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일과 19일 이틀 동안 충남 태안에 있었습니다. 사설 해병대 캠프 도중 공주사대부고 학생 5명이 참변을 당한 현장 취재를 위해서였습니다. 당시 지면에 싣지 못한 사건 현장얘기를 전합니다.
18일 오후 10시 30분쯤 공주사대부고 학생들의 숙소가 있는 충남 태안군 안면읍 창기리의 유스호스텔에 도착했습니다. 바다에선 해경이 조명탄을 연신 쏘아대며 수색작업을 벌이고 있었지만, 해안가에서 500m쯤 떨어진 유스호스텔은 한산했습니다.
학생들은 숙소로 들어갔고, 학교 측은 기자들의 접근을 막기 위해 안에서 문을 잠궜습니다. 교사들은 캠프 본부로 사용하던 사무실에 모여 있었습니다. 사건 경위를 묻자 교사들은 하나같이 “애들한테 들었는데요”로 시작했습니다. 사고 당시 현장에는 교사가 1명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사고 현장에는 한 명도 없던 교사들, 사고 발생 1시간 20분쯤후에 실종 사실 들어
가족들은 밤 11시가 조금 넘어 도착했습니다. 차에서 내려 뛰어오던 한 아버지는 사무실 앞에 서 있던 제게 “애들 찾았대요?”라고 물었습니다. 초조한 얼굴의 어머니도 곧 뒤따라와 옆에 섰습니다. 제가 아직 못 찾았다고 하니 그 아버지는 “아니, 왜 이렇게 오래 걸려요? 흘러가봤자 뭐 얼마나 많이 갔을라고….”라고 말했습니다. 아이들이 구명조끼를 입은 채 바다 위를 떠돌고 있다고 생각한 겁니다.
실종된 아이들이 구명조끼를 입지 않았다는 말은 차마 할 수 없었습니다. 제가 가만히 있자 아버지와 어머니는 사무실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잠시 후 아버지의 고함소리와 어머니의 울음소리가 섞여서 들려왔습니다. 아버지는 교사들을 붙잡고 “그럼 당신들은 왜 여기 있는거야. 애들이 바다에 있는데 당신들은 왜 여기 있는거야”라고 소리쳤습니다.
해경의 수색은 자정쯤 중단됐습니다. 더이상 야간 작업 성과를 기대하기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한 해경 잠수부는 “아이들이 실종된 오후 5시는 물이 빠졌을 때다. 밤 동안엔 물이 계속 들어와 있다. 사고지점도 정확히 모르는 상황이라 수색작전이 무의미하다. 안타까운 마음에 계속했지만 새벽에 물이 빠져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해경이 철수를 시작하자 어머니들은 “우리 아이 찾는 거 계속해주세요. 포기하지 말아주세요”라고 애원했습니다. 아버지들은 이런 어머니들을 옆에서 말렸지요. 몇시간 넘게 바다에 들어가 수색작전을 하느라 지친 기색이 역력했던 해경도 가족들의 애원에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지, 한참더 자리를 지키다 돌아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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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남 태안 해병대 사설 캠프에서 고교생 5명이 실종된 사고가 일어난 다음 날인 7월 19일 오전, 실종자 가족이 백사장해수욕장에서 해경의 수색작업을 바라보고 있다. 실종자 5명의 시신은 이날 모두 인양됐다. /뉴스1
현장에는 사고 당시 상황을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학생들은 숙소에 있고, 교관들은 사건 발생 이후 아예 종적을 감췄습니다. 사건 발생 1시간 20분여가 지나서야 아이들이 실종됐다는 사실을 안 교사들은 당연히 아무 것도 몰랐습니다.
현장에 있던 두 명의 학생을 불러 이야기를 듣기로 했습니다. 교사들이 숙소에서 학생들을 데리고 나오자 가족들이 그들 주위를 둘러쌌습니다. 고(故) 김동환(17)군의 어머니는 “우리 동환이 봤니? 정말 거기에 있었니?”라고 거듭 물었습니다. 혹시나 기적처럼 아들이 불쑥 다른 곳에서 나타나주길 바라는 마음이었을 겁니다. 한참을 망설이던 김모(17)군이 “동환이…. 물 속에 있는 걸 봤어요”라고 말했습니다. 동환이 어머니는 혼절했고, 김군은 “죄송해요. 정말 죄송해요”라며 울먹였습니다.
