘 아닌데 달리 누구를 의지해 구하랴?
圭峰:四는 具德能傳이라
규봉:㉱ 德(혜)을 갖추어야 능히 傳한다.
若有人이 能受持讀誦하여 廣爲人說하면 如來가 悉知是人하며 悉見是人하나니 皆得成就 不可量 不可稱 無有邊 不可思議 功德으로 如是人等은 卽爲荷擔如來 阿?多羅三?三菩提이니라.
만약 어떤 사람이 능히 이 경을 받아 지니고 읽고 외워서 널리 사람들을 위해 설해 준다면, 여래가 이 사람을 모두 알며 이 사람을 모두 보나니, 한량없고 말할 수 없으며 끝이 없고 생각할 수 없는 공덕을 모두 성취하게된 것으로 이와 같은 사람들은 곧 여래의 무상정등정각을 짊어지게 된 것이니라.
淸峯:하담(荷擔)은 짊어짐 또는 갖춤이라고 하는 뜻이다.
곧 여래와 같은 정각을 갖추어서 둘 아님이 되는 것이다. 무상의 도리를 요달하여 중생을 위하여 설해 주어 그 뜻을 알고 행하여 수행함으로써 능히 깨달아 무상정등정각을 이루게 함이니, 그 공덕은 비할 바가 있을 것이 없는 것이다. 다시 말해 부처님의 일체종지를 깨달아 끊어지지 않게 하는 것을 짊어(荷擔)졌다고 하는 것이다.
說誼:此經이 旣爲上智說來이니 若人이 持說하면 此必上智인 得佛知見하여 荷擔菩提를 必無疑矣리라
설의:이 經이 이미 최상의 지혜인을 위해 설하셨으니 만약 사람이 지니고 설하면 이는 반드시 최상의 지혜인 부처님의 지견을 얻어 菩提를 짊어진다는 것을 반드시 의심함이 없으리라.
청봉착어:부처의 지혜를 둘 아님으로 짊어졌(荷擔)으니
내가 佛이요, 불이 또한 나로다
대승법을 설하는 이 듣는 최상승인이 둘 아님은
다만 부처님의 지견을 증오함인 때문이니라.
圭峰:成就等者는 偈에 云하되 滿足無上界하며 荷擔者는 無着이 云하되 肩負菩提重擔故라 하다
규봉:성취 등이란 偈에 이르기를 “위없는 세계에 만족하게 된다” 했으며, 하담이란 무착이 이르되 “어깨에 菩提의 무거운 짐을 진 때문이라” 했다.
六祖:上根之人은 聞此深經하고 得悟佛意하여 持自心經하여 見性究竟하고 復能起利他之行하여 爲人解說하고 令諸學者自悟無相之理하여 得見本性如來하여 成無上道하리라 當知說法之人의 所得功德은 無有邊際하여 不可稱量이니라 聞經解義하여 如敎修行하고 復能廣爲人說하여 令諸衆生得悟修行無相無着之行하니라 以能行此行하면 卽有大智慧光明하여 出離塵勞하리라 雖離塵勞이나 不作離塵勞之念하여 卽得阿?多羅三?三菩提하니 故名荷擔如來니라 當知하라 持經之人은 自有無量無邊不可思議功德이니라.
육조:상근기인은 이 깊은 경전을 듣고서 부처님의 뜻을 깨달아 얻어 자기 마음에 經을 갖게 되어 필경에는 견성하고 다시 마땅히 남을 이롭게 하는 행을 일으켜서 사람을 위해 해설하고 모든 공부하는 자로 하여금 無相의 이치를 스스로 깨닫게 하고 如來의 本性을 볼 수 있게 하여 無上의 道를 이루게 하는 것이다. 마땅히 알라. 법을 설하는 사람의 얻은 공덕은 끝이 없어서 가히 헤아리지 못하는 것이다. 經을 듣고서 뜻을 이해하여 가르친 대로 수행하고 다시 능히 널리 사람을 위하여 설하여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깨달음을 얻는 無相, 無着의 行을 수행하게 하는 것이다. 이런 행을 능히 행하게 되면 곧 큰 지혜광명이 있게 되어 塵勞(번뇌)에서 벗어나게 되는 것이다.
