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르크추크에서 동쪽으로 가는 중요 기차노선은 세 가지다. 우리가 시베리아철도로 알고 있는 노선으로 시베리아를 통과해 블라디보스톡으로 가는 기차, 시베리아를 거쳐 심양으로 가는 노선(이 열차는 직접 평양을 거쳐 서울로 갈 수 있다), 그리고 몽골을 거쳐 베이징으로 가는 중국열차이다. 19일 새벽 3시. 평화열차 탑승자는 어둠속에 버스로 호텔을 출발해서 이르크추크역으로 향했다. 기차가 5시가 넘어 출발하고 버스로 10분도 안 되는 짧은 거리지만 백여 명이 함께 하는 여행이라 힘들지만 여유 있게 출발할 수밖에 없었다. 기차가 출발하자마자 잠을 못 잔 일행은 모두 깊은 잠에 다시 빠져들었다. 누군가 "호수다"하고 감탄하는 외침에 눈을 떴다. 끝이 보이지 않는 바이칼호수에 마침 아침 해가 떠오른다. 그리고 계속해서 호수가 이어지니 말로 형언하기 어려운 장관이다. 어제 우리가 본 바이칼호수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가도 가도 호수가 보이는 지라 이게 어제 본 바이칼호수라는 사실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지도를 펴서 확인하니 기차가 이르크추크에서 호수를 끼고 호수 끝 남쪽으로 왔다가 다시 호수를 끼고 북쪽으로 가는 것이었다. 정오가 거의 다 되어서야 호수가 보이지 않는다. 하긴 호수 길이가 636km라고 하니 부산에서 평양까지 가는 길이와 비슷하여 그렇게 오래 호수를 볼 수 있다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어제 바이칼생태박물관에서 본, 기차노선이 깔린 배에 대해 납득도 된다. 호수를 돌지 않고 여름에는 배로, 그리고 얼음이 얼면 배로 호수를 관통하는 것이 훨씬 빠를 것이다. 이렇게 큰 호수가 오염이 된다면? 세계에서 가장 맑은 호수가 되도록 바이칼호수의 오염을 막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이 진정 인류의 평화를 위해 일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아침식사를 하고 온 한 참석자가 눈물을 글썽인다. 식당 칸에서 만난 홀랜드청년 두 명이 평양으로 관광을 간다는 소식에 분통이 터졌다고 한다. 그 청년들은 서류는 많이 준비했지만 어렵지 않게 비자를 받았다고 한다. 남의 나라 사람들은 이렇게 자유롭게 북한으로 관광을 가는데 평화열차는 아직도 북한 방문이 확정되지 않았으니! 그 분은 특히 북한에 처가 쪽 가족이 있는 분이니 더 안타까웠을 것이다. 남한 기독교대표들과 북한 기독교대표단이 심양에서 계속 협의하고 양국 정부와 의견조율을 하고 있는데 그렇게 쉽지는 않은 것 같다. 일단 기차는 힘들고 비행기로 평양을 가기로 합의했다는데, 그 다음 양국 정부의 입장 차이가 좁혀지지 않는다고 한다. 북한 정부에서는 열차로 금강산을 통과해 남쪽으로, 그리고 남한정부는 다시 비행기로 베이징으로 돌아와서 한국으로 가는 안을 주장한다는 것이다. 평화열차 참가자들 입장에서는 기차로 금강산을 통과한다면 금상첨화인데... | | | ▲ 드넓게 펼쳐진 몽골평야ⓒ에큐메니안 | 기차가 몽골 국경을 통과하니 목축이 주요 수입원이라는 것이 확연하게 드러난다. 사방에 산이 보이지 않고 드넓은 초원만 보인다. 초원에는 여기저기 말, 양, 그리고 낙타가 보인다. 기차가 하루 종일 다녀도 초원만 보인다. 