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숨에 읽었습니다. 잘 읽힙니다. 내용에 대해서는 생각할 거리들이 많겠지요. 이 책에 대해 학교에서 방송 명상을 한 내용입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1Q84' 3권을 지난 주말에 읽었습니다. 하루키의 소설로는 처음 읽은 것입니다. 일본 작가의 작품 자체를 별로 읽은 것이 없어서 비교할 수는 없지만 하루키는 일본에서도 대중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작가라고 합니다. 본격적인 이야기를 할 수는 없지만 제가 읽은 ‘1Q84'에 대해 잠깐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작품의 시대적 배경은 1984년입니다. 1984년은 조지 오웰의 동명 소설 작품 이름이기도 합니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은 사람들의 문화적 배경을 은근히 환기시킴으로써 무언가 자기 암시를 걸도록 합니다. 그런데 제목은 다시 이를 패러디하듯 ‘1Q84’입니다. 소설 속의 여주인공은 도심 고속도로에서 내려 비상구로 내려온 뒤에 자신이 속한 시공이 1984년이 아닌 달이 두 개 떠 있는 세계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달라진 것은 없습니다. 단지 세상을 보는 관점이 변했기에 존재의 확실성이 함께 변화를 겪게 된 것이지요. 여주인공 아오마메와 남주인공 덴고가 만남으로써 3권까지의 이야기는 일단락됩니다. 초등학교 시절 한 번 손을 맞잡은 두 남녀의 재회가 이야기의 중심축이기도 합니다. 동시에 옴진리교를 암시하는 종교적 집단 ‘선구’의 존재, 가정의 해체와 남녀의 성적 편력, 부모와 자식의 갈등, 가정 폭력에 시달리는 여성의 처지에 대한 폭력적 보복 등이 다채롭게 펼쳐집니다. 야나체크의 ‘신포니에타’와 체홉의 드라마작법에 대한 견해 등 다양한 문화적 장식들이 등장합니다. 세계의 폭력성이 맹목성이 비열한 인간성과 함께 제시됩니다. 3권의 마지막 장면에서 원래의 상태로 돌아온 것처럼 보이지만 또 다른 세계로 진입한 것이기도 하다는 암시를 주고 있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요소들이 혼합된 이 소설은 영화 매트릭스를 떠올리게 하고 구운몽, 조신의 이야기, 나니아 연대기,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걸리버 여행기 등의 환몽적 양식을 생각하게 합니다.
장주는 꿈에 나비가 되었다가 깬 후 나비가 실체인지 자신이 실체인지 헛갈려 합니다. 불교적 용어로 공즉시색이요 색즉시공이라 했습니다. 프랭크 커머드라는 사람은 인간이 허구적 서사를 구성하는 것은 삶의 전체성을 확보하기 위한 시도라는 취지의 말을 했다고 합니다. 인간이 바라보는 세계의 불완전함과 자신의 한계를 자각하는 인간은 처음과 중간과 끝이 하나의 조망을 지닐 수 있는 그런 관점에 서기를 열망합니다. 불완전한 현실의 빈 칸을 인간의 상상력으로 채워 전체적인 의미를 지닌 하나의 퍼즐을 완성하고 싶어 하는 것이겠지요. 인간은 꿈을 꾸는 존재입니다. 어떤 꿈을 꾸는가에 따라 그가 어떤 사람인지가 판가름 납니다. 히틀러가 꾸었던 꿈, 마틴 루터 킹 목사가 꾸었던 꿈, 간디가 꾸었던 꿈, 마더 데레사 수녀가 꾸었던 꿈, 그리고 평범한 우리 시대의 가장과 어머니와 딸과 아들이 꾸는 일상적인 차원에서부터 좀 더 지평이 넓은 꿈에 이르기까지 세상에는 꿈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새가 땅을 박차고 날아오르지만 다시 땅으로 내려와야 하듯 우리의 꿈은 다시 우리가 발 딛고 사는 현실로 돌아와야 합니다. 현실을 풍요롭게 하는 꿈은 그렇게 현실이라는 모천으로 회귀해야 하는 것입니다. 세상은 꿈꾸는 자가 바꿉니다. 그러나 그 꿈은 현실을 품어야만 합니다.
이제 기말고사도 끝나고 한 해가 마무리되어야 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쓸쓸함을 털어버리고 새롭게 출발할 준비를 해야 하겠습니다. 허황된 꿈은 버리고 진실하고 견고한 꿈을 다시 품도록 합시다. 땅에서 넘어진 자 땅에서 일어나야 한다는 누군가의 경구와 같이 우리가 올 한 해 동안 끌어안고 분투했던 많은 일들을 이제 한 번 돌아볼 시간입니다. 연말을 맞아 여러분의 마음에 따뜻한 꿈을 꾸는 데 도움이 될 한 권의 책을 손에 쥐고 편안한 마음으로 읽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