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석학, 해체론 등의 地盤된 보편적인 학문 방법론 - 조광제 철학아카데미 대표
본래 수학자였던 후설(Edmund Husserl, 1859~1938)은 브렌타노에게서 철학수업을 받은 후 1903년 ‘논리연구’를 출간해 유럽에서 일약 유명한 철학자로 이름을 날리게 된다. 그 뒤 1910년 ‘순수 현상학과 현상학적 철학의 이념들 I'이라는 긴 제목의 철학책을 통해 현상학(Phanome-nologie)이라는 새로운 철학을 처음으로 세상에 공포한다. 말하자면 후설은 현상학을 창시한 것이다. 순수현상학의 창시자, 후설 후설의 현상학은 흔히 그 이후 하이데거나 사르트르 또는 메를로 퐁티의 실존론적 현상학과 비교하여 순수현상학이라 불린다. 후설의 현상학에서 가장 중요한 원리는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하나는 일체의 이론이나 일상적으로 갖고 들어가는 모든 선입견을 버리고 주어진 사태를 있는 그대로 보고 분석하여 기술하라는 것이다. 이를 나중에 후설의 제자인 하이데거가 “사태 자체에로(Za den Sachen selbt)" 라는 말로 압축해서 표현하는데, 후설은 그러기 위해 가장 먼저 취해야 할 철학적 반성으로 ‘판단중지(Epoche)'를 제안한다. ‘선험적 환원(transzendentale Reduktion)’이라 불리기도 하는 이것은 어떤 것이 있다거나 또는 없다거나 어떠하다거나 어떠하지 않다거나 하는 등의 판단이 힘을 쓸 수 없도록 한 상태에서 그저 의식에 일차적으로 주어지는 것을 마치 구경꾼처럼 무관심하게 바라보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게 되면 지각을 통해 나의 의식에 주어져 있는 일차적 내용들은 무엇이라고 규정할 수 없이 그저 단편의 연속들과 그것을 마주하고 있는 의식작용뿐이라는 것이다. 무시로 변하면서 아직 정확한 의미가 없이 주어지는 의식의 일차적인 내용을 후설은 휠레(Hyle, 질료)라 하고, 이를 마주하고 있는 의식작용을 노에시스(Noesis)라고 한다. 그런데 이 노에시스는 무시로 변하는 휠레를 그냥 스쳐 보내지 않고 그것들을 붙들어 일정하게 통일시킴으로써 의미를 갖도록 하고, 결국 휠레의 급한 흐름에서 자신과 근본적으로 차원을 달리하는 대상을 구성한다. 이 대상은 힐레와 노에시스가 없이는 성립할 수 없다. 통일된 의미를 갖고 있는 이 대상을 후설은 노에마(Noema)라고 한다. 그러니까 의식은 노에마를 항상 자신의 대상으로 가짐으로써 비로소 의식으로서 의미 있게 활동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두 번째의 원리, 지향성(Intentionalitat)의 원리가 성립된다. 즉 노에시스인 의식작용은 항상 노에마인 의식대상과 짝지워지지 않고서는 도대체 의미 있게 활동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노에마 역시 의식작용인 노에시스와 짝지워지지 않고서는 도대체 의미 있게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요컨대 의식작용과 의식대상은 그 종류가 어떤 것이건 간에 상대가 없이는 제대로 존재한다고 할 수 없고 따라서 둘은 필연적인 상관관계를 통해 존재한다고 하는 것이 지향성의 원리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매력적이라고 할 때 그 사람을 매력적이라고 판단하는 의식작용이 없이는 그 사람의 매력은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고, 또한 그 사람의 매력이 없이는 그 사람을 매력 있다고 생각하는 의식작용도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특정한 의식작용과 그 맞물린 특정한 의식대상은 서로 의존하여 동시에 발생한다는 것이다. 후설은 이러한 지향성의 원리를 전우주적으로 확대해서 적용한다. 