러시아에서는 초원이라고 해도 자작나무 등 여러 종류의 나무가 많이 보였는데, 지금은 전혀 나무가 보이지 않는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기차가 달려도 초원만 보여서 한국 사람이 이곳에 오면 참 좋겠다고 생각했다.우리보다 넓은 초지에 인구는 겨우 2백 70만밖에 살고 있지 않으니, 부지런한 한국 사람이 이곳에 오면 얼마나 좋은 기회가 될까! 그런데 초원을 자세히 살펴보니 초원이 아니라 사막화가 이미 진행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오죽하면 나무 한 그루 보면 커피를 사겠다고 내기를 걸었는데도 한 그루도 보이지 않는다. 이렇게 계속 시간이 지나면 이미 중국에서처럼 사막이 확대되어 그 영향이 한국에도 미칠 텐데... | | | ▲ 20일 주일아침. 기차안에서 주일예배를 드리고 있는 평화열차 참가자들ⓒ에큐메니안 | 20일 주일오전. 우리는 울란바토르를 지나며 기차 안에서 주일예배를 드렸다. 이번에는 두 방씩 함께 모여 8명이 참여했다. 미리 짜인 순서에 따라 예배를 드리지만 아직까지도 평양방문이 확정되지 않아 우리의 주기도제목은 평양으로 평화열차가 달리는 것이었다. 아울러 가도 가도 나무 한 그루 없는 초원을 바라보면서 몽골의 사막화를 피하기 위해 조속히 나무를 장기적으로 심어야 한다는 것으로 말씀 나눔이 이어졌다.현재 한국의 기후에도 영향을 미치는 이곳의 사막화를 근본적으로 막기 위해서는 몽골인의 의식이 변해야 하고 초원에서부터 조림을 할 수 있는 방안에 우리도 참여해야 한다고 의견을 모으기도 했다. 자연을 파괴하고서는 이 땅에 평화가 올 수는 없을 것이니깐! 베이징 행 열차에서 승무원은 모두 중국인이지만 식당 칸은 러시아인이 운영하고 있었다. 식사를 단체로 예약했음에도 불구하고 식사시간이 지나면 그대로 열차 문을 닫고 열어주지 안는다. 심지어 중국 승무원이 찾아가서 사정을 해도 마찬가지이다. 하루는 식당 칸에서 식사를 했지만 러시아 식당 칸이 분리된 후에는 빵과 치즈 등으로 된 식사를 해야 했다. 세끼 식사를 모두 그런 식으로 해결해야 되니 빵과 치즈 등이 그대로 남는다. 중국 승무원에게 그것을 선물하고 밥을 얻어먹으니 그야말로 꿀맛. 하도 여러 사람이 얻어먹으니 다음 식사 때에는 걸리면 곤란하다고 고개를 젓는다. 중국 국경을 넘어서니 나무와 산악도 보이고 기차가 터널도 지나간다. 열차는 선로의 폭이 달라져 우선 차량의 바퀴를 갈아 끼우느라 세 시간을 정차했다. 차체를 완전히 들어 올려 바퀴를 들어 올리는 모습이 재미있다. 떼어낸 열차 한 량을 다시 연결할 때 너무 큰 충격을 받아 넘어져 허리를 삐끗한 분이 있고 입술이 터진 분도 있다. 부산에서 유럽까지 횡단철도가 개설되면 저런 식으로 몇 번이나 바퀴를 교체해야 할까? | | | ▲ 열차의 폭이 달라져 열차 바퀴를 교체하고 있는 모습ⓒ에큐메니안 | 중국 입국심사에서 일행 중 한 명이 심사원에게 끌려가서 모두가 긴장을 했다. 한 명이라도 입국이 거부되면 일정에 많은 차질이 생길 텐데, 다행히 별 일 없이 해결되었다. 이렇게 짜증 나는 시간을 보낸 우리에게 기쁜 소식이 주어졌다. 그 하나는 한국정부가 평화열차의 방북에 대해 긍정적으로 접근한다는 것과 중국내에 들어온 열차는 아침과 점심을 무료로 준다는 소식이다. 그동안 버터와 치즈로 세끼를 때웠으니 밥만 있어도 그냥 넘어갈 텐데. 더구나 무료제공이라니!