이들을 통해 비로소 당시 상황을 전해들을 수 있었습니다. 보트 탑승 훈련이 끝난 후 구명조끼를 다음 조 학생들에게 넘겨준 아이들은 해안가에서 쉬고 있었습니다. 이들을 교관 2명이 바다로 데리고 들어갔습니다. 점점 깊어져 신장 165㎝의 김군은 물이 목까지 차올랐습니다. 하지만 교관은 “괜찮아, 여기까지 와봐”라고 말했습니다.
김군은 “그 직후 파도가 친 것 같긴 한데 갑자기 바닥에 발이 안 닿았다. 옆의 애들도 마찬가지여서 서로 붙잡고 숨을 쉬기 위해 올라가느라 몸집이 작은 나는 맨 밑에 깔렸었다. 간신히 어떻게 해서 나와보니 아직도 저 안쪽에서 허우적대는 애들이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두 명의 학생은 고 이준형(17)군이 안전한 곳까지 나왔다가 친구들을 구하기 위해 다시 들어갔다는 친구들의 증언도 전했습니다. 이준형 군의 아버지가 흐느꼈습니다.
아이들이 사라진 걸 확인했지만 교관들은 곧장 119나 해경에 신고하지도 않았습니다. 사건 발생 20분이 지나서야 처음 해경에 신고했습니다. 그 시간 동안 자체적으로 아이들을 찾아나선 겁니다. 물에서 허우적대는 아이들을 확인하고도 “혹시 숙소에 애들이 있을지도 모르니 숙소를 찾아보라”며 한 아이를 숙소로 보냈습니다. 바닷가에서 숙소까지의 거리는 약 500m 입니다. 바다에서 사라진 아이들을 숙소에서 찾으려 하는 동안 소중한 20분이 사라졌습니다.
가족들의 통곡이 밤새 이어지는 동안 날이 밝았습니다. 오전 5시 30분 해경의 수색이 재개됐습니다. 그로부터 30분 후 “찾았다!”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가족들이 바다로 뛰기 시작했습니다. 해경이 수습해 온 시신에는 흰 천이 덮여 있었습니다. 누군가 “누구야! 누군지 확인을 해!”라고 소리쳤습니다. 가족들이 시신을 둘러쌌습니다. 잠시 후 이준형군의 어머니와 아버지가 비명을 질렀습니다. 그렇게 한 명 한 명, 오후 6시까지 새로 시신이 한 구씩 발견될 때마다 가족들은 시신을 향해 뛰었고, 누군가 비명을 지르는 상황이 반복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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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남 태안군 안면읍 백사장 항포구 인근 해역에서 사설 해병대 캠프 훈련을 받다 실종됐던 공주사대부고 2학년 이모 군의 시신이 19일 수색대에 의해 인양되는 가운데 유족이 오열하고 있다. /신현종 기자 shin69@chosun.com
시신은 물이 빠지는 시간인 오전 6시 전후와 오후 5시 전후에 발견됐습니다. 아이들이 사고를 당한 때도 물이 빠진 때였습니다. 주민들은 “물이 빠졌을 때 바다에 들어가는 건 위험하다. 갯벌 안쪽에는 깊은 갯골이 많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갯골은 간·만조 때 물이 빠지고 들어오는 통로로 주변보다 최대 1∼2m 이상 낮은 지형입니다.