우리가 온갖 종류의 이론을 통해 알고 있는 모든 인식에 상응하는 대상이나 사태 등은 모두 다 그것에 상응하는 특정한 종류의 의식작용을 통해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고, 또 그 반대로 그러한 대상이나 사태에 대해 인식하고 있는 의식작용 역시 그러한 대상이나 사태가 있기 때문에 성립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후설의 전우주적인 지향성의 원리는 고대에서 중세에 이르는 바깥 객관적인 대상들을 위주로 한 존재론과도 다르고, 데카르트에서 헤겔로 이어지는 근대의 정신 위주의 존재론과도 다르다. 후설의 현상학적 존재론은 수학에서 말하는 함수적인 대응처럼, 의식과 대상 간의 철저한 상호의존과 동시발생의 존재론이라 할 수 있다. 그런 까닭에 의식도 대상도 모두 실체라고 하는 규정을 벗어버리게 되고 현상으로 된다. 실체가 먼저 있고 나중에 그것이 현상으로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실체라고 부를 수 있는 현상이 있다는 식이다. 달리 말하면, 존재 자체가 있는 것이 아니라 존재라고 부를 수 있는 현상이 있는 셈이다. 현상되는 것과 현상하는 장소가 근원적으로 서로 떨어질 수 없는 것이라고 하는 데서 이제 지향성의 원리는 현상을 존재론 및 인식론의 근본 범주로 삼는 데로 나아가게 된다. 문화와 역사가 침전돼 있는 생활세계 한편 후설의 현상학이 보편적인 학문 방법론으로 거론되기도 하는데, 그 핵심은 그가 제시한 ‘본질 직관(Wesensanschuung)’이다. ‘형상적 환원(eidetische Reduktion)'이라 불리기도 하는 이 사유의 절차는 에포케 즉 판단중지를 통해 사태 자체를 찾아들어가는 것과 맞물려 현상학적인 정신을 형성한다. 현상학의 정신은 기왕의 체계화된 이론인 철학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경험을 가장 근원적인 사유의 지반으로 삼고 최대한 섬세한 상상력을 발휘해 그러한 경험을 가능케 하는 본질적인 구조를 일반화해 간취(看取)해내는 것이다. 후설의 본질 직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온갖 가능성을 담보해낼 수 있는 뛰어난 상상력이다. 상상력은 주어진 사태를 주제로 삼아 그 사태가 내적으로건 외적으로건 지평적으로 어떻게 다른 방식으로 변경될 수 있는가를 최대한 보편적으로 재현살 수 있는 능력이다. 상상력을 통해 여러 가능한 사태들이 망라되다시피 하게 되면 그때 그것들을 관통하는 본질적 구조를 일반화해서 파악해내는 것이다. 이는 그 어떤 학문적인 이론에서 대해서도 적용되는 보편적인 학문 방법론이다. 판단 중지와 본질 직관에 관련한 후설의 입장을 종합해보면, 기왕에 코드화한 학문 이론을 앞세워 반서해서는 안 된다는 것, 그렇게 해서는 새로운 이론을 창안해낼 수 없다는 것을 경고하는 것이 된다. 그러고 보면, 후설이 제시한 현상학적인 학문 방법론은 일종의 발견법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현상학적인 정신의 ‘눈’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일단 철학자로서보다 일반적인 한 인간으로서 주어지는 구체적 경험들을 세세히 파고들어가 관찰하고 분석하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기왕의 이론에 의해 코드화도니 철학적인 반성을 하기 이전에, 그러한 반성 때문에 생길 수 있는 부작용, 즉 반성 이전에 이루어지는 구체적인 경험의 중요한 대목을 놓치거나 왜곡하게 되는 데 대한 경계를 늦추지 않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아울러 제대로 이해되지 않는 복잡한 이론을 원용하는 것 보다 그와 같이 생생한 경험을 바탕으로 한 창의적이고 철학적인 분석을 높게 평가하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현상학은 의식작용의 주체인 인간이 주변 환경 내지 세계를 의미의 장으로 만드는 중심에 있는 것으로 여기는 것이라 말했다. 