평양행 이젠 실무적으로도 불가 | 22일, 아쉬움 속 베이징 평화순례 진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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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베이징 역에 도착한 평화열차 참가자들ⓒ에큐메니안 | 21일 오후 2시. 베이징 역에 도착하면서 진행요원이 바짝 긴장하면서 주의를 준다. 이곳에서는 절대로 플래카드를 내거는 등 시위하는 모습은 물론이고 돌출행동을 삼가달라고 신신 당부한다. 심지어 평화열차가 새겨진 트레이닝복도 입지 말라고 부탁한다. 열차가 베이징 역에 도착하니 기차와 승객내리는 곳을 연결해서 열차계단을 이용하지 않아도 되었다. 장애인이 전동휠체어를 타고 그대로 승차해도 좋을 듯하다.베이징 역은 13억 인구의 수도인 베이징의 교통중심지이니 인파의 물결로 넘쳐흐른다. 평화열차 참가자는 백여 명이 함께 움직이니 조금 실수하면 일행을 놓칠 우려가 높다. 우리는 버스로 숙소로 옮겨 잠시 휴식을 취했다. 4박 5일 동안 샤워는 물론 제대로 세수도 못하다가 호텔에 들어오니 긴장이 풀린다. | | | ▲ 재활미술가 서진옥선생의 지도로 헌 물병을 이용한 크리스마스트리를 만들었다. 이날 만든 작품은 WCC 총회 때 재활용 부스에 세워진다고 한다.ⓒNCCK | 아무리 피곤해도 평화를 향한 프로그램은 진행해야 했다. 중국교회와 공식적인 협력을 얻지 못해 당장 모임장소를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호텔 강당은 두 시간에 2백만 원을 달라고 하니 너무 부담스럽고. 간신히 한인교회를 섭외해서 저녁 식사 후 버스로 이동했다. 평화열차 참가자 전원이 이렇게 독자적으로 모인 것도 처음이었다. 베이징에서 돌아가는 이들과 새로 베이징에서 합류하는 참가자들에 대한 소개가 있은 후 재활미술가 서진옥선생의 지도로 헌 물병을 이용한 크리스마스트리를 만들었다. 모두가 피곤하지만 새로운 만들기라 열심히 참가하고 물감을 칠했다. 이날 만든 작품은 WCC 총회 때 재활용 부스에 세워진다고 한다. | | | ▲ 말라위 좀바신학교 교장인 카툰드 레오나르도(55세)는 "5개의 지역으로 나뉜 교구에서 갈등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각 교구 연합신학교인 좀바신학교에서 갈등을 해소하는데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NCCK | 이때 처음으로 각 나라의 평화상황을 이해하는 시간을 가졌다. 말라위 좀바신학교 교장인 카툰드 레오나르도(55세)는 "5개의 지역으로 나뉜 교구에서 갈등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각 교구 연합신학교인 좀바신학교에서 갈등을 해소하는데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고 설명하고 중앙아프리카 개신교협의회 카훔비 망굴렌제 총무(75)는 "말라위의 극심한 빈부격차, 경제개발을 위해 기도해달라"고 부탁했다.이어 오늘 도착한 인도네시아의 네가 겔레타(47)는 동티모르 독립전쟁 후 방문했던 경험을 소개하면서 "동티모르 독립전쟁 시 인도네시아 군대가 1백여 명의 어린이를 학살했으면서도 아직까지 공식적인 사과를 하지 않고 있다" 고 밝히고 독일과 캐나다처럼 참회와 공식적 사과를 통해 평화를 향해 진일보했으면 좋겠다고 희망을 피력했다. 22일은 본격적인 베이징 평화순례. 아침부터 호텔에 이상한 분위기가 있다. 