교관들, 유스호스텔 외곽 사무실에 은신해 “물이 얕은 곳인데 왜 사고났는지 안타깝다”만 반복
무심코 바다를 걷다 물 속에 있는 갯골에 빠지면 워낙 깊고 순간적으로 당황하기 때문에 수영을 해서 빠져나오기가 어렵습니다. 경찰은 아이들이 바로 이 갯골에 빠진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습니다. 교관들은 유속이 빠르기로 유명한 태안 앞바다에서 깊은 갯골이 있을지도 모르는 간조 때의 바다에 구명조끼도 입지 않은 아이들을 집어넣은 것입니다. 아이들을 바다로 들어가게 한 교관 2명은 각각 경력 1개월과 4개월의 초짜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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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사고를 촉발했다고 볼 수 있는 교관들은 사건 발생 다음날인 19일까지도 한 명도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경찰 조사를 받은 뒤 잠적한 것이라 추측했지만, 이들은 유스호스텔의 여러 건물 중 가장 외곽에 있는 건물내 해병대 캠프 사무실에 있었습니다. 간판조차 없어서 아무도 이곳에 사무실이 있다는 것도, 교관들이 있다는 것도 몰랐던 겁니다.
캠프 사무실에서 해병대 캠프 관계자를 만났습니다. 그는 “애들을 왜 그렇게 깊은 곳까지 데리고 갔는지 우리도 이해가 안 된다”며 “현장 책임자는 경력 10년이 넘은 베테랑인데 뭘 했나 모르겠다”고 말했습니다.
“바다에서 하는 훈련인데 구명조끼를 다 입지 않은 건 문제가 있지 않느냐”는 물음에 대해, 그는 “필요한 사람만 입으면 되는 것이다. 그동안 계속 그렇게 해 왔다. 그동안 어떤 학교도 그거에 문제를 제기한 곳은 없었다”고 했습니다. 유족들이 교관들을 계속 찾았다고 하자 “가서 맞아죽을 일 있느냐”고 하더군요.
해병대 캠프를 주관한 업체 사장은 사건 발생 8시간 후인 19일 오전 1시쯤 서울에서 내려와 1시간쯤 현장 상황을 확인하고 돌아갔다는 사실도 드러났습니다. 유족들이 바닷가에서 통곡하고 있을 즈음, 업체 사장은 현장 상황만 파악하고 곧장 서울로 돌아간 것입니다.
경찰서에서 현장 책임자였던 경력 10년의 교관 이모(44)씨를 만났습니다. 그는 사고가 났을 때 자신은 멀리 떨어진 곳에서 안전보트를 타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이씨에게 왜 아이들에게 구명조끼를 입히지 않았느냐고 묻자, 그는 “사고가 난 건 교관 재량으로 바다에서 자유시간을 줬을 때였다. 얕은 곳에서 놀기 때문에 구명조끼는 필요없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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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씨는 “멀리서 아이들이 바다에 들어가는 걸 봤는데, 물이 얕은 곳인데 왜 그런 사고가 났는지 모르겠다”는 말만 반복했습니다. 이씨는 “공주사대부고 애들은 정말 순하고 말을 잘 들었다. 훈련 분위기가 어떤 학교보다 좋았다. 그런데 이런 사고가 나서 너무 안타깝다”고 말했습니다.
이번에 사고가 난 사설 해병대 캠프는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는 행사였습니다. 사고가 터지자 소관부처인 여성가족부는 해당 캠프가 여성가족부가 ‘인증’한 프로그램이 아니었다고 밝혔습니다. 여성가족부는 안전하고 신뢰할 수 있는 청소년 프로그램을 국가가 인증하고 추천하는 작업을 진행해 왔는데, 여성가족부의 인증 여부는 행사 개최에 전혀 지장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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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상기·사회부 기자
여성가족부가 인증한 전국 180개 청소년 프로그램 중 ‘해병대’라는 이름으로 검색되는 것은 1개뿐입니다. 최소 50개가 넘는 해병대 캠프는 별다른 관리를 받지 않고 무방비 상태로 진행되고 있는 셈입니다. 이번에 사고가 터진 해병대 캠프에 다녀간 중·고등학생은 작년 말부터 1만명이 넘습니다. 지금껏 한 번도 사고가 안 일어난 게 천만 다행이라고 해야 하겠죠.
사고 후 뒤늦게 관련 법안 개정이 추진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사고가 재발하지 않을 정도의 대책이 마련될지는 미지수입니다. 숨진 아이들의 영결식이 치러졌고, 3명의 교관과 1명의 교사가 사법처리될 예정이지만 이번 참변이 그냥 쉽게 잊혀져서는 안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