하지만 세계는 인간이 살아가면서 그렇게 의미를 부여하는 데 필수 여건으로 작동한다. 여기에서 후설의 현상학의 또 다른 중요 원리인 지평(Horizont)의 원리가 성립한다. 후설은 이론적으로건 일상적으로건 각 대상이나 사태에 대해 인간 주체가 의미를 부여할 그 바탕에 이미 의미화되어 침전돼 있는 세계가 보편적인 지평으로 작동한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성립하는 중요한 개념이 바로 ‘생활세계(Lebenswelt)'다. 생활세계는 과학적인 세계, 특히 물리학적인 세계와 대비되면서 인간의 삶이 다양하게 영위될 때 가장 근본이 되는 보편 지평으로 작동한다. 그러니까 진리의 원천은 물리학적인 세계가 아니라 그 보편적인 지평이 되는 생활세계라는 것이다. 생활세계는 기본적으로 구체적으로 지각되는 세계이고, 나아가 문화와 역사가 침전되어 있는 세계다. 이 개념이 비판이론가인 하버마스에게 넘어가 각종 사회적인 체계의 부당성을 고발하는 근본 지반이 된다. 생활세계에서 작동하는 주체는 선험적 주체가 아니라 상호 주관적 주체이기 때문에 비판적 합리성에 의거한 공동체성을 주장하는 하버마스에겐 더없이 좋은 개념이 된다. 생활세계가 인간 주체의 근본적인 지반이 된다고 하는 점을 특별히 강조함으로써 성립되는 것이 하이데거의 ‘세계-내-존재(In-der-Welt-sein)'다. 하이데거는 인간을 세계-내-존재, 즉 항상 세계로부터 떠날 수 없는 존재로 보면서 그 조건 속에서 자신의 존재에 대해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는 존재로 본다. 그 노력의 결과 획득하게 되는 참다운 인간의 존재를 실존(Existenz)이라고 말한다. 여기에서 실존철학적인 현상학이 태동하게 도니다. 이러한 하이데거의 현상학에 대한 새로운 해석은 프랑스의 사르트르와 메를로 퐁티에게 영향을 미쳐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현상학이 프랑스의 사상계를 지배하는 주요한 철학으로 자리잡는다. 특히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는 언명을 통해 본질주의적 인간관을 혁파라고 자기 형성의 실존적인 인간관을 내세운 사르트르가 전후 프랑스의 사상을 지도할 때 그 근본이 된 것은 현상학이다. 자기 책임하에 스스로 존재를 기획하여 현실화시키고, 그 과정에서 방해가 되는 모든 사물들과 타인에 의한 폭력적 규정에 철저히 저항하고 투쟁함으로써 절대적 자유를 향해 나아간다는 사르트르의 철저한 주체사상은 바로 현상학에 근거한 것이다. 2차대전 이후 프랑스 사상계 지배한 현상학 사르트르와 쌍벽을 이루며 현상학의 발전에 큰 획을 그은 인물이 메를로 퐁티다. 메를로 퐁티는 후설에서 하이데거를 거쳐 사르트르까지 이어지는 의식 위주의 현상학을 일거에 문제삼으면서 몸 중심의 현상학을 건립한다. 진정으로 세계와 교섭하면서 지향적으로 서로 작용을 주고받는 인간 존재의 기반은 몸이라는 것이다. 인간 활동의 근본은 지각이며, 몸이 수행하는 지각은 세계 속에서 세계를 향해 나아가 세계와 의미를 주고받으면서 세계와 하나가 되고자 하는 구체적 행동으로 규정된다. 메를로 퐁티는 선험적인 의식 주체가 세계를 구성한다는 후설에까지 크게 영향을 미치는 칸트식의 반성적인 의식철학 또는 그것에 배어있는 지성주의를 철저히 배격한다. 그 대신 몸에 익은 습관과 그에 따른 선인칭적인(prepersonel) 주체가 인간 존재의 기반이 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자율성, 능동성, 주체성 운운하는 근대의 인간에 대한 이념들은 기본적으로 불투명하고 애매모호한 성격을 띤 주체성을 기반으로 하는 것이고, 따라서 그 이념들은 궁극적인 것도 최종적인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능동적인 것만도 수동적인 것만도 아닌 인간 주체, 주체이면서 대상이기도 한 몸의 주체, 잠재적인 힘을 바탕으로 현실적인 힘을 발휘하는 주체, 실제로는 늘 세계 속에 뿌리를 내리고 있어 세계와 뚜렷이 구분할 수 없는 인간 주체 등을 메를로 퐁티는 강조한다. 