어제 실무진이 "북한으로부터 공식적인 평양방문 거부 소식은 없었지만 이제는 실무적으로도 힘들다"는 해명을 듣고 충격을 받은 한 분이 더 이상 이대로 있을 수는 없다고 해서 호텔로비에서 철야농성을 하고 금식기도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참가자 대부분은 평양을 갈 수 없다는 소식에 실망을 금할 수가 없었으며 몇 사람은 기도를 하기 위해 오늘 평화순례까지 포기하였다. 그러나 사회주의권, 특히 중국에서 문제가 야기될 수 있는 행동은 자제해달라는 집행부의 간곡한 설득으로 각자 여건대로 기도하기로 하고 평화순례는 예정대로 출발했다. | | | ▲ 혜전교회 앞에서ⓒ에큐메니안 | 첫 목적지인 해전교회로 향하면서 안내를 맡은 김병태 목사는 중국교회의 삼자교회의 태동배경과 현재의 상황에 대해 자세히 소개했다. '한국 전쟁 시기 한-중 교회의 발전과 특징'에 대해 논문을 쓴 박 목사의 설명을 들은 후 중국교회가 평화열차에 대해 비협조적인 이유를 분명히 알게 되었다.해전교회는 평상시 갖고 있던 중국 교회에 대한 이미지와 완전히 달랐다. 1931년 연경대학교 교장인 스튜어트주교(제1대 주중미국대사)가 학생들을 주축으로 설립했다고 하는데, 교회당 겉모습부터 한국의 대형교회처럼 엄청 컸다. 2007년에 입당한 현 교회당에서는 매주 5부로 예배를 드리고 있으며 7천여 명이 예배에 참석하고 있다고 한다. 또한 주위에 5개의 지교회가 있어서 해전교회의 총 교인 수는 1만여 명에 달한다고 한다. 교회의 프로그램은 화, 목, 토요일에 성경공부, 기도, 간증, 금요청년예배 등 한국교회와 큰 차이가 없으며 10년 동안 10배가 성장했고 현재도 계속 성장하고 있다고 한다. 교회 건물 정면에 커피숍을 열고 있는 것도 눈에 확 들어온다. 이 교회는 평신도 대표들이 교회운영을 책임지고 있다고 하는데, 실은 삼자(자치, 자전, 자양)를 내걸고 있는 중국교회에서 대부분 평신도가 교회운영의 주체이다. 중국교회는 대부분 복음주의 신학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 교회 진보주의 입장을 갖고 있는 분들이 혼란을 겪게 된다고 안내자가 부연 설명한다. 이 교회에서는 평화를 어떻게 설명하고 평화를 위해 어떻게 활동하고 있을까. | | | ▲ 전쟁기념관은 1987년 항일전쟁 50주년을 맞아 건립되었다.ⓒ에큐메니안 | 오후에는 항일전쟁기념관과 북경노구교로 향했다. 전쟁기념관은 1987년 항일전쟁 50주년을 맞아 건립되었는데, 3개의 주제 전시관으로 구성되어 있다. 1831년 9.18사변부터 1945년까지 항일전쟁의 전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2010년 항일전쟁 65주년을 맞아 후진타오 중국주석 등 중국지도부들이 단체로 참배했다고 하는데, 우리가 평화순례를 이곳으로 잡은 이유는 무엇일까 궁금해진다. 전쟁이 없는 상태와 전쟁에 승리한 상태는 분명 다를 터인데... | | | ▲ 노구교는 중국 대륙으로 들어오는 입구로 1937년 중일전쟁이 발생했던 곳이다.ⓒ에큐메니안 | 전쟁기념관에서 걸어서 북경노구교로 향했다. 노구교는 중국 대륙으로 들어오는 입구로 1937년 중일전쟁이 발생했던 곳이다. 마르코폴로가 동방견문록에서 "세상에서 둘도 없는 다리"라고 극찬해서 "마르코폴로다리"라고 불린다고 한다. 다리 난간에 설치되어 있는 동물의 표정들이 너무나 다채롭다. 특히 아기를 데리고 노는 각종 형태의 모습을 통해 평화는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상상해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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