비록 진로는 벗어났으나 진로를 벗어났다는 생각을 짓지 않아 곧 무상정등정각을 얻게 되므로 荷擔如來라 이름하는 것이다. 마땅히 알라. 經을 지니는 이는 자연히 한량없고 가히 없어 사량(思量)할 수 없는 공덕이 있게 되는 것이다.
冶父:擘開泰華手는 須是巨靈神이니라
說誼:荷擔佛菩提는 須是介中人이니라
야부:크고 큰 산(泰山 華山)을 쪼개어 여는 솜씨는 모름지기 크게 신령함이니라.
설의:부처님의 보리를 짐은 모름지기 이 가운데 사람이라야 하니라.
청봉착어:높은 근기라면 이 경전을 들어
필경 깨달아 견성하여 남을 위해 설하나니
후학들로 하여금 위없는 도를 이루게 함은
무량무변 불가사이의 공덕을 구족했기 때문이로다.
冶父:堆山積岳來하나 一一盡塵埃로다 眼裏瞳人碧하고 胸中氣若雷로다 出邊沙塞靜하고 入國貫英才로다 一片寸心이 如海大하여 波濤에 幾見去還來인가
說誼:若是介中人면 無理不窮하고 無事不通이로다 直令虛空을 粉碎하고 大地를 平沈이니 假使十方諸佛이 同是興現種種神變이라도 此人面前에서 盡成盡埃로다 爲甚如此인가 拈槌竪拂도 他亦不顧하며 語言三昧도 他亦不聞하여 眼光이 ?破三千界하니 裏有瞳睛碧眸寒이로다 胸次?落渾忘世하나 中有雷霆氣宇新이로다 外應衆緣隨處寂하고 內冥一寂應無虧로다 ?裏恢恢如海大하니 一任千差有與無로다
야부:산을 높여 큰 산을 쌓아도 낱낱이 모두 티끌이로다.
눈 속에 눈동자 푸르르고 가슴속의 기세는 천둥 같도다.
변방에 나아가면 변방이 고요하고 나라에 들어오면 뛰어난 이로 통하도다. 한조각 작은 마음이 바다 같이 크니 파도가 가고 옴을 몇 번이나 보았던가?
설의:만약 이 가운데 사람이라면 그 이치(理)를 다하여 밝히지 못함이 없고, 일(事)마다 통하지 않음이 없도다. 바로 허공을 부스러뜨리고 대지(大地)를(물 속에) 가라앉게(平沈)하니, 가령 시방의 제불이 동시에 갖가지 신통변화를 일으켜 나타낼지라도 이 사람의 면전에선 모두가 먼지와 같이 되도다.
어찌하여 그러한가? 방망이를 잡고 拂子를 세움도 그는 또한 돌아보지 않으며 훌륭한 설법(語言三昧)도 그는 또한 듣지 않아 안광이 삼천 세계를 불살라서 깨뜨리니 그 속에 눈동자가 푸르르고 차갑도다. 흉중이 맑고 시원(?落)하여 혼연이 세상을 잊었으나 가운데는 우뢰가 있어서 기개와 도량이 새롭도다. 밖으로 온갖 인연에 응하나 곳에 따라 고요(분별망상이 없음)하고, 안으로는 한결같은 고요함에 그윽하게 계합하나 그 응함에는 어그러짐이 없도다. 뱃속이 넓고 넓어 바다같이 크니 한결같이 천차만별의 있음과 없음에 맡겨 두도다.
청봉착어:일체 두두물물(頭頭物物)이 塵과 幻인 用이요
주인인 體는 크고 고요함이로다.
그 가운데 주인은 理도 밝고 事에도 걸림이 없어
밖으로 온갖 인연 따라 응해도 안으로는 항상 고요하도다.
무애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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