흔히 현상학을 완전한 체계를 갖춘 특정한 철학체계로 보기보다는 일정한 경계 없이 여러 모로 발전해가는 철학운동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그럴 때 현상학이 근대 철학적인 면모를 벗어버리고 포스트모던한 철학으로 변신하는 데 획기적 역할을 한 철학자가 바로 메를로 퐁티다. 중요한 것은 이들 외에 뛰어난 현상학자는 그 이름을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엄청나게 많고, 현상학적 방법론은 여러 학문 분야에 두루 활용됐다는 점이다. 하이데거의 영향을 받은 가다머 등의 뛰어난 학자를 배출한 해석학 역시 그 지반은 현상학이다. 해체론으로 유명한 데리다 역시 현상학을 바탕으로 해서 자신의 철학을 형성했다. 현사학적 미학을 펼친 잉가르덴이나 뒤프렌느, 현상학적 사회학을 체계화한 슐츠, 현상학적 비평론인 수용미학, 현상학적 영화론, 현상학적 교육학, 심지어 현사학적 간호학도 있을 정도다. 후설의 영향으로 인간의 주체성을 중시하고자 하는 자는 누구든지 현상학적 관점을 취할 정도다. 국내에선 철학 이외 영역에 대한 영향력은 미약 국내의 상황을 둘러보면, 특히 지난 20년간 한국 철학계에서 유럽대륙 철학을 전공한 사람은 대부분 현상학권에 속해 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현상학 연구 1세대라 할 수 있는 윤명로, 한전숙, 조가경 등은 국내에서 현상학을 정착시키는 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 특히 한전숙은 일찍이 한국현상학회를 창립하여 한국의 현상학권을 지도하면서 많은 제자를 길러내고 ‘현상학’이라는 뛰어난 저설ㄹ 통해 현상학의 대중화에 크게 기여했다. 이들의 노력은 현상학 연구 2세대라 할 수 있는 소광희, 이영호, 신오현 등으로 이어지면서 현상학을 한국 철학의 주된 철학연구 분야로 정착시켰다. 이후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많은 현상학 계열의 박사들이 배출됐고, 관련된 많은 논문들과 저서가 출간됐다. 특히 현상학의 본고자인 독일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소장학자들이 즐비했다. 현상학은 애초 방법론적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철학에서 문제가 되는 여러 주제들, 예컨대 주체 자연 생명 인식 존재 언어 논리 몸 문화 기술 예술 종교 등에 관련해서 현상학적 접근을 통한 연구가 국내에서 다방면으로 이뤄지고 있다. 다만 아쉬운 것은 철학권에서의 현상학적 탐구가 철학 이외의 영역인 문학이나 문화예술 및 사회정치적인 영역에 대한 실질적 탐구에 대해서는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본래 철학이란 것이 개별적인 학문이나 실제의 사회영역에 영향을 미치기가 쉽지는 않지만, 어떤 철학적 탐구가 존재 의의를 지니기 위해서는 철학 이외의 학문이나 문화예술, 또는 사회정치적 영역에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러한 국내 현상학계의 처지는 대단히 유감스럽다 하겠다. 말하자면, 국내의 지성계 내지 지성적인 담론계에서 현상학을 바탕으로 영향력을 크게 발휘하는 일종의 ‘스타’가 없다는 것이다. 앞으로 현상학이 국내에서 힘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담론계 전체에서 ‘화두’가 되고 있는 주제, 곧 신자유주의 문제, 생태 환경 문제, 가상현실을 비롯한 뉴미디어 문제, 인간복제 등을 둘러싼 몸 문제, 공동체와 연대문제, 노동문제 등에 대해 현상학적으로 접근하여 분석해내는 저작과 강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